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보이밴드 뉴하이 (3)
나를 왜 섭외했을지 잠시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때 무슨 결론을 내렸더라······.
그래. 과분하게도 나는 꽤 유명한 프로듀서였고, 그렇기에 인지도 면에서 손해를 보지 않고도 음악적인 지주 역할이 가능할 거란 것.
너무 진지하게, 다큐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개그맨 장영태를 섭외한 것처럼 말이다.
주재윤은 최정아, 나, 하서윤의 시상식 연행짤 때문에 이렇게 섭외한 게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했었지만 그건 말도 안 되고······
음···
‘아니겠지?’
설마 명색이 피디가 그런 식으로 출연진을 조합했을까.
뜬금없이 떠오른 생각을 걷어내고,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사실 오 피디 휘하의 제작진이 날 왜 불렀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각진 바퀴 굴러가듯 덜컹거리면 안 된다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기껏, 성공할 프로라서 유럽까지 왔는데 망치고 나갈 수는 없지.’
하루 이틀짜리 녹화도 아니고. 이 시간이면 뜨끈~한 곡을 몇 개나 만들 수 있을텐데.
모난 바퀴를 깎아내서라도 이 팀이 제대로 굴러가게 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생각을 굳히는데, 하서윤이 의문을 제기했다.
“얘랑 내가 제안한 곡은 느낌이 너무 비슷하지 않아요? 버스킹 보는 사람들이야 그때그때 달라질 테니 상관없다 쳐도, 시청자들은 똑같을 텐데요?”
맞는 말이었다. 악보 그대로 연주하고 노래 부른다면 말이지.
“그러니 꼬아야죠.”
“전부 편곡을 하겠단 얘기에요?”
하서윤이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고.
나는 끄덕였다.
“당연하죠. 악보 그대로 들려줄 거면 음원을 듣지 우릴 볼 이유가 없잖아요?”
하서윤이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렸다.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멤버들을 돌아봤다.
장영태는 감명을 받은 얼굴이다.
카리스마는 무슨. 어떻게든 이 프로를 살려보려는 몸부림이 안 보이나.
뉴하이의 이재학은 눈알을 빠르게 굴리며 상황을 파악하는 눈치고.
남원기는 회의 전이나, 이재학에게 태클을 당했을 때와 다를 것 없이 여전히 무관심한 표정이었다. 별 관심 없이 멍 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
마지막으로 최정아는······.
“좋아요, 전.”
긍정적인 대답을 내놨다.
그걸 시작으로 장영태도 뒤따라 찬성이라 외쳤다. 이어서 이재학과 남원기도 차례대로 긍정적인 의사를 밝혔고.
마지막으로 하서윤. 내가 돌아보자 그녀가 물어왔다.
“피디님이 고생할 텐데 괜찮겠어요?”
“걱정해주는 거예요?”
“······하하, 그럼요. 제가 평소에도 피디님을 얼마나 걱정하는데요.”
나긋나긋한 목소리. 살짝 늘어트린 눈웃음. 그녀가 결코 할 법하지 않은 과한 대사까지.
살짝 어색할 뻔했지만, 그녀는 베테랑답게 카메라 앞에서의 위기를 모면했다. 연기 해야겠는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데, 장영태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뭔가 화기애애한데요?”
그냥 화기 아니고?
내 속마음을 듣지 못한 장영태가 이어서 내게 묻는다.
“피디님, 그럼 이제 뭐부터 해야 하나요?”
뭘 해야 하느냐···.
나는 시선을 돌렸다. 캐리어에서 꺼내어 들고 온 오선지가 내 옆에 수북이 쌓여있다.
정석대로 가자.
“우선 코드부터 따야죠.”
#
제작진이 하나, 둘 옆 건물에서 건너오더니 우리 주변을 반원으로 에워쌌다. 학익진 마냥.
신경 쓰지 않고 계속 곡을 들으며 악보를 적어 내려갔다.
장영태가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렇게 들으면서 바로바로 받아 적는다는 게 난 너무 신기해. 난 한글 받아 적으라 해도 안 될 것 같은데.”
그건 나도 안 될 것 같은데.
시창청음이라 하지. 말 그대로 악보를 보고 그대로 부르는 것과 소리를 듣고 그대로 악보를 그리는 능력이다.
대학교 수업에도 빠지지 않고 있을 만큼 중요한 수업이었다. 그리고 이게 뭘 뜻하냐?
선택받은 절대음감의 소유자들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거다.
수업은 뭐다? 암기다.
이것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낮은 음인 베이스를 듣고.
탑노트. 즉, 멜로디를 듣는다.
그리고 이게 메이저인지, 마이너인지를 결정한다. 텐션이 있다면 그것도 함께.
물론 클래식을 들으며 악보를 그린다거나.
시창청음을 연습(-즉 계속 들어 귀에 익게 하는 것)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할 줄 안다면 그건 절대음감이 맞겠지. 적어도 난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대중음악은 어렵지 않게 카피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규칙도 있으니까.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곡을 받아적자, 지켜보던 메인 작가가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방송을 아시는 분. 악보 달라고 했으면 편곡 과정이 심심하게 그려질 뻔했는데.”
“헛. 그것까지 염두하고? 와, 작곡천재가 방송천재까지 넘보시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장영태의 엄살에 제작진들 몇몇이 웃음을 터트린다.
정신 사나워라.
한석봉 어머니는 떡을 썰 게 아니라 옆에서 잡담을 하셨어야 했다. 그러면 못 받아적었을 텐데 말이지.
“저 잠시 집중 좀···.”
“아, 옙!”
그 와중에도 메인 작가는 ‘이거잖아, 녹음실에서 한 번 더 하실 때 그 표정!’이라며 반가워하고. 오 피디도 덩달아 흐뭇해하고.
그렇게 온갖 방해 속에서 악보를 모두 그렸다.
이제부턴 편곡이라 얘기하는 지독한 미로가 남아 있지.
보컬인 최정아와 하서윤, 그리고 이재학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편곡 과정에서 멜로디도 바뀔 수 있기에.
장영태만 우리를 위한 만찬을 준비해보겠다며 부엌으로 사라졌다.
나는 다시 악보를 처음으로 돌아가, 존 레논의 Imagine을 펼쳤다. 그리고 여전히 덤덤한 표정으로, 내 건반을 쳐다보는 남원기를 보았다.
“이 곡은 원곡이랑 다르게 기타가 끌고 가볼까 하는데, 어때요?”
“···네?”
짐짓 놀라는 남원기. 확실히 볼수록 독특한 캐릭터다. 훈훈한 외모로 폼을 잡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 같지. 멍을 때리고 있었던 게 맞아.
“아, 잠시만요.”
주섬주섬 기타를 가져온다.
장영태가 독특한 캐릭터라며 웃어댔지만 남원기의 입꼬리엔 미동도 없었다.
“C 맞나요?”
“네. bpm은 75정도요.”
“그러면······.”
어떻게 쳐야 하냐고 물어볼 줄 알았는데, 혼자 뭔가 고심하더니 줄을 튕기기 시작한다.
띵-!
기타 특유의 까랑까랑한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진다. C 코드를 훑은 손이 갑자기 아르페지오를 이어간다. 이어지는 다음 음. 그리고 다음 음.
Imagine이라 생각되지 않는 선율이었다.
무슨 연주곡처럼 들린다. 자연스레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
하지만 연주가 이어질수록, 나는 감탄했다.
연주 자체가 너무 좋기도 했지만, 이게 전주라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짧은 전주가 끝나고, 그의 손이 다시 Imagine의 첫 코드로 회귀했다.
여기부터가 보컬이 들어와야 하는 시점.
기타가 우뚝 멈췄다. 하지만 울림통이 뽑아내는 여운은 진하게 남는다.
조용해진 가운데, 남원기가 날 보았다.
“이런 식으로 시작하면, 피디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음원 대신 들어야 할 이유가 될까요?”
집중력을 돋구는 아름다운 전주.
하지만 무슨 곡인지는 알 수 없게 만들고. 바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주법으로 Imagine인 걸 밝혔다. 아, 이 곡이었구나! 하고 자연스레 놀라도록.
세련된 방법이었다.
덕분에 입꼬리가 중력을 거스른다.
어느새 예능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리고 침전물 위로 보다 직접적인 감정이 튀어나왔다.
‘재밌다.’
#
작업이 한창인 와중에 장영태가 우릴 불렀다. 우르르 갔더니 온갖 음식들이 깔려있었다. 부엌은 깨끗한 채로.
뭔가 만들려 시도는 해봤는데, 첫 음식부터 망해 밖에서 사 왔다는 후일담을 듣고 한참을 웃어대다가 식사를 시작했다.
그 사이, 해가 완전히 져버렸지. 창밖이 검은 시트지를 붙인 것처럼 새까매졌고.
날씨가 안 좋아서인지 별은커녕 달빛도 흐리멍덩하다.
우리는 거실에 놓인 스탠드를 켜 은은한 분위기를 만들어놓고 다시 작업을 이어갔다.
재밌다. 즐겁다.
내가 뭔가를 머릿속에 그리면 남원기가 통기타를 무심하게 잡고서 색을 칠하듯 연주한다.
그리곤 슬쩍 눈치를 보며 ‘이렇게?’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내가 끄덕이면 그제야 표정을 풀며 다시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가고.
‘꼭 윤태영이랑 온 것 같네.’
사람도 다르고, 악기도 다른데······가장 결정적인 게 비슷하다.
같이 음악 하는 것이 즐겁다.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중간부턴 보컬들도 가세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완성 시킨 반주에 그들이 목소리를 얹는다. 그저 멜로디를 카피하듯 따라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흐르는 느낌대로.
그러다 보니 분명 과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곧장 지적하지 않았다. 이 흐름을 깨기 싫어서. 피드백 때 말하기 위해 악보에 표시해 둘뿐.
‘나쁘지 않네.’
이재학 말이다. 박경호에 비하면 많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곧잘 최정아와 어울리는 음색을 냈다.
하서윤이야 음색 자체에 뚜렷한 개성이 없는 편이라 무난하게 녹아들었고.
노래를 못한다는 게 아니다. 가창력 자체는 가수 중에서도 월등한 편에 속한다. 다만 개성의 문제일 뿐.
‘저 외모에, 춤에, 음색까지 개성 있었다면 반칙이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자신의 파트가 끝난 하서윤이 고개를 슬며시 돌렸다. 내 쪽으로. 그리고 입을 달싹인다. 뭐라는 거야?
뻐끔.
‘뭘.’
뻐끔. 뻐끔.
‘봐요.’
아.
바로 시선을 뗐다.
그러게. 이런 소리 들을 거 뻔히 알면서 뭘 보고 앉았냐.
피식 웃으며 이번엔 최정아를 보았다.
하서윤은 옆에서 내게 레이저를 쏘고 있고.
그러거나 말거나.
소리에 집중했다. 아날로그 믹서가 된 것처럼 혼자 모든 소리를 조율했다. 바로바로 악보에 적어가면서.
그렇게 조명이 흘려보내는 광원의 떨림까지 리듬으로 느껴질 때쯤.
뒤쪽에서 장영태의 가슴 벅찬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나 방송이 아니라, 힐링하러 온 것 같아.”
*
카메라들이 철수했다.
각자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물론 새벽 3시가 다 되어가는지라 얼른 자는 게 옳은 선택일 테지만.
드라이기가 없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2층 욕실을 나섰다.
바로 내려다보이는 거실.
아직 은은하게 조명 하나가 켜져 있는 그곳엔 최정아가 있었다. 키보드 앞에 앉아 악보를 들여다보고 있다.
툭. 툭.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아래로 내려갔다.
발소리에 최정아가 고개를 돌렸다.
“아, 피디님.”
“뭐해?”
“아까 피드백해주신 것들 좀 더 체크하려고요.”
“그래도 자야지.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
“잠은 죽어서도 잘 수 있잖아요.”
“죽어서 눈 감는 게 자는 거랑 같냐.”
어이가 없어 웃자, 최정아도 배시시 웃는다.
“매일 밤새시는 피디님이 할 얘긴 아닌 것 같은데···.”
“그러게. 나도 말해놓고 어이가 없었다.”
내가 슬쩍 바닥에 앉았다.
“그래도 넌 푹 쉬면서 해야 해. 전적이 있잖아.”
“이젠 정말 괜찮아요. 그땐 부담감에 막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느낌이었는데, 이젠 완전 괜찮아요. 피디님이 꺼내주신 덕분에.”
“나야 뭐······.”
“그리고 지금은 노래 부르는 게 즐거워요. 내가 뭘 잘하는지도 어느 정도 알게 돼서 자신감도 붙었고요.”
“다행이네.”
진심으로 답했다.
다시 한번 환하게 웃어 보인 최정아가 다시 피드백이 적힌 악보를 내려다본다. 빽빽하다. 내 악보처럼.
“내일 기대 돼요. 피디님 반주에 노래 부르는 거, 옛날에 영상 찍으려고 합주실에서 연습했을 때 이후론 처음이에요.”
그런가.
하긴, 회사 안에선 내가 세션을 녹음할 일은 없었으니까.
끄덕이다가 문득 미국으로 갈 때 최정아가 전화로 했던 말이 떠올라 입을 열었다.
“네가 얘기했던 유럽 녹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럽에서 같이 연주는 하네.”
최정아가 악보를 보며 끄덕이다가 갑자기 고개를 홱 들었다.
“아, 그래도 그거 꼭 할 거예요. 유럽 녹음.”
그런 그녀를 보며 내가 푸스스 웃었다.
“그래, 더 열심히 해보자.”
그렇게 몇 가지 대화를 더 나누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정아를 설득해 그녀의 방에 밀어 넣고서 나도 다시 계단을 밟았다.
복도 끝, 내 방.
얼른 머리 말리고 자야겠단 생각을 하며 코너를 돌았는데, 누군가 서 있었다.
식겁했다. 다행히 소리는 안 질렀고.
전부 다 깨울 뻔······.
고개를 기울이며 다가가니 은은한 조명에 얼굴이 선명해진다.
그리고 의문이 솟았다.
‘이 친구가 왜 날 찾아왔지?’
뉴하이의 보컬, 이재학이 서글서글한 미소를 띤 채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