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욕심 (2)
퍼니스 엔터테인먼트 소속 작곡가 유성환은 자신도 모르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녹음 부스 안에 있는 이재학을 보면서.
‘이젠 좀 안쓰러울 정도네.’
어제 밤샘 녹화를 마치고 오늘 아침 서울로 올라왔다던데, 몇 시간 눈 붙이지도 않고 나와 저러고 있다.
매니저는 또 뭔 죄야······.
‘아까 보니 휴게실에서 엎어져 있던데.’
헛바람을 삼키며 이재학의 노래를 들었다.
유성환이 낮게 감탄했다.
잘 부른다. 데뷔 초엔 얼굴 때문에 떴다는 얘기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가 완전히 잠잠해졌잖나.
그게 소속사의 언플이나 이미지 때문이 아니란 걸 확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유성환은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잘 부르는데.
정말 잘 부르는데.
‘어쩐지 듣는 사람도 힘드네.’
부르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노래가 끝나서까지 그 묘한 불쾌함이 남았다. 이에 악보를 살피는 유성환. 음역대가 어긋난 것도 아니고, 멜로디는 솔직히 역대급이다 싶을 정도로 잘 뽑았는데.
‘대체 왜지?’
그때 이재학이 헤드셋을 벗으며 물었다.
“어땠어요?”
“어? 어땠냐고···?”
유성환이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템포가 조금 늦었다.
“집중 안 했구나. 아니, 못한 건가.”
고저 없는 목소리.
유성환은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다고 느꼈다. 최근 들어 더 심해지고 있다. 이 공간에만 들어오면 아예 딴사람이 돼 버린다.
‘아무래도 대표님께 말씀드려야겠다.’
밖에선 그나마 밝은 얼굴을 유지하니, 이 정도인 줄 모를 테니까.
“아니. 아니야. 그게 아니라······좀 쉬는 게 어떨까?”
“목이 좀 쉬었죠? 물 마시고 다시 해볼게요.”
“지금 너 목이 쉰 게 문제가 아니야.”
“그럼요?”
유성환이 한숨을 터트렸다.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목재 방음이라고 좋아라하며 냄새를 킁킁댔었는데, 지금은 무슨 한증막 사우나에 갇혀있는 것 같다.
“부담감이 문제인 것 같아.”
“······.”
“너 먹지도 쉬지도 않고 시간 날 때마다 연습만 하잖아. 지금도 충분히 잘 부르고 있어. 그러니까 이제 녹음할 때까진 좀 쉬면서······.”
“안 돼요.”
이재학이 유성환의 말을 자르며 보면대를 만지작거렸다. 우그러트릴 듯 움켜쥐기도 하고, 자를 듯이 긁기도 하면서.
“사람들 반응 보셨죠? 지금 다들 뉴하이 기대하는 거.”
“네 앨범 기대하는 팬들도 많아.”
“그러니까요.”
꿈자리가 사나운 사람처럼 이재학이 움찔거렸다.
“뉴하이는 잘 되고, 저 망하면······그러면 어떡해요? 뉴하이를 나온 게 제 실수면 어떡해요?”
“재학아. 뉴하이 나온 거 실수 아니야. 누가 그래?”
“그건······! 아무튼 안 돼요. 더 열심히 해야 해요.”
유성환의 시선에서 이재학은 지난 한 달 반 동안 서서히 변했다. 그런데 지금은 무슨 낭떠러지를 향해 내달리는 사람 같았다.
‘이래선 서운해하지도 못하겠네.’
자신이 아닌, 기로 프로듀서와 작업을 하려 했단 얘길 모르지 않는다. 대표가 먼저 찾아와 미안하다고 했었으니. 이해야 됐지. 자신이 대표였어도, 이재학이었어도 같은 결정을 내릴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서운함은 또 별개의 문제였는데······.
이제는 그런 감정보다도 다른 게 앞선다.
뉴하이도, 이재학도 잘 됐으면 좋겠다는.
‘그러려면, 내가······.’
유성환이 씁쓰름한 입술을 뗐다.
“열심히 하는 게 능사는 아니잖아. 그것도 몸을 혹사해 가면서까지.”
보면대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이재학이 고갤 들었다. 유리 너머에서까지 복잡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러면요? 뭘 해야 이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요?”
유성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르기도 했지만, 알아도 말할 수 없었으리라.
가르쳐 주면.
정말이지 뭐든 할 것 같아서.
#“혹시 재학 씨 만나?”
컵을 커피머신에 올려놓고 물을 마시는 남원기에게 물었다.
며칠 전에 주재윤이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툭툭 걸려서. 느낌이 안 좋다고 해야 하나.
‘이재학이 문제를 일으킬 일은 없겠죠?’
최근엔 SNS에 간헐적으로 의미 모를 사진. 흑백 사진 등을 올리며 어떤 글도 남기지 않는다고 한다.
항상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다는데.
그 때문에 팬들도 엄청 예민해져 있단다. 무슨 문제가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하는 거지.
주재윤은 이 상황에서 이재학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며 걱정했다. 급발진이 예삿일이 아닌 곳이라면서.
과한 걱정인가? 아니지. 주재윤의 말마따나 다른 곳도 아닌 연예계인데.
진실보단 찌라시가 더 강하고, 관심이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연예계.
‘아무래도 내가 적을 만들고 다니는 타입이 맞나 보네.’
하필 이런 무시무시한 곳에서 말이지.
남원기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마주친 것도 손에 꼽아요.”
“그래?”
나는 끄덕이며 다 내려진 커피를 들었다. 녹음실로 돌아가자고 말하려는데, 남원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힘들어한다는 얘긴 들었어요. 요즘 유난히 더.”
“누구한테?”
“재학이 이번 앨범 맡으신 작곡가님한테요. 첫 앨범 때, 편곡 도와준 분이라 친하게 지냈었거든요. 걱정 많이 하더라고요······.”
진흙 위를 걷는 것 같은 질퍽질퍽한 목소리였다.
그나저나, 뉴하이 이전 앨범의 편곡이 참신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이번에 작곡을 맡았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끄덕이는데, 남원기가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재학이는 왜요?”
“좀 신경 쓰여서. 재학 씨 SNS도 그렇고.”
“아. 저도 계속 보고 있었어요. 솔직히 걱정되기는 한데, 제가 연락해봤자 받을 것 같지도 않고······.”
늘어지는 말꼬리에 대고 내가 불쑥 물었다.
“그래서, 내가 한 번 만나볼까 하는데?”
*“······재학이가 요즘 녹음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해서요.”
남원기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퍼니스 실장의 뒤를 따랐다.
촘촘히 설치된 형광등 덕에 유난히 새하얀 퍼니스 엔터의 복도.
대표실에서부터 한 층을 내려가 절반 정도 걸으니 문이 색색 별로 칠해진 녹음실들이 나타났다.
어딘 유명 가수 이름으로 녹음실 이름을 붙여놨다던데, 여긴 깔 별로 해놨네.
우리는 주황색 문 앞에 섰다. 퍼니스 실장이 문을 열자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실장님.”
“잘 하고 있어?”
“네. 근데, 여기 있는지는 왜 물으신 거예요?”
“그게···손님이 오셔서.”
지난번과 같은 멘트를 하며 퍼니스 실장이 문을 마저 열었다. 특유의 나무 냄새가 확 풍겼다. 고급 향수에서나 날 법한.
동시에 믹서 앞에 돌아 앉아있는 이재학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재학의 놀란 표정을 보며 내가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연습 방해해서 미안해요.”
녹음실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적막이 찾아왔다. 잠시 후, 이재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마 박차고 나가나 싶었는데, 작은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온다. 눈에선 원망을 줄줄 흘리며.
이런 게 여자들이 말하는 몸에 밴 매너라는 건가?
안 보이도록 작게 웃으며 주스 뚜껑을 땄다. 한 모금 마시며 슬쩍 모니터를 보았다.
트랙이 끝도 없이 쌓여있는 프로툴.
색색 별로 정갈하게도 나눠놨다.
이재학이 만진 것 같진 않고···.
남원기가 말한 그 작곡가겠지.
뉴하이의 1집을 도맡아 편곡했다던.
잠깐 훑어보고 다시 이재학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바닥을 뚫고 내려갈 듯 고개를 떨군 이재학. 내가 툭 던지듯 말했다.
“면회 왔어요.”
“···네?”
“여기 갇혀 지낸다길래.”
“······.”
흠흠. 어색해서 던진 말인데, 반응이 썩 별로다. 성공적이네.
이번엔 대답조차 없던 이재학이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한테도 곡 주러 오셨어요?”
“아뇨.”
나는 최대한 진심을 담아 답했다.
“그럼, 저희 대표님이 부탁했나요? 저 한 번 봐 달라고.”
“오히려 반대죠. 대표님께 내가 부탁했으니.”
“그럼······.”
지긋지긋한 인터뷰 마냥 대화가 흘러가길래 내가 이마를 긁적이며 자세를 고쳤다.
“실은 폭탄처리반 역할로 왔어요.”
“네···?”
이재학이 어이없다는 듯 바람 빠지는 소릴 냈다. 날 황당하게 보면서 입을 연다.
“굉장히 솔직하시네요. 대놓고 폭발물 취급을 해주실 줄이야.”
“원래 계획은 어르고 달래는 거였는데, 찔려서 안 되겠더라고요.”
처음으로 이재학이 웃었다. 물론 실소. 그중에서도 비웃음에 가까운 웃음이었지만.
“근데 막상 와서 보니 폭발물까진 아닌 것 같네요.”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요?”
톡 쏘는 말투.
내가 알던 그 이재학이 맞나 싶다.
눈그늘이 턱밑까지 흘러내리고, 곧 유체이탈이라도 할 것처럼 초췌한 거야 다 차치하고서도, 성격이 완전히 변했다.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가시만 곤두세운다.
어쩌면 이게, 진짜 이재학인 건지도 모르겠네.
가면이 완전히 부서진 이재학이 내게 물었다.
“저도 궁금한 거 있었어요.”
“말해요.”
“그때 리버풀에서 말씀하셨던 거······제가 뉴하이의 도움을 받았을 거란 얘기. 그거 무슨 말씀이셨어요?”
의외다. 당연히 그냥 흘려들었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계속 곱씹고 있었나 보다.
내가 고개를 돌린 채 말없이 가만히 있자, 이재학이 덧붙였다. 비틀거리는 목소리로.
“아무리 불러도 부족한 게 느껴져요.”
절박하다. 발밑이 천 길 낭떠러지라도 되는 것처럼.
왜인진 모르겠지만, 문득 최정아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서 지선주도.
함께 떠올릴 일 따위 전혀 없을 것 같던 둘인데······.
‘이상하지.’
내가 시선을 뗐다. 모니터에서.
그리고 이재학에게 말했다.
“말 그대로예요. 뉴하이가 재학 씨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그럼, 뉴하이를 이미 나온 전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뉴하이처럼.”
“···네?”
“뉴하이도 마찬가지였어요. 보컬이 원기로 바뀌면서 더 나아진 부분도 있지만, 부족한 부분들도 분명히 생겼어요. 그리고 그 부분을 채우는 건...내 몫이었고요.”
그게 멜로디로든, 편곡으로든, 믹싱으로든.
노래는 보컬이 부르지만.
곡은 다 같이 만들어가는 거니까.
멍한 표정의 이재학에게 말했다.
“근데, 이미 채워주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같던데요?”
모니터에 떠올라있는 프로젝트를 가리키면서.
#밖으로 나오자 벽에 기대어 핸드폰을 하고 있는 퍼니스 실장이 보였다. 문소리를 듣고는 얼른 다가온다.
“얘기 끝나셨어요?”
“네. 그런 것 같네요.”
“대표님이 식사 같이하자고 하시는데, 혹시 시간 되실까요?”
“그럼요.”
내가 흔쾌히 끄덕였다. 앨범에 대해서 회의할 것도 산더미니까.
곧장 퍼니스 대표와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그가 무슨 상담사를 만난 것처럼 이재학은 어떠냐고 묻길래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답했다. 오히려 이재학의 앨범이 기대된다고까지 말했지.
본격적으로 식사를 하면서는 뉴하이에 대한 얘길 끊임없이 나눴다. 정확히는 이번 뉴하이의 싱글 앨범에 대해서.
내 역할은 작곡과 녹음까지만이었기에 곡 외적인 부분에 대해선 모르는 게 많았다.
예를 들면 앨범 커버과 뮤직 비디오의 진행 상황, 그리고 마케팅 같은 세세한 부분들 말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물었다.
식사를 마쳤을 때쯤엔, 내 머릿속에 뉴하이 앨범의 뚜렷한 윤곽이 그려져 있었다.
내 손에 이미 실물 앨범이 쥐어진 것처럼.
“이제 한 달도 안 넘었는데, 산 넘어 산이네요. 우려를 겨우 기대로 만들었는데, 이젠 그 기대를 제대로 충족시켜줘야 하니.”
퍼니스 대표가 후식으로 나온 수정과를 술처럼 들이키며 탄식했다.
반면, 나는 수정과를 휘휘 흔들며 웃었다.
머릿속에 그려진 뉴하이의 그림이 이미 내 기대를 훌쩍 뛰어넘었으니까.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가진 기대가 남들보다 적었을 것 같진 않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