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36화 (136/221)

136. 누구와 함께 하는지 (1)

우리는 곧장 숙소로 돌아왔다.

조금 지치고, 꽤 들뜬 채로.

당장 내일 아침에 다음 도시인 맨체스터로 출발해야 했지만, 다들 일찌감치 침대로 향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식탁에서 허기를 채우고 자리를 거실로 옮긴 사람들은 소파가 침대인 양 엉덩이를 묻고서 늦은 밤까지 술을 마셨다.

기세와는 달리 천천히 줄어드는 술. 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닌, 공연의 여운을 길게 가져가기 위한 음주였다.

“기타리스트가 무슨 노래를 그렇게 잘해? 웬만한 가수는 명함도 못 내밀겠던데? 재학아 넌 원래부터 알았던 거야?”

메인 작가의 말에 이재학의 표정이 얼핏 굳어진다. 하지만 여운에 젖다 못해 흠뻑 빠져있는 메인 작가가 이를 느낄 리 없었고.

“아······네.”

“특히 마지막에 고음 쭉 끄는 거. 진짜 너무 멋있던데? 내가 이래서 뉴하이를 좋아한다니까? 무슨 양파 같잖아. 까도 까도 생각지 못한 매력이 튀어나와.”

쉴 새 없이 칭찬이 쏟아지는데 당사자인 남원기와 이재학은 되려 표정이 딱딱해지는 기묘한 상황.

그때 장영태가 핸드폰을 중앙으로 들이밀며 들뜬 목소리를 냈다.

“SNS에 라임 스트리트라고 치니까 우리 영상이 꽤 많이 뜨는데요?”

메인 작가가 핸드폰을 받아 들어 쭉 훑더니 입매를 끌어올린다.

“진짜네? 생각보다 반응이 좋은데?”

그러자 제작진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뭐라는데요?”

“한국 뮤지션들 목소리 너무 좋은 거 아니냐고 그러고, 노래 가사 뜻을 알고 싶었다고 한국어 공부 좀 해둘 걸이란 사람도 있고, Imagine 기타 버전 음원으로 소장하고 싶단 글도 있네. 이거 엄청 뿌듯한걸?”

장영태도 한마디 거든다.

“그쵸? 내가 노래 부른 것도 아닌데 막 두근두근 하다니까요?”

제작진들 면면에도 미소가 걸렸다. 메인 작가와 장영태가 반응을 전할수록, 그들이 내비치는 뿌듯함의 농도가 짙어져 갔다.

이에 나를 포함한 출연진들도 덩달아 상기된 얼굴이 되어갔고.

“이거 이러다 맨체스터 가면 버스킹 보려고 사람들이 찾아오고 막 그런 거 아녜요?”

“진짜, 그랬으면 좋겠네.”

“그러면 마지막 런던에선 콘서트라도 열어야겠네요.”

“그거 괜찮다, 야. 그러면 한국은 진짜 난리 나겠는데?”

“우리 프로는 대박 나고!”

제작진들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그리고 덩달아 우리의 웃음소리도 조금씩 끓는점을 향해 내달렸다.

#학준이 형 앨범에 대한 진행 상황을 전해 받고 짬을 내서 레이블로 전화를 걸었다.

아직 한창 일하는 중인지 주변이 시끌시끌하다.

-별일 없으시죠?

여직원의 물음에 이마를 긁적였다.

별일이라···.

말하자면 많지.

최정아와 하서윤은 곡 선정 이후로도 은근한 신경전이 한창이고.

남원기와 이재학은 뉴하이인데, 사실 내부적으로 이재학은 이미 뉴하이가 아닌 거나 마찬가지고.

남원기는 기타리스튼데 노래를 부르더니 갑자기 멜로디가 들리고.

결과적으로 버스킹은 성공적이었고.

와.

“···딱히 없는 것 같네요.”

거짓말을 하려니 코가 근질거린다. 조금은 길어져도 될 코긴 한데···.

실없는 생각을 그만두고 반대로 질문을 던졌다.

“레이블은 별일 없죠?”

-한울 씨가 레이블에서 가면을 쓰고 돌아다녀요.

···뭐?

기다렸다는 듯이 들려온 대답에 내가 바람 빠지는 소릴 냈다.

“그것참······별일인데요?”

-그러니까요.

“아니, 왜 그런다는데요?”

여직원이 낮게 웃었다. 저게 웃겨서 웃는 건지 어이없어 웃는 건지는 분간이 안 간다.

-생각보다 가면 쓴 채로 노래 부르는 게 은근 숨이 차나 봐요. 그래서 틈틈이 쓰고 있겠대요. 폐활량 좋아지면 그것대로 좋고, 방송에서 풀 썰도 하나 생기는 거고 여러모로 좋겠다면서 부지런히 쓰고 다녀요.

무슨 드래곤볼 수련하는 것도 아니고···.

고개를 내젓는데, 여직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은-

“생각보다 별일이 많네요?”

-아, 이건 별일은 아녜요.

“들어볼게요.”

-인터뷰 요청이 쏟아져요. 억수로.

아하?

“확실히···별일은 아니네요.”

-그렇죠? 피디님이 뭔가 하실 때마다 늘 상 있는 일이라.

인터뷰 지옥이 기다리고 있단 소식을 태연하게 말하는 여직원.

<거리 악사>도 라인업 덕에 화제고, 레드리시가 빌보드에 진입한 것도 난리고. 덕분에 인터뷰 성수기가 다시 도래했단다.

사실 언제가 비수긴지 모르겠다. 내가 일을 쉰 기간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그때 뭔가 생각났는지 여직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 맞다. 피디님이 계신 곳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왔더라고요.

내가 있는 곳?

“여기······영국에서요?”

이윽고, 다시 한번 확인해보겠다던 여직원에게서 대답이 들려왔다.

-네. 영국에서요.

#전화를 끊고 들어가니 뒤풀이는 거의 끝나 있었다. 술병들이 치워지고, 제작진들은 회의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마시고 회의라니.

방송국 입사의 제1 조건이 싱싱한 간이란 소문은 확실히 신빙성이 있는 것 같지.

한 스태프가 빗자루를 들고 지나가며 내게 말한다.

“피디님 준비 다 됐으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끙. 남 얘기하듯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나도 저 회의에 참여해야 했다. 방에 들어가서 미니 키보드로 남원기 멜로디나 띵똥 거리고 싶네.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돌렸다.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거실 한쪽에 웅크리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생머리가 앞으로 넘어와 얼굴은 안 보이고 귀신이 따로 없다. 영국에 검은 머리 귀신이 있을 리가.

옆에 있던 김 실장이 멋쩍게 웃으며 다가오길래 내가 물었다.

“정아 왜 저러고 자고 있어요?”

“피디님 기다린다고 앉아 있다가 잠들었어요. 인사하고 들어가겠다고.

헛웃음을 지으며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최정아가 움찔거리며 천천히 고개를 든다.

“어, 피디님 오셨어요?”

긴 생머리를 반으로 걷어내며 그 사이로 최정아의 하얀 얼굴이 나왔다. 조명이 조금만 어두웠어도 이건 공포영화의 한 장면과 똑같았겠다.

“저 잠깐 졸았나 봐요.”

“졸긴 푹 자던데. 코까지 골면서.”

“······저, 정말요?”

“어.”

“어떻게 골았는데요? 심하게 골았어요?”

“꽤 심했어. 지나가던 스태프들이 깜짝깜짝 놀라더라.”

“허어. 저 엄청 피곤했나 봐요. 평소에 코 절대 안 고는데···!”

“사실 거짓말이야.”

생각보다 격한 반응이 나오길래 곧바로 거짓말이었음을 밝혔다. 화를 낼 줄 알았더니 오히려 안도하며 웃는다.

“근데 어디 가셨었어요?”

“전화 받으러.”

대수롭지 않게 답하자 최정아가 두리번거렸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더니 코 골았다 속였을 때도 안 하던 정색을 하며 내게 물었다.

“이 늦은 시간에요? 누군데요?”

“레이블. 지금 한국은 늦은 시간이 아니거든.”

“아···?”

깨달음을 얻은 최정아의 표정이 녹아내렸다. 그리고 민망한 듯 웃는다.

“많이 피곤한가 보다. 얼른 들어가서 자.”

“넵. 아 맞다.”

“···?”

“오늘 피디님이랑 같이 버스킹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그녀의 말에 나도 웃으며 답했다.

“나도 그렇더라.”

#“대표님이 신나서 전화하셨어.”

방으로 돌아온 이재학이 머리가 젖어서 들어온 남원기를 보며 입을 뗐다. 핸드폰에 시선은 고정한 채로.

이재학을 슬쩍 본 남원기가 대답은 하지 않고 자신의 침대에 앉았다.

이재학도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닌지 뒷말을 이어간다.

“매니저 형이 말했나 봐. 내가 기로 프로듀서님이랑 따로 만나 얘기한 거. 당장에 기로 프로듀서님한테 전화해서 미팅 잡자고 하실 기세 셨대. 뭐, 그럴 수야 없으니 촬영 끝나면 대표님이 따로 연락하신다더라고.”

얘기를 쭉 듣던 남원기가 수건으로 머릴 툭툭 털며 이재학의 표정을 보았다.

그리고 이상함을 느꼈다.

대표님까지 밀어주겠다고 나선 마당 아닌가.

히죽거리며 들떠 있어도 모자를 이재학이 세상 딱딱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기에.

남원기가 먼저 눈을 피하며 말했다.

“잘됐네. 대표님까지 나서주시면 곡 받는 게 더 수월할 거 아냐.”

남원기의 무덤덤한 축하에 이재학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 하나만 묻자. 너 그거 진심이냐?”

“뭐가?”

“잘됐다는 거. 솔직히 너네 버리고 솔로 전향하는데, 그게 진심일까 싶어서.”

“네가 유명 프로듀서 곡 받아 승승장구할 게 잘 됐다는 건 당연히 아니지.”

“···그럼?”

재차 묻는 이재학에게 남원기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 기회로 너도 다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뭐?”

“오랜만에 즐겁더라고. 편곡에 참여하며 기타를 치는 것도, 버스킹도, 그리고 데뷔하고 처음으로 내가 메인이 돼서 노래 부르는 것도.”

남원기가 쓰게 웃었다.

“그래서 갑자기 왜 다시 즐거울까 고민해봤는데. 스콘 먹으면서 힌트를 좀 얻었어.”

“스콘···?”

점점 더 미궁으로 들어가는 이재학의 표정과는 달리 남원기의 얼굴은 점점 더 확신에 찼다.

“프로듀서님 때문이었던 거지. 거실에서 편곡할 때···그때 내가 그게 너무 재밌었나 보더라고. 옆에서 열정적으로 하시니까, 그게 나한테도 옮겨붙어서.”

“너 대체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인상을 찌푸리며 끼어드는 이재학의 말을 자르며 남원기가 말했다.

“그래서 잘됐다고. 프로듀서님이랑 작업하면 너도 다시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제작진 회의에 나와 장영태도 함께 참여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의례적인 얘기와 함께 제작진이 첫 버스킹의 성공을 다시 한번 자축했다.

하지만 금세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에 관한 이야기로 접어들며 복잡한 이야기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버스킹 하나 잘 끝냈다고 방송이 성공한 건 아니니까. 의견을 나누는 표정들이 한없이 진지해진다.

“일단 홍보팀이 기사를 쏟아내고는 있는데, 동 시간대 방송 예정인 다른 프로그램들도 화제성이 만만치 않아서 걱정이네요.”

“그래도 라인업 만큼은 제일 신선하다는 반응들이 많아요.”

“문제는 방영 전엔 대박 프로라도 될 것처럼 반응이 좋았는데, 막상 뚜껑 열어보니 죽 쑨 사례도 많다는 거죠.”

잠자코 듣고 있던 오 피디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가장 좋은 칭찬은 남이 해주는 칭찬이지. 이 시점에서 영국에서 기사라도 하나 터져주면 홍보로는 그만일 텐데···.”

“지금 정도의 SNS 반응으로는 턱도 없겠죠?”

“그치. 여기 기자들이 신경도 안 쓸걸? 그리고 어설픈 곳의 기사로는 어림도 없어. 요즘은 그런 거로 눈속임하기엔 인터넷이 너무 발달 되어있어서.”

“관광청 쪽에선 답변 없죠?”

“그 놈들 엄청 바쁜 척하잖아. 콧대도 높고. 장소 협조라도 해준 게 천만다행인 놈들인데, 뭘.”

회의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제작진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렇게 한참을 듣고만 있다가 말을 꺼냈다.

“내일 저희 맨체스터로 가면 촬영 없죠?”

내 질문에 시선들이 모여들었다.

의아한 얼굴들이다. 지금까지 심각하게 이어지던 대화 내용과는 전혀 다른 맥락의 말이었으니까.

“아, 뭐, 그렇죠? 리버풀보단 일정이 여유 있으니까···.”

그러면 시간은 충분하겠네.

다시 흩어지려는 시선들을 보며 내가 입을 열었다.

“저한테 현지 인터뷰가 하나 들어왔는데 이게 도움이 좀 될까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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