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누구와 함께 하는지 (7)
“쟤네 뉴하이 아니냐?”
춤 연습이 끝나고 라운지에 널브러진 아이돌, 비트라.
거의 누워있다시피 했던 리더가 멀찍이 지나가는 이들을 보며 말하자 주변에 앉아있던 멤버들도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네. 메이크업도 안 했는데? 쟤네 앨범도 대박 났는데 왜 저렇게 한가하냐.”
“쟤넨 한가 할만하지. 이재학 원맨 밴드나 마찬가진데. 지금도 이재학만 딱 없잖아.”
“맞네, 저번에 실장님도 쟤네 무대에 설 일 아니면 거의 이재학 혼자 촬영하러 다닌다고 하더라.”
“와 씨, 설마 그러고 출연료 N 분의 1하는 거냐? 그건 개 억울하겠는데?”
“그니까. 게다가 이재학 걔 욕심도 많아서 실장님이 그러시더라고. 저 팀 오래 못 갈 거······.”
뇌와 목구멍 사이에 윤활유를 바른 듯. 거침없이 얘길 쏟아내던 비트라 리더의 입이 뚝 멈췄다.
그냥 지나가는 듯하던 뉴하이 멤버 중 한 명이 멈춰 서서 자신 쪽을 보고 있었기 때문. 키가 자신보다 머리 하나쯤 더 큰 남원기였다.
가뜩이나 쌍꺼풀 없이 쭉 찢어진 눈이 더욱 벼려져 자신을 노려보니 비트라 멤버는 움찔하며 입만 벙긋거렸다.
다행히 같이 있던 뉴하이 멤버들이 남원기를 다독여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그제야 비트라 리더가 안심하고 발끈할 수 있었다.
“저 새끼는 선배한테! 하 참, 쟤 떴다고 저러는 거지? 이재학이 떴지 지가 떴어?!”
#“따라오는 거 아니겠죠?”
“안 와, 안 와.”
뉴하이의 드러머와 베이시스트가 망을 보듯 주고받으며 남원기를 합주실로 밀어 넣었다.
“형, 잘 참았어요.”
막내인 드러머가 남원기에게 붙어 토닥였다. 그러자 남원기가 드러머를 빤히 보며 으쓱였다.
“나 화 안 났어. 그냥 본 건데? 우리 얘기하는 거 같길래.”
“엥? 진짜요?”
“아니, 가짜. 한 마디 해주고 싶었어.”
남원기의 농담 아닌 농담에 드러머가 벙찐 표정으로 베이시스트를 돌아봤다. 그러자 베이시스트가 쿡쿡대며 웃는다.
“옆에서 보니까 살기가 뚝뚝 떨어지더만 그걸 ‘에, 진짜요?’ 하고 있냐.”
“아니, 솔직히 원기 형이 무표정으로 있으면 좀 화나 보이는 상이긴 하니까, 내가 오해했나 했죠.”
“쟤 기본 스킨이 무표정인데, 그럼 항상 화나 보인다는 소리네?”
“하하하, 형 그게 아니라요···.”
다급하게 변명하려는 드러머를 보며 남원기가 피식 웃었다.
“내가 그런 소리 많이 듣긴 했지.”
“근데 그거 아냐. 너 요즘은 좀 유해 보이는 거? 재학이 일 이후로 뭔가 회의감에 젖은 사람처럼 멍하니 있을 땐 무표정에 무표정을 얹은 느낌이라 더 심했거든. 근데 요샌 그냥 화나 보이기만 해.”
“좋은 거지?”
“크크, 좋은 거지. 평소엔 엄청 화나 보였는데. 난 네가 유럽 촬영 가서 재학이랑 화해하고 온 줄 알았잖냐.”
남원기가 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풀며 웃었다. 살짝 씁쓰름하게.
“야, 근데 내가 우리 팀 분위기 때문에 그동안 못 물어본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되냐?”
“뭔데?”
“최정아 선배님 실제로 보니까 어떻든? 그렇게 예쁘냐? 아니, 예쁘시냐?”
질문만으로 헤벌쭉해진 베이시스트를 보던 남원기가 시선을 돌렸다. 기타를 앰프와 연결하며 그가 무심하게 말했다.
“예쁘시지.”
그리고는 기타를 무릎에 얹고 나직하게 덧붙인다.
“부러웠고.”
“응? 뭐가?”
베이시스트의 질문에 남원기가 뜸을 들이는데, 갑자기 벌컥 문이 열렸다. 세 사람의 시선이 문 사이로 향했다. 뉴하이 매니저가 틈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연습 중이야?”
“아, 막 시작하려고 했어요.”
드러머가 스틱을 들어 올리며 앳되게 웃자, 매니저가 문을 천천히 열며 말했다.
“그래? 그럼 잠깐 연습 좀 미루자. 손님이 오셨거든.”
“손님이요?”
다음 순간, 문이 스륵 열리며 드러머의 눈이 급격히 커진다.
“어!”
드러머의 입에서 튀어나온 비명.
베이시스트도 ‘뭔데? 누군데?’라며 몸을 옆으로 기울이더니 문밖의 누군가를 보았는지 그 상태로 굳어버렸다.
남원기는 순간 이재학이 왔나 싶어 기타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그, 이분······.”
옹알이를 해대는 드러머 옆으로 다가서기도 전에 문이 활짝 열렸다.
남원기의 시선이 매니저 뒤쪽에 서 있는 남자에게로 향했다.
“······피디님?”
이에 장기로가 웃으며 말했다.
“잘 지냈어요?”
#좁지만 있을 건 다 있는 합주실이다.
그중에서도 남원기의 페달보드가 눈에 띄었다.
보이밴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디스토션 계열의 꾹꾹이와 다루기 까다로운 모듈레이션 계열까지.
올드 밴드를 즐겨 듣는 남원기의 취향이 고스란히 옮겨져 있었다.
다른 악기들도 훑었다.
언젠가 윤태영이 그랬었지. 악기를 보면 실력은 몰라도 노력은 보인다고.
그땐 너무 케케묵은 으르신의 말 아니냐고 놀렸었는데, 그게 또 맞는 말이긴 한지라 악기의 상태로 눈이 갔다.
정돈되어 있지만, 헤져있다.
윤태영이 말했던, ‘소중히 다뤘지만, 부단히 괴롭혀진 악기’ 였다.
구경을 마치고 고갤 들자, 주변에서 움찔하는 게 느껴진다.
데뷔 전부터 남원기, 이재학과 함께 음악을 했다는 베이시스트.
유일하게 아직 고등학생인 드러머.
그 둘이 나를 신기한 눈빛으로, 동시에 조심스럽게 보고 있었다. 뭔가 일반인인 나와 연예인인 저들의 상황이 반대가 된 것 같은데.
저렇게 멀뚱멀뚱 기다리게만 할 수 없어, 내가 입을 뗐다.
“제가 연습 방해한 거 아녜요?”
“네? 아뇨! 저언혀요? 야, 우리가 언제 연습하려고 그랬냐?”
“앗. 아뇨? 아까는 매니저님 때문에 거짓말한 거죠! 하하.”
베이시스트와 드러머의 환장 콜라보에 옆에서 남원기만 머리를 짚는다.
그런 남원기에게 장난스레 물었다.
“뉴하이, 연습을 안 해요?”
“아뇨. 항상 열심히 하는데······얘네가 지금 피디님 오셔서 단체로 미친 것 같아요.”
남원기의 말에 두 사람이 그제야 실수를 깨달은 표정으로 입을 가렸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밴드는 캐릭터들이 독특한 친구들이 많네.
내가 아는 한, 가장 독특한 밴드인 레드리시를 떠올리며 웃었다.
그때 남원기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그런데 어쩐 일로 오신 거예요?”
“대표님 뵈러 왔어요.”
“아······.”
남원기의 표정이 살짝 복잡해진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풀며 말을 꺼냈다.
“안 그래도 다시 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촬영하는 동안 많이 배웠고, 많이 느꼈습니다. 이 얘기 꼭 드리고 싶었어요.”
마침. 내 생각과 똑같네.
“저도 많이 배웠어요.”
기타뿐만이 아니다.
음악의 전반적인 것들에서 나는 배울 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도 많이.
특히나 편곡을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뛰어났지. 윤태영과는 또 다른 결이 있는 뮤지션이었다. 그러면서도 윤태영과 합쳐졌을 땐,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더 나은 결이 만들어지는.
그렇기에 내가 남원기와 작업하려는 이유가 꼭 멜로디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이 멜로디를 남원기가 불렀을 때 어떤 시너지가 나올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고, 두근거리는 일이지.
거기다 내가 뉴하이와 작업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방송이 성공하게 될 가능성도 커질 거고.
오히려 미래보다 더 크게 대박 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걸 그걸 떠나서도 난 남원기라는 사람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지금까지 함께 해온 뮤지션들과 비슷한 느낌을 받아서.
이런 느낌을 주는 이들과의 작업은 항상 즐거웠다.
항상 성공했고.
‘소속사만 없었어도······.’
괜히 입맛이 다셔진다.
탐이 나서.
차라리 여기 대표가 마이원 대표처럼 안하무인 한 사람이었다면 좋았겠다 싶을 정도다.
근데 사람 괜찮은 것 같더라고. 뉴하이한테 정말 잘된 일이라며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이재학을 걱정하는 모습이······.
나는 퍼니스 대표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표정을 떠올리며 욕심을 털어냈다. 그리고 남원기를 보며 뒷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잘 해봅시다.”
“네, 앞으로도 잘······네?”
“앨범 발매일은 <거리 악사> 마지막 방송쯤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천천히, 잘 준비해서 새로운 뉴하이를 보여주죠.”
양옆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풍선 인형처럼 쉴 새 없이 끄덕이던 두 멤버도 그대로 멈췄다.
잠시 후, 세 사람이 소리 없이 경악했다.
#“방송 촬영을 보내놨더니 가서 눈이 맞아 오다니.”
테이블에 앉은 학준이 형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날 쳐다봤다.
“어감이 이상하잖아.”
“푸흐, 작곡가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픈 뮤지션의 심정이랄까.”
“탈락. 바람난 남편 처형하려는 아내 같았어.”
학준이 형이 낄낄대며 물었다.
“그래서, 줄 곡은 만들었고?”
“틈틈이 만드는 중.”
“어떤 노래일지 궁금하네. 더군다나 이재학이 빠진 뉴하이라니. 잘 상상이 안 간다. 뭐, 떠도는 버스킹 영상 보니 남원기란 친구도 노래 곧 잘하는 것 같긴 하더만.”
“잘하는 정도가 아니지.”
자신의 멜로디를 부르면 더 좋아질 테고.
“네가 그러니까 더 궁금해지네. 질투 나서 이번 주부턴 안 볼까 했는데.”
“질투는 무슨······요새 그런 컨셉으로 잡은 거야?”
장난스레 웃는 학준이 형 너머로 자동문이 열리며 그의 매니저가 들어왔다. 양손에 묵직한 봉투를 들고서.
봉투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더니 안에 있던 것들을 쭉 깔기 시작했다.
“셋이 먹을 건데 뭐 이렇게 많이 사 왔어?”
내가 묻자 오히려 매니저의 얼굴이 의아해졌다.
“셋 아닌데요?”
그다음 순간, 또다시 자동문이 열렸다.
사무실 직원 몇몇이 우르르 들어오더니 자연스럽게 테이블로 와 앉았다.
“퇴근한 거 아니었어요?”
가장 먼저 앉은 여직원이 끄덕였다.
“퇴근은 했죠. 퇴근하고 쇼핑도 좀 하고, 오랜만에 맛집도 가고, 노래방도 들렀다가 다시 왔어요. 12시까지 사무실에서 기다리는 건 무리니까.”
밖에 나갔다가 돌아왔더니 사무실이 휑하길래 다 퇴근했겠거니 했었는데. 그렇게 된 거였구나.
뭐, 셋이서 묵직하게 잔을 기울이는 것보단, 복작복작하게 몰려 앉아 가볍게 잔을 부딪치는 편이 더 낫긴 하지.
“좋네요. 축하해줄 사람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내 말에 직원들이 끄덕인다. 특히나 내가 <거리 악사> 촬영을 가버린 탓에 앨범 제작을 어느 때보다 주도적으로 이끈 김지희가 학준이 형보다 더 긴장한 낯으로 세차게 끄덕였다.
“다들 수고 많았어요.”
“네엡!”
역시 김지희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
“형도.”
“푸흐.”
기대감 가득한 얼굴을 건배사 대신 지어 보이며 잔을 부딪쳤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 시간이 흐름 위로 올라탔다. 순식간에. 자정을 향해서.
아까까지만 해도 활발하던 학준이 형의 말수가 부쩍 줄어든다. 멀미라도 하는 사람처럼 낯빛이 굳어져 갔다. 분명히 웃고는 있는데, 대화에 집중을 못 하는 눈치다.
다행히 옆에 앉은 매니저가 태연하게 이것저것을 챙긴다. 확실히 잘 뽑았지.
나는 다시 학준이 형을 보며 생각했다.
‘첫 데뷔만큼이나 긴장한 것 같네.’
형이 그동안 모여준 모습만 봐도 그렇다.
이번 앨범에 꽤 부담감을 가진 게 눈에 보였었다.
앨범 준비건, 미스터리 뮤지션 촬영이건.
스스로 가장 오래된 멤버임에도 음악적으론 아더 레이블에서 가장 뒤처져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럴 수밖에.
그때 누군가 학준이 형에게 물었다.
“한울 씨, 이번에 몇 위로 진입하는 게 목표예요?”
“진입이요? 진입은 글쎄요. 전 30위 안으로만 들어와도 만족할 것 같은데요? 와, 나 차트인을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하는 거 봤냐? 멋지지?”
매니저에게 치대는 모습에 입안이 알싸하다.
그때였다. 주재윤이 쉴 새 없이 딸깍거리던 마우스를 멈췄다. 새로고침할 필요가 없어진 거지.
“나왔어요. 앨범.”
학준이 형 쪽을 보며 웃던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홱 돌렸다.
주재윤이 바쁜 눈으로 뭔가를 살피고 있다.
미묘해진 표정으로.
“근데······이거 반응이 왜 이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