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30화 (130/221)

130. 보이밴드 뉴하이 (1)

붉었던 표면이 순식간에 갈색으로 물든다.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고, 고기가 뒤집힐 때마다 큰 눈망울 한 쌍이 반짝거렸다.

“어제 스태프들이랑 1차하고, 집에 가서 가족들이랑 2차 했다며.”

끄덕.

“어머니가 소고기 잔뜩 사 오셨다고 하지 않았나?”

끄덕.

“근데······.”

“피디님, 고기 타요.”

“아, 그래.”

얼른 뒤집었다.

최정아도 자신의 앞에 놓인 고기를 정성스레 뒤집는다. 그리곤 내가 보기엔 조금 붉은 감이 있는 걸 집어 입속에 넣고 오물거린다. 몇 초 뒤, 한 점 더. 거기에 파무침까지.

지금껏 최정아를 보면서 식탐이 있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식탐 그 자체를 보는 것 같다.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최정아의 옷차림이 보였다. 레깅스에 트레이닝 저지. 그녀는 오전 내내 운동을 하고 온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좀 바뀐 것 같네.’

마냥 가녀리다고 생각했던 최정아에게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얼굴색도 좋아진 것 같고, 전체적으로 뭐랄까. 건강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처음엔 체중 유지로 시작한 헬스, 필라테스 같은 것들이 점차 살인적인 스케줄과 연습량을 견디기 위한 생존 활동이 되면서 강도가 점점 늘고 있다고···.

아무튼, 여러모로 훨씬 좋아 보이긴 하네.

“아 참.”

고기 굽기에 정성을 쏟는 최정아에게 말문을 뗐다. 어제 말하려던 게 정신이 없어 나조차도 까먹었었지.

“유럽에서 촬영한다는 예능 있잖아.”

“아 그 버스킹하는···.”

“응.”

“그거 왜요?”

“그게 나한테도 들어왔어.”

“······.”

오물거리던 입술이 멈칫했다.

불판에 고기와 함께 얹어져 있던 그녀의 시선이 어느새 나에게로 박혔다.

“피디님한테도요? 같이, 저랑 같이 출연하는 걸로요?”

“응.”

“오. 와. 잠깐. 그럼 같이 가요? 유럽? 가서 피디님이랑?”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질문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저 그거 할래요.”

“원래 하겠다고 했었어, 너.”

“더 강한 긍정이에요.”

고기를 볼 때보다 더 반짝이는 눈으로 날 보고 있다.

“고민 중이었는데, 널 보니 해야 할 거 같네.”

“해야죠. 합법적으로 해외여행 가는 거잖아요?”

“애초에 해외여행이 불법은 아니지.”

말문이 막힌 최정아가 답답한 듯 물을 들이켰다.

“아무튼요. 피디님이 출연해야 아더 레이블도 좋고, 또, 곡 나올 한울 오빠도 좋고, 또···피디님도 좋고, 저도 좋고.”

“뭔. 다 좋네?”

“그니까 해야죠. 전 피디님이 했으면 좋겠어요.”

덕분에 가뜩이나 기울어져 있던 추가 점점 더 하는 쪽으로 쏠린다.

하서윤이야 만나면 왜 왔냐고 틱틱댈지 모르겠지만, 그거야 이제 면역력이 꽤 생겼고.

이게 괜찮은 기회란 건 확실하다. 최정아가 늘어놓은 이유만으로도 말이다. 근데 심지어 이거, 잘 되는 프로란 말이지.

그리고···.

나는 최정아를 물끄러미 보았다.

‘···소속 뮤지션이랑 예능 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고.’

“근데 정아야.”

“네?”

“고기 탄다.”

“엇!”

잠시 후.

나는 잠시 고깃집 테라스로 나왔다.

전화가 왔기 때문에.

그것도 유재완 대표의 전화.

-콘서트가 성공적이었던 것 같네. 직원이 내게 찍어 보낸 사진은 형편없었지만.

어제 실장급 직원 한 명이 사진 한 장 찍으려 분주한 건 나도 봤었다.

비단 이번 공연뿐만이 아니다.

항상 대표에게 사진 등으로 진행 상황을 보고하지.

하지만 오페라 홀 특성상 사진 촬영 자체가 아예 불가능했다. 곳곳에 배치된 공연장 측 직원들에 의해 계속 제재되는 것도 봤다.

결국, 한 컷 찍긴 했나 보네. 고생한 만큼의 평가는 못 받는 듯싶지만.

“사진 촬영이 힘들었을 겁니다.”

-뭐, 그렇다고는 하더군. 하여튼 그쪽 업계가 융통성이 없긴 해.

내가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

이윽고 유재완 대표가 서두를 꺼내려는 듯 ‘자네···’라며 말꼬릴 늘리더니.

-인사팀에 한 번 들르게.

곧바로 본론이 툭 던져졌다.

내가. 그것도 2월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 인사팀을 갈 일은 하나뿐이지.

-자네가 얘기했던 조건. 그대로 계약서에 옮기기로 했으니.

#

내가 원했던 조건대로 재계약에 성공했다.

솔직히 좀 놀랐다. 보통 거래의 기술? 따위로 불리는 게 있잖나. 10을 얘기해서 7, 8을 받아내는. 근데 10을 불러서 10을 온전히 받아낸 셈이었다.

나를 레이블의 대표로 앉힐 때도 그렇고, 화통을 삶아 먹은 듯 시원시원한 양반임은 분명하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후, 곧바로 재계약에 관한 기사가 나가진 않았다.

TKM이 필요로 할 때. 그때 보도자료들이 나갈 테지.

쟁여두는 거다. 기삿거리를. 연예계라는 게 당장 내일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세계니까.

일례로 마이원 엔터테인먼트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막 빛을 보던 회사였는데, 풍랑을 거하게 만났다.

아이틴이란 그룹 하나에 의지하고 있던 회사인데, 거기서 섹시 아이돌로 가장 주목받던 세은이 스캔들에 휩싸여버렸지.

스캔들이야 금방 잊혀지지 않냐고?

맞다. 금방 잊혀졌다. 스캔들도. 그리고 세은과 그녀가 속한 아이틴도.

‘비슷한 컨셉의 걸그룹들이 대거 데뷔하며 더욱 빠르게 잊혀졌지.’

떠도는 얘기를 들어보면 반강제로 중국진출을 하게 될 거라던데. 거기서 잘 되면야 다행이겠지만, 글쎄. 적어도 내 기억에 아이틴이 중국에서 잘 됐다는 기사는 본 적이 없네.

반면, 최정아의 콘서트는 평론가들의 극찬과 일부 뇌피셜에 가까운 트집으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시도 자체에 박수를 쳐주는 이가 있는가 하면 현대판 귀족을 위한 공연 아니냐며 성난 이도 존재했던 것.

‘물론 다른 공연들과 티켓값이 차이 없다는 팩트를 두드려 맞고 모두 댓글 창에서 사라졌지만.’

새로운 경험이었다는 공연 후기들이 올라오며 호평과 시기 사이에서 화제 몰이 중이다. 그리고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TBC에서도 보도자료를 뿌렸다.

몇 달 전부터 제작이 된다고 전해져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의 기대를 모았던, <거리 악사>. 그 출연진들을 공개한 거다.

방송 내내 매니저 역할을 하게 될 개그맨 장영태. 보컬을 맡을 하서윤과 최정아. 떠오르는 보이밴드 뉴하이의 멤버 둘이 출연한다는 소식이 덧붙여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도 끼어있었고······.

-오, 영국! 유럽에서 버스킹 하기엔 영국이 딱이긴 하지.

-우리 뉴하이 잘하자! 재학아 네 보컬 실력을 보여줘! 저 사이에서 기죽지 말고!

-왜 우리 경호는 없냐···.

-그래서 언제 한다고요? 방영 때까지 저 숨 참습니다?

-이 와중에 하서윤, 최정아, 기로 프로듀서면 레드카펫 연행짤의 주인공들 아님?

-맞네. 현행범짤ㅋㅋㅋㅋ

-하서윤에 최정아에 뉴하이 이재학이라니. 라인업 미쳤네. 거기에 기로 프로듀서가 편곡 딱 하면! 캬! 일 잘한다, TBC.

반응이 좋다. 아니, 폭발적이다.

최정아나 하서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저 뉴하이라는 보이밴드가 보컬인 이재학을 중심으로 엄청난 인기몰이 중이기에 반응이 폭죽처럼 펑펑 터질 수밖에.

저 틈에서 나야 뭐······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기사를 나왔다.

널찍한 연예란. 그곳에 빽빽이 들어선 온갖 기사들 위로 방금 올라온 따끈따끈한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레드리시, 빌보드 앨범차트 200 진입! 과연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기대!>

#

-지은이 삐졌어요.

레드리시의 드러머, 이병국의 말에 내가 되물었다.

“아직도요?”

-아뇨.

“···?”

-새로 삐졌어요.

음.

“이번엔 무슨 이유로···?”

-피디님 새로 예능 들어가는 거요. 그거 자기도 하고 싶대요. 자기 한국 들어갈 거라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어요.

허탈하게 웃었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 40위에 콘서트는 연일 매진 행진인 슈퍼 밴드가 예능이 하고 싶어 한국에 들어오겠다니.

“그래서요?”

-충격을 줬죠, 하서윤과 최정아 같은 분들 사이에 너가 끼는 건 좀······이랬더니 잠잠해지더라고요.

달랜 게 아닌데?

-부작용은 살짝 있었어요.

“뭔데요?”

-음······피디님을 조금 더 미워하게 된 것 같아요.

하하. 그것참 다행이긴 개뿔.

왜 화살이 나한테 향하는 거지.

성공하라고 유학 보내놨더니 오히려 원망하는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건가.

퍼석퍼석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축하해요. 지은 씨랑 성운 씨 오면 꼭 전해주고요.”

-넵! 모두 피디님이 덕분입니다. 이 앨범 같이 만든 거잖아요. 사실 초기의 피디님 손 안 닿은 버전 생각하면······어후.

곡 길이가 단편 영화 러닝타임이었던 게 생각나 낮게 웃었다.

이병국이 밝게 인사한다.

-녹화 잘 마치고 오세요! 아, 오시는 건 아니지.

그치. 그러려면 내가 미국으로 가야 하는데.

곧 만날 것을 기약하며 기분 좋게 전화를 끊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누구보다 잘 해내고 있다.

내가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곡이든, 미팅이든, 방송이든.

명색이 프로듀서에 대표인데, 뮤지션들에게 득은 못 될지언정 실이 되어서야 면이 안 서니까.

뿌듯한 마음에 적절한 부담감을 느끼며 창밖에서 눈을 뗐다. 그러자 원룸 바닥에 널려있는 옷가지들이 시선에 들어온다.

매트리스 위에 앉아 캐리어를 펼쳤다.

차곡차곡 담다가 작은 미니 건반이 손끝에 걸렸다.

37 건반 짜리 리페이스 CP.

건전지 구동의 휴대용 건반으로 좋은 소리가 내장되어 있어 스케치하기에 유용한 건반이다.

장비야 제작진이 모두 챙기기로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꺼내두었지.

옷가지 사이에 끼워 넣는데, 입꼬리가 진하게 올라갔다. 심장도 두근거린다.

낯설지 않은. 하지만 정말 오래된 것 같은.

버스킹이라······.

‘진짜 얼마 만이냐.’

#

“버스킹을 하다가 기로 프로듀서님을 처음 만났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요?”

인터뷰어의 질문에 최정아가 입매를 올렸다.

“사실 그게 처음은 아니었구요. 알바를 했던 카페에 단골손님이셨어요. 그러다 주말에 버스킹을 하다가 또 만났던 거고요.”

“와, 정말 인연이란 게 있나 보네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최정아가 활짝 웃었다.

“피디님이 그날 저 구해주시기도 했어요. 조금 취하신 분이 다가왔었거든요. 그때 피디님이 아는 척을 해주셔서······더 신기한 건 그날 이후로 제가 버스킹을 쉬고, 오디션 준비를 했는데, 그게 마침 TKM이었던 거예요. 오디션장에서 또 피디님을 만나서······.”

봇물 터지듯 나오는 이야기들.

평소 최정아의 평소 이미지가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기에 인터뷰어는 웬 횡재냐는 듯이 끄덕였다.

그렇게 양쪽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인터뷰가 끝났다.

최정아가 자신의 밴에 올라탔다.

뒷자리엔 커다란 캐리어가 기다리고 있었다.

“잊은 거 없겠지?”

그녀의 혼잣말에 핸들을 잡은 김 실장이 물었다.

“엄청 기대되나 보네?”

“네. 저 영국 처음 가보거든요. 아니, 유럽 자체를 처음 가봐요. 오빠는요?”

“나야 배낭여행으로 두 번 정도 갔었지.”

“와······.”

김 실장이 인중을 훔치며 웃었다.

그는 공항으로 향하며 자신이 기억하는 영국을 설명했다.

빅밴에 대한 얘기까지 넘어오자 최정아는 ‘홍 작가님이 갔다던 램버스브릿지도 구경할 수 있으려나···’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밴이 어느새 공항 근처까지 도착했을 무렵.

내릴 준비를 하는 최정아에게 김 실장이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기회에 하서윤이랑도 친해져 봐. 연예계에 오래 있었으니까 배울 점도 많을 거 같은데.”

하지만 마지막 메이크업 점검 때문일까.

최정아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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