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43화 (143/221)

143. 누구와 함께 하는지 (8)

“반응이 어떤데 그래요?”

“리뷰란에 누가 뭐라고 했어요?”

“무슨 문제 있는 거예요?”

직원들이 금방이라도 박차고 일어날 기세로 재윤에게 고개를 쭉 뺐다. 주재윤은 아직 자기도 잘 모르겠다며 노트북을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지체 없이 핸드폰 꺼냈다.

음원 사이트, 튜너에 접속하자 드럼 조율기 모양의 로고가 뜨며 아래쪽에 새로 생긴 탭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 나온 앨범’ 탭을 누르자 가장 위에 학준이 형의 앨범이 떠올랐다.

[한울 - 내일도]

상단엔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던 리뷰란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나는 학준이 형을 슬쩍 보며 리뷰란에 들어갔다. 가장 맨 위에 달린 리뷰부터 당황스럽다.

-누구야······대체?

이게 뭔······.

시선을 더 내렸다. 비슷한 유형의 댓글들이 계속 눈에 걸린다.

-누구죠?

-누구야 대체.

-그래서 누군데요?

-누구죠? 이 사람? 목소리가 생소하네요.

“······.”

뭘까. 이 모르쇠로 대동단결한 댓글들은.

엄청 심각해 보이진 않아 조금 긴장을 풀며 더 빠르게 훑었다.

-여기 왜 이래, 한울이라고 쓰여있잖아요.

-쉿.

-아, 눈치 좀.

-누가 모름?

여기서 그림이 그려졌다.

“이거······.”

내가 말을 끌자 주재윤이 받았다. 확 풀어진 표정으로.

“미스터리 뮤지션에서 나온 밈이네요.”

“그러니까요.”

우리 둘이 입꼬릴 올리며 웃자, 직원들이 어리둥절해선 핸드폰을 뒤적거린다. 옆에서 학준이 형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숨을 참다가 내뱉은 것 같이 깊게.

그 사이, 여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내려놨다.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이거, 그거구나! 누가 봐도 우리동네 김대리가 한울 씨인 거 뻔히 보이는데 패널 중 한 명이 오바스럽게 ‘누구야, 대체?’했던 거!”

“아아···!”

뒤늦게 이해한 지원들이 어이없어하며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나도 어이없긴 하다. 이거 가지고 여기 있는 사람 전부 바짝 얼었던 꼴이.

“식겁했네···.”

학준이 형이 가슴을 쓸어내린다.

안 되겠는지 맥주를 입에 콸콸 들이붓다가 여직원에게 손목이 잡혔다.

“같이 마셔야죠!”

그리고 짠.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한번 방지턱을 세게 넘어서 그런가. 아까보다 한결 편안해진 분위기가 이어졌다. 5분마다 확인하던 시간도 10분 정도로 늘어났다. 그만큼 시간도 아까보단 빠르게 흘렀다.

“지희 씨. 내가 3주 정도 더 우승해볼게요!”

“넵! 그래서 앨범의 화력을 최대한 길게 가져가 봐요, 우리!”

학준이 형과 김지희가 으쌰으쌰하자 옆에서 주재윤이 끼어들었다.

“어, 그럼 저 한울 씨만 믿고 3주 치 보도자료 미리 써놓습니다?”

“그러세요! 나만 믿고 그러세-”

“형. 차트 나왔어.”

“요······?”

학준이 형이 쿨럭거리며 부리던 호기를 멈췄다. 금세 바싹 쫄아버린다. 자기 음원에나 자신감 좀 가질 것이지.

그때 주재윤이 노트북을 슬쩍 돌렸다. 모두에게 보이도록.

주르륵 떠오른 차트에서 학준이 형을 찾기 바쁜 시선들. 아래부터 훑던 시선들이 올라갈수록, 직원들의 입에서 ‘어! 어!’ 소리가 커져갔다.

그다음은 환호와 비명, 호들갑과 포효 같은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 틈으로 멍한 표정의 학준이 형이 보인다.

30위를 논하다 1위를 찍어버린 자의 표정이었다.

#뉴하이, 프로젝트 던컨 등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잠시 잊고 오랜만에 술을 꽤 마셨다. 더부룩한 배와 가벼운 마음. 그리고 불청객 둘을 데리고 집으로 귀가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선풍기 앞에 앉으니 매트리스에 걸터앉아있던 학준이 형이 맥주 한 캔을 더 건넨다.

잠시 고민하다가 받아들었다. 오늘은 더 마셔도 될 것 같아서.

캔을 따며 매트리스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뒤태를 보았다. 학준이 형의 매니저였다.

“잘 자네.”

“그러게. 대표님 집에서 저렇게 속 편히 자다니.”

“형이 술 맥였잖아. 여기 데려온 것도 형이고. 대표님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학준이 형이 낄낄 웃었다. 매니저 엉덩이를 손으로 찰싹 때리면서. 저걸 안 깨네···.

“쟤도 나 때문에 걱정 많이 했어. 원래 두 번째 앨범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그래? 잘 해줘야겠네.”

“엉. 보너스도 팍팍 주고 그래.”

“그게 내 마음대로 되나. 바지 대푠데.”

그러다 문득 성과급 받은 얘기를 꺼냈더니 학준이 형이 더 기뻐한다. 그걸 모두 엄마한테 드렸다고 하니 본인이 더 아쉬워했고.

그새 술이 깼는지 맥주가 다시 잘 들어간다. 골백번은 했을 법한 대학교 때 이야기를 훑으며 한참을 얘기했다. 숨넘어가라 웃기도 하고, 아련하게 추억도 하면서.

“근데 대학교 내내 불렀던 노래가 이제 와서 갑자기 늘 줄 생각이라도 했겠냐.”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푼 목소리다. 뿌듯하고, 흐뭇하고, 기대되고, 설레는.

“당장에 1등도 나한테 너무 값지지만, 순위를 떠나서 내가 성장하는 게 느껴진다는 건······진짜 끝내주는 것 같다.”

그 말에 나는 웃었다.

제인처럼 이 멜로디가 자신을 성장시킨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한다.

최정아처럼 성장이 비약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학준이 형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특유의 캐릭터로 남들에게 웃음을 주는 재능까지 함께 발아하며.

“멋지네.”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냐?”

형이 으스댔다. 그러면서 맥주를 쭉 털어 넣더니 낯간지러운 소리를 던진다.

“멋지게 만들어줘서 고맙다.”

“푸흐, 내가?”

“어. 너 임마.”

맥주를 들어 올리다 멈칫했다.

내 표정을 보지 못한 형이 말을 이어갔다.

“음악이 좋은 것도 맞는데. 그래서 회사 그만두고 하길 잘했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근데도 너 없었으면 음악 못 했지 싶다.”

익숙하게 들려오던 형의 두 번째 멜로디. 그 사이사이로. 음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빈칸이 채워지듯. 답을 알려주듯.

완벽히 내가 만든 멜로디와 똑같은 선율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과거 콘서트 홀에서 최정아가 그랬듯이.

내가 맞았다고, 수없이 많은 음 중 내가 선택한 음들이 맞았다고 말하는 듯했다.

피부가 쭈뼛거릴 정도로 놀라는 사이, 형이 말을 맺었다.

“너랑 함께라서 할 수 있었지.”

#지난번이랑 똑같았다.

완성된 멜로디는 이내 원래의 미완성 상태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마찬가지.

게임처럼 무슨 창이 떠서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니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그 현상 자체가 나쁜 게 아니란 건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뿌듯해지고, 고양된다. 배운 적도 없는 수학 공식을 나름대로 열심히 풀었는데, 답안지와 완벽히 일치하는 기분이랄까.

그래서인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술도 많이 마셨는데 머리가 개운하다.

일찍 일어난 매니저가 스케줄이 있는 형을 아들내미 등교시키듯이 끌고 나가고, 비로소 조용해진 집에서 출근준비를 시작했다.

준비를 마치고는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내려 속을 달래며 핸드폰을 슥슥 밀어 올렸다.

먼저 음원 사이트부터.

‘여전히 1위시고.’

다음은 어젯밤부터 차곡차곡 쌓인 학준이 형 기사들.

재밌는 건, 학준이 형과 우리동네 김대리를 연관 지으려는 기사엔 싫어요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거였다. 댓글은 눈치 없는 기자에게 날리는 일침들이 대부분이고.

기사들을 모두 훑어보고 그걸로도 모자라 새로고침을 눌렀다.

그러자 방금 올라온 따끈따끈한 기사들이 상단에 나타났다.

어?

그중 한 기사가 눈길을 잡아끈다.

“올라왔네···.”

<퍼니스 엔터 측, 이재학 이번 앨범부터 솔로로 나설 것. 뉴하이 해체 수순을 밟을까?>

#“너무 잘 됐지 않아?”

퍼니스 엔터테인먼트 앞 카페.

한정적인 이곳 고객 중에서도 VVIP라고 할 수 있는 여고생들이 트레이에 올려진 빈 음료들을 치우고는 새로운 음료를 시켜 마시기 시작했다. 시선은 분주하다. 저들끼리 얘기하다가, 창밖을 봤다가. 다시 꺌꺌 거리며 웃다가 퍼니스 엔터 사옥을 다방면으로 훑는다.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차들까지 면밀히.

“개 잘됐지. 뉴하이에 있어서 뭐해. 괜히 걸림돌만 되지.”

“맞아. 예능도 거의 혼자 다 하잖아? 소년 가장이야 뭐야. 아, 거리 악사. 그거 하나 같이 하네.”

“거리 악사 봤어? 남원기는 나와서 계속 폼만 잡더만.”

“그니까. 빨리 재학이 도와서 예능 살릴 생각을 해야지 기타만 주구장창치고. 방송하는 감이 없어.”

나누는 대화만 보면 거진 피디나 작가와 다름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뉴하이 나온 건 잘 한 선택 같아.”

“당연하지!”

“근데 이제 뉴하이는 어떻게 되는 거냐?”

“뭐, 앨범 하나 활동해보다가 잘 안 되면 해체하지 않을까?”

“나도 그럴 거 같음.”

“좀 불쌍하긴 한데······그렇다고 재학이가 언제까지 빨대 꽂힐 순 없으니까.”

이번엔 예언자가 되어 뉴하이의 미래를 점치던 그녀들이 다시 이재학 얘기로 돌아와 기대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재학이 싱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바로 CD 소장각!”

“재생할 것도 없으면서 CD는 왜 사냐.”

“노래는 튜너에서 듣지. CD는 정말 소장용이고.”

꺌꺌 거리며 웃던 중, 한 여고생이 궁금해했다.

“작곡가는 정해졌을까?”

“글쎄?”

“근데 요즘 팬카페에서 밀고 있는 작곡가 있지 않아?”

“아! 기로 프로듀서!”

“어어. 그 사람! 지금까지 낸 곡들 다 대박 났다며. 그 사람이랑 성사되면 진짜 대박 아니냐?”

“그치. 재학이 솔로 되자마자 날개 다는 거지! 막 해외 진출도 가능할걸?”

“야야, 이럴 게 아니라 뭐라도 조공해야 하는 거 아냐? 팬들이 뭉쳐서 편지랑 선물 계속 보내면 긍정적으로 고려해보지 않을까? 거리 악사도 같이 찍었는데?”

그녀들은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핸드폰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화력을 모아보겠다고 이재학 팬카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거다.

이미 카페 안에서 돌던 떡밥이기에 반응도 좋았다. 순식간에 댓글들이 달리며 팬의 힘을 보여주자는 반응이 들끓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연예란을 양분하던 한울 기사와 이재학 솔로 소식 사이로 보도자료 하나가 홀연히 나타났다.

<기로 프로듀서, 뉴하이와 싱글 앨범 준비 하고 있다! 남원기, 거리 악사에서 눈여겨봐···>

이윽고, 이재학 팬들의 표정에 놀람과 실망이 번졌다.

기대했던 만큼 짙게.

#“피디님, 무슨 소리 안 들리세요?”

깜짝 놀라서 입으로 가져가던 커피잔을 다시 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여직원은 내가 아닌 패드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뾰족한 손끝으로 화면을 툭툭 넘기며.

“무, 무슨 소리요?”

“이재학 팬들이 원망하는 소리? 뉴하이 나온다고 하자마자 만들어진 이재학 팬카페에서 피디님 곡을 이재학에게 주려는 활동이 조금 있었거든요. 이번 기사로 반짝하고 사라져 버렸지만.”

“아. 난 또······.”

멜로디 들리는 걸 말하는 줄 알았네.

“에? 이거 꽤 심각한 거예요. 뉴하이 팬이 대부분 이재학 팬이라니까요? 지금쯤 다들 요 자세로 피디님 노려보고 있을걸요?”

여직원이 팔짱을 끼며 나를 앙칼지게 노려봤다. 어디 얼마나 잘 되나 보자. 이런 느낌으로.

심각한가? 글쎄······심각하다면 심각한데 또 대수롭진 않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일에 그런 시선들이 따라붙었던 것 같아서.

‘내가 적을 만드는 타입인가···?’

나름 진지하게 고민하다 카운터에 올려진 달력을 내 쪽으로 슬쩍 돌렸다. 오늘을 가리키는 숫자 아래에 적힌 빨간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거리 악사, 2회 방영.

저걸 보니 그나마 가뭄에 물 나듯 찔끔찔끔 솟아나던 걱정도 이내 팍 메말라버렸다.

내가 걱정 없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거리 악사가 종영할 때까지 여론이 우리 편으로 만들어져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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