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기다림 끝에서 (2)
아까까지만 해도 어리둥절함에 부유하던 세 쌍의 눈이 바쁘게 움직인다.
아더 레이블을 실감하려는 듯 구석구석을 훑었다.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정현우, 임현택, 오승준.
외모도 완전히 다른 그들이 일란성 쌍둥이처럼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헐.”
“왜, 왜요?”
임현택이 놀라자 오승준도 덩달아 화들짝 거렸다. 안무 연습실에서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하던 정현우도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이 반자동 커피 머신, 갖고 싶었던 건데!”
“이거 좋은 거예요?”
“좋지. 몇백만 원 짜린데.”
“아, 비싸서 못 사셨어요?”
“아니? 실장님께 얘기했더니 숙소에 그런 거 사 가지고 들어오지 말라고 하시던데?”
둘의 얘기를 듣던 정현우가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안무 연습실로 시선을 돌렸다.
오승준은 눈을 끔뻑이며 놀라 했고.
“형, 부자예요?”
“아니?”
어느새 안무 연습실에 바짝 붙은 정현우가 뒤도 안 돌아보고 말했다.
“부모님이 부자셔. 쟤 방학 끝나고 돌아올 때 벤틀리 타고 왔잖아. 그래서 예전에 TKM 대표님 아들 아니냐는 얘기까지 있었고.”
“헐?”
임현택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근데 대표님 아들은 아냐.”
“까비······.”
갑자기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 사람이 홱 고개를 돌렸다. 말총머리의 여자와 마른 남자가 맞은편 계단에서 올라와 이쪽을 보고 있었다. A&R 김지희와 홍보 담당자 주재윤이었다.
“왜 까비에요?”
김지희의 물음에 주재윤이 음흉하게 웃었다.
“저도 사내 라인이나 좀 타 볼까 했죠. 기왕이면 대표님 라인.”
“피디님도 대표님이신데요? 장 대표님 라인이 마음에 안 드나 보죠?”
“···아뇨? 하핫, 그럴 리가요.”
어색하게 웃은 주재윤이 괜시리 커피 머신을 만지작거리며 ‘이게 그렇게 비싼 거였다고?’라고 중얼거린다.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내젓던 김지희가 다가왔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세 사람.
“안녕하세요!”
그녀의 얼굴이 미소가 그려졌다.
“네. 안녕하세요. 아더 레이블의 A&R 담당인 김지희라고 해요.”
다시 한번 접히는 허리들.
김지희가 들고 있던 파일을 테이블 위에 올리며 빙긋 웃었다.
“인터뷰하려고 왔어요. 피디님께 여러분들에 대해 듣긴 했는데, 좀 더 자세한 얘길 듣고 싶어서요. 아, 저기 저 허당끼 있어 보이는 분은 홍보 담당자님이고요.”
주재윤이 좋다고 손을 흔들어댔다. 평소엔 쓰다고 잘 마시지도 않던 커피를 내리며.
‘인터뷰’란 단어에 바짝 상기 된 세 얼굴을 보며 김지희가 말했다.
“앉을까요?”
세 사람은 빠르게 자리에 앉았다. 기대, 흥분, 설렘 같은 것들이 가득 찬 얼굴로 울대를 꿀렁인다.
그런 그들에게 김지희가 기름 부을 준비를 마쳤다.
“앞으로 아더 레이블에서 어떤 것들을 준비하게 될 지부터 설명해줄게요.”
#<솔라톤 신인 아이돌 그룹 MKO, 퀀텀보이즈와 7월에 맞붙는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데뷔 전부터 스타덤에 오른 MKO···새로운 세대 알릴까?>
<올여름, 보이그룹 대전이 열린다! 데뷔 혹은 컴백하는 보이 그룹들은?>
연예계만큼 시간이 바쁘게 흘러가는 곳도 없을 거다.
불과 지난주까지만 해도 뉴하이 기사로 가득하던 연예란이 금세 보이 그룹 대전이란 이슈로 뒤덮이고 있었다. 아직도 두 달이나 남은 얘기지만 화력만큼은 이미 여름이나 마찬가지.
기사로는 보이 그룹만 총 열다섯 팀이 데뷔 혹은 컴백을 한다는데, 아주 작은 기획사들까지 합치면 더 될 터. 여름이 컴백 성수기이기도 하지만 솔라톤의 MKO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퀀텀보이즈 컴백 날짜를 정조준한 여파가 더욱 컸던 것 같다.
빈집털이 대신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는 장면이라도 대중들에게 보여주고픈 거지. 실력 좋았는데, 대진운이 아쉽네! 라는 동정 여론이 일기도 하니까.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한참을 생각하다가 전철 안내 방송에 퍼뜩 정신이 들어 일어났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예전엔 그저 그렇구나 하고 넘겼던 기사들을 지금은 분석하듯 유심히 살피고 있다. 거기에 이유까지 찾기도 한다.
‘업무가 이고 살아야 하는 업이라 업무인 줄 알았는데······.’
음악이 아닌 이런 것들까지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구나.
새삼 달라진 태도에 묘한 기분을 느끼며 합정역에서 내렸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덕분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황사가 자욱하게 깔렸기 때문에 마스크를 쓴 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위로 올라가야 하나, 지하로 내려가야 하나 고민하면서 왔는데, 밖에 나와계시네요?”
자재들이 가득 쌓인 파란색 포터 옆을 지나자 익숙한 실루엣이 뒤를 돌았다. 비스트로가 호탕하게 웃는다.
“여! 왜 이리 일찍 왔어? 지금쯤 출발했겠다 싶었는데. 난 이거 사러 나왔어.”
양손에 들린 편의점 봉투엔 음료수가 가득했다.
“위에 사장님들 드리려고.”
“인테리어 어느 정도 진행됐어요?”
“모르겠어. 이 사장님한테 물어보면 절반 했다고 하시고, 저 사장님한테 물어보면 거의 다 했다 하시고.”
너털웃음을 짓는 비스트로와 건물 2층으로 올라가 음료수를 돌리고 지하로 내려왔다.
“예석이는 오는 길이래.”
비스트로의 말에 끄덕였다.
신예석.
오승준과 마찬가지로 이제 막 스무 살 성인이 된 래퍼.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인터넷상에서 이름을 알렸다고 한다. 특히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렸던 무반주 랩이 성인 래퍼들 사이에서도 화제였다지.
나중에 어떤 예명을 쓰는지는 몰라도 현재엔 신예석 이름 그대로 활동을 준비하고 있고. 그러던 중 내 연락에 비스트로가 신예석을 추천해 주었다.
내가 남은 음료수를 까며 물었다.
“얘기해 봤어요?”
비스트로가 끄덕인다.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비스트로가 아닌 신예석에게 말이다.
래퍼들에게 힙합은 신성불가침의 영역, 뭐 그런 거 아닌가.
그런데 갑자기 ‘너 아이돌 해라!’하면 오케이 할 래퍼가 몇이나 될까?
왔는데 너무 탐이 난다면, 어떡할까?
어떤 식으로 설득을 할지······.
“하겠대.”
“그렇죠. 그럴 것 같······네?”
“고민의 여지도, 기색도, 망설임도 없이. 아주 홀랑! 하겠대. 야, 내가 추천했는데 왜 서운하지?”
“그것참···의외네요.”
비스트로가 고개를 저었다.
“사실 의외는 아니고. 그 녀석 랩을 엄청 좋아해.”
말이 이상하다. 근데 아이돌 제안을 이렇게 쉽게 받는다고?
그게 더 의외라고 생각하는데, 비스트로가 말했다.
“아니지, 랩만 좋아해. 힙합 정신 뭐 이런 거 없어. 돈, 여자, 차, 내가 짱이야, 뭐 이런 거 전혀 없이 랩 하는 것 자체만 좋아한달까······저, 오네. 야, 일찍 일찍 안 다녀?”
“일찍 왔는데요?”
“정답. 그래서 아는 게 힘이란 거야.”
비스트로의 헛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돌렸다.
더운 날씨에 후드 티 입고, 입에는 피어싱 서너 곳쯤 뚫고, 이빨도 번쩍번쩍···이건 아닌가.
아무튼, 그런 갓 비행 청소년을 벗어난 청년의 이미지를 상상했는데 말이지. 근데, 뭔가···.
“왜 놀래? 프로필 보내줬잖아.”
“프로필이라 단정하게 찍은 줄 알았죠.”
“힙합을 뭐로 알고. 우린 프로필도 힙합이야. 쟤 빼고. 무튼, 그래서 마음에 안 들어?”
“아뇨? 그럴 리가.”
다시 그를 봤다.
도서관에서 방금 막 왔을 듯한 단정한 차림.
그 와중에 얼굴은 잘생겨서 도서관에서 캔커피와 함께 쪽지 몇 개는 받았을 법하다.
옆에 주춤주춤 서는 신예석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랩 들어볼 수 있을까요?”
신예석의 랩을 들은 난 감탄사를 놓지 못했다.
랩에 대해 잘 안다고는 못하겠지만, 이거 하난 확실히 알겠네.
아이돌 중에······
“아이돌 중에서 얘보다 랩 잘하는 애 없을걸?”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비스트로가 히죽 웃었다.
#“갈게요. 인테리어 완공되면 또 올게요.”
“TKM 사람들이랑 같이 와. 따로 오면 정신없어.”
“넵.”
자리에서 일어나자 비스트로가 따라 일어나 배웅을 해줬다. 문 앞에 서서 그가 물어왔다.
“남은 건 메인보컬?”
끄덕이자 비스트로가 궁금해했다.
“어디서 찾을 생각인데?”
“찾을 필요는 없는데···.”
“엉?”
“골라도 되는지가 더 고민이라서요.”
비스트로가 한쪽 눈썹만 추어올렸다.
“요즘 도 닦냐?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
내가 푸스스 웃었다.
‘이걸 행복한 고민이라고 해야 하나······.’
레드리시 이후로 미래가 정해져 있는 사람들은 먼저 찾지 않기로 했었지.
윤태영과 레드리시를 미래에 꿇리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심적으로 꽤 고생했고, 지금도 그건 유효하니까.
하지만 먼저 찾지 않을 뿐, 굴러들어오는 것까지 막을 생각도 없었다.
이제는 홑몸(?)도 아니라 레이블에 딸린 식구가 몇인가. 성공확률이 높은 원석이 코앞까지 왔는데, 그걸 모른 척 지나칠 만큼 순수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다시 아더 레이블로 향하며 나는 핸드폰을 꺼내 PDF 파일들을 훑었다.
수백 장의 프로필.
모두가 아더 레이블에 들어오고 싶다고 메일을 보내온 이들이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엄지를 슥슥 밀어 올릴 때마다 익숙한 얼굴이 심심치 않게 걸린다.
오며 가며 스친 얼굴들이 아니다.
직접 만나본 건 더더욱 아니고.
이들을 본 건 미래의 일이었다.
그것도 미래의 브라운관 안에서.
돌고 돌다 결국 배우로 자리 잡아 히트를 치는 얼굴.
여자 솔로로 크게 성공했다가 사회적 물의를 빚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얼굴.
아이돌로 꾸준히 승승장구하며 어디에 빌딩을 몇 채나 샀다던 얼굴.
‘무슨 관상 보는 것 같네.’
신기하다.
이들의 프로필이 전부 내 손안에 쥐어져 있다는 게.
앞으로 레이블이 이렇게 계속 커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프로필을 보낼 테고, 그러면 이런 익숙한 얼굴들이 더 많아지겠지.
“······.”
그러면 나는 고민도 없이 이들을 뽑아야 하나?
설령, 내가 그렸던 그림에 맞는 누군가가 불쑥 나타나더라도?
지금 여기에만 해도 보이그룹으로 성공하는 얼굴이 한 둘이 아니다.
편하게 생각하면, 이걸 그냥 뽑으면 되는 거다. 성공을 장담하진 못해도, 확률은 높일 수 있는 쉬운 길.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한없이 어려운 길이 보인다.
‘오히려 반대일지도 모르지.’
저기선 완벽했던 퍼즐이 여기선 전혀 맞지 않을 수 있으니까.
던컨은 레드리시처럼 이미 완성되어 내게 온 그룹이 아니잖나.
아더 레이블에 도착해 작업실에 앉았다.
프로필과 보내온 노래를 들으며 던컨 메인보컬 자리에 어울리는 이들을 추리기 시작했다.
미래의 내가 아는 얼굴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커피가 석 잔째 비워지는 동안, 고민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커피잔을 세척기 안에 집어넣었다.
#“감사합니다!”
또 한 명의 아는 얼굴이 나갔다.
나는 반쯤 남은 생수를 한입에 털어 넣고 고민했다.
갈팡질팡 방황하던 펜촉이 종이에 점을 찍으며 글씨로 이어나갔다.
그때, 미팅룸 반투명 유리 너머로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졌다.
문을 열어젖힌 건 여직원이었다.
“마지막 분이에요.”
“아, 벌써.”
종이를 슥 넘겨 보았다.
마지막 장.
미래에는 몰랐던 얼굴이다.
즉, 미래보단 노래만으로 뽑은 지원자.
여직원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보다 훨씬 큰 실루엣이 문 앞에 섰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렸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박힌 얼굴이 미팅룸으로 들어왔다.
언뜻 보기만 해도 전해지는 이질감.
“안녕하십니까! 엄대한입니다!”
우렁찬 목소리에 내가 웃었다.
“일단 노래부터 들어볼게요.”
새하얀 얼굴에 큰 지분을 자랑하는 두 눈이 나를 향한다.
준비해온 MR과 함께 그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미래의 기억이 없는, 오직 내 느낌이 뽑은 지원자.
스물두 살, 엄대한.
혼혈.
그의 노래를 듣자마자 생각했다.
난 또 어려운 길을 가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