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35화 (135/221)

135. 버스킹 (3)

“네?”

되묻는 남원기에게 나는 능청맞게 답했다.

“기타 연주 말고, 노래도 불러본 적 있나 해서요.”

“있기야 한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인지한 이재학이 얼른 끼어들었다.

“피디님, 뭔가 부족한 게 있었나요? 뭔지 말씀해주시면 고쳐서······.”

“아뇨. 재학 씨 잘하고 있어요. 단지 이 곡만 재학 씨 스타일과 맞지 않아서 확인을 좀 해보려고요.”

간단하게 고개를 젓고, 다시 남원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 번 불러 줄 수 있어요?”

남원기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잠시 이재학에게 시선을 멈추더니 이내 바닥에 깔린 카펫으로 시선을 내렸다. 바닥의 복잡한 무늬가 그의 머릿속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리고 이내 결심했는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불러볼게요.”

“부담 갖지 말아요. 그냥 확인해보고 싶어 그러는 거니까.”

물론 결과가 좋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 사이, 치열하게 표정관리를 마친 이재학이 자신의 손에 있던 가사지를 남원기에게 건넸다. 손아귀에 힘을 주고 있었는지 종이가 쭈글쭈글하다.

“사실 내가 피디님한테 너 노래도 부른다고 말씀드렸거든. 잘 해봐.”

다시 서글서글한 미소가 펼쳐지려는데.

“아. 괜찮아. 이거 외운 거라.”

남원기의 말에 이재학의 표정이 다시 한번 굳었다.

그러고 보니 이 곡을 추천한 건 하서윤이지만, 애초에 올드 밴드의 곡을 하자던 건 남원기였지.

나는 손을 가볍게 건반에 얹었다.

하서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입매를 올리고 시청 중이다. 참 하서윤답다···라고 생각하려는데, 최정아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뭔데.

남원기에게도 마이크 하나가 전달되고, 나는 망설임 없이 건반을 눌러 전주를 시작했다.

최정아와 하서윤이 차례대로 들어오며 어쿠스틱한 노래가 꽉꽉 채워졌다. 차분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그리고 마침내 남원기의 목소리가 반주 위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어제부터 끈덕지게 내 발목을 잡고 있던 아쉬움이 스르륵 사라진다.

살짝 허스키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목소리. 낮은 목소리여서 내심 불안했던 음정까지 가볍게 칠 수 있는 음역대.

모든 연주가 끝났을 때 나는 마음의 결정을 끝냈다. 이 곡만큼은 남원기에게 시켜야겠다고.

그리고 그게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나 보다. 거실에 모인 이들의 표정이 말해준다. 이건 해야 한다고.

이쯤 되자 이재학이 눈치 빠르게 선수를 쳤다.

“괜찮은데? 이 곡은 네가 나보다 나은 거 같다, 야.”

빼앗기느니 자신이 주는 듯한 그림이 나을 거라 판단한 모양이지.

그러자 오 피디도 턱을 매만지다 어딘가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

“어, 세팅 잘하고 있어? 거기 마이크 하나 남는 거 있지? 그거 원기 자리에 갖다 놔. 그런 게 있으니까 얼른 갖다 놓고 음향 세팅해. 멘트? 아냐. 멘트가 아니라 노래할 거야.”

아무래도 라임 스트리트에서 세팅 중인 제작진에게 전화를 건 것 같지.

남원기가 마이크를 내려놓는다.

나는 어쨌다, 저쨌다 평가하지 않았다.

그냥 끄덕이며 보면대에 손을 가져갔다.

“오케이. 이제 다음 거 연습하죠.”

비로소 나는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악보를 넘길 수 있었다.

#모든 연습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탔다.

오 피디가 뒤따라 올라오는 메인 작가에게 물었다.

“재학이는?”

“아직 메이크업이요.”

“아직도? 여기 여자 뮤지션들도 다 준비하고 와 있는데?”

“화면에 조금이라도 더 잘 나오고 싶나 보죠.”

“자식, 웬만한 아이돌들보다 더 유난이네. 그럼 영태는?”

인상을 찌푸리던 오 피디가 빈자리 하나를 더 발견하곤 두리번거렸다. 그때 뒤쪽에서 장영태가 올라탄다. 양손에는 커피가 다발로 들려 있었다. 뒤따라 올라탄 그의 매니저도 같은 모양새였다.

“저 여깄습니다!”

“오! 센스.”

메인 작가가 활짝 웃으며 커피 한잔을 받아들었다. 제작진들에게 나눠주는 건 매니저에게 맡긴 장영태가 우리 쪽으로 들어왔다.

“자, 자. 이거 한 잔씩 마시면서 해요. 긴장될 땐 카페인 섭취가 좋다더라고요.”

“그럼 그 커피 영태 씨가 전부 마셔야 할 것 같은데?”

하서윤이 익살스럽게 받아치자 장영태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실토했다.

“그러게요. 내가 연주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떨리지···?”

“첫 공연이니까요. 그리고 연주는 안 하셔도 같이 준비했잖아요.”

“역시, 정아 씨밖에 없습니다. 천사야 천사.”

“뭐야, 그럼 난 악마인 건가?”

“에이, 아니죠. 서윤 씨는······.”

“대답 잘 해줘야 해요?”

“하하하.”

장영태의 처연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왜 말을 못 하나. 흑과 백. 카인과 아벨. 천사와 악마. 뭐 그런 거.

뒷자리에서 피식거리며 지켜보다가 슬쩍 옆을 봤다. 남원기도 나름의 웃는 낯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공개적으로 노래 부르는 건 처음인 거예요?”

“아, 네. 저희 곡 코러스 넣을 때 말고는 없었어요.”

“그럼 이 방송이 보컬로서 데뷔무대겠네요. 재학 씨 솔로로 나오면 뉴하이 보컬을 맡게 될지도 모른다고 들었는데.”

남원기의 눈이 살짝 커졌다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힘없이 웃는다.

“재학이가 별 걸 다 말했네요.”

그리고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불쑥 물어왔다.

“노래도 즐거울까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음’ 소리를 내며 고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내가 내줄 수 있는 답이 아니었다.

그래서 되물었다.

“부를 때 어땠는데요?”

#20여 분을 달려 도착한 라임 스트리트 역.

오는 내내, 사람들이 날씨가 안 좋다고 별로 없으면 어떡하지? 제대로 안 모이면 어쩌지? 중간에 떠나는 걸 보면 멘탈이 나갈 것 같은데? 같은 우려 섞인 목소리들이 오갔는데, 막상 버스에서 내리니 사람이 꽤나 붐볐다.

하늘에는 여전히 먹구름이 잔뜩이지만 바람은 잦아들었고.

이 정도면 영국 날씨로는 화창한 거라며 현지 가이드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했지.

우리는 미리 제작진들이 세팅해 놓은 버스킹 장소로 향했다.

휘적휘적 걷던 장영태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동네 뮤지션들 다 나왔나 본데요?”

악기 하나씩 옆에 세워두고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이들을 보고 한 말이었다.

이에 옆에서 메인 작가도 혀를 내두르며 주변을 훑는다.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 이런 느낌인데?”

그러게.

눈에 불을 켜고 있네.

물론 그들만 버스킹 장소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었다.

걷다가 멈춰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고,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기다리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주변 가게에서도 점원들이 나와 한 번씩 구경하고 있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내가 말했다.

“이거 지체되면 안 되겠는데요?”

버스킹에도 흐름이 있다.

밀물 썰물처럼 사람들이 밀려들어 올 때가 있고, 훅 빠져나가는 때가 있지.

지금이 밀물이다. 그러니 당장 버스킹을 시작하는 게 좋았다.

다행히 카메라건 악기건 모두 세팅이 끝난 상황.

우리는 장영태의 응원을 받으며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걸어 들어갈 땐 몰랐는데, 앉으니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지는 게 느껴진다. 그 틈에서 저 혼자 안절부절못하는 장영태도 보이고.

우리가 앉자 이제 곧 시작할 것처럼 보이는지 사람들이 점점 더 몰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니······.

‘묘하네.’

과거로 돌아온 이후로 첫 버스킹이다.

사실상 15년 이상 되었지.

그럼에도 버스킹이 하고 싶고, 그리웠던 적은 별로 없었다.

내 신경은 오로지 작곡에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연주자로서의 꿈이 없는 나조차도 지금은 기분이 붕붕 뜨려 한다.

이 공연이 잘 됐으면 좋겠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으면 좋겠다.

구태여 프로그램의 흥망과 연결짓지 않더라도 말이다.

하물며 뮤지션들은 어떨까.

천명, 만명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해서 버스킹이 우습게 보일 리 없다.

무대와는 다르지.

버스킹의 관객들은 음악을 듣기 위해 작정한 사람들이 아닌, 그저 지나가던 사람들이니까.

저 사람들에게 우리는, 길 가다 마주친 우연일 뿐인 거다.

그래서 더 사로잡기 어려운 거고.

‘그저 우연이라 여기고 지나칠지, 아닐지는 우리의 노래가 결정하게 될 테지.’

풀 세션도 아니다.

음향 환경도 결코 좋지 않고.

날씨는 말해봐야 입만 아프고.

나름, 버스킹에 맞게 편곡을 한다고 했는데 대중의 반응은 항상 예측 불가지.

이런 점들이 버스커를 두렵게 한다.

그리고, 이런 점들이 버스커를 설레게 한다.

오 피디의 사인이 떨어진다.

나는 마이크를 들지 않았다.

대신 건반을 눌렀다.

B플랫.

오묘한 화음이 흘러나가고, 그게 다시 내 귀로 흘러들어온다.

이어서 다음 음들을 차례대로 누른다.

때론 정박으로, 이따금 엇박자로.

그리고 전주가 끝날 때쯤, 최정아가 천천히 마이크를 들었다.

스피커를 통해 뻗어 나가는 첫 음.

다음 코드를 짚으며 내심 감탄했다.

이 정도면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기엔 차고 넘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차츰 격해지던 멜로디가 브릿지로 접어드는 순간, 하서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음역대가 올라간다.

점점 고조되던 멜로디가 기어이 하이를 찍으며 후렴으로 맹렬히 접어들었다.

춤을 추면서도 안정적인 노래를 이을 수 있는, 하서윤의 가늘면서도 팽팽한 목소리가 쭉쭉 뻗어 나간다.

멈춰선 사람들이 발목이라도 잡힌 듯, 미동도 없이 우릴 지켜본다.

그렇게 1절이 끝났다.

원곡이었다면 다시 도입부로 향할 차례.

하지만 나는 편곡에서 2절 도입부를 뺐다. 버스킹의 특성상 도입부를 다시 부르는 게 지루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노래는 다시 브릿지로 회귀한다.

최정아도, 하서윤도 아닌.

남원기의 목소리로.

-!

여기서 들으니 또 다르다.

거기선 실력을 숨겼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부르고 있다.

아까 물었던 질문을 스스로 확인해보려는 듯이.

손끝이 짜릿하다.

편곡을 하면서 그렸던 그림이 정확하게 이 공간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마침내 도달한 클라이맥스.

남원기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음을 쏟아냈다.

길게.

더 길게.

모두가 숨죽이고 음 하나에 집중한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이 솟구치던 음이 건반과 함께 마침표를 찍었다.

이 순간이 유독 길게 느껴지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겠지.

잠깐의 적막 뒤에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다.

브라보를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던 버스커들조차도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제대로 주변을 훑자, 시선에 사람들이 가득 찬다.

나는 곧바로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한국에서 온 뮤지션들입니다.”

#완벽한 공연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했던 버스킹이 끝났다.

박수를 보내던 객들이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진다. 원래 버스킹은 이렇게 끝이 난다. 저들의 목적은 애초에 우리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떠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들었다.

“발걸음을 돌려 원래 가던 길을 가시면 됩니다. 다만 저희 공연이, 누군가를 만났을 때 행운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공연이었길 바랍니다.”

조금은 낯간지러운. 하지만 서투른 영어이기에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던 멘트.

마이크를 내려놓고 악보를 주섬주섬 챙겼다. 옆에서 최정아가 날 빤히 보고 있다.

“왜?”

“그냥요. 마지막 멘트가······피디님답다, 싶어서요.”

“그래? 너도 너다웠어.”

“네?”

“모든 곡을 소름 돋게 잘 부르더라고.”

“헤헤.”

배시시 웃는 최정아에게 마주 웃어주고, 그 너머로 시선을 넘겼다.

기타를 정리하고 있는 남원기가 보인다.

궁금했다.

나는 즐거웠는데 말이지.

“어땠어요?”

“어···괜찮았던 것 같아요.”

남원기는 활활 타오른 공연 뒤에도 여전히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한 김 식은 듯한, 뜨뜻미지근한 대답.

하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올라가는 입꼬리를 진정시키기 바빴다.

“다행이네요.”

다른 게 대답을 했으니까.

‘돌아가면 바빠지겠는걸.’

최정아의 것도,

하서윤의 것도 아닌 멜로디가.

영국의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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