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기다림 끝에서 (6)
TKM의 보컬 트레이너, 황 실장이 작업실로 찾아온 건 오후 2시쯤이었다.
30대 중반쯤 되려나? 작업실 조명이 어둑해 조금 젊어 보이는 걸지도 모르겠다. 자로 잰 듯한 뾰족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전체적으로 샤프한 인상이었다.
자존심이 굉장히 강해서 이전 소속사와도 끝이 안 좋았다지. 그럼에도 실력이 뛰어나 여러 기획사에서 러브콜을 보냈고. TKM이 보컬 트레이너로선 이례적인 금액을 제시했단 얘긴 이미 업계에서 유명했다.
나는 황 실장의 손을 마주 잡으며 첫인사를 건넸다.
“아더 레이블에 출근하신 지 일주일이나 됐는데, 이제야 뵙네요.”
“이해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대표님 바쁘신 거야 모르는 게 이상하죠.”
인상에 비해 부드러운 웃음을 흘리며 느긋하게 작업실을 둘러본 그가 말꼬릴 올렸다.
“여기가 대표님의 히트곡들이 나온 곳이군요?”
나도 그의 시선을 따라 작업실을 돌아봤다.
“뭐, 사실 다른 작업실과 다를 건 없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달랐죠. 그래서 그런지 뭔가 신기한 기분이네요. 꼭 대박집 주방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하하.”
가벼운 칭찬으로 분위기를 푼 황 실장이 보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작업실에 붙어있던 시선을 내게 던졌다.
“근데, 갑자기 찾으신 이유가···?”
“아, 이렇게 시간 될 때 인사도 할 겸, 일 얘기도 할까 해서요.”
“일 얘기요?”
되묻는 황 실장에게 곧바로 노란 파일을 건넸다. 한동휘가 만든 커리큘럼이었다.
이게 뭐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짓던 황 실장이 파일을 천천히 넘기기 시작했다.
그걸 지켜보니 더욱 궁금해졌다.
과연 이 사람은 한동휘의 커리큘럼을 어떻게 볼지.
*“이게 뭐죠?”
파일을 훑던 황 실장이 불쑥 물었다.
내리깐 그의 표정이 설핏 굳어 있었다.
장기로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여전히 이채가 흐르는 시선을 황 실장에게 보내며.
“커리큘럼입니다.”
“그건 압니다. 근데 이거······던컨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커리큘럼이네요?”
여전히 덤덤한 표정으로 끄덕이는 장기로에게 황 실장이 다시 물었다.
“혹시 대표님이 만드셨나요?”
“아뇨.”
“그래요?”
고개를 젓는 장기로를 보며 황 실장이 안심한 듯 입꼬리를 올렸다. 재미가 동반되지 않은 조소였다. 이 커리큘럼을 만든 이에게 보내는.
“이거, 어떤 분이 만들었는진 모르겠지만, 아이돌에 대해 전혀 이해도가 없는 사람인 것 같네요.”
“그래요?”
“네. 전형적인 겉만 번지르르한 커리큘럼입니다.”
단호한 황 실장의 말에 장기로가 물었다.
“어떤 점이 그렇죠? 전 괜찮아 보이던데요.”
황 실장이 그런 장기로를 보며 다시 입꼬릴 올렸다.
“이게요? 이건 그냥 얼토당토않은 커리큘럼이에요. 기본기를 탄탄하게 잡아서 전체적인 실력을 끓어 올린다? 개개인이 솔로로 데뷔해도 문제없을 정도로?
가능하고 불가능하고를 떠나서 이렇게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너무 비효율적이죠. 내년, 내 후년에 데뷔시킬 게 아니잖습니까.”
황 실장은 한동휘의 커리큘럼을 무슨 사이비 전단지를 보듯 하고 있었다. 이에 장기로가 다시 물었다.
“그럼 어떤 게 효율적인 거죠?”
계속되는 장기로의 물음에 황 실장의 표정이 개미가 땅 파듯 조금씩 변해갔다. 불쾌해지고 있었다. 이 커리큘럼을 자신에게 보여준 저의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는 대표지.’
산하 레이블 대표니, 고작 20대, 그것도 3년 차 프로듀서니 해도 실력으로 여기까지 고속주행한 건 변함 없는 사실.
황 실장은 애써 표정을 고치며 설명을 이어갔다.
“아이돌답게 가는 거죠. 잘 부르는 애들은 더 잘 부르게. 그저 그런 애들은 평균 정도만. 어차피 대중들이 아이돌에게 기대하는 건 아카펠라가 아니잖습니까.
그 시간에 다른 쪽을 파는 게 낫습니다. 예능이라던가, 스피치라던가, 아 미국이니 우선 외국어가 더 중요하겠군요.”
긴 설명 끝에 다시 반문이 튀어나왔다.
“뮤지션에게 노래보다 그런 것들이 중요할까요?”
“음, 그래서 아이돌이 엔터테이너로 더 많이 불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다시 받아친 황 실장이 살짝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업계 정상급 트레이너인 자신이 왜 이런 설명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다른 건 어떤지 몰라도 아이돌에 대해 이렇게 무지하다고? 이런 놈에게 아이돌을 맡겼다니, 유재완 대표도 나이가 드니 감이 떨어진 건가···?’
일장 연설을 마치고 나온 후에도 황 실장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갤 흔들었다.
‘무슨 되도않는 커리큘럼을 가져와서······.’
꼬치꼬치 되묻는 게 아무래도 그 커리큘럼이 적잖이 마음에 든 눈치였다. 설명 끝엔 이해를 좀 했는지 일단 알겠다며 말을 맺었지만.
황 실장이 혀를 찼다.
다른 뮤지션들이야 노래만 잘 만들었으면 됐겠지만, 아이돌 제작은 차원이 다른 문제인데 장기로는 그걸 모르는 듯했다.
‘이거 나 아니었으면 난리 날 프로젝트였구만?’
그러면서 생각했다.
실력은 있을지 모르지만, 아직 애송이 티가 풀풀 난다고.
레이블을 나서던 그가 돌연 콧방귀를 뀌었다.
머리채를 잡고 휘두를지도 모른다던 캐스팅 박 팀장의 말이 생각나서.
‘그 양반도 날 너무 물로 봤지. 누가 누굴······.’
#작업실에 앉아 잠시 고민하다가 마우스를 툭, 하고 건드렸다.
절전 되어 있던 화면이 밝아지며 ‘던컨’이란 이름의 프로젝트가 떠오른다.
나는 시퀀스를 물끄러미 보았다.
아래에 깔린 윤태영의 비트.
그리고 차곡차곡 쌓아 올려진 트랙들.
각자의 목소리가 얹어질 멜로디와 올 파트까지.
모두 다섯 개의 트랙이 한눈에 들어왔다.
멜로디를 듣지 않고 만든 첫 댄스곡.
‘그래서 더 어려웠지.’
플로라와 하서윤에게서 들렸던 멜로디들이 무슨 수문장인 양 내 멜로디들을 쳐냈다. 눈이 높아진 만큼, 까치발이 저려왔다.
턱밑을 매만지던 손을 뻗어 프로젝트를 재생시켜본다.
아직 화성 악기라곤 신스 뿐인 텅 빈 MR 위로 한음 한음 고심하여 찍은 건반 소리가 멜로디들을 따라 움직였다.
하나였던 건반 소리가 나뉘고, 그러다 다시 하나로. 다시 두 개로, 세 개로.
마침내 사비에서 네 개의 음이 동시에 연주되었다. 그게 내겐 네 개의 목소리로 나뉘어 들린다. 던컨 멤버들 각각의 목소리로.
던컨의 첫 곡이었다.
그들의 색을 결정지을.
그리고 던컨의 색은 붓 한, 두 개로 칠할 게 아니었다. 네 개의 붓이 저마다 다른 색으로 섞여 전에 없던 색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렇게 모두가 제 역할을 해야만, 내가 그렸던 그림이 나올 것 같았다.
#다음날, 나는 시간 맞춰 3층으로 올라갔다.
안무실로 다가서자 정현우, 임현택, 신예석 이 세 명만 창 프레임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먹먹하게 들려오는 노랫소리.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소리가 확 커졌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 했는데 퀀텀보이즈 곡이었네.
“어, 피디님 안녕하세요!”
레슨 시간에 내가 나타나리라곤 상상 못 했는지 살짝 놀란 표정들. 이내 밝은 목소리로 나를 반겨댔다.
“오늘은 인터뷰 없으셨어요?”
어머니와 통화 이후로 내가 편해진 듯한 정현우가 물어왔다.
끄덕이며 물었다.
“연습하고 있었던 거야?”
“네.”
“실장님이랑 나머지 애들은?”
“보컬 연습실에서 따로 레슨받고 있어요.”
“······그래? 아, 하던 거 계속해. 내가 방해하면 안 되지.”
손을 휘적거리며 구석에 등을 기대고 섰다. 주춤거리던 애들이 연습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고, 나도 그 모습을 계속 눈에 담고 귀로 들었다.
역시 좋다. 그것도 아주.
적어도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에서 저들의 목소리는 댄서도 아니고 서브도 아니었다.
포지션을 나누긴 했지만, 각자의 파트에서만큼은 각자가 메인이었다. 그리고 엔터테이너가 아닌 뮤지션이었다.
노래가 멎었다.
러프하게 춤까지 추며 부른 노래라 호흡들이 가빴다. 노래 부를 때 음정이 안 흔들린 게 신기할 정도. 얼마나 연습해야 저렇게 될까?
“후아, 어떠셨어요?”
정현우가 은근 기대 어린 눈빛으로 묻길래 속마음을 그대로 내비쳤다.
“너무 좋은데?”
입이 귀에 걸린다. 뒤에 나란히 있던 임현택과 신예석도 비슷한 표정들이다.
흐뭇하게 지켜보다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레슨 시간인데 이렇게 개인 연습 비중이 더 높은 거 괜찮아?”
“괜찮은데요?”
“전 어차피 랩 위주라, 딱히······.”
의외로 아무렇지 않은 얼굴들이다.
둘의 말에 정현우가 끄덕이며 말했다.
“이게 워낙 익숙해서요. 데뷔 조 때부터 이 포지션이었으니까요. 선생님들이 메인이나 리드만큼 신경 써주시지 않으셨어요. 그게 당연한 거기도 했고요.”
뒤에서 임현택이 킬킬댔다.
“그래서 덜 혼나긴 했죠!”
“형, 그게 자랑은 아닌 거 같은데요?”
“뭠마? 이 범생이 자식이!”
신예석의 묵직한 팩트 공격에 임현택이 발끈하는 모습을 보며 웃었다.
나름의 결심을 하고 왔는데, 애들을 보니 그 마음이 더 단단해진다.
때마침 문이 열렸다.
“어, 대표님 와계셨네요?”
안무실 안으로 걸어들어오는 황 실장을 보며 내가 말했다.
“네. 얘기 좀 할까 해서요.”
*“오늘은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시죠?”
3층 빈 녹음실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황 실장이 물었다.
녹음실 소파에 앉으며 답했다.
“지난번 하던 얘기의 연장선입니다.”
“지난번 얘기면······커리큘럼 말씀이세요?”
“네.”
황 실장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지는 게 보였다. 나는 빙빙 돌리지 않고 바로 얘길 꺼냈다.
“솔직하게 말해서, 전 그 커리큘럼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던컨의 모습이 그려지더라고요.”
“마음에 드셔하는 것 같긴 했습니다. ······그래서요?”
“커리큘럼대로 해달라는 얘긴 안 하겠습니다. 각자의 방법이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제가 만드는 던컨은 포지션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메인, 리드니까 더 잘 불러야 하고 서브는 좀 못 불러도 되고,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적어도 던컨에 한해선 말이죠.”
내가 시선을 올려 황 실장을 보았다.
어떤 질문도 던지지 않았지만, 그는 질문을 받은 셈이었다. 명령으로 들릴 수도 있는.
바삭하게 그을린 황 실장의 얼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빗장이 풀리고, 언짢은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대표님. 제가 트레이닝만 12년 찹니다. 그리고 연차가 짧게 느껴질 정도로 빼곡한 성과들도 갖고 있죠.”
잠시 텀을 두고 목소릴 누르며 말을 잇는다.
“저만의 방식이 있고 TKM도 그래서 절 스카웃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바꾸라고요?”
“역시 안 되겠죠?”
황 실장이 끄덕였다. 자신의 으름장이 먹히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더욱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리고 나도 주억거렸다.
이쯤 했음, 됐지.
시간이 없다.
설득하고 지지고 볶을 시간이.
“하는 수 없죠. 실장님은 제가 만들 던컨과 맞지 않는 것 같네요.”
“네? 그게 무슨······.”
“돌아가시면 됩니다. TKM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