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41화 (141/221)

141. 누구와 함께 하는지 (6)

“다 좋았는데, 미스터리 뮤지션이 VMN 시청률까지 꺾은 게 가장 좋았어.”

유재완 대표가 호탕하게 웃었다.

거기에 대고 굳이 VMN의 방해가 있었던 것 같다는 얘긴 하지 않았다. 괜히 일이 커질까 봐.

기분 좋은 얼굴로 날 보던 유재완 대표가 안경을 벗으며 불쑥 얘길 꺼냈다.

“곧 성과급이 들어갈 거야.”

“성과급이요?”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의아한 표정을 보냈다.

그도 그럴 게, TKM은 기본적으로 소속 작곡가에게 성과급을 주지 않는 회사였으니까.

물론 그래서 나쁘단 게 아니다. 오히려 작곡가 입장에서 두 손을 벌릴만한 조건들이 많았다. 계약 기간 동안 저작권이 회사에게 완전히 귀속되지 않고, 7, 8할을 작곡가가 가져가는 구조. 거기에 계약금까지 별도.

언뜻 보면 당연해 보이지만, 성과급은커녕 저작권료까지 아예 꿀꺽하는 회사들도 많고 정산 비율이 역전돼 작곡가가 3인 경우도 더러 있기에 업계에서도 손꼽히는 계약조건이라 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런 TKM의 정책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성과급이란 걸 받은 적이 없었다.

내가 의아한 얼굴로 보자 유재완 대표가 또다시 호탕하게 웃었다.

“작곡가로서의 자네에게 주는 게 아니야. 대표로서의 자네에게 주는 거지.”

아?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프로듀서에게만 성과급이 없는 거지, 다른 직원들에겐 있었으니까.

서재원 팀장이 말한 선물이 이거였나?

나는 굳이 얼마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애초에 받으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거, 얼마인지가 중요한 것 같지 않아서.

“이 기회에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도 가고, 차도 바꿔. 매니저도 아닌데 왜 회사 밴을 끌고 다녀.”

크흠. 물어볼까? 갑자기 궁금해지는데? 대체 얼마를 주려고······.

나 혼자 내적 갈등을 하는 사이, 유재완 대표가 성과급 얘기는 이쯤에서 마무리 짓고 말머리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부른 이유가 또 하나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이에 유재완 대표가 나직하게 말했다.

“지금 TKM에서 아이돌 한 팀을 제작 중이야.”

아이돌···?

곡을 맡아달라는 건가?

그런 생각을 속으로 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왔다.

“이 프로젝트를 아더 레이블에서 이어서 맡아줬으면 해.”

아예 프로젝트를 넘기겠다고?

그것도 아이돌이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나는 이것저것 머리를 굴리지 않고, 내 생각 그대로를 말했다.

“아이돌처럼 대중적인 분야는 일개 레이블보단 TKM이 맡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내 말에 유재완 대표가 웃었다. 고개를 저으면서.

“그냥 아이돌이라면 그렇겠지만 이번엔 경우가 좀 달라.”

“···?”

“해외 시장을 겨냥하고 만들어지는 프로젝트 아이돌이거든.”

#장기로가 떠난 대표실에 최영준 본부장이 찾아왔다.

그는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유재완 대표에게 물었다.

“뭐라던가요?”

“딱히. 고민해보라고 했더니 알겠다는 말만 하더군.”

“그 큰 프로젝트를 통째로 넘겨준다는 데도요?”

“마냥 좋기만 한 프로젝트는 아니니까. 리스크도 없지 않고.”

“그러니 지금이 적기죠. 레드리시가 승승장구할 때. 아더 레이블에서 토스 받아 움직여주면.”

답답해하는 본부장의 얼굴이 재밌는지 유재완 대표도 껄껄거리며 웃었다.

“장 대표가 잘 결정 내리겠지. 뭐, 거절하면 그냥 하던 대로 진행하면 되는 거니까.”

“그렇긴 한데······.”

마지못해 수긍하는 최영준 본부장을 보며 나지막하게 웃던 유재완 대표가 소파에 등을 기댔다.

“나이가 드니까 욕심이 많아지고, 자꾸 조급해져. 은퇴하기 전에 미국 한 번 가야 하는데, 가서 제대로 뭔가 남겨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계속 드는군.”

“벌써 은퇴라뇨.”

“애초에 나 50까지만 할 거라고 했던 거 기억 안 나나? 근데 벌써 10년을 더 해 먹었네.”

“그럼 앞으로 10년만 더 하세요.”

최영준 본부장의 말에 유재완 대표가 말없이 웃었다.

그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던 최영준 본부장이 뭔가 생각났는지 불쑥 말했다.

“장 대표 성과급 들어갔다더라고요.”

“그래? 빠르네. 꽤 큰돈인데 말이지.”

“그렇죠 큰돈이죠······.”

말꼬릴 흘리는 최영준 본부장.

그가 곰곰이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유재완 대표에게 물었다.

“만약에 장 대표가 이번 프로젝트까지 성공시키면, 그땐 대체 뭘 주실 생각이에요?”

#“아이돌이요?”

김지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재차 끄덕이자 그녀의 입이 서서히 벌어진다.

“와···그 큰 프로젝트를···.”

그치. 큰 프로젝트지.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것들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뭐, 필요하면 TKM 기둥 몇 개 뽑아가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내가 으쓱거리자 TKM에서 우리 쪽으로 지원 나온 직원이 말했다.

“그거 굉장히 오랫동안 준비해온 프로젝트인데, 이번엔 진짜 할 건가 보네요.”

“오랫동안요?”

김지희의 물음에 직원이 끄덕인다.

“네. 프로젝트 던컨이라고, 계획안이 나온 지는 한 5년 넘었어요. 매니지먼트 팀이랑 캐스팅 팀이랑 A&R 팀이 합심해서 진행 중이었죠.”

“그런데 그런 큰 프로젝트를 왜 우리한테 주려는 걸까요?”

이거에 대해선 주재윤이 추측을 내놓았다.

“아마 레드리시랑 피디님 때문일 것 같네요. 레드리시야 미국에서 워낙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거기에 피디님 이름도 해외 기사에 오르내리고 있으니 아더 레이블이 맡는 게 더 나을 거라 생각 한 거겠죠.”

“아······그러다가 우리도 망하면요?”

“그러니까 지금이 적기이긴 해요. 레드리시가 승승장구하는 동안에는 사람들이 ‘그래도 레드리시는 성공시켰으니까’라는 반응일 테니. 게다가 애초부터 국내 활동 없이 시작하는 아이돌이라 설령 망해도 원망할 팬덤도 없을 거고요.”

김지희가 그의 말에 납득하는 사이, 말을 마친 주재윤이 내게 물었다.

“근데, 이거 꼭 해야 하는 거예요?”

“아뇨. 우리 의사가 최우선이에요. 하기 싫으면 거절해도 됩니다.”

그러자 이번엔 김지희가 내게 묻는다.

“그래서, 피디님 생각은 어떤데요?”

*-갑자기 이 큰돈이 어디서 나서?!

엄마의 놀란 듯한 목소리를 들으니 복잡했던 생각이 녹아내렸다.

내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아들 일 잘한다고 받았지.”

-아무리 일을 잘해도 그렇지 이렇게나···? 회사가 돌아가긴 한다니?

내가 피식 웃었다.

“잘 돌아가지 그럼.”

-아니, 그것도 그건데 이거 너 쓸 것 좀 남겨놓고 보내지 이렇게 홀랑 다 보내면 어떡해.

“난 저작권료 나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사네요.”

-아이고야, 엄마는 이거 쓸데도 없는데······.

“그럼 아빠한테 드릴까? 요새 낚시에 빠지셔서 쓸데 많으실 것 같은데?”

-야, 됐다, 됐어. 그냥 엄마가 받을게. 받아서 너 장가갈 때 풀 돈으로 차곡차곡 모아놔야겠다.

그냥 써도 된다고 설득해 봐도 엄마는 알아서 하겠다며 다른 얘길 꺼냈다.

밥은 어떻게 먹고 다니는지, 뭐 보내줄 건 없는지. 취조하듯 물어보더니 안 되겠다며 음식과 한약을 지어 보내겠다는 판결이 나왔다.

전화를 끊고서도 곧장 내려가지 않고 옥상을 서성였다. 엄마의 목소리에 녹아내렸던 생각들이 다시 꾸물꾸물 올라온다.

프로젝트 던컨이라 했었지.

해외 시장. 정확히는 미국 시장을 겨냥한 아이돌.

나는 고민했다.

규모, 리스크, 스케줄 이런 것들을 조율해가며.

하지만 이래서야 답이 안 나온다는 걸 깨닫고 다시 물었다.

이거, 다 떠나서 내가 하고 싶나?

방금 전까진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가 울렸었는데, 질문을 바꾸자 가슴 부근이 울린다.

‘하고 싶구나.’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지.

그만큼 큰 프로젝트.

그래서 그림을 그렸다.

TKM이 프로젝트 던컨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아더 레이블을 선택한 것처럼.

나도 훗날 해외로 진출하게 될 아더 레이블의 뮤지션들을 위해 프로젝트 던컨을 선택하기로.

‘교두보로서.’

고민을 마치고 옥상을 내려왔다. 카운터에서 일을 보던 여직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말한다.

“그때 말씀하셨던 퍼니스 엔터 대표님이랑 미팅 잡았어요.”

그래, 저것부터 마무리 지어야지.

뉴하이가 소속되어 있는 퍼니스 엔터테인먼트.

“언제로요?”

내 물음에 여직원이 다시 패드로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29일이요. 거리 악사 방영, 바로 다음 날이에요.”

#<거리 악사>의 방영 날짜가 가까워지며 포스터가 공개되었다.

빅벤에서 최정아, 하서윤 사이에 끼어있는 나란 놈.

이것마저 뽑아서 벽에 붙이려는 주재윤을 저지한 뒤, 다시 내 할 일을 이어나갔다. 인터뷰와 인터뷰와 인터뷰. 젠장.

그 사이, 티저 예고편도 세 차례에 걸쳐 나왔다. 그때마다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은 한계점을 모르고 점점 더 뜨거워졌다. 역시 음악 영화가 강세인 흥의 민족답달까.

첫 방영을 앞두고는 게시판이 잠시 다운될 정도였으니 <거리 악사>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커졌는지 상상도 잘 안 될 정도였다.

그렇게 첫 방송이 방영되었다. 제작진들의 행복한 비명 소리가 핸드폰을 뚫고 나올 것 같았지. 메인 작가는 시청률을 듣고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는 비하인드까지 전해 듣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음 날.

<드디어 방영된 ‘거리 악사’, 최대 수혜자는 출연진 모두!>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게 넘쳤다···>

<한 편의 음악 영화 같았다는 ‘거리 악사’, 벌써부터 다음 주 첫 버스킹을 기다리는 사람들···!>

핸드폰 발열만큼이나 뜨거운 기사들을 보며 퍼니스 엔터테인먼트 사옥으로 향했다.

작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직원들이 나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뭐 때문에 오셨냐는 듯이.

아, 모자.

모자를 벗자 직원들의 눈이 커진다.

가장 처음 내게 인사한 직원이 사무실 안쪽으로 뛰어들어갔다. 나머지 직원들의 인사를 받는 사이, 퍼니스 대표가 마중을 나왔다. 30대 중 후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 그가 허허실실 웃으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장 대표님!”

“안녕하세요, 대표님.”

“오늘 유난히 햇빛이 강하죠? 얼른 들어오세요. 이 대리님! 여기 시원한 물, 아니······.”

“물 좋습니다.”

“오케이, 물! 물로 줘요.”

이 대리로 추정되는 인물이 ‘네!’라고 대답하는 사이, 나는 대표실로 향했다. 실상은 퍼니스 대표의 손에 이끌려 끌려오다시피 했지만.

대표실은 생각보다 너저분했다.

온갖 신문부터 결재서류들이 난잡하게 탑을 쌓고 있었다. 탁상 위에 올려진 패드엔 나도 오면서 봤던 거리 악사 기사들이 띄워져 있었고.

“사실, 촬영 중에 제가 먼저 전화 드리고 싶었습니다. 재학이한테 얘길 들었거든요. 자기가 먼저 찾아가서 말씀드렸다고.”

“아, 네.”

“근데 대답은 안 주셨다길래 제가 괜히 몸이 달아서, 이거 전화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 고민했습니다. 옆에 있던 집사람이 당신 연애할 때도 안 이랬다면서 질투를 하더라니까요?”

뭐랄까.

새로운 유형의 대표다.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유재완 대표나 마이원 대표와는 다른······

말 많은 동네 형 같달까?

기대 어린 눈을 마주 보며 내가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미팅을 잡은 이유는 재학 씨 때문이 아닙니다.”

“네?”

커진 눈으로 날 보는 퍼니스 대표.

이런 경우가 하도 많아 데자뷰처럼 느껴질 정도다.

나는 그의 표정에 주목하며 말했다.

“뉴하이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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