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버스킹 (2)
“남산 타워가 훨씬 낫네.”
메인 작가가 머리 위에 드리워진 타워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꼭대기에는 UFO를 얹어 놓은 것만 같은 전망대가 보였다.
목적지를 확인하고 다시 시선을 내리는 메인 작가.
그녀의 앞에는 최정아와 남원기, 그리고 그들을 카메라에 담는 VJ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메인 작가의 표정이 사뭇 심란해진다.
‘내가 미쳤지. 제비뽑기를 왜 하자 해서···.’
최정아와 남원기.
이 두 주인공이 카메라 앞에서 놀아주질 않는다. 간단한 대화만 주고받으며 제작진이 정해놓은 길을 그대로 따라갈 뿐.
‘아오, 비주얼은 진짜 그림인데······.’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모델 화보 촬영을 온 줄 알 정도.
문제는 자신이 펜대를 잡은 이 방송이 어디까지나 예능이란 점에 있었다.
토요일 저녁 시간에 오디오 한 점 없는 한 폭의 그림을 보며 시청자들은 어떤 행동을 할까?
와 존예, 존잘······근데 노잼이네? 다른 거 보자.
시청자들이 싸늘하게 등 돌리는···아니, 채널 돌리는 모습이 뻔히 그려졌다.
‘그래도······.’
부정적인 생각을 가까스로 떨쳐낸 그녀가 일말의 기대를 안고 걸음을 재촉한다.
아직 희망이 있었다.
자신이 누군가.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어가며 방송국 놈들 사이에서 버텨온, 그냥 작가도 아닌 메인 작가다. 그리고 작가란 스토리를 만드는 사람이지.
이미 대본은 전달이 되었다.
이쯤에서 그걸 그대로 읽기만 하면······.
“아, 저기가 리버풀의 랜드마크인 라디오 시티 타워인가 봐요. 하하하···올라가 볼까요?”
맙소사. 진짜 읽었다.
국어책 읽듯, 진짜 읽어버렸다고.
배우보다 더 배우 같은 외모로 저런 로봇 같은 연기라니!
오죽하면 촬영 이후로 단 한 번도 동요하지 않던 남원기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보일 정도였다.
대체 왜 최정아한테 연기를 시키지 않냐고, 방송국 내부와 대중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는데, 지금 그 비밀이 풀려 버렸다.
‘아아, 장 대표. 당신은 옳았어.’
메인 작가가 고개를 내저으며 걸었다. 이 부분은 아주 짧게 편집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팬들의 원성이 있겠지만······채널 돌아가는 것보단 나으니까.
각본대로 타워 전망대에 올라 버스킹할 위치를 탐색했다. 말이 탐색이지 이미 정해진 곳을 가리키기 위한 빌드업이었다. 리버풀 관광청에 허가를 받은 스팟이 정해져 있었기에.
최정아는 ‘저기, 저기가 좋겠어요.’ 라고 라임 스트리트 역 주변을 가리키며 다시 한번 국어책을 읽었다.
당혹감에 물든 남원기와 모든 걸 포기한 제작진. 그리고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최정아가 계획대로 라임 스트리트 역에 도착했을 땐, 이미 몇몇 버스커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메인 작가의 해탈한 얼굴을 슬쩍 본 남원기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먼저 말을 꺼냈다.
“어디쯤이 좋을까요?”
“음···저희 규모를 생각했을 때 저쪽 공터가 좋지 않을까요?”
이번만큼은 최정아도 연기 할 필요가 없어서 말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아, 확실히 다른 곳은 사람들 다닐 길로도 좁아서 저희가 공연하긴 힘들겠네요.”
나름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레 공터로 향했다.
벤치도 있고, 주변 유동인구도 많은 데다가 기존 버스커들과의 거리도 적당히 떨어져 있어 방해를 주지도 않을 것 같았다.
길 건너에서 기타 하나 손에 들고 노래를 부르는 버스커들. 그들을 보는 최정아의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갔다.
“버스킹······진짜 오랜만이네.”
추억을 곱씹듯 목소리가 몽글몽글해진다.
그리고 ‘나는 버스킹이 얼른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대놓고 보일 정도로 들뜬 표정이 되어선 남원기를 보았다.
“그 기타는 왜 매고 오신 거예요?”
“사실, 작가님이 시키셔서···.”
최정아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럼, 미리 조금만 해볼까요?”
욕심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묻는다.
남원기는 당황한 얼굴로 껌뻑이자, 그녀는 메인 작가에게 시선을 돌렸다.
“해보면 딱 알거든요. 여기가 버스킹하기에 좋은지, 아닌지.”
화사하게 웃으며 말하는 최정아.
동시에 메인 작가의 머릿속에서 지금까지의 장면들이 숭덩숭덩 잘려나갔다.
그리고 새로운 분량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거 괜찮을 것······아니, 엄청 좋을 거 같은데?’
#
짧디짧은 공연이었다.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하다못해 앰프도 없이 이뤄진 버스킹.
하지만 최정아와 남원기는 프로였다.
작은 소리임에도 사람들을 집중시키는 무언가가 있는.
꽤 많은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춰 서서 노래를 들었다. 곡이 끝났을 땐, 남아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었고.
심지어는 왜 이렇게 짧냐며, 본 공연은 언제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분명히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최정아의 욕심을 채우기에도.
장소의 가능성을 확인하기에도.
그리고, 메인 작가가 안도하기에도.
“너무, 너무, 너어무 좋았어요. 정아 씨 진짜···노래하는 천사인 줄. 원기도 너무 좋았다, 야. 다비드가 기타 치는 줄 알았다니까? ······아, 잠시만?”
근처 카페에 앉아 칭찬을 늘어놓던 메인 작가가 오 피디의 전화를 받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끓어오르는 걸 어느 정도 식힌 최정아가 콧노래를 부르며 스콘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 모습을 보던 남원기가 덤덤하게 말했다.
“꽤 성공적이었네요.”
“그쵸? 재밌었어요.”
개운하게 끄덕거리는 최정아.
이에 남원기가 조심스레 물었다.
“선배님은 여전히 음악이 좋으신가 봐요.”
그러자 스콘을 오물거리던 최정아가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의외라는 듯이 되물었다.
“원기 씨는 안 그래요?”
순간, 남원기는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카메라는 모두 꺼져 있었다. VJ들은 따로 테이블을 잡고 스콘을 뻥튀기처럼 으적으적 입에 넣고 있었고.
그걸 확인하고서도 한참을 고민하던 남원기가 마침내 입을 뗐다.
“재밌었어요.”
과거형.
그것도 아주 착잡한.
최정아가 포크를 살며시 내려놓으며 남원기를 보았다. 말을 맺으려던 남원기가 또다시 망설였다. 그리고 말했다.
“지금은 뭐라고 해야 하나······어른들이 그러시잖아요? 좋아하는 것도 일이 되면 변한다고. 딱 그런 느낌이에요. 분명히 즐거웠던 것들인데, 변하더라고요. 음악도, 사람도.”
최정아는 잠자코 그의 얘길 들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모두 끝났을 때.
가느다란 입술을 열었다.
“이상하네요?”
“···네?”
최정아는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의아했는지 다시 물었다.
“어젯밤에 되게 즐거워 보였는데?”
“······.”
그녀의 말에 그대로 굳어버린 남원기.
최정아는 옅게 웃으며 다시 스콘에 집중했다.
#
“이렇게 쉬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등을 달싹이며 주변 눈치를 봤다.
장소 선정을 빙자한 휴식이랄까.
한 군데 더 가서 찍자는 제작진의 요청을 하서윤이 단칼에 잘라버렸지.
“모르겠으면 그냥 쉬어요. 내가 피디님보다 방송에 대해선 더 베테랑이니까. 이렇게라도 안 쉬면 앞으로 남은 일정을 어떻게 소화하겠어요?”
쓸데없이 일리가 있네.
푸스스 웃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새 밀린 메시지들이 한가득했다.
그중 한 사진이 눈을 끌어당긴다.
[가면이 생각보다 되게 귀엽게 나왔는데? 근데 나한테 잘 어울리는지는 모르겠다?]
학준이 형이었다.
정확히는 머리에 넥타이를 하고, 홍조기까지 있는 가면 쓴 학준이 형.
별명을 ‘우리동네 김대리’로 지었더니 꽤 깜찍하면서도 애환이 서린 가면이 완성되었다.
[딱인데?]
너무 딱이라 패널들이 학준이 형인 걸 단박에 눈치챌까 걱정될 정도인걸.
답장을 보내놓고 실실 웃었다. 그러자 건너편에서 콧방귀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들었더니 하서윤이 날 보고 있다.
“뭘 보면서 그렇게 웃어요? 뭐, 여자 친구라도 생기셨나?”
선 넘네. 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레이블 연락 확인 중이라서요.”
“쉬라고 시간 만들어줬더니 일을 하시네.”
어쩐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바닷가 쪽을 돌아보는 하서윤. 나는 가볍게 무시하며 다시 줄줄이 들어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동안 조용히 있던 하서윤이 돌연 뜬금없는 얘길 꺼냈다.
“걔 노래 잘하더라고요.”
고개를 들었다.
흡족함은 지워지고, 부족함만 남은 얼굴이 보인다.
무슨 얘길 하나 싶어 기다리자, 하서윤이 말을 이어갔다.
“최정아요.”
갑자기?
“예전에 무시했던 거에 대한 반성 같은 겁니까?”
그때 뭐라고 했더라. 자기가 컴백하면 1위 자리에서 내려오게 될 거라 했었지. 물론 그렇게 안 됐고.
하서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럴 리가.”
딱 잘라 말하며 얼음 가득한 레모네이드를 벌컥벌컥 들이킨다.
그러더니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음색 독특한 거 인정. 가창력이 안정적인 것도 인정. 그치만 음역대가 소름 돋게 넓은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왜, 소름이 돋느냐?
차마 다음 말을 삼킨 하서윤을 보며 내가 입을 뗐다.
“노래에 그것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럼요?”
“감정이요. 정아는 감정에 예민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 기질이 노래 부를 때도 적용되는.”
그게 듣는 이로 하여금 놀라게 하는 거다. 마치 연기자가 배역을 완벽하게 연기했을 때, 소름이 돋는 것처럼.
“······.”
대답은 없었다. 나도 그냥 이해 못하는 것 같길래 답해준 것뿐, 딱히 뭔갈 바란 건 아니었고.
그녀가 말없이 다시 고개를 돌리길래 나도 주변을 둘러봤다.
‘날씨가 좀 개려나?’
시내 쪽은 언뜻언뜻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까 VJ들 말을 들어보니 최정아, 남원기가 저쪽으로 갔다는 것 같았지.
“흐음······.”
다시 생각이 꿈틀댄다.
어젯밤, 늦잠을 자게 한 원인.
남원기의 노래.
이게 왜 자꾸 신경이 쓰일까 싶다.
자석이 끌어당기는 것처럼 계속 생각들이 거기에 가 붙는다.
왜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이거 하난 확실했다.
남원기의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
우리는 숙소에 다시 모였다. 장영태는 식재료들이라며 재료가 아닌 완제품들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고. 최정아도 디저트라며 스콘을 잔뜩 사 가지고 왔다.
‘뭐라도 사서 왔어야 했나···.’
가뜩이나 바닷가 보이는 카페에서 쉬다 왔는데, 양심이 따끔따끔하다. 그러다 하서윤을 봤는데 다이어트 중인데 이런 걸 사 왔다며 투정 중이시다.
‘저래야 하서윤이지.’
고개를 내저으며 식탁 앞에 앉았다.
잠시 후, 집기들을 가져와 건넨 장영태가 회의를 주도했다.
“자, 이제 얘기를 나눠볼까요?”
점심을 먹으며 장소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세 곳 모두 제작진이 미리 관광청의 허락을 받아 놓은 터라,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었다.
먼저 장영태, 이재학 팀이 간 곳은 세프턴 공원이었다. 풍경이 좋고, 유명하지만 유동인구가 제한적이라 버스킹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지.
나와 하서윤이 간 비틀즈 동상은 원래 버스커들이 많이 출몰하는 곳이긴 하지만, 바닷가라 이런 날씨엔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고.
그렇게 최정아, 남원기 팀이 다녀온 리버풀 시내로 좁혀졌다.
“그럼 라임 스트리트 역 주변에서 버스킹 하는 거로 합시다!”
오 피디의 최종 결정으로 장소가 정해지고.
점심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옮겨간 거실.
그렇게 마지막 연습이 시작됐다.
“거리에서부터 다시 해보죠.”
나는 어제 연습 때 가장 애매했던 곡부터 꺼내 들었다.
“어느 거리에서요?”
되묻는 하서윤에게 댁이 추천한 곡이란 걸 알려주고, 곧바로 합주를 시작했다.
예상대로였다.
연주하는 내내 발목을 잡힌 기분. 그것도 딱 이재학의 파트에서만 그랬다.
분명히 크게 거슬릴 게 없는 실력인데, 어딘가 어색하다. 꼭,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듯했다.
멜로디가 가창자의 현 상황에 가장 맞는 노래를 들려준다면, 이건 정반대랄까.
굉장히 파워풀하면서도 섬세한 곡인데, 이재학의 노래는 계속 힘만 빵빵하다.
반복되는 연습에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이재학에겐 이 노래가 안 어울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간다.
합주가 끝나자마자 악보를 점검하고 있는 남원기가 보였다. 그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슬쩍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궁금증에 말라 있던 목에서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이 곡 알아요?”
이에 남원기의 표정이 황당해진다.
아니까, 치고 있죠?
-라고 하는 것 같달까.
그래서 다시 고쳐 물었다.
“아니. 불러 본 적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