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73화 (173/221)

173. 곡의 주인은 (2)

“다음 질문으로 이어가 보죠.”

눈을 맞추고 자연스럽게 질문을 이어가는 기자.

연륜이 묻어나는 그의 인터뷰에 미셸이 앓는 소릴 냈다.

“살살 좀 해줘요. 질문이 끝도 없네.”

“오랜만에 인터뷰하는 거라 설레더라고요.”

“그러게 왜 편집장씩이나 되시는 분이 인터뷰를 한다고 오셨어요.”

“사무실에 갇혀 있는 게 근질근질했거든요. 예전 햇병아리 기자였을 때 마음으로 질문지를 작성해와 봤어요.”

그러면서 두툼한 질문지를 흔들거린다.

미셸이 질색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뭔 의욕을 그렇게 부리시나. 빨리해요, 그럼.”

빙그레 웃어 보인 기자가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이전 질문이 복귀에 대한 것들이었다면, 이번엔 향후 거취에 대한 질문이었다.

“현재 1인 소속사로 천천히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아마 수많은 레이블들이 부단히 미셸을 모셔가기 위해 노력 중일 것 같은데, 어때요? 제 예상이 맞나요?”

“제가 성질이 안 좋다고 소문이라도 났는지, 생각보단 없어요.”

“에이, 어지간한 조건으론 모시지 못할 게 뻔하니까, 지레 겁을 먹은 거겠죠.”

“포장 좋네요.”

둘의 웃음소리와 함께 순탄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얼마쯤 지나, 기자는 이제 마지막 한 장만 하면 된다며 아쉬워하지 말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미셸은 그럴 일 없으니 얼른 끝내자며 다음 질문을 기다렸고.

“5년의 공백을 깨고 나오셔서 이제 공연이나 방송 활동에 시동을 거셨단 말이죠? 그래서 이 질문을 안 드릴 수 없네요. 신곡 소식. 저희가 기다리는 미셸의 새로운 노래는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기다려주시는 모든 분께 정말 죄송하지만, 아직 작업 중인 신곡이 없습니다.”

“아이고, 예정도 전혀 없는 건가요?”

“아직은요. 새로운 방향의 재즈를 준비 중이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네요. 대신······.”

한껏 실망한 표정이던 기자가 이어지는 말에 안경을 추켜올렸다.

“절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조금이나마 반길만한 소식을 알려드릴게요.”

“그게 뭐죠?”

“제가 이번에 피처링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피처링이요?”

얼떨떨한 물음에 미셸이 끄덕였다.

“어떤···아니, 누구 곡에요?”

“그건 아직 밝힐 수가 없는 내용이네요, 다만 한 가지 지금 당장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미셸이 고즈넉한 미소를 지으며 물결 같은 웃음소릴 흘렸다.

“제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녹음 중 하나였다는 거예요. 이번 피처링이.”

#같은 시각. 미셸이 인터뷰 중이라는 연락을 받고, 셔츠 단추를 채웠다.

옷을 갖춰 입고서 호텔 로비로 내려가니, 연락받은 대로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네모난 안경에 반듯하게 넘긴 노란 머리.

어쩐지 금융계 직업이 어울릴 것만 같은 그는 월드덕 레코드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일전에 만났던 채드 이사의 비서쯤 된다고 했었나?

탁. 꽤 괜찮은 호텔 커피 맛을 느낄 새도 없이 그가 내게 본론부터 꺼내왔다.

“더 나은 제안을 드리기 위해서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그때 미팅으로 불발된 게 아니었습니까?”

“이 업계에 영원한 불발이 어딨겠습니까? 서로 상황이 맞으면 다시 붙고, 또 떨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곳이지요.”

뭐, 틀린 소린 아니지. 연예계라는 곳이 그런 곳인 건 맞는데.

서로 상황이 맞을 것도 없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먼저 손을 건네는지, 그게 의아했다.

혹시 미셸에 대한 내용을 알게 되었나 싶어서 찾아오겠다는 걸 수락했는데, 대화하다 보니 그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고······.

잠자코 기다리자, 직원이 차분하게 말했다.

“아더 레이블 뮤지션이 저희 월드덕 레코드 뮤지션의 피처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습니다.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으로요.”

“저희가······피처링을요?”

내 늘어진 대답이 그에겐 혹한 것처럼 보였나 보다.

그는 흐뭇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네. 꽤 인지도 있는 뮤지션들로 매칭을 해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해외 뮤지션들이 미국에 들어와 바로 자기 곡부터 낸다는 게 여간 리스크가 큰 게 아니죠. 아 물론, 던컨이 그런 식으로 큰 성공을 거두긴 했습니다만, 요즘 그쪽 상황도 꽤나 복잡한 것 같더군요.”

그러더니 빙그레 한 번 웃어 보이고 다시 말을 이어간다.

“그러니 저희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해 인지도를 쌓고, 보다 안정적으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더불어 대표님에 대한 커리어도요.”

“저요?”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세비슨 너플러 앨범. 타이틀곡이 지금 빕니다.”

저 말은 마치 내게 타이틀곡 자릴 주겠다는 것처럼 들리는걸?

직원은 옅게 웃고 있었다.

난 갸우뚱했고.

“갑자기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채드 이사님께서 지난번 미팅에 대해 크게 아쉬워하셨습니다. 장 대표님의 실력을 높이 사고 계셨는데, 일이 어그러졌으니까요. 그래서 한 번 더 기회를 만들어보자고 하셨죠. 장 대표님이 아더 레이블 뮤지션들을 걸려 하시는 것 같아 그것에 대한 대비책도 저희가 따로 마련한 거고요.”

완벽한 답안지를 제출한 학생처럼, 직원은 여유롭게 커피잔을 들었다. 보나 마나 만점이라는 듯이.

그 답안지를 바라보며 나는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채드 이사가 아쉬워서 다시 제안하러 직원을 보냈다?

아무래도 이상하지.

이전 미팅 때, 채드 이사는 조금도 아쉬워 보이지 않았거든.

오히려 내 선택에 불편함을 여지없이 내비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흐음, 아무래도 힘들겠네요.”

“그렇죠. 당연히 그러······네?”

“제가 제 뮤지션들 곡 만들기도 빠듯해서요. 다른 곡을 작업할 여력이 없네요.”

믿었던 답안지에 빨간 작대기가 그려지자 한결같은 표정이 순간 한 꺼풀 벗겨졌다. 당혹감과 어처구니없음이 헛웃음에서 드러난다.

“하하, 장 대표님. 이거 정말 좋은 기회 십니다.”

“제 기회는 제 뮤지션들에게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직원이 맞받아쳐 왔다.

“뮤지션이요? 대표님, 아직 경력이 짧으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짢으시더라도 말씀을 좀 드리겠습니다. 언제까지 대표님의 뮤지션일 거라 생각하십니까?”

빗장 풀린 입이 가시 돋친 말들을 줄줄이 풀어낸다.

“결국, 더 좋은 길을 찾아 레이블을 떠나는 뮤지션도 있을 거고. 사소한 일로 오해가 생겨 뒤통수를 치고 떠나는-.”

더 들을 것도 없을 것 같아, 내가 그의 말을 끊었다.

“아직 그런 친구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혹여나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소속이 어디냐가 제 뮤지션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것 같진 않네요.”

“하, 등을 돌려도 마주 보실 수 있으시다? 이상적이시군요.”

“그런 편이죠. 아무리 봐도 월드덕이 원하는 인재상은 아니죠?”

“큼, 원하는 건 저희가 아니라···!”

뚝 끊기는 말.

내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세비슨 너플러가 절 원합니까?”

네모난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방황한다.

맞나 보네.

왜 저쪽에서만 제안을 해대는데, 이렇게 저울의 무게추가 맞춰지나 했더니, 이거였구만?

내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직원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자릴 정리했다.

“이만 가봐야겠네요.”

#다음날.

해가 정수리를 내려다볼 때쯤, 하나의 인터뷰 기사로 미국 전역이 떠들썩해졌다.

재즈계의 살아있는 전설, 미셸 루바니가 누군가의 피처링으로 참여했다는 인터뷰.

기사는 세포분열이라도 하듯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과연 미셸이 자신의 앨범보다 먼저 선택한 뮤지션은 누구일지에 대해.

재즈를 좋아하는 리스너들은 물론이고, 재즈엔 관심이 없으나 미셸만큼은 누군지 아는 일반 대중들까지도 이 상황을 흥미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엔 여러 찌라시들이 부유물처럼 떠다녔고, 은유란의 미국 데뷔에 관한 소식은 침전물처럼 가라앉았다.

그리고 레드리시의 합주실.

“비주류 음악이···대중음악들···꺾어 나가며 빌보드 차트 1위, 그래미 3관왕···빛난다···업적이···미셸 루바니가 이룬···.”

유지은이 소파에 드러누워 발을 동동 구르며 기사를 읊어대고 있다.

빛난다, 독해력이, 주입식 교육이 만든.

“에잇, 서론이 뭐 이렇게 길어! 아무튼, 언니가 누군지 너무 궁금하대요!”

“그, 그래?”

옆에 앉아있던 은유란이 어색하게 웃는다. 번역에 대한 신뢰라곤 1도 없는 표정이지.

“댓글도 읽어드릴까요?”

“굳ㅈ······그으럴래?”

“네!”

지금 베일에 싸인 당사자인 은유란보다 어째 유지은이 더 신났다.

은유란은 연신 어색한 웃음만 흘리고.

뭔가 자신과는 종족부터가 다른 듯한 유지은의 깨발랄에 은유란이 적응하기까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지.

“무슨 추리 게임이냐. 그래서 곡의 주인이 누구냐. 너무 궁금하다. 미쳤다, 미셸이라니. 피처링이라도 좋다. 누구지? 미셸의 후계자인 건가. 근데 이렇게 이슈 만들어 놓고 곡 별로면 어쩔······.”

댓글은 나름 물 흐르듯이 읽어내려가던 유지은이 우려 섞인 댓글에 말끝을 흘렸다. 동그랗게 뜬 눈이 은유란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괜찮아. 피디님이 저런 반응도 있을 거라고 미리 말해 주셨거든. 저런 게 오히려 우릴 도와주는 거래.”

기대보단 의심 어린 시선이 정작 뚜껑을 열었을 때, 더 효과가 클 테니까.

유지은이 돌아누워 내 쪽을 보며 히죽 웃었다.

“역시 피디님이셔.”

“배꼽 보여요.”

“헤, 원래 그런 옷인걸요.”

“끙, 그렇다 치고. 본인 걱정 좀 하시죠? 유란 누나와는 달리 레드리시는 무려 정규 아닙니까.”

유지은이 표정을 확 바꾸며 날 흘긴다.

“부담 주는 거 봐? 역시 사장놈이야······.”

“사장놈?”

은유란이 갸웃거리자, 유지은이 금세 히히거리며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네, 새로 생긴 피디님 별명이에요. 뭔가 귀엽죠?”

“피디님 별명은 한 번 더 아닌가?”

“아뇨, 그건 유행어에요.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게 한 곡 더, 한 병 더, 한 편 더······.”

저걸 왜 저렇게 열심히 설명하는 건데.

“오호, 그런 거였구나.”

저걸 왜 또 열심히 듣고 있고.

고개를 내저으며 피식 웃었다.

시선을 돌리니 레드리시 나머지 멤버들과 서울의 와인도 이런저런 얘길 나누고 있었다. 아까는 악기별로 짝을 지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지금은······.

“그랬더니 대표님이 딱 이러시는 거예요. 마침 자정이네요.”

“왜지? 자정이 왜요?”

“저희 계약 기간이 딱 그날까지였거든요.”

“키야, 마이원인지 마이쮼지 아주 셈 통이다!”

“더 셈 통인 건 그 후에 거기 간판 아이돌이 스캔들로 아주 난리가···!”

뒷담 중이다.

“와, 거기 대표 뒷목 잡고 쓰러졌겠는데요? 우린 어땠지? 솔직히 앤 더글라스 내한 때 버스킹한 얘기는 언론에 너무 많이 나와서 지겹고······.”

이병국이 고심하자, 내심 자랑하고픈 게 있었는지 기성운이 슬쩍 운을 던진다.

“코첼라.”

“그게 있었지! 저희 코첼라 때 스테이지에 덮여있던 천막을 아예 걷어버렸거든요.”

“아, 그거 기사로 봤어요! 사람들이 너무 몰려서 천막을 아예 걷어내 버렸다고!”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우선 코첼라 주최 측이 골든보이스인 건 아세요? 거기 대표가······.”

다행이다. 오늘 처음 만난 은유란과 유지은, 서울의 와인과 레드리시가 서로 쿵짝이 잘 맞는 것 같아서.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 대해 편해진 두 팀은, 어느새 한데 뭉쳐 음악 얘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서로 장르도 다르고, 음악을 해온 배경도 다르지만.

이야기는 윤활유를 바른 톱니바퀴처럼 착착 맞물려갔다.

#“믹싱도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하더라고요.”

밥의 말에 내가 끄덕였다. 그가 건넨 커피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네, 확인했습니다······근데 이거 혹시.”

“지난번에 맛있다고 하셨던 걸로 또 사 왔습니다, 하하.”

“······그렇군요.”

커피값을 주고 또 흙을 사 왔구나.

“이제 뉴욕으로 가시나요?”

“네, 던컨과 출연 약속된 프로그램이 있어서요. 아마, 곡 발매도 뉴욕에서 지켜보게 될 것 같네요.”

밥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주억거렸다. 그러다 뭔가 생각 난 듯 날 보며 물어왔다.

“오늘 마케팅 파트장님 얘기 들어보니까······거기도 이슈가 좀 있다고 하는 것 같던데요?”

아주 조심스럽다.

그도 그럴 게, 결코 기분 좋을 이슈는 아니었으니까.

내가 없는 사이, 던컨 쪽에도 일이 좀 생겼지.

“네, 평론가들이 작정이라도 한 듯이 아이돌 문화를 까내리고 있다네요.”

“그거 너무 신경 쓰진 마세요. 그렇게 깎아내리는 게 그 사람들 일이니까요.”

“그렇죠.”

흙탕물 같은 커피를 머금고, 쓴웃음을 지으며 고갤 끄덕였다.

“각자 일이 있는 거니까요.”

그러니, 나도 내 일을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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