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62화 (162/221)

162. 완성된 다리 위로 (1)

“떨 필요 없어! 너희 연습량을 믿어!”

대기실 문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한동휘의 목소리.

내뱉는 말과는 달리 정작 본인이 격한 바이브레이션 중이었다.

슬그머니 문을 열어젖히고 지켜보는데 던컨 멤버들이 먼저 나를 발견하고 반색했다. 이어서 한동휘의 시선도 애들을 따라 날 찾았다.

“대표님!”

웃으며 인사하고, 애들에게로 다가섰다.

오히려 이쪽은 전혀 안 떨고 있는 것 같은데?

“피디님, 밖에 보셨어요? 줄이 으마으마하게······!”

임현택의 반응에 엄대한이 맞장구쳤다.

“맞아요. 게다가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예석이처럼 영어 공부 좀 더 열심히 해놓을걸!”

오승준의 후회 섞인 얘길 들으며 나도 한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어정쩡한 자세의 한동휘에게 말했다.

“하던 얘기, 마저 하세요.”

“예? 아, 예. 그니까 얘들아. 내가 하고픈 말이 뭐냐면 말이지······.”

임현택이 얼른 입을 열었다.

“우리 연습량 믿고 떨지 말고 제대로 보여주자! 맞죠?”

“어? 어, 맞지.”

거기에 정현우가 덧붙인다.

“저희 안 떨어요. 연습을 정말 열심히 해서 자신 있다, 뭐 그런 게 아니라······.”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아는 듯, 던컨 멤버들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간다.

“트레이너님과 팀장님, 지희 누나, 월드 TKM 직원분들, 그리고 대표님. 저희 때문에 고생하신 분들 제대로 보람차게 해드리고 싶어서, 그래서 다짐했거든요. 오늘 떨지 말고 제대로 보여주자고.”

또박또박 말하던 정현우의 시선이 나와 마주쳤다. 내가 끄덕이며 웃자, 정현우도 씩 웃는다.

‘든든하네.’

속으로 생각하며 한동휘를 슬쩍 보았다. 많은 생각이 스친 얼굴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과거의 자신이 무대에 서던 때를 떠올리고 있을까?

당시 멤버들과 으쌰으쌰했던 기억을 곱씹는 걸지도 모르지.

나였다면, 그랬을 것 같았다.

잠시 후, 문을 두드리며 스태프가 찾아왔다.

“저희 진짜 잘하고 내려올게요!”

파이팅 넘치게 무대로 향하는 던컨.

나는 그들이 나간 문을 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수고하셨어요.”

옆에서 먹먹한 대답이 들려왔다.

“···네.”

잠깐의 정적. 그리고.

“대표님. 제 실패가, 제 후회들이 애들한테 도움이 되었겠죠?”

이번엔 한동휘가 물어왔다.

나는 망설임 없이 입술을 달싹였다.

“그야······.”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열린 문밖엔 김지희와 이강훈 팀장이 서 있었고, 그들은 급하다는 듯 우릴 재촉했다.

“대표님, 사회자 올라갔습니다. 빨리 가야 해요!”

“우리 애들을 첫 무댄데 우리가 놓치면 안 되죠!”

때마침, 복도에 환호성이 밀려 들어와 우리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미리 점찍어 둔 쇼케이스장 구석진 곳에 나란히 섰다.

타이밍 좋게 전주가 흘러나오며 스크린에 다섯 명의 실루엣이 크게 떠올랐다.

실루엣들이 점점 작아지며 실제 멤버들의 크기를 찾아간다. 이윽고 원래의 크기를 찾은 실루엣들이 멤버들로 자연스럽게 교체되며 스크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직전까지만 해도 스크린이 움직이는 거로 생각했던 관객들의 입에서 아까보다 더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쇼케이스장이 들썩들썩하다. 앞에 있던 기자들이 화들짝 놀랄 정도로. 아예 뒤로 돌아앉아 팬들의 반응을 찍는 기자들도 더러 보였다.

‘시작이 좋네.’

주변 상황을 훑으며 흐뭇해하는 것도 잠시.

일부러 길게 편곡된 전주가 끝나고 진짜 전주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나는 던컨에게서 눈과 귀를 뗄 수 없었다.

숱하게 봐왔던 안무와 노래인데.

심지어 노래는 내가 만들었는데.

그럼에도 강렬하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 하물며 오늘 처음 듣는 이들에겐 어떨까?

넋을 놓고 보다가 문득 한동휘를 보았다.

‘대표님. 제 실패가, 제 후회들이 애들한테 도움이 되었겠죠?’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고 대기실을 나온 게 마음에 걸려서.

하지만 그의 표정을 보는 순간,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었단 걸 깨달았다. 이미 답을 들은 듯한, 아니 보고 있는 듯한 얼굴이다.

나는 다시 무대 쪽으로 고갤 돌렸다.

효율 대신 노력을 택한 던컨이, 어느 것 하나 모자람 없는 모습으로 무대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아까 그 머리 막 레게처럼 따아서 산발인 스태프 보셨어요?”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신 김지희가 사이다라도 마신 듯 키야, 소릴 내며 물었다.

입꼬리를 말아 올린 김지희를 보며 곰곰이 생각을 되짚었다.

“그 백스테이지에서 동선 관리하던···?”

“네, 맞아요!”

내가 짐작한 사람이 맞는 것 같긴 한데, 왜 저렇게 싱글벙글하지?

김지희가 헤벌쭉 웃으며 말을 잇는다.

“지난번에 무대 확인차 왔을 때, 고 사람이 엄청 쌀쌀맞았었거든요. 뭐만 물어보면 귀찮은 눈빛 팍팍 쏘아대면서! 그랬는데 오늘은 무대 끝나자마자 대기실 앞까지 졸졸졸 따라오더니 사진 좀 같이 찍어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렇게 청량한 얼굴이구만?

내가 피식 웃으며 고갤 돌렸다. 옆에서 와구와구 고기를 흡입 중인 던컨에게 물었다.

“그래서 찍어줬어?”

입안에 고기를 왕창 넣은 임현택이 무슨 말을 하려다 퍽퍽한지 잔을 들이켰다. 물잔이 아니라 샴페인 잔을.

콜록거리는 임현택을 대신해 정현우가 끄덕였다.

“찍었어요.”

“그래? 안 서운했어?”

“서운했죠. 솔직히 순간 좀 미워서 바쁘다고 할까 하다가, 그냥 웃으면서 찍었어요. 우리만 싫은 소리 들으면서 준비한 무대가 아니잖아요. 다들 고생하셨는데.”

“어쩜 말도 이쁘게 해요!”

김지희의 칭찬에 부스스 웃는 정현우.

파스타를 우물거리던 엄대한이 어눌한 발음으로 중얼거렸다.

“현택이 형이 사뢰 들린 게 다행이구만?”

“나도 저렇게 말하려고 했거든? 그리고 너 이럴 때만 한국어 어눌한 척하지 마라?”

임현택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쏘아보는데, 엄대한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포크 질에 신중을 기했다.

그 모습에 나머지가 웃음을 터트렸고.

마침내 육즙미 넘치는 고길 포크에 찍은 엄대한이 그걸 임현택에게 건넸다.

“그래도 형 오늘 진짜 멋지더만요. 그뤠잇.”

“참 내.”

피식 웃은 임현택이 받아먹었다. 그리고 다른 고기 한 점을 엄선해 푹 찍어 옆자리 신예석에게 들이밀었다.

“영어 열심히 한 공부한 보람 있더라? 통역 없이 말하는 거 멋지던데? 랩이야 항상 멋졌고.”

뜬금없는 릴레이가 시작되었다.

“승준아, 너 노래 진짜 잘 부르더라. 그리고 네가 추천해준 웹소설······재밌던데?”

“그치? 그거 진짜 재밌지!? 아, 아참. 나도 해야지.”

아냐, 안 해도 돼······.

내가 속마음을 삼키는 동안, 오승준은 정현우에게로 고기를 건넸다.

“형은······걍 짱이야. 춤의 신이란 웹소설이 있다면 거기 주인공은 형일 거야.”

그리고 마침내 정현우가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한동휘에게까지 소고기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그래, 고맙···.”

“선배님.”

“다······.”

한동휘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웃었다. 살짝 눈시울을 붉힌 것 같기도 한데, 조명이 적절히 어두워서 제대로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이 집 조명 맛집이네.

조금 간질거리긴 하지만 보기엔 꽤 흐뭇한 장면이었다.

-라고 생각하는데 한동휘가 고기를 푹푹 찍기 시작한다.

설마···.

포크에 꼬치 마냥 꽃힌 큐브 스테이크가 날 향한다. 한 번 잡솨봐, 라는 듯이.

“대표님.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 과거가 청산되는 것 같았어요.”

무슨, 어디 조직에서 생활하셨냐고.

“아, 네······.”

고기를 받아먹었다.

우물우물.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 육즙이 넘쳤는데, 지금은 퍽퍽하다.

기대 어린 시선 하나가 느껴지는 탓이다.

이강훈 팀장이 날 보며 입 운동 중이다. 크게 벌리려고.

그러지 말지.

“그······.”

“네, 대표님. 전 다섯 점도 가능합니다.”

그러지도 말지.

이마를 긁적이다, 옆 테이블로 시선이 갔다.

흥미진진한 얼굴로 보고 있는 윤 이사와 월드 TKM 직원들. 그리고 브이로그 촬영팀.

그들을 보자 순간 번뜩였다.

“아, 다들 그거 알아요?”

“???”

내가 어쩔 수 없단 표정으로 얼른 손목을 가리켰다.

시침과 분침이 서로 포개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웃고 떠들다 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지.

“곧 발매 시간이에요.”

그러자 날 보던 눈들이 동그래지며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다.

“엇! 자, 잠깐 기도 아직 안 했는데!”

“저 부모님한테 전화 좀······.”

“오늘의 운세, 오늘의 운세···.”

이때다 싶어 김지희와 이강훈 팀장 접시에 고기 한 점씩 얹었다.

“고생하셨어요. 두 분 모두.”

실망한 표정이던 이강훈 팀장을 달랬다. 김지희는 오히려 자기 차례가 안 와서 다행이라며 안도했고.

“아이고, 클라이맥스에서 뚝 끊겨버리네.”

“그러게요. 재밌는 구경이었는데.”

“잘 찍었죠? 이건 브이로그에 무조건 올려야 해.”

옆 테이블에서 윤 이사와 월드 TKM 직원들이 우리 자리로 넘어왔다. 그리고 카메라들도.

“시간 알면서 일부러 말 안 하셨죠?”

내 물음에 윤 이사가 속 빈 웃음을 흘렸다.

“에이, 우리도 몰랐어.”

“계속 시계 확인하셨잖아요. 제가 그거 보고 눈치챈 건데.”

“크흠!”

“뭐야, 이사님 때문이었네!”

한참 동안 직원들에게 구박당하던 윤 이사가 들고 온 잔에 샴페인을 채워 넣으며 내게 말했다.

“아까 그거 휘뚜루마뚜루 넘겼으니, 인간적으로 건배사는 한번 해줍시다, 장 대표님.”

그의 말에 사람들이 동조했다. 각자의 잔을 들고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민망하게 그들을 훑어보다 던컨에서 시선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두가 은근히 바라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게 있지.

“가보죠.”

잔을 들어 올렸다.

“빌보드.”

#“스포티파이 62위, 애플뮤직 41위, 아마존 뮤직 57위······전부 차트에 들었네?”

오차드사의 말콤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커피를 내려온 케이트가 잔 하나를 말콤에게 건네며 말을 받았다.

“깜짝 놀랐어요. 아무리 헤일리 쇼가 반응이 좋았다고 해도, 이렇게 단번에 메이저 차트 전부 들 줄이야. 게다가 진입 순위보다 조금씩 오르고 있잖아요.”

“그러게. 아까 소니 뮤직에서도 연락 왔었어. 많이 놀랐나 보던데?”

“본사는 애초에 큰 기대 안 했었으니까요.”

“부사장님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물어보시는데, 괜히 내가 으쓱하더라고.”

나직이 웃는 말콤을 보며 따라 웃던 케이트가 문득 그의 책상에 놓인 종이를 발견하곤 손을 뻗었다.

“이제 이거 필요 없지 않아요?”

일전에 기로 프로듀서에게 건넨 방송 프로그램들일거라 생각한 케이트가 대수롭지 않게 종이를 훑었다. 그리고 이내 눈을 깜빡거린다.

“어? 이거 그때 그 프로그램들이 아니네요?”

말콤이 끄덕였다.

“아니지. 그건 진즉에 버렸어.”

“그럼 뭔데요? 설마······새로 들어온 것들이에요?”

방송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프로그램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이걸 두고 미국 방송 순위라고 거짓말을 해도 믿을 법한 메이저급 방송들.

“심지어 전부 기로 프로듀서와 던컨이 같이 출연하길 원하고 있지.”

말콤의 말에 케이트가 입을 쩍 벌렸다. 그런 그녀를 보며 말콤은 더욱 부슬부슬하게 웃는다.

“궁금하지 않아? 이 프로그램들을 다 돌고 나면······.”

케이트가 내려준 커피를 들어 올리며 그가 가까운 미래를 떠올렸다.

“순위가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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