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솎아내기 (1)
퍼니스 엔터테인먼트 4층 라운지는 기로에 서 있었다. 파티장과 초상집을 사이에 두고서.
출장 뷔페에 분위기 잡는다고 와인과 샴페인까지 깔아놨지만 정작 오늘의 주인공들은 입에 음식을 넣지도 못하고 있었다.
온통 신경이 자신들의 앨범으로 곤두서 있는데 입맛이 있을 리가.
“얘들아?”
오만 기자들과 성심성의껏 통화를 마친 퍼니스 박 대표가 뉴하이 셋이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일어나 인사하는 애들을 얼른 자리에 앉히고, 거뭇한 얼굴들을 보며 웃었다.
“누가 보면 이미 결과 나온 줄 알겠다.”
하하하. 속 빈 웃음들이 들려온다.
박 대표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 그럴 일 없겠지만 만에 하나 기대보다 좀 못하면 어때? 너넨 이번이 첫 데뷔나 마찬가지야. 데뷔부터 성적 좋은 애 봤어?”
“저희요······.”
뉴하이의 막내, 드러머가 답했다.
박 대표가 3초쯤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그, 그래. 그랬지. 근데 지금 어떻게 됐어! 첫 끗발이 개 끗발······.”
옆에서 실장이 말렸다.
대표님 그거 아닌 거 같다며.
“······그치? 좀 아니지? 내가 원래 예를 잘 못 들어. 얘들아. 방금 건 헛소리니까 흘려들어. 무시해 무시.”
베이시스트가 중얼거린다.
“최후의 만찬인가······.”
차마 포크를 들지 못하는 모습.
그때 남원기가 묵묵히 닭봉을 집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실장이 반겼다.
“역시! 원기는 멘탈이 강해서!”
“얜 무디죠.”
베이시스트의 말에 실장이 그거나, 그거나! 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실망하기 싫어 미리 우울해 있으려는 뉴하이와 이러면 될 것도 안 된다며 다그치는 박 대표,
그걸 지켜보던 실장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10분도 안 남았어요.”
“······.”
열변을 토해내던 박 대표의 입술도 굳게 닫혔다. 심부전이라도 온 것 같은 창백한 얼굴로. 뉴하이는 더 했다. 특히 드러머와 베이시스트는 시계가 메두사의 머리라도 되는 듯 올려다본 채로 굳어버렸다.
“어우, 과민성 대장염 도지네.”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남원기가 우물거리던 뼈를 내려놨다.
곧바로 노릇노릇한 새 닭봉을 집는다. 그렇게 5개를 먹어치우자 딱 10분이 지났다.
주변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박 대표가 벌떡 일어났다. 움켜쥔 주먹을 어퍼컷으로 휘두르면서.
앨범 커버를 담당한 미술팀이 어디선가 포스터를 들고 나타났고, 뮤직비디오를 담당한 촬영팀은 카메라를 들이대며 이 순간을 기록했다. A&R 팀과 홍보팀은 서로를 축하하며 비명을 질렀다.
“형!!”
“대박이다, 대박!”
남원기는 입안에 가득 들어온 고기를 씹으며 베이시스트가 건네는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1위. 뉴하이 - 실크로드
완전체였을 때의 뉴하이도 활동 기간 내내 결국 닿지 못했던 꼭대기에 떡하니 뉴하이의 이름이 박혀있었다.
“연습생들 다 올라오라 그래! 지금 퍼니스에 있는 직원들 싹 다 와서 먹고 놀아! 내일 오전 스케줄 없다!”
박 대표의 선언에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그 순간, 남원기가 천천히 일어났다.
“응? 어디 가?”
“화장실 좀.”
그리고 몸을 돌려 화장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입을 틀어막고서.
#변기 칸에 한참 동안 있던 남원기가 밖으로 나왔다.
세면대로 향해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옷에 물이 튀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서.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조금은 개운해진 얼굴.
화장실 벽에 기댄 그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끊어지며 귀가 트인다. 동시에 들려오는 목소리.
-축하해.
남원기가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다 같이 있어?
“아뇨, 잠깐 화장실 왔어요.”
-고생했어. 이제 부담감 다 게워내.
“······감사합니다.”
젖은 앞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눈가를 비볐다.
-언제든 레이블 놀러 오고. 대표님한텐 내가 허락 맡았어. 뭐, 이제 바빠서 놀 시간도 없긴 하겠다만.
“그래도 꼭 가겠습니다. 시간 쪼개서라도.”
-그러지 마. 가뜩이나 하루 짧은데 뭘 더 쪼개.
남원기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걸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이 피디님 아닌가?
“잘 해볼게요.”
-즐겁게 하자. 너도, 나도.
“네. 즐겁게.”
남원기는 또다시 다짐했다.
다시 즐거워진 음악으로, 보컬로, 성공해 보겠다고.
그래야 다음에도 피디님에게 곡을 요청할 면이 설 테니까.
전화를 마친 남원기가 걸음을 옮겼다. 이젠 멤버들과 대표님, 실장님을 보며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한 지 찰나도 지나지 않아서 남원기의 표정이 굳어졌다.
복도에 마주 오는 이들 때문에.
지난번, 라운지에 모여 뉴하이와 이재학을 운운했던 비트라. 연습생 때부터 선배랍시고 거들먹거리던 이들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남원기는 그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며 그냥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그걸 허락할 비트라 리더가 아니었다.
“차트 1위는 목도 일자냐. 겁나 빳빳하네?”
예상 가능했던 시비에 남원기가 머리를 숙였다.
순순히 인사를 해오자 오히려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은 리더가 입매를 비틀었다.
“오늘따라 순순하다? 지난번엔 한 대 칠 것처럼 노려보더니. 차트 1위 찍으니 몸 사리는 거야?”
비트라 리더가 은연중에 꿍꿍이를 드러냈다.
성질을 건드려서 한 대 맞고, 그걸 장작 삼아 불을 지피는 것.
눈엣가시 같았던 뉴하이는 논란에 던져놓고 자신들은 동정표를 받으며 뜰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남원기도 그의 속셈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맞불을 놓지 않은 거고.
“아 참. 아는 기자님이 너네랑 이재학 관계가 어떤지 물어보시던데. 뭐라고 해줄까? 너네도 띠겁긴 한데, 이재학도 만만찮아서. 우리 차트 1위 님이 부탁하시면 이재학이 말도 없이 너네 쌩까고 나간 거 슬쩍 흘려주······.”
남원기가 고개를 들어 비트라 리더를 보았다.
가뜩이나 사나운 눈매가 더욱 사나워지자 비트라 리더가 주춤거렸다.
하지만 이내 비릿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더 자극하면 자신이 원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리라 생각하며.
복도 모퉁이에서 제3자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너무 목소리가 큰 거 아녜요? 가뜩이나 날이 날이라 사람들 다 있는데?”
이재학이 비트라 리더를 빤히 쳐다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특유의 서글서글한 미소를 그리며.
비트라 리더가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아무렇지 않게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넌 아직도 회사에 있냐? 뉴하이 잘되는 꼴 보는 거 배 아파서라도 도망갔어야 하는 거 아냐?”
이재학이 다시 가면을 썼다. 상대방을 화병으로 죽이기 딱 좋은 가면을.
“그건 선배들 얘긴 거 같은데. 전 앨범 준비하느라, 요.”
“이······.”
애매한 존대를 하며 약 올리는 이재학에 비트라 리더가 얼굴을 구겼다.
“너네 메인이슈어 알지? 이영환 약쟁이로 낙인찍어서 해외 진출 못 하게 막고 골로 보냈던.”
“······.”
대답이 없자 비트라 리더는 더 신이나 말을 이었다.
“나한테 너네에 관해 물어보신 분이 거기 기자님이거든. 내가 진실이든 아니든 적당한 소스만 주면···!”
“주면?”
이번엔 화장실 쪽이었다.
리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시, 실장님···!”
그러거나 말거나. 화장실에서 나온 실장은 남원기를 보며 웃었다.
“볼일 보기 참 힘들다. 안에서는 신파였다가 밖에서는 막장이야? 이러는데, 내가 집중이 되겠어?”
그리고는 비트라 멤버들을 훑으며 얼굴을 굳혔다.
“시, 실장님.”
말까지 더듬으며 자신을 부르는 비트라 멤버들을 향해 실장이 짜게 식은 얼굴로 물었다.
“계속해 봐. 가뜩이나 용무도 끊고 나왔는데 말까지 끊지 말고. 메인이슈어한테 뭘 준다고?”
실장이 비트라 멤버들 전원을 검거해 사라지고.
복도가 적막에 휩싸였다.
남원기가 이재학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에 이재학이 얼른 화장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무 말도 듣지 않겠다는 듯이.
“나 급해. 간다.”
“···어.”
그런 이재학을 보던 남원기도 몸을 돌렸다.
피식 한 번 웃고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뉴하이 멤버들에게로 향했다.
#뉴하이가 차트 1위에 올라서자마자 여기저기서 축하가 쏟아졌다.
이런 쪽으론 가장 빠른 플로라의 매니저 지영환.
퍼니스 박 대표.
한창 힙합 레이블을 준비 중인 비스트로.
레이블 직원들과 소속 뮤지션들.
채연주 기자, 정이철 기자.
그리고.
“좋구만.”
잔을 비우며 웃는 유재완 대표.
말끔하게 비워진 청하 두 병을 보며 내가 물었다.
“더 드시겠어요?”
“아냐, 됐어. 이 정도가 딱 좋네.”
낯빛은 전혀 달라진 게 없었지만, 유재완 대표는 단호하게 끊었다. 그리고 물을 한 잔 쭉 들이켜더니 내게 말했다.
“프로젝트 던컨도 좋은 결과가 있었음 좋겠구만.”
내가 끄덕였다.
“열심히 준비해보겠습니다.”
말한 것처럼 열심히, 그리고 제대로 준비해서 미국 시장을 두드려볼 생각이다.
프로젝트 던컨의 결과는 앞으로의 내 계획에도 큰 영향을 미칠 테니까.
그렇게 의지를 다잡는데, 유재완 대표가 불쑥 물었다.
“그나저나 성과급은 잘 썼나?”
“아, 네···.”
“반응이 시원찮구만. 집 사고 차 샀으면 그런 반응이 안 나오지. 부모님께 다 드렸나?”
“하하하···.”
“드렸구만?”
유재완 대표가 혀를 끌끌 찬다. 어째 욕심이 한쪽만 발달했다며.
“이래서야 더 고민되는데 말이지.”
“네?”
“최영준 본부장이 내게 물어보더라고. 자네가 던컨까지 성공시키면 대체 뭘 줄 거냐고.”
“아······.”
유재완 대표가 내 표정을 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어쩐지 앞섬을 활짝 열어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내게 물었다.
“이미 원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말을 아끼기로 했다.
당사자들의 의사도 중요하니까.
“우선, 프로젝트 던컨부터 성공시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날.
나는 레이블로 출근해 다시 한번 쏟아지는 축하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오후에 해야 할 일 처리까지 모두 진행하고서 TKM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왔지만, 여기도 다를 건 없었다. 다섯 걸음에 한 번씩은 축하한단 얘길 들은 것 같다.
심지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는 TKM 안에 존재하는 모든 팀의 직원들을 한 명씩은 다 만난 것 같지.
정신없이 인사만 하다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니 조용해졌다. 다행히도 나는 지하로 내려가야 했거든.
‘여기도 오랜만이네.’
플로라 때문에 자주 왔었던 안무실이 보인다. 다가가자 문에 난 작은 창 안으로 분주한 직원들이 보였다.
슬그머니 문을 열자 또 한 차례 인사가 쏟아졌다. 그중에는 익숙한 얼굴들도 있었다.
“장 대표님!”
두꺼운 팔뚝을 보니 순간 서기영이 떠올랐다. 물론 그에 비해 키가 작다. 일전에 오디션 때도 함께 했던 보컬 트레이너 이정훈.
“오셨어요?”
하서윤 작업 때 다시 만났던 정수연도 여전히 짙은 화장으로 나를 반겼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서 테이블 한쪽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양옆으로 정수연과 이정훈이 앉았다. 그 밖에도 캐스팅 팀, 매니지먼트 팀에서 나온 이들이 빈자리를 메꿨다.
익숙한 채점지가 내 앞에 올려진다.
찬찬히 살피다가 내가 물었다.
“데뷔조만 보는 거예요?”
“네. 남자 데뷔조만요.”
이정훈이 끄덕이며 씩 웃는다.
“애들 깜짝 놀라겠네요. 대표님 오신다고 말 안 했거든요.”
“맞네. 긴장해서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옆에서 정수연도 거들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그냥 웃었고.
‘나 하나 앉아 있다고 무슨······.’
대수롭지 않게 물병을 까는데, 누군가 애들 들어온다며 신호를 준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데뷔조 연습생들이 당당하게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
나름 여유로웠던 표정들이 나를 보고는 급변했다.
“기, 기로 프로듀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