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욕심 (3)
“쇼케이스요?”
주재윤이 프린터기 앞에 서서 되물었다.
나는 햇볕이 비처럼 들이치는 사무실의 블라인드를 내리며 끄덕였고.
“어제 밥 먹으면서 얘기해보니, 퍼니스 쪽에선 이래도 고민, 저래도 고민인가 보더라고요.”
내 말에 볼을 긁적이며 천천히 주억거리는 주재윤.
“음, 그럴만하긴 하죠. 지금 반응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화려하게 쇼케이스 하기에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니까요. 거기에 기자들이 컴백보다 그 전 일에 대해 오만가지 질문 쏟아낼 텐데···그건 그거대로 부담이고요.”
어제 퍼니스 대표가 말했던 내용과 동일했다. 그렇다고 그냥 조촐하게 하자니 안 하느니만 못하다며 난색을 보였지.
사실 내 역할은 뉴하이 곡이 완성되는 데까지만이다. 이제 후작업만 신경 쓰면 되는 거지.
하지만 앨범이 곡만으로 성공하는 게 아니란 걸 잘 알기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주재윤도 그걸 알기에 내가 던진 말에 함께 고민해 주는 거고.
그가 아쉬워하는 나에게 말했다.
“그래도 쇼케이스를 안 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을 것 같아요. 물론 음원 공개 직전에 기사를 최대한 쏟아내는 게 좋긴 하지만, 그날 거리 악사도 방영하잖아요? 그 프로가 활약을 제대로 해주고 있으니, 부족한 기사는 자연스레 메꿔질 거예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한다. 퍼니스 대표도 마찬가지고.
애초에 그걸 노리고 그날 앨범 발매를 결정했던 거니까.
끄덕이며 기대고 있던 벽에서 등을 떼는데, 주재윤의 목소리가 날 붙잡았다.
“아 참, 피디님.”
“네?”
주재윤이 프린트물을 한가득 책상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거리 악사가 회차를 한 회 더 늘린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그래요?”
아직 전해 듣지 못한 소식이라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주재윤이 웃으며 말한다. 아주 해맑게.
“이거 또 기사 제목에 한 번 더! 엄청 올라오겠네요.”
끙.
최정아 메이킹 필름의 망령이 오래도 가는구나.
내가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철 지난 유행어를 누가 써요.”
#<화제의 예능, 거리 악사 ‘한 편 더!’ 외치나?>
“······.”
기출변형인가.
몹시 원망하는 눈빛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다. 잡아야 하는 기자가 한 명 더···아니, 이거 그만.
핸드폰 너머에서 오 피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오늘 내일로 결정이 날 텐데, 위쪽에서 이미 몇 번 오고 갔던 얘기라 연장하는 쪽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 기사 보니 사람들 반응도 전부 환영한다는 쪽이고.
매주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는 상황에 방송국이 연장이라는 달콤하고 편리한 카드를 꺼내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게다가 반응을 살피려 뿌린 떡밥을 대중들이 덥석 물고 환호하고 있으니 무조건 하겠지. 연장.
하지만 이거, 방영이 거의 다 끝나가는 시점이라 문제가 좀 있지 않나?
“분량은 충분하고요?”
내가 묻자마자 핸드폰에서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내가 걱정한 문제가 저들에게도 고민거리였나 보다.
-부족하지. 그것도 꽤. 드라마면 재촬영이라도 하는데, 이건 뭐 영국을 다시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럼 남은 한 편을 두 개로 쪼개야 한다는 건데 그러면 재밌겠냐고.
오 피디는 방송이 루즈해질까 걱정하고 있었다. 방송사 입장에선 그래도 이득 보는 장사이니 감행하는 거겠지만.
내가 침음성을 삼키자 오 피디가 걱정을 털어낸 목소리로 말했다.
-뭐, 장 대표가 걱정할 건 아니야. 우리가 어떻게든 재밌게 뽑아 볼 테니까 너무 걱정 말고······그건 그렇고, 뉴하이 앨범 작업은 잘 돼가? 원기 인기가 많이 올랐던데?
“네. 그렇더라고요.”
-그 친구도 딱 느낌 왔지. 건실한 청년 같아서 재학이랑 같이 캐스팅했었고.
오 피디가 너스레를 떠는데, 감이 먼 목소리로 누군가 소리쳤다.
-처음에 캐스팅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잖아요! 퍼니스 대표가 패키지로 보내려 한다고 엄청 욕하셔놓고선!
목소리 톤을 들으니 아마 메인작가 인 듯싶다.
-내가? 기억 안 나는데. 퍼니스 대표 만나고 내가 괜찮은 것 같다고 하지 않았나? 큼큼.
-어머, 재학이는 제가 밀었어요.
-그랬나···?
핸드폰 너머 들려오는 대화를 들으며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건반을 치듯이.
-아무튼, 도시 하나를 더 갔어야 했어요. 뭐, 그땐 이렇게까지 잘 될 줄 알았겠느냐마는······.
-부장님도 그 소리더라. 애초에 그럼 편성 좀 늘려서 잡아주지.
후회 섞인 대화 사이로, 내가 입을 열었다.
“오 피디님, 혹시요.”
-음? 왜?
“한국을 마지막 도시로 한 번 더 하는 건 어떨까요?”
-푸흐흐, 장 대표 또 한 번 더야? 한국을 마지막 도시로? 그거······완전 괜찮은데?
웃음기가 쭉 빠졌다. 오 피디가 갑자기 분주해진다. 주변에 메인작가 말고도 제작진들이 있었는지 바로 회의를 시작할 기세였다.
그렇게 웅성거리더니 다시 돌아온 오 피디가 내게 물었다.
-원래 마지막 방송이었던 날 있잖아. 뉴하이 앨범 나오기 바로 전날. 그날 뉴하이가 쇼케이스를 하기로 했나?
“퍼니스에선 할까 말까 고민하는 것 같은데, 시간이 촉박하니 안 할 것 같긴 해요.”
-그래? 그럼······자네 예전에 최정아 첫 앨범 때 쇼케이스를 버스킹 형식으로 했었지?
‘네’라고 답하는데, 내 얼굴이 기름종이가 된 것 같다. 입가에 웃음기가 순식간에 번진다.
뉴하이와 거리 악사를 자꾸 엮는 걸 싫어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미끼를 던져봤는데, 알아서 판을 짜주시네.
-그럼, 이번에도 그런 형식으로 할 생각 없어? 뉴하이 쇼케이스도 버스킹으로. 아예 우리 촬영이랑 엮어서. 아, 이건 퍼니스 대표한테 물어봐야 하나?
“제가 연락드릴 테니 피디님 일 보세요.”
-그래? 그럼 나도 위에 얘기 좀 하러 가봐야겠구만!
오 피디가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 하더니 화장실 급한 사람처럼 전화를 끊었다.
나는 바로 퍼니스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쇼케이스 말입니다···.”
#유성환 작곡가는 그라데이션을 보는 것 같았다. 살 색에서 검은색으로 어두워지는.
한참 얘기를 하는 동안, 듣고 있는 상대방의 얼굴이 그렇게 변해갔다.
이재학에 관한 얘기였고, 듣는 이는 퍼니스 엔터테인먼트의 박 대표였다.
“······그랬는데, 오늘은 재학이가 뭔가 좀 다르더라고요. 확실히 어제 장 대표님하고 얘길 한 게 도움이 된 건지, 갑자기 확 밝아졌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혼자 어떻게 해보려는 강박을 좀 던 것 같아요. 저한테 많이 물어보기도 하고.”
해피엔딩까진 아니더라도 희망이 엿보이는 결말로 마무리 지은 보고. 유성환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표실을 나갔다.
그러나 퍼니스 박 대표의 표정은 여전히 흙빛이었다. 입만 헛헛하게 웃으면서.
옆에 있던 실장도 마찬가지.
박 대표가 입이 쓴지 물을 계속 들이켜며 중얼거렸다.
“누가 대푠지 모르겠네.”
“죄송합니다. 제가 안일하게 생각해서···.”
“아냐, 아냐. 내가 그랬지. 미팅이랍시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정작 애들 케어도 못하고.”
뉴하이가 대박이 나고, 덩달아 비트라까지 괜찮은 성적을 내며 회사가 갑자기 커졌다. 아이돌들 아닌가. 일반 연예인들과는 사업의 규모가 달랐다. 미팅들이 많아지며 눈코 뜰 새 없이 보냈던 박 대표였다.
과도기였지.
한숨을 뻑뻑 내쉬던 박 대표가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라도 애들 관리 제대로 해보자.”
빠르게 끄덕이는 실장을 보며 박 대표가 웃었다. 그리고는 나지막하게 감탄한다.
“그나저나, 장 대표가 진짜 대단하다 싶네. 프로듀서로서는 국내에서 손꼽힌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대표로선 어떨까 싶었거든.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별로 없을 테고.”
경험이 재산인 연예계에서 나이는 큰 약점이다. 그걸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30대 대표라는 게 흠 아닌 흠이었으니까. 하지만 장 대표는 달랐다. 재학이 일도 그렇고, 쇼케이스 문제도 그렇고.
“······보통이 아니네.”
허탈하게 웃는 박 대표.
그가 양손을 비비며 자세를 고쳤다.
일해야지, 일.
“판은 장 대표가 깔아줬으니 우리는 거길 잘 채워보자고.”
“기자들 말이죠?”
실장의 물음에 박 대표가 끄덕였다.
“순한 맛 질문만 해줄 기자들로 구성해보자고.”
#“여기 무슨 일 있나? 오늘따라 사람이 뭐 이렇게 많냐?”
혜화역. 적색 벽돌 건물을 따라 올라오던 사람들이 뜻밖의 인파에 주춤거렸다.
마로니에 공원 입구부터 꽉 막혀있었다. 그 중엔 큼직한 카메라를 든 이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친구들끼리 대학로로 놀러 온 무리에서 불평이 터져 나왔다.
“그러니까 강남 가자니까.”
“야, 강남도 사람 많아. 안 어울리게 무슨 강남이야.”
“안 어울리다니, 오늘 한껏 꾸몄는데. 강남이었으면 벌써 연예인 아니냐고······.”
“연예인 왔데!”
흰색 원피스 입은 여자가 새침하게 말하는데,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하며 지나쳤다.
“연예인?”
질색하던 여자의 친구 중 하나가 곧바로 핸드폰을 뒤적였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대학로라고만 쳤을 뿐인데, 이미 기사가 한가득하다.
“맞네. 오늘 거리 악사 버스킹을 여기서 하는 거였네.”
“뭐? 거리 악사? 그럼 이재학이랑 뉴하이도 오는 거야?”
“하서윤이랑 최정아도?”
“엉, 그런가 봐. 그래서 사람이 이렇게 많았구만?”
“야, 야. 끝나고는 뉴하이 쇼케이스까지 연달아서 한다는데?”
전철역 출구 앞에서 예정에 없던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녀들뿐만이 아니라 꽤 많은 무리들이 저 인파를 뚫고 들어가 버스킹을 볼지에 대해 고심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공원 안쪽이 시끌시끌해지더니 갑자기 함성이 터져 나오자,
“와아아아아!”
저울의 추가 기울기 시작했다.
하나, 둘 공원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도 갈까?”
“솔직히 저 라인업으로 공연을 보려면 대체 푯값이 얼마야.”
“그치? 좀 불편해도 보는 게 낫겠지?”
“개이득 같은데?”
주고받던 시선들이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일제히 공원 쪽으로 향한다.
-!
때마침 울리는 노랫소리.
사람들의 발걸음이 경쟁하듯 바빠지기 시작했다.
#동네 선술집 같은 곳에 들어섰다.
후줄근한 내부를 훑으며 안쪽으로 들어가자 등산복 차림의 유재완 대표가 시선에 걸렸다.
“일찍 왔네?”
내가 꾸벅 인사하자 앉으라며 손짓한다. 어정쩡한 자세로 앉으며 물었다.
“아예 빌리신 겁니까?”
가게 안에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물은 거였는데,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 유재완 대표.
“영화 너무 본 거 아니야? 그거 여기 주인장한테 실례야.”
아. 그냥 장사가 안되는 거구나···.
멋쩍게 웃으며 물잔을 채우는데, 유재완 대표가 물어왔다.
“버스킹은 잘 끝났고?”
“네.”
“뉴하이는?”
“쇼케이스 무대 하는 거까지 보고 왔습니다.”
유재완 대표가 끄덕였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많이 봐. 난 늙었단 핑계로 요샌 이렇게 사진으로 받아 보는데. 이러면 현장감이란 게 없거든.”
그가 핸드폰을 꺼내어 사진첩을 보여준다.
TKM의 모든 프로젝트, 행사들이 저기 안에 다 들어있는 듯 끝도 없이 올라갔다. 심지어 아더 레이블의 작은 공연들까지도 보였다.
이윽고 메로구이가 테이블 위로 올라오자, 유재완 대표가 젓가락을 집어 들며 말했다.
“자네가 오늘 밤에 좋은 성적 거뒀으면 좋겠군.”
뉴하이에 대한 얘기란 걸 알고 대답하려는데, 유재완 대표가 먼저 말을 이었다.
“그러면 자네가 계산하겠지.”
벙찐 내 얼굴에 유재완 대표가 또다시 웃음을 터트린다.
“한울이 3주 넘게 1위였으니, 뉴하이는 적당히 2주 정도만. 아, 너무 속 좁아 보이나?”
“뉴하이 대표님은 TOP10 안으로만 들어가면 소원이 없겠다던데요?”
“박 대표가?”
유재완 대표가 혀를 끌끌 찼다.
“그 친구는 욕심이 너무 없어. 내 앞에 앉은 누구와는 달리.”
나?
게슴츠레 보는 유재완 대표에게 순진무구한 얼굴을 만들어 보였다. 그러자 유재완 대표가 외모랑은 딴 판이라며 웃는다.
나 참. 많이 먹어야겠다. 많이 나오게. 아, 내가 계산하게 되려나?
소심한 복수를 꿈꾸는 나에게 유재완 대표가 프로젝트 던컨에 대한 얘길 꺼냈다.
“각 팀에서 자넬 서포트할 준비는 어느 정도 마친 것 같던데, 내일 시간 되면 와서 연습생들 좀 봐봐. 마침 월말 평가가 있는 날이니까.”
“그렇지 않아도 서재원 본부장님한테 전달받았습니다.”
“그래? 그 친구도 본부장이 되더니 어째 더 빠릿빠릿해졌어. 내 주변엔 욕심 많은 친구가 참 많네.”
그러면서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린다.
“뭐, 나쁜 것만은 아니지. 욕심이란 게 어떻게 활용하냐에 따라 발전하는 원동력으로 그만한 게 없기도 하니까.”
마침 가게 사장님이 부위별로 손질된 참치 회를 가지고 나왔다.
“어떻게, 술 한잔 하겠나?”
“네, 좋습니다.”
“여기서 자네랑 마시다가 뉴하이 몇 위로 진입하는지 보고 가면 되겠군.”
“그건 좀 부담되겠는데요?”
대표와 함께 성적을 개봉한다니···.
만일 기대 이하의 결과가 나온다면 그것만큼 민망한 상황도 없을 거다.
잔을 따르고, 부딪혔다.
쨍하는 맑은소리와 함께 유재완 대표가 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웃는다.
“여유로워 보이는구만,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