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58화 (158/221)

158. 기다림 끝에서 (9)

대형 기획사 간의 피 튀기는 차트 전쟁을 예고했고, 그 양상이 치열하길 바라던 기자들이 김빠진 콜라를 먹은 듯 잠잠해졌다.

압도적인 차이로 솔라톤의 MKO가 퀀텀보이즈를 눌러버린 것.

MKO의 수록곡 중 마지막 넘버가 퀀텀보이즈 타이틀과 엎치락뒤치락하는 게 전부였다.

기자들은 솔라톤의 승리를 박제하듯, 분석하고 퍼트리는 기사만 줄줄이 찍어내기 시작했다.

‘TKM은 완전 초상집 분위기라지······.’

아이돌로는 역시 솔라톤을 이길 수 없는 건가 하는 회의적인 얘기들이 오가고, 역시 TKM의 답은 여성 보컬들이다! 라는 자아 성찰적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고 한다.

특히나 매니지먼트팀과 홍보팀은 지옥처럼 불길이 치솟고 검은 운무가 자욱하다는데, 이건 좀 궁금하네.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주재윤이 실감 나는 설명을 하는 동안, 다른 직원이 황당하다는 듯이 분통을 터트렸다.

“이번 주 음악 쇼룸 보셨어요?”

주재윤의 고개가 홱 돌아간다.

“봤죠. 아-주 편파적이던데. 나 VMN이 솔라톤 자회산 줄 알았잖아.”

“왜요? 저 못 봤는데?”

김지희가 묻자 얘길 꺼낸 직원이 열변을 토해냈다.

“퀀텀보이즈만 앵글을 거지같이 잡더라니까요? 무슨 얼굴 몰아주기인 줄. 솔라톤은 겁나 화려하게 잡았다 풀었다, 잡았다 풀었다.”

“어머, 그거 팬들이 뭐라 안 해요?”

“하죠! 근데 춤의 특성상 콘티를 그렇게 짰다면서 아주······!”

직원들이 앞다투어 열을 낸다.

TKM이 모회사인 이유도 있지만, VMN이라는 방송사에 대한 반감도 한몫했다.

그나저나, 춤의 특성을 논하다니.

정수연 안무가가 많이 화났겠는데?

아무래도 TKM 지하 연습실마저 불타고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등록만 되어있고 한 번도 연락해본 적은 없는 사람.

‘홍보팀 팀장?’

갸웃거리며 사무실을 나왔다.

언젠가 나보고 마케팅 천재 어쩌고 하면서 술 한 번 마시자고 그랬었는데, 갑자기 술상무가 필요한 건······아닐 테고. 이 상황에.

-어, 장 대표.

과연 지옥 불구덩이가 되었다는 홍보팀의 수장다웠다. 목소리가 악마라 해도 모자람 없이 걸걸했다.

“오랜만입니다, 팀장님.”

-그래, 그래. 오랜만이지.

땅이 꺼지라고 한숨 소리가 들려오고, 참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소식은 들었지?

“네···.”

차마 지옥 얘길 꺼내진 못하고 눈치껏 침통한 목소릴 내자, 홍보팀 팀장이 낮게 웃었다. 유쾌함은 1도 없는 처연한 웃음이었다.

이윽고, 홍보팀 팀장이 준비한 용건을 꺼냈다.

-홍보팀장으로서 이 카드만은 꺼내고 싶지 않았는데, 솔라톤이 이겼다는 기사가 너무 꼴 보기 싫어서 말이지······장 대표.

“네, 말씀하세요.”

-혹시, 던컨······내보내도 되겠나?

보도자료 얘기였다.

포털 사이트를 뒤덮고 있는 솔라톤 MKO 기사를 던컨 기사로 몰아내 보자, 뭐 이런 것 같은데······.

어차피 곧 나갈 기사. 대중들도 내가 아이돌 그룹을 준비하고 있다는 건 다 알고 있고, 더 숨길 필요도 없긴 하지.

문제는 지금이 적기냐는 것.

미리 터트려서 던컨에게 좋을 게 있을지가 중요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결론을 내렸다.

“보도자료 내보내죠. 국내에 먼저 팬덤을 만들고 미국으로 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겠네요.”

그날 오후, 솔라톤의 승전보를 봉화마냥 뿜어내던 언론사들이 앞다투어 던컨에 대한 소식을 쏟아냈다.

<기로 프로듀서가 비밀리에 준비 중이던 아이돌 그룹, 던컨에 대하여······>

<보이그룹 던컨, 해외 시장을 정조준할 수 있을까?>

<던컨 미국에서 데뷔한다! TKM의 오랜 꿈을 아더 레이블이 이룰 수 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포털 사이트 연예란엔 온통 던컨에 대한 얘기들뿐이었다.

#한편, 덜컥 유명해진 던컨은 들끓는 반응에 정신을 못 차렸다.

자신들은 연습실에 콕 박혀서 묵묵히 연습만 하고 있었을 뿐인데,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으니 그럴만도 하지.

오죽하면 자신들이 던컨인 것 같지가 않다고 말할까.

그 와중에 임현택은 숙소를 오 다닐 때, 풀착장을 하고 다닌다. 마스크에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엄대한은 연예인 같다며 그걸 또 따라 하고 있고.

막내라인, 신예석은 변화가 없다. 나머지 멤버들이 인터넷 속 자신들의 유명세에 설레하고, 무서워하는 동안 책을 읽는다. 래퍼에게 언어는 입에 장전하는 총알이라느니, 진지함과 중2병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 타면서.

같은 막내라인인 오승준의 눈에 그게 멋있어 보였는지, 녀석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개인 연습 찍어서 확인하라고 준 패드로, 웹소설을······.

마지막으로 정현우는 리더로 뽑힌 이후로 더욱 연습벌레 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누구보다 오래 연습실에 틀어박혀 있어 안무가들이나 한동휘도 매번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렇게 각자의 개성대로 변화를 맞이하는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연말 평가처럼 미팅룸에 불러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또 들었다.

마지막 차례였던 정현우가 미팅룸을 나가고, 나도 슬쩍 따라나섰다.

“어머닌 뭐라셔?”

내 물음에 정현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환하게 번지는 표정에 괜히 내가 안도하게 된다.

“여전히 걱정하시는데, 그래도 싫진 않으신가 봐요.”

“그래?”

“네. 예전엔 아버지가 손님들한테 아들 아이돌 준비한다고 얘기 꺼내면 정색하고 말리셨는데, 이젠 그냥 가만히 계신대요. 아버지가 서비스 주는 것도 내버려 두시고요.”

“다행이네.”

“정말요···.”

정현우의 밝은 미소 덕에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미팅룸에 들어왔다.

무슨 대비 효과처럼 무거운 얼굴의 이강훈 팀장이 보인다.

그는 자신이 끄적거린 종이를 내려다보며 고심 중이었다.

“대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고민을 좀 해봤는데요. 애들 캐릭터는 확실한데······이걸 표현할 방법이 없네요. 케이블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도 이미 솔라톤 MKO가 했던 방법이라 좀 그렇고. 다큐멘터리를 찍자니 고루하고······.”

“그리고 그런 방법으론 미국 팬을 잡긴 힘들죠. 국내면 몰라도.”

“맞네······으아, 뭔가 이 각자 따로 노는 자유분방함을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뮤비 메이킹 필름 같은 걸 만든다고 미국 애들이 봐줄 것 같지도 않고······.”

그러게.

골머릴 쌓는 이강훈 팀장에게 하나의 질문을 더 얹었다.

“그럼 미국에선 뭘 볼까요?”

“뭐, 뮤튜브로 스케이트보드 타는 영상이나 보겠······.”

이강훈 팀장이 말을 멈추고 날 보았다.

내가 그거라며 입꼬릴 올렸고.

“스케이트보드!”

아니, 그거 말고.

#며칠 후. 던컨 멤버들에게 휴가가 주어졌다.

뮤직비디오를 현지에서 찍기로 되어 미국으로 떠나는 일정이 2주나 앞당겨졌기 때문.

데뷔 전, 가족과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생기자 멤버들은 잔뜩 들뜬 얼굴로 귀향길에 올랐다. 금의환향이라면서.

그래 봤자 서울에서 서울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가장 먼 게 정현우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기차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정현우를 차에 태웠는데, 부모님한테 전화한다더니 뒤에서 답답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얼마나 답답하면 차 시트에서 엉덩이까지 들썩이며 설명한다.

“아뇨! 보일러가 아니라, 브이로그요. 브이로그! 일단 가서 설명해드릴게요. 카메라 들고 가니까, 가게 깔끔하게 좀······.”

백미러로 보며 웃자, 전화를 마친 정현우가 이를 눈치채고 멋쩍게 웃는다.

“어머니셔?”

“아뇨, 아버지요.”

“아버지가 재밌으시네.”

“맞아요. 평소에 엄청 웃기세요. 이번 건 진짜 잘못 들으신 것 같지만요.”

“얼굴 나오는 거 잘 허락 맡아서 재밌는 그림 많이 찍어와.”

정현우가 손에 들린 소형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뭔가 부담되는데요? VJ가 된 것 같아요.”

“부담까지야. 뭐 보여주려고 할 필요도 없어. 방금처럼 자연스럽게 해.”

내 말에 정현우가 실수를 깨달은 듯 심각한 얼굴이 되어선 운전석 쪽으로 고갤 내밀었다.

“앗, 방금 거 찍었어야 했죠!? 저 카메라 꺼놔서 그거 못 찍었어요. 어떡하죠?”

심각한 얼굴로 묻는 정현우에게 내가 느긋하게 말했다.

“괜찮아. 다른 게 찍었으니까.”

끔뻑거리던 정현우의 눈이 차 안을 살핀다.

마침내, 창문 필러 구석에 설치된 카메라를 찾은 정현우가 놀라서 펄쩍 뛰었다.

물론 그것까지 찍혔고.

#-이게 던컨의 보일러인가요?

-맞습니다. 던컨의 일상이 담긴 보일러.

-ㅋㅋㅋㅋ10분 은근히 긴데, 순삭됐네요. 완전 넋 놓고 봤네. 팬카페 만들면 바로 가입합니다!

-뜨끈한 보일러 한 편 더!

-윗 댓 혼종 무엇ㅋㅋㅋㅋ

-멤버들 귀엽네요. 다들 캐릭터도 확실하고, 케미도 좋고. 그래서 다음 편은 언제 올라오죠?

-근데, 미국에서 데뷔하는 게 좀 흠인 듯. 한국에서 데뷔하면 얼굴이랑 캐릭터로 먹고 들어갈 텐데, 미국은 철저히 실력 위주라······.

-그러게요. 과연 실력은 어떨지??

뮤튜브에 던컨 채널이 개설되었고, 10분짜리 영상 하나가 올라갔다.

어제 올라갔는데, 벌써 20만 조회수. 아직 뮤튜브의 최전성기가 아니다 보니 지금으로선 이것만으로도 엄청 큰 숫자였다.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편집도, 애들도 정신없다며 적응 못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신선하다며 재밌어들 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직 영어 댓글이 별로 없다는 것.

영어 자막까지 달았음에도 시청자 통계를 보니 해외는 고작 7%대에 불과했다.

‘이제 한 편 올렸으니,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지.’

조급한 마음을 달래며 핸드폰을 집어넣는데, 여직원이 사무실에서 나오던 김지희를 불러세웠다.

“지희 씨, 현지 스케줄 모두 정리해서 넣었어.”

“넵, 감사해요! ······와, 이렇게 놓고 보니 진짜 빽빽하네요?”

그렇겠지.

가자마자 뮤직비디오 촬영에 현지 언론사 인터뷰에 한인 라디오 녹화도 잡혀있고, 미팅도 하루에 두어 개씩 잡혀있을 테니.

여직원이 이번엔 내 쪽을 돌아본다.

“피디님 개인 스케줄도 따로 정리해서 보냈어요.”

확인해보니 내가 던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도움이 되겠다 싶은 것들을 모두 오케이 하다 보니 어째 내가 던컨보다 바쁘게 돼버렸다.

허한 웃음을 지으며 커피잔을 내려놓는데, 위에서 던컨이 우르르 내려온다.

항상 연습 끝나고 기진맥진해서 녹초로 나타나던 애들이 오늘만은 눈들이 똘망똘망하다.

아무래도 당장 내일이 미국으로 출발하는 날이라 그런 것 같지.

“가기 전날까지 연습한 거야?”

여직원의 물음에 아이들이 출진을 앞둔 병사들인 양 결연한 표정으로 끄덕인다.

물론 아이들만이 아니다. 김지희도 덩달아 상기된 얼굴을 보였고, 이강훈 팀장은······.

“우리 잘해보자! 그 뭐야,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처럼.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어? 미국에 던컨 깃발 꽂아보자고!”

다음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미국으로 떠나며 국민의 응원을 받았을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랬다.

아이돌 문화를 전파하자! K-POP을 제대로 보여주자! 등의 기사들이 올라왔고, 대중들은 장단을 맞췄다.

그리고 그 응원 속에서 우리는 마침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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