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45화 (145/221)

145. 욕심 (1)

A) 뉴하이 특집인데, 기로 프로듀서와 인터뷰를 하고 있네요. 특이한 경우예요.

B) 제가 뉴하이랑 작업을 하는 것 만큼요?

A) 그것보단······아닌 것 같네요.

B) 역시 그렇군요.

A) 그만큼 특이한 일이죠. 보컬이 빠진 밴드가 인원 추가도 없이 앨범을 만드는 건. 근데 거기에 스타 프로듀서가 붙었다? 먼저 손을 건넸다? 사람들이 유독 이번 작업을 의아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B) 저도 저 자신한테 의아해했을 것 같네요. 만약 거리 악사에서 남원기 씨의 노랠 듣지 못했다면 말이죠.

A) 원기 씨 노래. 아직 전파를 타진 않았지만, SNS에서 짧게나마 돌아다니길래 저도 봤습니다. 핸드폰으로 찍혔다 보니 음질이나 이런 게 명확하지 않았지만 잘 부른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그동안 작업해온 사람들과 비교하면 임팩트가 약하다고 느꼈습니다. 이전분들은 설령 무명이었어도 개인적으론 확실한 임팩트를 갖고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B) 음. 저는 뮤지션마다 자신들에게 맞는 노래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A) 맞는 곡. 맞는 옷처럼 말이죠?

B) 네. 그게 맞아 떨어졌을 때, 기자님께서 얘기하신 임팩트도 생겨나는 거죠.

A) 그러니까 기로 프로듀서님의 말은 뮤지션과 노래가 제대로 만났을 때, 포텐이 터진다는 말씀이네요?

B) 맞습니다.

A) 그러면 남원기 씨에게 러브콜을 보낸 이유가······.

B) 이번 곡이 남원기 씨에게 딱 맞는 옷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뭐라는 거냐···?”

소파에 누워 인터뷰를 쭉 읽어본 여학생이 볼을 벅벅 긁으며 창을 닫았다. 그리고 거리 악사 실시간 반응 탭으로 돌아왔다.

기로 프로듀서가 던진 불씨가 여기서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처럼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지만.

여학생이 중얼거렸다.

“노래를 잘 부르는 애가 무슨 노래든 더 잘 부르겠지.”

보통 노래를 잘 부른다고 칭찬하지, 이 곡을 잘 부른다고 칭찬하진 않으니까.

평소 음악에 큰 관심이 없었던 그녀는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며 거리 악사를 기다렸다.

핸드폰 배경화면 속 최정아.

그녀가 음악 예능을 기다리는 이유였다.

실시간 반응창을 나온 그녀가 이번엔 최정아 팬카페에 접속했다.

[곧 시작하네요! 오늘도 정아 언니 분량이 많길!]

팬 카페에 글 하나를 올려놓고 광고를 겸허히 시청했다. 최정아가 모델인 여성복 광고가 끝나자 곧바로 거리 악사가 시작되었다.

올린 글에 댓글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그녀는 거리 악사에 집중했다.

“쩝. 오늘은 분량이 좀 짜네.”

남원기와 미니 버스킹을 하며 분량이 낭낭했던 지난주와는 달리, 이번 화는 버스킹 연습이 주를 이뤄 잠깐잠깐 얼굴만 비치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목소리가 계속 출연해준다는 거.

대신 오늘의 분량 브레이커는 따로 있었다.

바로 기로 프로듀서.

버스킹을 이끄는 역할이기에 분량이 많은 게 당연했지만, 그럼에도 여학생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속 가수 분량을 지켜줘야지 지가 더 말 많이 하고 있네!”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계속. 계속.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기로 프로듀서가 화면에 잡히면 그 주변에 있던 최정아도 같이 프레임에 걸리니.

나름의 위안 삼아 시청하는데 기로 프로듀서가 연습을 멈췄다. 그리고 계속 반복해서 부르던 곡을 별안간 남원기에게 불러보라 시킨다.

“엥. 뭐야, 이재학도 괜찮게 부르더만?”

이미 곱지 않아진 시선은 뭘 해도 미운 법이었다.

만약 저랬는데, 남원기가 이재학보다 못하면?

뉴하이와 작업을 약속한 기로 프로듀서는 민망한 상황을 피하지 못할 터였다.

“어쩔려고······.”

그러나 그녀의 걱정은 기우였다.

남원기의 노래가 시작되며 그녀는 댓글 확인 차 핸드폰으로 내렸던 시선을 다시 올렸다.

달랐다.

이재학이 못 불렀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남원기가 부르는 ‘거리에서’는 또 달랐다.

뭐라고 해야 하나.

저 옷이 원래 저런 핏인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이 입으니 또 다르달까.

여학생은 감탄했다.

그리고, 동시에 떠올렸다.

뭔 소리냐고 읽고 넘겼던 기로 프로듀서의 인터뷰를.

“어······뭔 소리였는지 이해가 되는 거 같기도 하고?”

그녀와 비슷한 반응들이 실시간 채팅창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었다.

#거리 악사 2회가 병영 된 후, 사람들의 반응에도 분명한 변화가 생겼다.

해당 방송에서 남원기가 이재학 대신 노래를 부른 장면이 꾸준히 회자 되고 있었다.

분명 이재학도 노래를 잘 부르고, 그에 비해 남원기가 특출나게 가창력이 돋보이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부족한 점들까지 보이기도 하는데.

남원기의 노래가 더 듣기 좋았다.

이재학 팬들이 무슨 소리냐며, 별로라며 바득바득 우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대해선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동시에 ‘기로 프로듀서가 했던 말이 이건가?’라는 반응도 많이 보였다.

-난 솔직히 뉴하이 별 관심 없었는데 요즘은 좀 기대됨. 기로 프로듀서가 남원기에게 어떤 곡을 줄지도 그렇고, 그 곡을 남원기가 어떻게 소화할지도 그렇고.

이런 댓글도 이젠 싫어요 폭탄을 맞는 일이 적어졌고.

나는 점점 변하고 있는 반응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동시에 앨범 준비에 박차를 가하면서.

“역시······좋네요. 편곡도 안 된 멜로디인데······.”

윤태영이 꽉 채워진 멜로디를 들으며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그리고 트랙에서 눈을 떼며 내 쪽을 바라본다.

번들번들하다. 욕심이.

음악에 미쳤으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네.

“그래요?”

내가 말꼬릴 올리자 윤태영이 재차 끄덕였다.

“중독성이 있으면서도 단조롭지 않아서 잘 안 질리겠어요.”

그러면서 덧붙인다.

“그리고, 이 멜로디를 원기 씨가 부른다고 하니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더 기대되네요.”

그가 생기가 도는 얼굴로 다시 트랙을 훑기 시작했다. 그러다 못 참고 다시 질문해왔다.

“편곡은 어떤 식으로 하실 생각이에요?”

편곡은···.

“밴드의 색채를 최대한 살리려 해요. 그러려면 편곡이 너무 타이트하게 들어가선 안 되겠죠.”

공백이 있어야 뉴하이도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채워 넣을 테니까.

윤태영이 끄덕이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밴드 구성을 보니 기타의 역할이 중요하겠더라고요. 애초에 기타 라인도 함께 잡아가면서 편곡하는 편이 후에 문제가 덜 생길 것 같아요.”

내 생각도 같았다.

곧장 남원기에게 전화를 걸어 이리와 와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알겠다는 대답이 들리고서, 윤태영과 커피 한 잔을 채 마시기도 전에 남원기가 레이블에 도착했다.

“뛰어 왔어요?”

“택시 타고 오다가 중간에 막혀서요.”

그냥 천천히 오지 그랬냐고 말하는데, 여직원이 센스있게 물을 가져왔다.

단숨에 들이킨 남원기가 어정쩡하게 서 있길래 꺼내 놓은 스툴에 앉혔다.

“멜로디가 완성되었거든요. 보냈는데, 아직 못 들었죠?”

“오면서 들었습니다. 계속.”

남원기가 바짝 상기된 얼굴로 대답하자 옆에 있던 윤태영이 눈을 빛냈다. 사실 나도 저런 눈빛일 것 같다. 지금.

오늘따라 잘 맞네.

주섬주섬 기타를 꺼내는 남원기에게 윤태영이 물었다.

“그럼, 혹시 불러 볼 수 있겠어요? 원기 씨가 어떤 식으로 부르는지를 알아야 편곡하기 수월할 것 같아서요.”

“해볼게요.”

의외로 시원하게 대답이 나왔다.

여기까지 오는 잠깐동안 들은 곡을 바로 불러본다는 건 기성 가수들도 어려운 일인데 말이지.

“흠, 흠.”

보컬로서는 신인이나 마찬가지인 남원기가 목을 풀더니 노래를 불렀다. 기타까지 치면서.

그새 코드를 땄네.

통기타다 보니 자연스레 언플러그드한 느낌의 반주가 깔렸다. 그 위로 락킹한 목소리가 올라가니 꽤 색달랐다.

‘언플러그드 버전을 추가하는 것도 괜찮겠는걸?’

잠깐의 생각을 끝으로 나는 남원기의 노래에 빠져들 듯 집중했다. 힘 있는 목소리 이면에 있는 퇴폐적인 느낌이 헛웃음을 짓게 했다. 무슨 사막의 유사 같다.

고칠 점이 분명히 있는데, 그게 잘 안 보여.

대신······.

이 노래를 지금 부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부르고 싶어 하는 욕심.

그건 선명히 보인다.

#2주 뒤.

총 8부작으로 기획된 거리 악사도 어느새 절반 이상을 지났다.

뉴하이의 곡이 거리 악사 종영일에 맞춰 공개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사람들은 뜻밖의 양가감정에 시달려야 했다.

거리 악사가 끝나는 건 싫지만, 그때가 와야 발매되는 뉴하이의 음원은 기다려지는 아이러니.

이런 상황 덕에 자작하게 졸여졌던 퍼니스 대표의 가슴도 점점 안정을 되찾았다. 우중충했던 표정도 쫙 펴지고.

“끙···.”

그랬던 퍼니스 대표의 얼굴이 오늘 다시 바짝 쪼그라들었다. 홍조기 다분했던 피부가 창백해 보일 정도로.

“애들 녹음 잘하고 있으려나? 막 환경 낯설다고 연습한 만큼 못 하는 거 아냐?”

퍼니스 대표의 말에 퍼니스 실장도 돌연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장 대표님이 그런 쪽으론 또 엄청 날카롭다던데?”

“그래?”

“그거 한창 유행어였잖아요. 한 번 더.”

낮게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하는 퍼니스 실장. 투박한 얼굴로나 걸쭉한 목소리로나 장기로와 유사한 점은 하나도 없었지만 퍼니스 대표에겐 지금 그런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 알지. 알아. 녹음실에선 이미지가 완전 딴판이라면서.”

탁탁거리며 팔걸이를 두드리던 그가 또 다른 근심을 드러냈다.

“그나저나, 재학이는 좀 어때?”

“재학이······괜찮아 보여요. 겉으론. 곡 작업도 잘 하고 있고.”

실장이 확신 없는 말투로 답하자, 퍼니스 대표는 더욱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항상 괜찮은 척하는 애잖아. 속으론 실망 많이 했겠지.”

“그럴 것 같긴 해요. 기로 프로듀서가 자기 맘에 들어 하는 것 같다고 신나서 전화했었는데, 일이 이렇게 돼버렸으니. 가뜩이나 자존심도 엄청 센 녀석인데.”

그러면서 실장이 씁쓸한 얼굴로 덧붙였다.

“이제 화해는 글렀겠네요.”

뉴하이와 이재학의 관계를 말하는 거란 걸 퍼니스 대표도 알아차렸다.

“아니, 화해랄 게 뭐 있나. 싸운 거 아니잖아? 여러모로 솔로가 더 낫겠다고 판단해서 나온 건데. 팬들도 그걸 원했고.”

“그래도 좀······아슬아슬하잖아요. 재학이 녀석이 갑자기 어디 가서 따돌림당했다느니 그런 헛소문을 터트릴까 봐.”

“에이, 친구들 죽이려고 헛소문을 던져? 걔 그렇게 나쁜 애 아냐.”

대표가 고개를 저었지만, 실장은 여전히 걱정되는 표정으로 말했다.

“처음부터 그런 애가 어딨겠어요. 다 욕심이 그렇게 만드는 거지.”

“······.”

퍼니스 대표도 살짝 움찔했다.

이 바닥에 엄청 오래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봤기에.

아니라고 말 못 하는 그였다.

그때였다. 실장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어? 애들이에요.”

“벌써? 일단 빨리 받아봐.”

핸드폰을 귀에 가져가는 실장.

“어어, 어땠어? 괜찮았어? 그래? 야, 고생들 했다. 어, 어. 그냥 바로 숙소로 들어가. 대표님이 허락하셨어. 푹 쉬어. 자세한 얘긴 내일 와서 하자. 바로 대표님 방으로 와. 대표님 아주 숨넘어가시겠다. 어, 그래.”

퍼니스 대표는 실장의 밝아진 표정을 보며 안도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전화를 마무리 짓던 실장의 표정이 요상해졌다.

“······장 대표님이 이리로 오고 계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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