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만들기 나름, 곡도 여론도
<퍼니스 엔터 즉, 최근 기로 프로듀서가 직접 찾아와 제안···>
퍼니스 엔터 측 관계자는 지난 화요일 기로 프로듀서가 퍼니스와 미팅 후, 해당 작업을 구체화했고, 계약서를 작성 후 곧바로 보도자료를 보냈다고 밝혔다.
한편, 이재학의 솔로 전향에 대해서는 지난달부터 논의 중이었던 내용이며, 각자의 음악 활동을 위해 서로 응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운드베리 : 채연주 기자]
-난 이런 게 제일 웃기더라. 팀이 찢어졌는데 서로 응원한다고? 차라리 안 맞아서 각자 노선 탔다고 하는 게 솔직하고 좋을 거 같은데.
-그건 당사자들만 아는 거고. 솔직히 이재학한텐 잘된 일이지. 출연료도 N 분의 1이었다며? 나 같아도 나오고 싶었을 듯!
-아니, 이재학 혼자 대박 났나? 뉴하이 다 같이 열심히 해서 대박 난 거잖음. 출연료도 애초에 동의하고 데뷔한 걸 텐데.
-응. 이재학 혼자 대박 난 거야. 멤버들 버스 탄 거고.
-근데 이러면 뉴하이 보컬은 누가 함?
-남원기가 한다던데?
-아 그건 좀······밴드에서 보컬 빠졌으면 보컬을 채워 넣던가, 해체하든가 해야지. 기타리스트 노래 좀 한다고 보컬로 슥 바꾸는 건 오바 아님?
-기로 프로듀서도 이번엔 판단 잘못한 듯. 숨 끊어진 그룹을 심폐소생 하려고 하네.
-사람들이 무명 히트제조기라고 부르니까 더 그러는 거 같음.
-저러다 실패하는 거지. 그러다 슬럼프 오는 거고. 그런 작곡가들 많이 봤음.
“이때다 싶어 득달같이 달려드네.”
자신이 쓴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확인하던 채연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재학 팬들이야 기대하던 바가 있으니 그렇다 쳐도, 장작이 타오르자 평소 뉴하이에 관심도 없던 이들까지 기름을 들고 와 끼얹고 있다. ‘이거 다른 소속사 댓글 알바 아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유명한 만큼, 시기하는 이들도 많을 테니까.
짧게 혀를 차는 채연주.
뒤쪽에서 정이철이 믹스 커피를 들고 와 툭 말했다.
“기사 반응 괜찮던데?”
“댓글 난리 났어요. 엄청 싸워요.”
“그러니까 괜찮은 거지.”
정이철이 쿡쿡대며 말을 이었다.
“장 대표가 이번엔 먹이를 제공하긴 했지.”
의자가 홱 돌더니 채연주가 정이철에게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 정도예요? 뉴하이에게 곡 주는 게?”
“그치. 여론이 별로잖아. 타이밍은 더 별로고. 애초에 뉴하이 팬은 거진 다 이재학 팬이었고, 거기다 출연료 관련된 얘기까지 돌면서 이재학에 동정표가 몰렸지. 더군다나 일대 다수. 사람들 눈에 누가 불쌍해 보이겠어.”
실제로 인터넷 상에서 뉴하이 멤버들이 질투를 했을 거라느니, 따돌렸을 거라느니 온갖 추측들이 우후죽순 솟아나고 있었다.
채연주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런 추측들이 문제죠. 뭐만 하면 이야기 만들어서.”
“그걸 제일 잘하는 게 우린데?”
정이철이 채연주를 보며 웃었다.
자신의 직업을 곱씹은 채연주는 헛웃음을 터트렸고.
“근데, 나도 이번 장 대표 선택은 좀 의아하긴 해. 한울이 대박을 냈으니 이번엔 좀 안전한 작업을 할 줄 알았는데 말이지.”
종이컵을 휘휘 돌리며 갸웃거리는 정이철.
채연주도 작게 주억거렸다.
“그건 그래요.”
“지금까지 장 대표가 작업했던 라인업을 보면 와 정말 특이하다, 혹은 독보적이다. 이런 느낌이 있었는데 뉴하이는 글쎄······간판인 보컬이 쏙 빠진 밴드를 리빌딩 없이 그대로 이어간다 라······.”
“그래서 일부 매체에선 기로 씨가 너무 멋대로 작업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더라고요.”
“나도 봤어. 한 레이블의 대표인데 본인 하고픈 것만 한다고 신랄하게 까더군. 책임감까지 운운하면서. 뭐, 두고 보면 알겠지. 책임감이 있는 건지. 선견지명이 있는 건지는. 어쨌거나 실력이 있는 건 확실한 사람이니까.”
“실력이 있다 해도 사람이 어떻게 항상 성공해요.”
“맞는 말이긴 한데. 이 바닥에선 그 한 번의 실패가 큰 법이거든. 승승장구하다가 오는 슬럼프가 가장 깊고, 쌩쌩 달리다가 미끄러지면 다시 일어나기 어려운 동네라.”
으쓱거리는 정이현에게 시선을 두던 채연주가 진동을 느끼고는 책상 위로 고개를 돌렸다.
“어?”
장기로의 전화였다.
#슬픔. 우울. 침통. 그리고······.
“아니,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화병.
불과 지난주까지만 해도 기대와 열정으로 물들었던 합주실에 부정적인 것들이 꽉 들어찼다.
숙주는 뉴하이의 베이시스트였다.
그는 베이스 대신 핸드폰을 쥐고서 퉁퉁거렸다.
“팀이 그럼 나눠지지 뭐 다른 팀이랑 또 합치나? 우리가 무슨 M&M이야?”
“······M&A 아닐까요?”
아까 들어온 드러머가 교복도 벗지 못하고 웅얼거렸다.
“아무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나간다고 선언한 건 이재학 그놈인데, 왜 우리가 욕을 먹냐고!”
“······욕도 먹어요, 우리?”
드러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눈을 굴리자 옆에서 잠자코 있던 남원기가 물었다.
“학교에선 별일 없었고?”
“그냥······그럼 너 계속 뉴하이 하는 거냐고. 해체 안 하냐고.”
“그래서 뭐라고 했어?”
“해체 안 할 거라고 했어요. 원기 형이 노래 부를 거라고.”
“잘했어.”
그때 베이시스트가 또다시 분통을 터트렸다.
“이 기사는 또 뭐야? 기로 프로듀서의 무모한 도전!? 우리가 이재학 없다고 그 정도야? 기로 프로듀서님까지 무모하단 소릴 들을 정도로?”
이번엔 남원기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그에겐 지금 이 상황이 단지 억울하고 답답한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죄송스러웠다.
먼저 손을 건넨 장 피디님에게.
만약 장 피디님이 이재학과 작업을 한다고 발표했어도 이렇게 됐을까?
솔직히, 아닐 것 같았다.
자신들이 이재학과는 달리 팬이 없어서.
인지도가 작아서. 그래서 이렇게 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인을 확인한 남원기가 재빠르게 핸드폰을 귀에 가져갔다.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핸드폰에 대고 입을 열었다.
“네, 피디님···.”
“어?”
“피, 피디님이셔!?”
벌떡 일어나 다가오는 베이시스트에게 손을 휘휘 저으며 남원기가 구석으로 향했다.
그 사이, 익숙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생각보다 반응이 차갑길래 전화했어요.
“아, 네······.”
순간 남원기는 아찔해졌다.
비일비재한 일이잖나.
누구와 누가 함께 작업하려다가, 사정상 다음을 기약하는 시나리오는.
생각만 했을 뿐인데, 둑이 무너지듯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아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재학에게 잘 됐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자신에게 일어날 일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작업실에 찾아오셨을 때까지도 상상조차 못 했는데.
지금 이러는 걸 보면, 어느새 욕심이 났나 보다.
장 피디님과의 작업에.
“죄송합니다. 저희 때문에······.”
-딱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서 전화했어요.
“네?”
-죄송할 거 없어요. 뉴하이 때문도 아니고요. 생각보다 반응이 차갑긴 하지만, 전혀 예상 못 한 것도 아니고요.
“아, 그, 그런가요?”
-그럼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찔하던 목소리가 지금은 무엇보다 든든하게 느껴졌다.
남원기가 굳어있던 표정을 풀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저흰···.”
-걱정말고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멜로디가 완성되는 대로 다시 연락할게요.
전화가 뚝 끊겼다.
“뭐, 뭐라셔?”
“뭐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남원기는 뭔가 이어 붙여진 표정으로 말했다.
“연습. 연습하자.”
#남원기와 전화를 끊고, 퍼니스 대표에게도 연락했다.
그는 오히려 남원기보다 더 심각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더니 죄송하다며 사과부터 쏟아냈다.
-재학이 솔로 전향 소식을 뿌리자마자 뉴하이가 해체할 거란 게 거의 기정사실이 되었더라고요. 그래서 뉴하이 해체설이 더 퍼지기 전에 장 대표님과의 콜라보를 보도한 건데······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말이 많아지긴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나은 점도 있을 것 같으니까요.”
-어떤 점이···.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에 대고 말했다.
“화제성이 커졌잖아요.”
이래서 수많은 기획사들이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가 싶다. 순간 화제성만큼은 폭발적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내가 노이즈 마케팅을 하겠다는 건 아니고.
‘지금부터 노이즈를 드러낼 거거든.’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전화를 마무리 지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오르자 온통 새하얀 사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에 붙은 포도 모양의 로고를 보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자신의 팔뚝보다 굵은 종이 뭉치를 들고 가는 이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나는 사운드베리 입구에 서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나 내 손가락보다 안쪽의 사람들이 빨랐다. 날 보는 시선들이 순식간에 불어났고, 알아본 이들 중 한 명이 한달음에 달려 나왔다.
“기, 기로 프로듀서님 맞죠? 아니, 장 대표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뭐든 상관없는데, 전 장 피디님이 편합니다.”
“아 넵, 장 피디님. 근데 여긴 무슨 일로······아니지, 혹시 시간! 시간 괜찮으세요?”
내가 핸드폰을 다시 넣으며 말했다.
“오늘은 시간이 촉박할 것 같네요. 채연주 기자님과 선약이 되어 있어서요.”
“연주 씨요···?”
“네. 혹시 기자님 좀 불러와 주실 수-.”
“잠, 잠시만요!”
졸지에 슈퍼스타라도 된 기분이다.
지금까지 다녀본 그 어느 곳보다도 반응이 뜨겁네.
현재 인터넷상에서 한울과 뉴하이 다음으로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이름이 나라서 더욱 그렇겠지.
어쩌면 이들에겐 내가 슈퍼스타가 아닌 먹잇감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진수성찬···.
잠시 후, 오피스룩을 갖춰 입은 채연주가 빠른 걸음으로 나타났다.
“기로 씨!”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도착해간다고 미리 연락 주시죠. 그랬으면 제가 지하 주차장까지 모시러 갔을 텐데.”
“그럴 것까지야······.”
“미팅룸 빌려놨어요. 얼른 가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안내하는 채연주.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기는데, 뒤편에서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팀은 이 상황에 장 대표를 데려와 버리네. 야, 넌 뭐 하고 있냐? 연주 씨를 좀 본받아라.”
“저쪽은 사수가 정이철 기자님이잖아요. 기자계의 노스트라다무스! 하지만 전······.”
“뭠마? 날 왜 그렇게 봐. 뭐, 사수 문제다 이거냐?”
뒤에선 싸움이 붙었고.
옆에선 웃음이 터졌다.
#“오랜만이네요.”
“네, 오랜만입니다.”
정이철 기자와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채연주의 입꼬리는 아직도 내려갈 줄을 몰랐다. 고소한 깨가 쏟아지네.
“궁금한 게 참 많았는데, 이렇게 연락 주시고 바로 와주시기까지 하다니. 감사합니다.”
“급한 사람이 우물 찾는 거죠. 어쩐지 우물이 아닌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온 느낌이긴 합니다만.”
내가 너스레를 떨자 정이철이 웃었다. 그의 핸드폰이 짧게 짧게 연달아 울린다. 이를 확인한 그가 으쓱거렸다.
“편집장님이네요. 대표님이 오셨다는 얘길 듣고 애가 타시나 봅니다.”
먹잇감이 제 발로 굴러들어왔다는 소식이 벌써 거기까지 전해졌나 보다.
그때 잠시 나갔던 채연주가 프린트된 종이를 정이철에게 건넸다. 그리고 나에게도.
질문지였다.
“급하게 만들어서 질문이 마음에 드실진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 치곤 양이 상당한데?
나는 내용을 쭉 훑다가 이내 질문지를 옆으로 슥 밀었다. 그러자 정이철이 의아한 표정으로 날 보았다.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인터뷰를 하기 전에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우선, 특집 기사 형식으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대상이나 주제를 집중 조명하는 특집 기사.
정이철이 생각하는 동안, 채연주가 물었다.
“특집 기사라면, 기로 씨를 대상으로요?”
“아뇨. 저보단······.”
말꼬리를 늘어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뉴하이 어떠세요?”
그날 오후. 사운드 베리에서 낸 특집 기사가 포털사이트 메인에 걸렸다.
기사는 순식간에 각종 SNS를 통해 퍼져나가 핸드폰을 하던 사람들 손 끝에 걸렸다.
[특집] 기로 프로듀서, 뉴하이에 대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