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33화 (133/221)

133. 버스킹 (1)

“할 얘기가 뭔데요?”

이재학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밝은 곳에서 다시 마주하니 술이라도 한잔 마셨는지 얼굴이 불그스름하다.

내가 침대에 걸터앉아 고개를 기울이자, 너털웃음을 지으며 뜸을 들이던 그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제가 이번에 솔로로 전향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런데요?”

“솔로 첫 싱글인 만큼 최고의 곡을 부르고 싶은데, 그 곡을 피디님께 부탁하고 싶어서요. 정말 팬이거든요. 지금까지 나온 노래 전부 다 몇 번씩 들었는지 몰라요.”

“아······.”

의도가 명확해지자 머릿속에 눈앞의 이재학에 대한 감상이 착착 떠오른다.

목소리도, 가창력도 나쁘지 않았지. 어디까지나 최정아와 하서윤이 받쳐줬을 때 말이다. 그렇기에 솔로로선 아쉬운 부분이 꽤 있는 보컬이기도 하고.

쩝. 내가 눈이 너무 높아졌나? 이전이었다면 곡 작업은커녕 만날 수조차 없는 뮤지션들 중 한 명일 텐데?

내가 말이 없자 이재학이 이번엔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덧붙였다.

“소속사에서 붙여준 프로듀서가 솔직히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풀풀 풍겨오는 서글서글한 미소.

나는 살짝 불편함을 느껴 자세를 고치며 말했다.

“이미 정해진 프로듀서가 있는 거라면 그 문제부터 해결하고 저한테 물어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에이, 대표님도 피디님 얘기하면 바로 오케이 하실걸요? 뭐, 그 프로듀서야 어차피 소속 프로듀서라 문제 생길 일 없고요.”

참 별말이 아닌데. 묘하게 걸쩍지근하네. 저 미소까지 포함해서.

누가 떠오르는걸······.

잠시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말해주기로 했다. 너의 솔로 전향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건 좀 쓸데없는 참견일 수 있는데. 재학 씨한테도 솔로 전향이 정말 좋은 선택인지도 고려해봐야 할 것 같네요.”

“네?”

이재학이 되물었다. 미묘하게 낮아진 온도로.

“사운드나 퍼포먼스가 강렬한 밴드이기 때문에 재학 씨한테 도움이 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 같아서요.”

“아···.”

말꼬리가 툭 떨어진다. 으레 답하는 어투랄까. 표정은 좀 더 부자연스러워지고.

하긴, 솔로 전향의 꿈에 부푼 이에게 ‘그룹이 낫지 않을까?’라고 말한다고 먹힐 리가.

내가 신경을 끊으며 물었다.

“근데, 재학 씨가 나가면 뉴하이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뉴하이요? 그건······사실 이 바닥이 좀 그렇잖아요. 팀 활동하다가도 누구 한 명 뜨면 다 이렇게 찢어지는 거.”

아시지 않냐는 듯한 표정으로 손을 휘적거린다.

내가 느릿하게 주억거렸다.

“그죠. 그래도 같이 1년 넘게 활동했잖아요. 여기까지 같이 왔고.”

“여기까지 같이···.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네?”

내가 되묻자, 아차 싶었는지 어색한 웃음으로 때우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녜요. 피디님 말씀이 맞죠. 그래서 멤버들에겐 너어무 미안하긴 한데 뭐, 그래도 저 때문에 뉴하이가 해체되진 않을 거예요. 원기가 노래를 좀 하니까······.”

주저리주저리 긴 말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유일하게 꽂히는 말이 있었다.

남원기가 노래를 한다.

기타를 치는 남원기가, 노래도 한다.

왜 갑자기 이 말에 신경이 쏠리는진 모르겠네. 저 말 중 거짓이 아닌 게 이것뿐이라 그런가?

내가 또 대답이 없자, 이걸 거절이라 생각했는지 이재학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하지만 이내 물에 물 탄 듯 풀어지며 말한다.

“아무튼, 마음 생기시면 알려주세요.”

낮아진 온도를 끌어올린, 서글서글한 미소.

머릿속으론 남원기가 노래를 한단 얘길 곱씹으며.

돌아서려는 이재학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재학 씨가 누굴 굉장히 닮았네요.”

“네? 누구요?”

내 갑작스러운 말에 이재학이 갸웃거렸다.

웃는 상이라고 해도 좋을 그의 잘생긴 얼굴을 보며, 내가 답했다.

“아실 거예요. 지선주라고.”

“아 당연히 알죠! 지선주 선배님.”

칭찬인 줄 알았는지 얼굴이 활짝 핀다.

“하하, 영광이네요.”

*

방을 나선 이재학이 안면을 집어삼켰던 미소를 지웠다. 그리고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래서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뜨뜻미지근하길래 자신이 마음에 안 들었나 싶었는데, 또 마지막엔 탑스타 지선주를 언급하며 금칠을 해줬다. 이게 뭘까?

‘당장은 좀 그런데, 내가 점점 인지도도 커지고 인기도 올라가고 있으니 발 하나는 걸쳐 놓겠다는 건가? 방송이 나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재학은 기분이 퍽 좋아졌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프로듀서로서는 국내에서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남자가 자신한테 어장관리(?)를 하고 있는 셈이니까.

자신이 그만큼 컸다는 증거였다.

‘더 커야지. 더···.’

낮게 중얼거린 이재학이 자신에게 배정된 방으로 들어섰다. 구석진 침대에 누워있던 남원기가 슬쩍 그를 쳐다보며 물어온다.

“곡···주신데?”

한쪽만 치켜 올라가는 이재학의 입꼬리.

“당장은 아닌 것 같고. 뭐 지켜보겠다는 거 같은데? 아마 이 프로가 잘 되면 주지 않겠어?”

“···잘됐네.”

의외의 대답에 이재학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원기는 그대로 등을 돌리고 잠을 청한다. 그런 남원기의 등을 찝찝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이재학이 이내 고개를 돌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째선지, 기로 프로듀서가 좀 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서.

뉴하이를 떠나는 게 좋은 선택이 아닐 거라던, 자신도 밴드의 도움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던······.

‘개소리.’

어차피 자신 덕에 여기까지 온 밴드 아닌가?

도움을 받는 건 늘 밴드 쪽이었다.

그러니, 그럴 리 없다.

안 좋은 선택일 리 없다.

‘그렇잖아···?’

이재학의 되뇜이 잠 모르고 계속되었다.

#

다음날.

우리는 팀을 나누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좀 더 정확히는 버스킹할 장소를 선정하기 위해서 제작진이 그러자고 했지.

숫자가 적힌 종이를 봉투 안에 넣고 흔들며 장영태가 제작진에게 말한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듯한 뭔가를 설명하며.

“거기, 거기 가야 하지 않아요?”

“···?”

“횡단보도. 비틀즈가 딱 이런 포즈로 건너는 사진 있잖아요.”

메인작가가 웃으며 답했다.

“애비로드? 그거 런던에 있어요.”

“어? 여기가 비틀즈의 고향이라면서요?”

“그쵸. 근데 영태 씨가 강원도 사람이라고 해서 프로필 사진을 강원도 가서 찍진 않죠?”

“아!”

메인 작가의 설명에 장영태가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끄덕였다. 그리고 봉투를 턱, 하고 내려놓는다.

“자, 다 섞었습니다!”

그의 부름에 손들이 봉투 안으로 빨려들어 간다. 나도 손을 넣어 가장 먼저 손에 닿는 종이를 집었다. 맨들맨들한 종이를 슬쩍 펼쳤다. 별것도 아닌데 쫄깃한 맛이 있네.

가장 먼저 외친 건 장영태였다.

“난 1번! 1번 누굽니까?”

“저요···.”

“오, 이재학이!”

같은 번호가 나오면 팀을 이루는. 굉장히 유치하지만, 또 이만한 게 없는 방법.

“정아야. 몇 번이야?”

“전 3번이요. 피디님은요?”

“나? 2번.”

우리 둘의 고개가 남은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하서윤과 남원기.

“전 3번입니다.”

남원기가 덤덤하게 말했다.

이러면 자연스럽게 남은 한 명이 나와 함께 사전조사를 나선다.

하서윤.

선홍빛 도는 그녀의 입술이 불길한 호를 그리는 순간, 제작진 중 한 명이 큰소리로 외쳤다.

“각 팀들은 승용차 준비했으니까 이동하면서 촬영 이어갈게요!”

*

봄이라기보단, 가을에 가까운 날씨다.

걷기엔 무리가 없지만, 거리에 앉아 30분 이상 공연을 하기엔 다소 추울 것 같은 온도.

손을 뻗어 가만히 있자, 서늘한 바람이 손등을 타고 스쳤다.

‘이거, 연주하다 손이 얼겠는데.’

버스킹 걱정을 무럭무럭 키우며, 제작진이 준비한 승용차가 오길 기다렸다.

이윽고, 차고에서 차들이 줄줄이 나온다.

먹구름 낀 하늘을 올려다보며 황망해하던 최정아와 제작진의 요청으로 기타를 맨 남원기가 첫차에 올라탔다.

최정아가 차에 타기 직전, 슬쩍 내 쪽을 보길래 빙그레 웃어주었다. 그런데 표정이 괴기하다. 무슨 못 볼 걸 본 듯이.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초점이 이상하다. 뭔가 내 옆을 향해있는데?

뭔가 싶어 돌아봤는데 아무도 없다. 그래서 좀 더 돌아봤다. 그제야 보인다.

내 뒤쪽에 서서, 세상 해맑은 미소를 발사하는 하서윤이.

‘깜짝이야···.’

이게 어젯밤 이재학을 봤을 때보다 더 호러네.

“뭐해요?”

“보면 몰라요? 웃잖아요.”

“그니까 왜······.”

“모르시나?”

“뭘 몰라요?”

다시 한번, 씩 웃는다. 이번엔 나를 보면서.

“웃는 게 이기는 거랬어요.”

“······.”

알고는 있었지만···.

알던 것 이상으로 제정신이 아니네.

#

이윽고, 우리도 승용차에 탑승했다.

구불진 언덕을 내려가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새 우리는 해안에 바짝 붙어 있었다.

‘리버풀이 항구도시였지?’

새삼 깨달으며 우리는 승용차에서 내렸다.

“흐음···.”

햇빛이 부서지는 바다.

여유롭게 벤치에 앉아 항구도시의 매력을 즐기는 사람들.

그런 마음으로 ‘거리 공연? 오케이, 너그러이 들어 주겠어!’ 라는 시선을 보내줄 이들이 넘쳐나는 곳.

뭐, 그런 걸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싶다.

하늘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먹구름에 갇혀있고, 비는 안 와도 바람은 나그네의 옷이 아닌 몸을 날려버릴 정도로 불어댄다.

리버풀의 명물, 비틀즈 동상을 한참 찍던 VJ가 바닷가 쪽으로 앵글을 돌리며 물었다.

“이래서야 버스킹은 할 수 있을까요?”

“못 할 건 없긴 한데······.”

썩 하기 좋은 상황도 아니지.

“왜 날 봐요?”

“어렵겠죠?”

“내가 못 할 거 같아서 묻는 거예요?”

제정신인지는 헷갈리지만, 눈치 하난 대단하다.

물론 못 할 거 같기보단, 안 할 것 같아서 묻는 거지만.

나 하서윤이 이런 곳에서 공연을? 이란 대사를 치면서 단칼에 거절할 것 같거든.

그러자 하서윤이 발끈한다.

“나, 이보다 더한 곳에서도 버스킹 했었어요!”

누가 뭐를?

“그것도 중학생 때! 동대문 밀리오레 앞에서! 비 쏟아지는데 춤을 췄다고 내가.”

그녀의 말이 워낙 비현실적이라 그런가? 자연스레 상상력이 발동했다.

빗속에서 중학생 정도로 작아진 하서윤이 춤을 춘다. 그러다 몇 번 넘어지기도 하면서.

다른 누구도 아닌 하서윤이 그럴 생각을 하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새어나왔다.

“왜 웃어요?”

“그때 많이 넘어졌겠다 싶어서요.”

“참 내! 그렇게······많이 넘어지진 않았거든요?!”

어처구니없어하는 하서윤에게 끄덕이며 한가진 인정했다.

“확실히 춤추는 게 더 힘들었겠네요.”

“당연하죠. 훠얼씬!”

의기양양하게 못을 박는 하서윤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춤추는 거, 즐거워요?”

잠시 눈을 깜빡거리던 하서윤이 이내 콧방귀를 꼈다.

“즐겁다기보단 잘하죠.”

“아하.”

괜한 걸 물었나 보네.

“즐거운 건 노는 게 즐겁고. 쇼핑, 파티······아.”

하서윤이 쭉 읊다가 말을 멈췄다. 그리고 오묘한 표정으로 날 본다.

“요즘은 노래하는 게 좀 즐겁네요.”

노래라······.

그 말에 살짝 웃었을 뿐인데, 하서윤이 발끈했다.

“진짜예요!”

“알아요.”

“알긴 뭘 알아. 지금 딱 표정이 비웃는 거···!”

“진짜 알아요.”

“어떻게 알아요!”

어떻게 모르나.

여전히 멜로디가 아주 잘-들리는데.

멜로디가 들린지는 꽤 됐지만, 이건 들을 때마다 좀 신기하다.

멜로디가 안 들리던, 그리고 들릴 리 없다고 생각했던 하서윤이었기에.

“그냥···그냥, 알아요.”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짓자 그제야 하서윤의 발작(?)이 멎었다. 조용하고 좋네.

“아 참, 내가 여기 출연한 건 화 안 났어요?”

“······왜요? 화내줘요?”

다시 갸르릉 거리는 하서윤을 보며 볼을 긁적이며.

그러란 얘긴 아니고.

하서윤이 바닷가로 시선을 돌렸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쪽에 시선을 옮겼고.

햇빛이 부서지는 건 안 보여도 파도가 부딪혀 부서지는 건 잘만 보인다. 살벌해.

“서윤 씨가 할 수 있어도, 여긴 안 되겠네.”

하려면 할 수야 있겠지만.

바람을 막아줄 건물들도 있고, 유동인구가 더 많은 곳이 있다면 굳이 여기서 할 이유는 없지.

옆에서 하서윤도 끄덕인다.

“인정.”

그러더니 그녀가 홱 돌아서며 외쳤다.

“감독님들 다큐멘터리 찍어요? 얼른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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