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72화 (172/221)

172. 곡의 주인은 (1)

직원들 대부분이 출근하지 않은 주말.

더블타임 녹음실에 불이 들어왔다.

녹음 중이라는 걸 알리는 불빛이 들어오며 으스름한 복도를 밝혔다. 아직 녹음이 시작된 건 아니었다. 대신, 엔지니어와 그의 보조가 곧 있을 녹음 준비에 한창이었다.

“잠은 주무신 거죠?”

은근한 긴장감까지 흐르며 계속되는 준비.

녹음 부스 정리를 마친 보조가 녹음실로 나와 침묵을 깨고 물었다.

콧수염 난 엔지니어가 퀭한 두 눈을 움직이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알아서 뭐하게.”

푸스스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웃는 보조.

그가 눈을 비벼대며 말했다.

“전 한숨도 못 잤어요. 두근두근하더라고요. 제가 살아있는 전설의 목소릴 담는 현장에 있다니! 미셸 루바니가 이렇게 제대로 녹음하는 거 4, 5년만 아녜요?”

“그동안 계속 공백이었으니까.”

“그러니까요. 저 오늘 얼 탄다고 너무 혼내시면 안 됩니다. 정신 못 차릴 거 같거든요.”

“니가 뭐 다른 뮤지션이라고 빠릿한 적 있었어?”

엔지니어가 노려보며 으르렁거리자 보조가 능구렁이처럼 웃었다.

“그래도 엔지니어님도 오늘은 좀 달라 보이시네요.”

“뭐가.”

“긴장하셨잖아요?”

엔지니어가 이펙터를 하나씩 화면에 띄우며 되물었다.

“내가?”

“네, 미셸 루바니의 목소리 받는 거 솔직히 긴장되시죠?”

“건방진 녀석.”

쏘아보는 자신의 스승, 엔지니어를 향해 보조가 흐물흐물 웃었다. 자신이 맞았다는 표정으로.

이에 마우스를 달깍거리던 엔지니어가 덤덤하게 말했다.

“20년 넘게 수많은 목소릴 받았지만, 단언컨대 미셸 루바니 같은 목소린 없었어. 그런데 어떻게 긴장이 안 되겠냐. 물론 그것 때문만이라고 할 순 없지만.”

시간을 보고 빗자루질을 시작하던 보조가 잠깐 멈춰 서서 갸웃거렸다.

“그럼요? 미셸 말고 다른 이유가 있어요?”

“곡의 주인 때문이지.”

“곡의 주인?”

“미셸이 곡의 주인은 아니잖냐.”

“아, 은유란!”

“그렇게 발음하는 거였냐? 아무튼.”

“근데 그녀가 왜요?”

어느새 화면에 가득해진 각종 이펙터들.

엔지니어가 그 이펙터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미셸과의 조합이 그녀에게 악영향을 미칠지도 몰라.”

“에? 행운이 아니라요?”

“행운? 뭐, 책상 앞에 앉아서 판매량 계산하고 화제성이나 고민하는 홍보쟁이들 입장에선 행운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곡을 위해선 글쎄다.”

보조가 잠자코 기다리자, 엔지니어가 아직도 이해 못 했냐며 말을 이어갔다.

“보통 이런 영앤 올드 조합으로 듀엣이나 피처링을 할 땐, 성별을 다르게 가져가는 경우가 많아. 그게 왜일 거 같냐?”

“보기 좋아서?”

탁! 돌돌 말은 악보가 보조의 목덜미를 내려쳤다.

“무슨 아담과 하와냐?”

“아 야야······그럼 뭔데요?”

“그래야 티가 덜 나니까.”

“티? 무슨 티요?”

“역량의 차이. 남자와 여자의 음색이 명확히 다른 걸 이용해 그 역량의 차이를 가리는 거지.”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에 답답하다는 듯 덧붙이는 엔지니어.

“서로 같은 악기가 함께 연주하면 연주자의 실력 차가 뚜렷하게 보이지만, 완전히 음색 자체가 다른 악기라면 그 차이가 무뎌지듯이. 근데 같은 성별에 같은 장르 뮤지션이 같이 부른다? 최악의 경우엔, 주인공이 뒤바뀔 수도 있어.”

그제야 이해한 보조가 주억거린다. 그러더니 사뭇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꼬릴 올렸다.

“그래도 빌보드 장르별 차트까지 진입했었던 뮤지션이잖아요. 들어보니 노래 정말 잘하던데요?”

“나라고 안 들어봤겠냐.”

항상 녹음 전에 대상의 목소리를 세세하게 분석하는 그였다. 음색에 맞게 세팅 값을 다르게 가져가야 하기 때문.

믹싱 단계에서 한 번 더 만져지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받을 때부터 좋게 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잘 불러. 솔직히 놀랐다. 몇 년 후엔 정말 대단한 재즈 뮤지션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였어.”

깐깐한 자신의 스승이 극찬을 하자 보조가 새삼 놀라워했다.

녹음만 끝나면 오늘 뮤지션은 뭐가 문제였느니 저래선 안 되느니 지적만 하던 스승이었기에.

누군가를 이렇게 칭찬한 건 손에 꼽았다.

그러나, 여전히 저 깊게 파인 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앨범. 불과 작년에 나왔더군.”

“아직 이르다는 얘기군요?”

“한참 이르지. 심지어 비교 대상이 미셸이니까. 그 사이 말도 안 되는 성장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해. 뭐, 애시당초 그런 성장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그럼 어떻게······.”

“목소릴 최대한 정교하게 만져서 미셸에게 묻히는 불상사는 피해야겠지. 그게 가능할진 모르겠다만.”

그러면서 이펙터들을 전부 채널에 걸었다. 녹음 상황에 어떤 게 필요할지 모르니까 미리 걸어두는 것.

“그래도 다행인 건, 미셸이 처음부터 와서 대기할 리 없다는 거야. 그러니 그녀가 오기 전까지 계속 시도해 봐야지. 미셸 루바니를 뒤에서 기다리게 하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니까.”

보조도 상상하기 싫은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녹음실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녹음실로 들어왔다.

엔지니어도, 보조도 그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헤일리 쇼를 시작으로 여러 유명 프로그램들을 순회하며 얼굴을 알린 기로 프로듀서.

그 뒤로 아담한 키의 은유란과 밴드, 서울의 와인이 우르르 들어온다.

“어···?”

거기까지였다면 좋았을 텐데.

보조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 뒤로 들어오는 노령의 여인을 본 거다.

“장 대표님, 밥이란 분이 엄살을 떨었네요. 충분히 훌륭한 녹음실인걸요?”

녹음실을 훑으며 들어와 부드럽게 미소짓는 미셸 루바니.

예상보다 너무 이른 그녀의 등장에 엔지니어와 보조가 헛바람을 삼켰다.

보조가 고갤 홱 돌려 엔지니어를 바라봤다.

‘벌써 와버렸는데요?’라고 묻는 표정.

바싹 마른 엔지니어의 울대가 꿀렁였다.

*엔지니어의 시선이 녹음 부스로 들어가는 은유란을 따라갔다.

남들은 배꼽 아래로 떨어지는 유리창이 그녀에겐 가슴 부근까지 올라와 있었다. 보조가 뛰어들어가 마이크와 보면대의 위치를 다시 조정하고 나와야 했다.

그 사이, 그녀는 커다란 헤드셋을 최소한으로 조여 머리에 썼다. 그래도 헐렁이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귀엽다···.”

옆에서 보조 녀석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순간 악보를 말아 뒤통수를 후려치고픈 마음이 들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기에 그럴 순 없었다.

속으로 혀를 차며 시선을 돌리자 오늘 녹음을 진행할 기로 프로듀서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이 곡의 MR 녹음을 위해 한차례 작업을 했었던.

‘이 친구, 보통은 아니었지······.’

일단 곡 자체가 굉장히 괜찮았다.

동시에 직관적이면서도 뻔하지 않은 짜임새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프로듀싱 실력은 더 놀라웠다.

서울의 와인이란 밴드가 가진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MR를 완성해 나가는데, 솔직히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뛰어난 작곡가이자, 놀라운 프로듀서.

그게 엔지니어가 본 기로 프로듀서였다.

그리고, 그래서 더 의아했다.

‘왜, 미셸과 은유란을 붙여놨지? 두 사람이 비교될 거란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여전히 좁혀진 미간으로 엔지니어가 장기로를 노려봤다.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그게 더 의뭉스러웠다.

‘실력이 없었다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말이지.’

아니면, 홍보에 미친 걸까?

그럴지도. 미국 땅에서 그것도 재즈곡을 성공시킬 방법이 이것뿐이라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설사, 자신의 뮤지션에겐 독이 될지라도.

그런 생각을 하는데, 기로 프로듀서가 자신을 돌아보았다.

“녹음 방향부터 잡아볼까요?”

“······그러시죠.”

“우선, 저도 고민을 해봤는데······.”

기로 프로듀서가 종이 뭉치를 꺼내 들었다. 자세히 보니 악보였다. 아주 지저분한.

아니, 지저분해 보일 정도로 빼곡한 글씨들이 적힌.

“엄청나네요. 대체 뭐가 적혀있는 거죠?”

“보컬이 주의해야 할 점들과 살려줘야 하는 부분 같은 걸 적어둔 겁니다. 생각보다 그리 거창한 내용은 아닙니다.”

그의 말에 엔지니어가 악보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했던 생각들을 내다 버리며.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이런 사람이.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자신의 뮤지션에게 자충수를 둘리 없었다.

그럼 대체 뭘까?

‘혹시······.’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미셸과 대등하게 노랠 부르는 게?

엔지니어의 시선이 다시 은유란에게로 향했다.

앞머릴 정리하며 수줍게 서 있다. 그 앞엔 그녀의 머리 크기와 비슷할 것 같은 노이만 TLM-103 마이크가 투박하게 서 있었고.

-아.

모니터를 천천히 키우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기로 프로듀서가 토크백을 눌렀다.

“들리죠?”

-네, 들려요.

“우선, 1줄부터 불러보죠. 부르면서 톤 잡아볼게요.”

-그, 잠시만요. 후······하.

은유란이 크게 호흡을 하며 마이크로 한 발짝 다가선다. 그리고 유리 너머 기로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둘의 시선이 교차하자, 은유란에게 자작하게 남아있던 긴장감마저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시작할게요.

차분한 목소리.

기로 프로듀서가 엔지니어를 보며 끄덕였다.

묘한 표정으로 기로 프로듀서와 은유란을 번갈아 바라보던 엔지니어가 녹음 버튼을 눌렀다.

카운트 다운.

그리고 MR과 메트로놈.

그 위로 얹어지는 은유란의 목소리.

“······.”

엔지니어는 눈앞에 그려지는 파형을 바라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미치겠군. 이게 가능한 건가?’

욕지기 섞인 감탄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 했다. 뒤에 미셸이 있다는 걸 떠올리며 겨우 막아내며 시선을 움직였다.

옆에 앉은 기로 프로듀서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옅게 웃고 있었다.

당연한 결과를 보는 사람처럼.

엔지니어는 허탈한 표정으로 다시 모니터에 눈길을 돌렸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대체 어떤 연습을 하고.

어떤 곡들을 불렀길래.

‘1년 만에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거지?’

#흡사 산모의 출산을 기다리는 남편들 같았다.

밥과 마케팅 파트장 말이다.

“순산입니다.”

“···?”

“녹음 잘 나왔다고요. 너무 긴장하셨네.”

밥의 칙칙하던 낯빛이 걷힌다. 마케팅 파트장도 다행이라며 머리를 짚었다.

내가 무슨 주치의라도 된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미셸이 나오자 밥과 마케팅 파트장이 순식간에 그쪽으로 다가선다.

진짜 주치의는 저기였네.

“녹음 진행하는데, 불편하시진 않으셨나요?”

“전혀요.”

그러면서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내 쪽을 본다.

“너무 즐거웠네요. 많이 배우기도 했고.”

신앙심 가득한 눈으로 미셸을 보던 둘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미셸이 여기서 뭘 배웠다는 말이 문법적으로 틀린 말처럼 느껴진다는 듯이.

미셸이 자신의 남동생과 떠나고, 어김없이 밥이 내게 물어왔다.

“대표님께 뭔갈 배웠단 말이었을까요?”

“그건 아닐 거 같네요.”

“···?”

미셸이 사라진 쪽을 보며 내가 웃었다.

그때 마케팅 파트장이 ‘그나저나···’라며 화두를 돌렸다. 그에겐 미셸의 말보다 더 중요한 게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이 곡에 미셸이 참여했다는 걸 언제쯤 밝히는 게 나을까요?”

마케팅 파트장답게, 흥분되는 듯 반짝거리는 눈빛.

‘아, 그게 있었지.’

곡 녹음이 완료되었다. 그 밖의 재킷이나 뮤직비디오 같은 것들은 곡의 믹싱과 마스터링 진행 상황에 맞춰 함께 완성될 터.

이제 우리는 대중들에게 미셸을 어떻게 등장시킬지 고민할 차례였다.

“그냥 앨범 발매 직전에 공개하는 게 제일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밥의 말에 마케팅 파트장도 보통은 그게 정석이라며 주억거린다.

하긴, 이미 미셸이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슈가 될 콜라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엔 시기보단 어떻게 관심을 끌지가 관건이라는 게 주재윤과 전화로 회의한 결론이었다.

이슈를 더 키울 방법이 있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아예 반대로 해보는 건 어때요?”

“네?”

고심하는 듯한 밥과 마케팅 파트장에게, 내가 말했다.

“미셸이 누군가를 피처링 하긴 했는데, 그게 누군진 모르게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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