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솎아내기 (2)
“지, 진짜?”
“맞다니까?”
“나 갑자기 엄청 떨린다. 어떡하냐?”
“지금이라도 자유곡 기로 프로듀서님 노래로 바꿀까?”
“그러다 준비 안 한 거 들키면 더 혼날걸?”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슬쩍 고갤 돌렸더니 보컬 트레이너 이정훈이 거보라는 듯 웃고 있다. 나는 볼을 긁적이며 애꿎은 채점지와 프로필만 넘겨댔고.
어느새 고요해진 안무실 벽에 쪼르르 서서 마른 침을 삼키는 연습생들.
본격적으로 월말 평가가 시작되었다.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지정곡과 자유곡을 하나씩 선보이고, 그렇게 한 바퀴를 돌면 조원들이 모두 나와 단체곡을 부르는 형식.
초콜릿을 까먹던 정수연 안무가가 중얼거렸다.
“평소보다 호흡이 많이 딸리네.”
보컬 트레이너 이정훈도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으로 작게 끄덕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지대라도 올라온 것처럼 가쁘던 호흡이 자유곡에 이르러선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페이스를 되찾고 평소 본인들의 실력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리고 단체곡 차례.
‘나름 춤에 대해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어렵네.’
전문적인 시선으로 원석을 골라내고 싶은데, 춤에 대해서만큼은 아직 그런 감을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 아쉽지만 느낌만 간략하게 적으며 노래에 집중했다.
노래는 이쪽이 더 쉬웠다.
춤이 호흡을 많이 잡아먹기 때문에 충분한 실력과 연습이 없으면 뚜렷한 격차가 벌어지기 때문.
프로필과 채점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어느새 데뷔 3조까지 평가가 끝이 났다. 남은 두 조를 이어서 평가하기 전에 잠깐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커피를 마저 마시고 리필을 부탁하는 사이, 빠르게 화장을 고친 정수연이 말했다.
“애들이 확실히 긴장했나 봐요. 초반에 너무 떨더라고요.”
하품을 길게 뽑아내던 이정훈이 거들었다.
“거봐요. 대표님 이제 연습생들 사이에선 거의 아이돌이라니까요? 아이돌의 아이돌.”
“······이 나이에요?”
“왜요, 성인돌로 데뷔하는 애들도 많잖아요.”
정수연의 말에 이정훈이 이번엔 고개를 저었다.
“여자 아이돌은 그런 경우가 좀 있는데, 남자 아이돌은 흔치 않죠.”
“그런가? 하긴, 기껏해야 20대 초반 정도긴 하지.”
이 양반들. 내가 스물여덟이 아니라 서른여덟이란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할지 궁금해지네.
피식거리며 채점지로 시선을 내렸다.
슥 한 번 훑어보며 아까의 기억을 돋구는데 갑자기 머리 위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 빼곡하시네.”
다시 고개를 드니 믹스 커피를 타온 캐스팅 팀 직원이 서 있었다.
아까 들어오자마자 잠깐 인사를 나누긴 했는데······그 사이 연습생들 이름을 하도 많이 들어서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캐스팅 디렉터라고 자신을 소개한 거 정도 생각나네.
그 와중에 얼굴은 확실히 낯이 익다. 예전에 캐스팅팀을 드나들 때 몇 번 마주쳤던 것 같지.
캐스팅팀에서의 기억이 그다지 유쾌한 적이 없어서 그런가, 묘하게 껄끄럽네.
딱히 대답할 말도 없어 마주 웃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역시 이러시니까 최정아도 발굴하시고 하시는 거겠죠. 좀 배워야겠어요.”
그러면서 빙글빙글 웃는 캐스팅 디렉터.
“그때 제가 최정아 엄청 찾았었거든요. 그런데 대표님이 딱 데려오셨었죠.”
갑자기 왜 최정아 얘길 꺼내나 했더니, 그래서였구만?
“아. 그랬나요?”
“네, 그때 젊은 친구가 참 약삭빠르다 했는데. 아, 죄송해요. 물론 그때 일이니까. 지금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대표님까지 되시고.”
그러게.
대표님까지 됐는데, 나이 얘길 듣고 있네.
민증에다가 +10이라고 적어놓고 다녀야 하나 싶다.
그때, 캐스팅 디렉터가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아 참. 박 팀장님이 오늘 오시는 거 알고 안부 물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걸쩍지근하게 호를 그린 입에서 꺼림칙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러고 보니 못 본 지 꽤 오래됐지.
최정아 일 이후로 사사건건 레이블 일에 오지랖을 부리며 비꽈댔는데.
그 후 연달아 성공하고 나서부턴 운 대가 안 맞는 건지 통 마주치질 못했다. 뭐라고 할지 궁금했는데 말이지.
더 떠올리다간 연습생들을 보고 같이 보글대던 열정이 화로 끓어오를 것 같아 생각을 끊었다.
그리고 똑같이 빙글거리며 캐스팅 디렉터에게 말했다.
“굳이 저한테 물을 것까지야.”
“네?”
“요즘 인터넷에 제 안부 천지인데.”
“······.”
캐스팅 디렉터의 얼굴에 황당함이 스쳤다.
내 입가엔 미소가 스쳤고.
전해드리겠다며 자리로 돌아가는 캐스팅 디렉터.
옆에서 이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정수연이 쿡쿡 웃었다.
“실검에도 심심치 않게 올라오긴 하죠. 대표님 소식.”
“역시, 아이돌의 아이돌.”
캐스팅 디렉터의 눈치를 보던 이정훈도 작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내가 고개를 내젓는 사이, 채점지를 슬쩍 보던 정수연이 물어왔다.
“그래서, 지금까진 어땠어요? 눈에 드는 친구가 좀 있었나요?”
“글쎄요. 데뷔조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평균 이상은 하는 것 같은데······.”
딱 그것뿐. 서기영이나 남원기처럼 확 눈에 들어오는 연습생은 없었다.
당연히, 멜로디가 들리지도 않았지.
#바로 옆 안무실.
데뷔조들의 대기실로 쓰이던 공간이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첫 번째 조가 평가를 마치고 돌아와, 옆에 기로 프로듀서가 와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부터였다.
“어쩐지, 갑자기 남녀 날짜까지 나눈 것부터가 이상하긴 했어.”
“그러네! 근데, 왜 오신 걸까?”
“특별 심사하러 오신 거 아니겠어? 분기별로 대표님 오셔서 보시듯이!”
“아니면, 아더 레이블에서 뮤지션을 추가로 뽑을 계획인 걸지도 모르지. 아이돌 제작을 한다거나.”
마지막 말에 시끌시끌하던 주변 연습생들의 목소리가 뚝 끊어졌다. 안 그래도 상기되어 있던 얼굴들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럼 진짜 대박인데···!”
“불러만 주신다면!”
“조용히 해, 임마. 실장님 들으시겠다.”
“그럼 넌 불러도 안 가냐?”
“···당연히 가지. 크큭.”
들뜬 목소리들 사이로 누군가 물었다.
“그래도 아더 레이블보단 TKM이 더 크잖아? 모기업인데?”
“그럼 뭐해. 확률을 봐야지. 아더 레이블은 성공률이 백 프로잖아!”
TKM에 희박한 확률로 들어와 평가를 거쳐 극악의 확률로 데뷔조에 들어온 그들이었다. 그럼에도 이 중 대부분은 데뷔를 못 한다. 그게 현실. 그렇기에 성공률 백 프로라는 말은 연습생들의 의욕을 태우기에 충분했다.
“난리 났네.”
“난리 날만 하지. 기로 프로듀서님이면.”
데뷔 4조인 정현우가 울적한 투로 말했다. 옆에서 활활 타오르는 연습생들을 지켜보던 임현택이 고개를 돌리며 슬쩍 물었다.
“어머니랑 통화한 건 어떻게 됐어?”
“빨리 정리하고 내려 오라셔.”
“똑같은 레파토리군.”“이번엔 더 완강하시더라고. 사촌 누나가 엄마한테 아이돌은 나이가 중요하단 얘길 했나 봐. 내 나이론 불가능하다고.”
임현택이 입을 삐죽거렸다.
“사촌 누나 오지랖 뭐야.”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게다가 하루 이틀 준비한 것도 아니잖아. 벌써 4년인데.”
“그래도 넌 진짜 아까웠잖아. 갑자기 다치지만 않았어도 포텐업 들어갈 뻔했는데···!”
말을 할수록 오히려 낯빛이 어두워지는 정현우를 보며 임현택이 입을 닫았다.
정현우가 애써 밝게 웃으며 말했다.
“노래가 부족한 걸 춤으로 어떻게든 메꿔보려고 했는데. 내가 무모했던 거지. 중요할 때일수록 몸 관리부터 해야 했는데.”
임현택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씁쓰름한 입맛을 다시는데, 연습생들을 관리하는 실장이 문을 열고 들어와 소리쳤다.
“4조 준비하자!”
#시침이 오후 8시를 가리키고서야 월말 평가가 종료되었다.
데뷔 1조부터 5조까지. 한 조당 4, 5명씩이었으니 적어도 20명의 연습생을 본 거다. 시간으로는 5시간이 넘게 걸렸고.
나 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제외한 평가자들은 이후 일정이 남아 있었기에.
바로, 등수 매기기.
나는 프로젝트 던컨이라는 별개의 일로 왔기 때문에 굳이 참여하지 않고 작업실로 돌아왔다.
데뷔조 프로필과 내가 작성한 채점표를 깔아놓고 찬찬히 다시 훑었다.
‘확실히 염두에 둬야 할 게 많네.’
솔로일 경우엔 그냥 노래만 매력적이면 됐었다. 근데 그룹, 심지어 아이돌은 느낌이 완전 다르다.
노래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노래만으로 다 되지 않지. 외모의 비중은 말할 것도 없고, 춤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만능 엔터테이너들을 그것도 그룹으로 구성해야 하는 일이다.
멜로디라도 들렸으면 한결 수월했겠다고 잠시 아쉬워했지만 생각해보니 혼자 멜로디가 들리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그럼 솔로 해야지. 그룹을 할 게 아니라.
문득 플로라 때가 떠올랐다.
멤버들이 전부 모였을 때만, 메인 보컬인 한유하에게 멜로디가 들려왔었지.
‘다 같이 모여야 들린 다라······.’
룰도 제대로 모르는 포커 같은 걸 하고있는 기분이다. 엄선해서 조합해도, 이만하면 이겼다 싶어도 결과는 까봐야 알 수 있는.
어쩔 수 없지. 느낌대로 조합을 해보는 수밖에.
또다시 채점지를 슥슥 넘겨보았다.
프로필과 비교해가며 한 명, 한 명, 그때 그 느낌이 떠올랐다.
음색은 무난했는데, 음정이 불안했고.
음색이 독특했는데, 듣기에 좋은 독특함은 아니었고.
음정도 호흡도 괜찮았지만, 음색이 너무 평범했고.
얜 내가 봐도 춤을 너무 못 추는 게 보였고.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잠시 밖으로 나와 머리를 식혔다. 창문을 열어놓고 창가 쪽에 기대어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커피 한 잔을 내려 다시 작업실에 앉았다.
개운해진 머리로, 다시 첫 장부터.
멜로디는 안 들려도, 이들의 목소리는 들린다. 이번엔 채점지에 적힌 글씨들을 정독하며 아주 미묘한 부분까지 체크했다.
동시에 서랍 쪽으로 프로필을 하나씩 빼냈다.
서랍 위에 프로필들이 쌓여간다. 책상 위는 점점 휑해졌고.
뒤로 갈수록 고민의 시간이 길어졌다. 종이 한 장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웠나 싶을 정도로 힘겹게 빼냈다.
그렇게 내려온 커피가 동이 날 때쯤엔.
결국, 남은 건 세 장뿐이었다.
#다음날.
직원들을 불러 모아 회의를 시작했다.
평소처럼 소속 뮤지션들에 대한 회의가 아닌, 프로젝트 던컨을 위한 회의였다.
“와, 이제 의자가 부족하네.”
“그러게요. 뭔가 홀도 좁아진 것 같고.”
간이 의자까지 끌어다가 앉은 직원들.
주재윤과 김지희가 주변을 둘러보며 신기하다는 듯 웃었다.
그새 인원이 많이 늘긴 했지. 아예 새로 뽑은 인원도 있고, TKM에게 지원받은 인원도 있었다.
잠시 후, 모두가 모인 걸 확인하고 내가 천천히 입을 뗐다.
“지금 프로젝트 던컨 때문에 모이긴 했지만, 그 이후 얘길 먼저 해볼까 해요.”
내 말에 시선들이 몰려든다.
누군가 물었다.
“이후요?”
“네. 최근 들어 미국 현지 레코드사에서 연락이 계속 오고 있어요. 아더 레이블 소속 뮤지션들을 지원해주겠다고.”
대부분 턴투더 레이블을 통해 온 연락이기 때문에 몇몇 직원들을 제외하곤 몰랐던 얘기였다. 특히나 최근에 들어온 직원들이라면 더더욱.
웅성거리던 직원 중 한 명이 물었다.
“현지 레코드 사가 지원을 해준다는 건, 해외 진출을 돕겠다는 얘긴가요?”
내가 끄덕이자 웅성거림이 커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질문이 튀어나왔다.
“현지 레코드사의 지원이 있더라도 쉽진 않을 것 같은데요? 비용적으로나 리스크로나······.”
질문한 직원을 보며 끄덕였다.
어렵지.
그래서 준비가 필요한 거고.
나는 그저께 유재완 대표와의 술자리 말미에 나눴던 얘길 떠올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 프로젝트 던컨을 꼭 성공시켜야죠.”
우리가 미국으로 넘어갈 교두보가 되어줄 테니까.
내 말을 들은 직원들의 눈빛에 작은 불씨가 엿보일 무렵.
구석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김지희가 불쑥 물었다.
“그런데, 레코드사에선 뮤지션들 중 누굴 지원하고 싶다던가요?”
다시 몰리는 시선들을 보며 숨을 살짝 들이켰다.
왠지 나조차도 떨린다. 이들이 해외에서 해외의 뮤지션들과 경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마른 입술을 적시며 말했다.
“정아랑 유란 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