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40화 (140/221)

140. 누구와 함께 하는지 (5)

“우선 축하드립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기자가 가죽 가방을 풀며 말했다. 두툼한 파일과 노트북을 꺼내는 등, 인터뷰 준비를 하며 능숙하게 대화를 이어간다.

“NME와 인터뷰를 하신 것도, 아예 대표님에 관해서 특집 기사까지 나온 것도, 아, 거리 악사와 해당 출연진들 얘기까지 디테일하게 실으면서 영국 내에서도 관심을 받으셨죠. 프로그램이 방영도 전에 뜨거운 건 말할 것도 없고요. 말하다 보니 축하할 일이 정말 많네요. 하하.”

물 흐르듯 이어지는 칭찬들에 감사하다고 답하자 기자가 은근하게 물었다.

“영국에 계실 때, 사람들이 대표님을 알아보고 그러진 않던가요?”

“전혀요. 오히려 정아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좀 있더라고요.”

잠깐 짬이나 최정아와 램버스 브릿지를 거닐었는데, 오히려 최정아를 알아봤으면 알아봤지 날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기자가 내 말에 낮게 웃는다.

“정아 씨가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미모시긴 하죠.”

그리고는 노트북을 펼치며 자세를 고쳤다.

“아무튼, 대중들의 기대가 점점 커지고 있어요. 혹시 아시나요?”

“거리 악사에 대해서요?”

“아, 물론 그것도 기대하고 있죠. SNS에서 올라온 직캠들 봤는데,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말씀드린 건 다른 얘기에요.”

“···?”

내가 갸웃거리자 기자가 말을 이어간다.

“매번 국내 뮤지션들의 해외 진출이 쓴맛만 보고 있었단 말이죠. 불과 작년 초까지만 해도요. 그럴수록 대중들의 반응이 점점 더 차가워졌어요. 안되는 걸 왜 무모하게 도전하냐, 자만한 거다, 욕심부렸다. 욕도 참 많이 먹었죠.”

듣는 순간 몇몇 뮤지션들이 떠오른다.

호기롭게 도전했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걸그룹도 있었고, 가장 전성기에 욕심을 부려 인지도가 반의반 토막이 난 솔로 가수도 있었다. 그리고 소속사에게 등 떠밀려 갔다가 돌아와 보니 팬이 없어 강제로 은퇴하게 된 보이그룹도 있었지.

“근데 요즘은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어요. 레드리시가 빌보드에 이름을 올리고 영국에선 대표님에 대해 기사를 쓸 정도가 되면서 대중들도 희망을 본 것 같달까요? 그래서인지 은근히 기대하는 사람들이 제 주변에도 많더라고요.”

대체 뭘?

기자가 긴 서두를 띄워놓고 드디어 내게 물었다.

“아더 레이블에서 해외 진출을 염두하고 있는 뮤지션이 또 없을까요?”

#인터뷰가 끝나고, 기자를 먼저 보냈다.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했다.

내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한 건 없는지, 거리 악사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 기자에게 과하게 알려준 것은 없는지.

복기를 해봐도 떠오르는 게 없어 걱정을 흐트러트렸다.

그 사이, 몇몇 사람들이 아는 체를 해왔다. 조금 피곤한 감이 있었지만, 서글서글 웃으며 대했다. 이재학 저리 가라 할 만큼 흔들림 없는 표정관리였달까.

그러다 애매한 시간이 되었는지, 카페가 확 한산해져 다시 개인적인 시간을 보냈다.

먼저 내 스케줄을 확인하고, 다음으론 소속 연예인들의 스케줄을 훑었다.

최정아는 나와 함께 귀국해 나보다 더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거리 악사 홍보를 위한 예능 촬영과 브랜드 광고 촬영까지 겹쳐있었다.

박경호는 차기작 준비가 한창이고, 서기영과 오나연도 TKM과 외부 의뢰들을 차근차근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은유란은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연락이 와 들뜬 표정으로 연습실에 틀어박혔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

이름별로 나눠진 스케줄을 흐뭇하게 보다가 문득 다른 생각이 불거진다. 기자가 던져놓은 불씨였다.

해외진출을 할 뮤지션이 없냐고 물었었지.

‘해외 진출이라···.’

사람들이 뭘 기대하는지.

그리고 왜 기대하는지 안다.

하지만, 레드리시는 내게 조금 특별한 케이스였다.

미래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길을 따라가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레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

거기에 턴투더 레이블과 골든보이스의 적극적인 지원까지 받으며 날개를 달았고.

하지만 다른 뮤지션들은 경우가 다르다.

이미 한국에서 자리를 잡았고, 열심히 활동 중이다. 이 상황에서 해외의 주목을 조금 받았다고 옳다구나 자리를 뜨면 지금껏 해외 진출에 실패한 뮤지션들과 다를 게 없다.

영화처럼 한 편 찍고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인지도를 쌓고 노래를 알리는데 최소 3년이 걸리는 여정을 어떻게 섣불리 하겠나. 3년이면 한국의 팬들이 모두 등 돌리기엔 충분한 시간인데.

그래서 고개를 저었다.

아직 이르다고.

아직은.

"······."

그럼에도 보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나보다.

내 뮤지션들이 지금의 무대보다 더 큰 무대에서 더 화려한 조명을 받게 되는 모습을.

내 노래가 그들을 통해 울려 퍼지는 모습을.

욕심이 참 끝도 없단 생각을 하며 피식 웃어넘기는데,

‘언젠가는’이란 단어가 넘어가지 않고 계속 목구멍을 맴돌았다.

#카페에서 나와 학준이 형의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마실 것 좀 사 오라길래 양손 무겁게 맥주를 들고서.

도착하니 형의 동생인 학진이가 상 위에 접시를 까는 중이었다. 안쪽에선 치이익, 뭔가 구워지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들려온다.

“대표님!”

“뭐야, 그 호칭 쓰지 마. 가뜩이나 밖에서도 적응 안 돼 죽겠는데.”

“그래도 대표님이신걸요. 저희 형 잘 부탁드립니다.”

내 손을 잡으려는 학진이의 손을 뿌리치며 웃었다.

“잘 지냈지?”

“그럼!”

반갑게 인사하며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부엌에서 빗소리가 들린다.

“근데, 지금 형이 요리 중인 거야?”

학진이가 끄덕인다. 그때 학준이 형이 넓은 접시를 들고 부엌에서 나왔다. 접시 위엔 두툼하게 썰린 고기가 가득하다.

“왔냐?”

“어, 그런 줄 알았는데 잘못 왔나 싶기도 하고.”

“뭐라는 거야.”

“당황스럽네. 형이 요리를 하다니.”

두 번의 인생을 합쳐도 형이 요리하는 건 처음 본다. 내가 형의 미래를 또 바꾼 건가. 나비효과 뭐 그런 거?

“멋지냐?”

“아니, 불안한데?”

“이 자식이······.”

“미안, 생각이 말로 나왔네.”

장난스레 웃으며 상 앞에 앉았다.

이윽고 셋이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TV는 UBC에 맞춰놓은 채로.

저게 오늘 여기서 모인 목적이었······오, 맛있는데?

생각보다. 아니, 그 이상으로 맛있길래 놀라서 쳐다보자 학준이 형이 뿌듯하게 웃는다.

“이 정도면 나중에 결혼해서 이쁨 받지 않겠냐? 1등 신랑감 뭐 그런 거.”

“응. 그건 모르겠고, 요리 프로는 출연할 수 있겠는걸.”

“어이, 대표님아?”

앞으로 성공할 요리 프로가 어떤 게 있는지 따위를 생각하며 식사를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미스터리 뮤지션>이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이미 숟가락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학진이가 말했다.

“반응이···완전 반반이야”

“재밌을 거 같다랑 재미없을 것 같다?”

“아니, 재미없을 것 같다와 망할 것 같다.”

“······젠장.”

동생의 솔직한 정보전달에 학준이 형이 입맛을 다신다.

나는 묵묵히 TV에 집중했다.

뚜껑을 열기 직전인데, 안에 뭐가 들었는지 고민해서 뭐하겠나. 그냥 열어서 보면 되는 거다.

‘프로그램이 완전히 달라진 것도 아닌데, 설마 망하기야 하겠어?’

방송이 시작되고, 진행될수록 이런 내 생각에 점점 더 확신이 붙는다.

아직 학준이 형이 출연하기 전인데도 이미 재밌다. 이전에 내가 봤던 것보다 더.

안심해도 되겠는데?

-라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윤 피디였다.

“네, 피디님.”

옆에서 학준이 형이 난리길래 스피커 폰으로 바꿨다.

-장 대표, 지금 보고 있어?

“학준이 형이랑 같이요.”

-오, 그래? 잘됐네. 장 대표랑 전화 끊고 따로 전화하려 했는데. 지금 실시간 시청률이 나와서 그거 얘기해 주려고 전화했어.

전화가 온 순간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시청률 얘길 꺼내니 입이 마른다.

학준이 형도 긴장되는지 맥주를 어정쩡하게 들고 굳어있다. 학진이는 핸드폰을 보다가 고개만 들어 나를 보고 있었다.

“어떻게 나왔나요?”

내가 최대한 담담하게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진다. 입이 말라서.

이 방송을 아는 양반. 아니, 만드는 양반이 빠딱빠딱 말을 안 해준다. 걸걸한 웃음소리를 들려주며 뜸을 들이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10%.

“네?”

-10%로 스타트했다고! 채널 전체 2위!

그의 말에 옆에서 난리가 났다. 핸드폰 너머에도 스태프들이 함께 있는지 저쪽도 난리다.

-푸흐흐! 그러니 남은 방송 맘 편히 보라고.

“감사합니다. 방송 끝나면 연락 드릴게요.”

-알겠네.

내가 전화를 끊자 무음 모드로 난리를 치던 학준이 형과 학진이가 환호하며 잔을 부딪쳤다.

몇 번의 대결이 지나고, 드디어 학준이 형이 차례가 되어서야 둘은 조용해졌다.

가면의 절반을 차지하는 우수에 젖은 눈.

불그스름한 홍조.

그리고 머리에 동여맨 넥타이.

우리 동네 김 대리라는 이름을 걸고 등장한 학준이 형에 학진이는 제대로 웃음보가 터졌다. 그가 끅끅거리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핸드폰을 훑었다. 그리고 이내 더 크게 웃는다.

“실시간 반응 난리 났는데? 다들 드립 미쳤네.”

그 말에 나도 핸드폰을 집었다.

-가면 퀄리티 무엇ㅋㅋㅋㅋ-뭐냐, 왜 가면에서 어제의 내가 보이는 거지?

-어, 나도. 이 정도면 초상권 침해 아님?-첫 멘트 과장님 사랑합니다, 하면서 하트 날려주면 현실 고증 인정.

-크으, 가면에 애환이 서려 있네.

-과연 과장님의 이쁨을 받을지, 건어물에 맞을지!

-노래 시작한다!

형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발라드 감성 특유의 절절함이 전해지는 선곡. 뜻밖의 음색에 감탄한 패널들이 카메라에 잡히고, 핸드폰 속 반응도 감탄사로 도배가 되기 시작했다.

바싹바싹 마르던 입에 맥주를 부었다.

쌉싸름한 맛마저 달게 느껴진다.

이 와중에도 실시간 반응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다.

나는 귀로는 우리동네 김 대리의 노랠 들으며, 눈으로는 올라가는 반응들을 담았다.

-진짜 잘 부른다···.

-과장님 지갑 여실 듯.

-거래처 기립 박수래ㅋㅋㅋㅋ-고음 진짜 미쳤는데?

-와, 저기서 더 올라가네?

점점 고조되던 노래가 클라이맥스를 찍는다. 그리고 곡의 마지막. 가장 높은 음을 지르며 노래가 끝나자 패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중 한 패널이 입을 벌리며 감탄한다.

-와······대체 누구지?

방송이 끝나고 곧바로 윤 피디에게 전화했다.

그는 편하게 보라고 초반 시청률을 알려줬지만 우리는 오히려 더 불편해져 있었다.

얼마나 올랐을까?

혹시 떨어진 건 아닐까?

온갖 걱정을 하면서.

그리고 곧 그 걱정이 쓸데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최고 시청률 17%.

동시간대 프로그램 중, 1위였다.

#“축하할 게 많아서 뭐부터 축하해야 할지 모르겠군.”

서재원 팀장의 말에 내가 되물었다.

“팀장님도 축하해드릴 일이 있으시던데요? 곧 본부장님이 되실 거라고.”

A&R팀이 A&R 본부로 몸집을 키우며 자연스레 그렇게 될 거라 들었다.

누구한테? 덩달아 팀장을 달게 된 정 대리한테.

이에 서재원 팀장이 옅게 웃었다.

“장 대표 덕이 컸지.”

“저요?”

“아더 레이블이 웬만한 소속사만큼 커지면서 A&R팀이 더 바빠졌잖나. 몸집을 안 불리면 일이 감당이 안 될 정도로. 그리고 레이블은 장 대표가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자네 덕이지.”

그게 그렇게 되나.

내가 딱히 할 말을 못 찾고 끔뻑이자 서재원 팀장이 찻잔을 내려놨다.

“난 매니지먼트 팀에 좀 가봐야 해. 자넨 대표님 뵈러 가야 하지?”

“네.”

“슬슬 일어나야겠군.”

내가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같이 사무실을 나와 복도를 걸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서재원 팀장이 올라가는 버튼을 눌러주며 슬쩍 힌트를 주었다.

“선물을 준비하셨다더군.”

“···저한테요?”

서재원 팀장이 끄덕이며 빙그레 웃는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멈춰, 얼떨결에 그과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고, 은근한 부유감을 느끼며 고개를 기울였다.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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