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29화 (129/221)

129. 잔향

을씨년스럽게 바람을 따라 흩날리던 눈이 그치고, 먹구름 사이 사이로 윤곽선이 또렷한 빛살이 땅으로 내리쬐기 시작했다.

-어디에요?

서행하는 앞차를 따라 브레이크와 밀당을 하는데 전화가 왔다. 오늘의 콘서트의 주인공인, 최정아였다.

“지금 보여.”

-저, 저요?

주변을 둘러보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길래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니, 건물이 보인다고.”

-아···난 또.

늘어지는 말투로 얘기하던 최정아가 불쑥 물었다.

-근데 이 건물, 엄청 멀리서도 보이지 않아요?

“그치. 그래서 아직 멀었단 얘기고.”

웃으며 말하다 불쑥 걱정이 밀려와 물었다.

“근데, 왜?”

혹시 무대나 컨디션에 문제가 있는 건······.

-얼른 오시라고요. 저희 부모님 곧 오시거든요. 지난번엔 제대로 인사 못 드렸다고 오늘 꼭 뵙고 싶으시대요.

아니구나.

다행이네.

언젠가부터 급성 불안증에 시달리고 있다. 걱정 인형이 된 기분이랄까.

무슨 일만 했다 하면 문제가 한두 개씩 터져대니 이게 퍽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알겠어. 얼른 갈게.”

-네!

밝게 대답하는 목소리를 듣고 기분 좋게 전화를 끊었다.

타이밍 좋게 전화벨이 연달아 울린다.

이번엔···.

-······.

“······.”

-······.

“뭐에요?”

-말이 없길래 나도 안 했죠.

“보통은 먼저 전화 건 쪽이 하지 않아요?”

-글쎄요. 내가 먼저 전화 거는 일이 흔치 않아서.

무슨 소리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궁금해지는 여자다. 멜로디의 비밀만큼이나 궁금해.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오 피디님한테 얘기 들었어요. 새로 들어가는 예능 출연한다면서요?

“아, 뭐······그런데요?”

-나도 그 프로 제안받았거든요.

“···네?”

-뭐예요, 그 반응?

“아닙니다. 그래서요?”

-찜찜해···무튼! 나도 그거 한다고요. <거리악사>.

“그렇군요.”

-피디님이 출연한다길래 솔직히 안 할까 싶었는데, 방송 기획이 너무 좋더라고. 유럽 거리에서 버스킹이라는 게 꽤 재밌을 것 같아서. 그래서 한 거예요.

문득 궁금해진다.

좀 괜찮아졌다 싶을 때면 이렇게 전화해서 ‘난 네가 퍽 싫어요’라고 티를 내는 이유가 .

어쨌든,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으니 고쳐줘야겠지.

“근데 다행히도 아직 제가 확정된 건 아니네요. 정아 출연 논의 중에 갑자기 저까지 끼워진 거라···.”

-······.

“···여보세요?”

-그래서. 안 해요?

갑자기 목소리가 고체화되었다. 딱딱하다. 툭 치면 와장창 깨질 듯이.

“고민 중이에요.”

-레이블에 도움이 될 텐데?

“저희 레이블 걱정도 해주는 거예요?”

-그야···!

포토존에도 같이 섰으니까···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았는데? 아닌가?

“아무튼, 안 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너무 심려 말라고요.”

-고오맙네요. 발 쭉 뻗고 자겠네요.

“벌써 자요?”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요. 말이!

“아.”

-아, 는 무슨!

전화가 뚝 끊겼다.

음···.

다음에 만나면 캐모마일을 구해다 줘야겠다. 찐한 거. 즙. 농축액 정도로. 그게 심신 안정에 좋다더라고.

그러다 멀리 툭 솟아있는 빌딩을 보며 좀 전의 통화는 생각 뒤로 넘겼다.

다시 기분이 끓어오른다.

오늘만은 서울의 랜드마크가 아닌, 최정아의 콘서트장이다.

오페라 홀에서 울려 퍼질 오케스트라. 그리고 최정아의 목소리를 떠올리니 기대감이 차곡차곡 탑을 쌓았다. 도착할 때쯤엔 저 타워보다도 더 높아졌다. 기대감이.

곧장 올라온 대기실.

문 앞에 최정아의 매니저, 김 실장이 붙어 서 있다.

“정아 부모님, 오셨나 보네요?”

“네.”

김 실장이 푸스스 웃는다.

문 안쪽에선 시끌벅적 난리가 났고.

“손에 그건 뭐예요?”

내가 묻자 김 실장이 들고 있던 박스를 내려다보며 웃는다.

“들어가 보세요. 피디님 것도 있어요. 제 거보다 크던데요?”

이거보다···?

낄낄 웃는 김 실장을 뒤로하고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문이 열리며 대기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최정아와 그녀의 가족들도.

“피디님!”

최정아가 웃으며 반겼다.

동시에 매우 호의적인 시선들이 내게로 쏟아졌다.

“대표님 오셨네.”

“오랜만입니다. 대표님.”

최정아의 부모님에게 얼른 다가섰다. 그녀의 아버지가 손을 뻗길래 맞잡고 고개를 숙였다.

“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다음은 어머니였다.

최정아의 어머니는 온화한 미소를 흘리다 돌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대표님, 이전에 봤을 때보다 안색이 안 좋으시네. 하긴 한 회사의 대표인데 오죽하겠어. 그럴 줄 알고 내가······.”

나왔다. 김 실장이 말한 박스. 안에 슬쩍 보이는 건 팩에 담겨있는 콜라만큼 진한 검은 액체. 한약인가?

옆에 있던 최정아의 남동생이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렸다.

“엄마, 그만해. 무슨 물건 팔러 온 사람 같아!”

최정아의 동생답게. 엄청 잘생겼다.

“가만있어 봐. 대표님이 건강해야 니 누나도 승승장구하는 거야.”

“언젠 사기꾼일 거라더니.”

“얘는! 내가 언제 그랬다고···.”

“누나 SNS로 뜨기 직전에! 뭔 프로듀서가 돈도 안 받고 키워주냐면서 조심하라 그랬잖아!”

하하. 그런 건 나 없을 때 얘기하셔도 되지 않을까···.

“진혁이 장난 그만 치고. 대표님 난처해 하신다. 여보, 얼른 드려.”

“그래서, 이게 몸에 진짜 좋은 즙인데······.”

손에 박스가 들렸다.

이어서 최정아 남동생이 같이 사진 찍어달란 부탁을 해왔지만, 최정아에 의해 가로막혀 그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다행이지. 오징어가 될 뻔했거든.

연신 감사하다는 부모님의 인사에 즙 잘 마시고 힘내서 더 열심히 하겠다며 답했다. 그리고 방해 그만하자는 아버지의 성화에 밀려 가족들이 대기실을 떠났다.

“휴···.”

최정아가 한숨을 내뱉는다. 옅게 웃으며.

“좀······정신없죠?”

“이런 건 화목하다고 하는 거지.”

최정아의 웃음이 짙어진다.

“나도 슬슬 입장하러 갈게. 여기 그런 거 되게 엄격해.”

“네. 그리고······감사해요.”

“또?”

“네. 또요. 공연 때마다 감사할래요.”

웃음이 나에게도 번졌다.

“그 말이 무색하지 않게, 더 열심히 해볼게.”

“지금까지보다 더요? 그러다 쓰러져요.”

“괜찮아. 이 즙이 있잖냐.”

“그거······.”

“응?”

“아녜요. 많이 마셔요.”

갸웃거리며 대기실을 나섰다.

김 실장이 아직도 복도에 있다. 믹스커피를 뽑아 먹었는지 입에 종이컵을 물고서, 손에는 박스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핸드폰을 하면서.

“안 들어가고 뭐 해요?”

“아, 이거 효능 검색 좀 하느라.”

“즙이요?”

내 물음에 김 실장이 실실 웃으며 답했다.

“네. 이게, 몸에 진짜 좋은 거래요. 특히 남자한텐 더더욱.”

#

붉은 패브릭으로 되어있는 의자에 앉았다.

적당 푹신. 적당 시원.

그리고 앞에서 세 번째 줄. 왼쪽 끝자리.

시선을 살짝 돌리니 중앙에 일렬로 앉은 최정아의 가족들이 보였다. 저 모습이 왜 내가 다 뿌듯하냐.

웃으며 무대를 보았다. 빈야드라고 했었나?

고급스러운 자색 조명을 받은 아치형의 구조물들이 은은하게 빛을 반사한다.

들어오는 관객들 모두, 낮게 감탄한다.

그럴 수밖에.

클래식이 좋아서, 클래식에 조예가 깊어서 오는 이가 몇이나 되겠나.

대부분이 최정아의 팬들이다.

그러니 생소한 콘서트 환경에 입을 벌리는 건 이상한 게 전혀 아니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로 저런 표정이었고.

‘멋지네···.’

책임자라는 사람이 왜 이곳을 우리에게 빌려주지 않으려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이런 공간이······자신이 사랑하는 클래식을 위해서만 존재하길 바라는 것도.

하지만 결국 최정아가 무대에 서게 되었지.

무대의 조도가 낮아진다.

그리고 여러 실루엣들이 무대 위로 올라온다.

악기가 조율되고, 조도는 점점 더 어두워져 마침내 툭, 하고 암전되었다.

이윽고, 하나의 인형이 더 무대 위로 올라선다.

제대로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무대의 주인공이 올라섰다는 걸.

몇몇 사람들이 환호하려는 듯 소릴 내었지만 이내 삼킬 수밖에 없었다. 길게 이어지는 바이올린 소리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한 음이 길게. 더 길게 이어진다.

그렇게, 모두의 집중 속에서.

-!

공연이 시작되었다.

#

긴장감이 도는 상황실에도 음악이 밀려들어 왔다.

여교수는 팔짱을 낀 채로 무대를 내려다보았다.

와이너리(Winery)를 연상케 하여 빈야드(Vineyard)라 불리는, 국내에선 독보적인 클래식 전용 홀.

하지만 지금, 무대에서부터 전해지는 울림은 온전한 클래식이 아니었다.

안타깝다.

클래식을 위한 무대에서 올해의 첫 무대가 클래식이 아니라니.

하지만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지금 들려오는 연주가 클래식을 아주 휼륭히 흉내 내고 있었고, 어느 부분에서도 클래식을 훼손하지 않고 있다는 거다.

클래식이란, 이미 완벽한 형태 위에 필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대중음악이란 프레임을 씌웠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순간, 내심 기다리고 있던 가창자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목소리로 만드는 주선율.

다른 모든 음을 딛고, 아치형의 곡선을 타고 올라 천장 어귀의 공간까지.

2초 27.

최고의 잔향을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계산된 오페라 홀에 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잔향이 여교수의 몸을 쓸었다.

피부가 쭈뼛 선다.

‘하···.’

새어 나오는 헛웃음.

방금 이 공간이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성악 발성도 아닌, 저 가창자의 목소리가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담고 있는지.

그 작곡가에 그 뮤지션이라···

여교수는 넋을 놓고 무대를 지켜보다 어느 순간 퍼뜩 팔짱을 풀고, 펜을 들었다.

감탄은 그만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때였다.

#

뉴스로만 보던 칸 영화제를 연상케 한다.

공간이 주는 힘 때문일까. 함성 대신, 박수 소리가 줄기차게 터져 나온다.

앙코르곡까지 모든 공연이 끝난 이 순간에도 사람들은 최정아를 향해 긴 박수를 보내고 있다.

함께 인사하던 현중 필하모닉 단원들이 무대의 주인공인 최정아를 남겨두고 무대를 내려갈 때쯤, 나도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못다 한 박수는 최정아의 바로 앞에서 해주리라.

하지만 그 전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최연석 감독. 그리고 이 공간의 책임자.

현중 필하모닉의 대기실 쪽으로 향하니 복도에서 그 둘을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둘은 생각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무언가를 얘기하다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장 대표!”

최연석 감독이 날 불렀다.

다가가는데 책임자인 여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튼, 고쳐야 할 것들 투성이야.”

하는 말과는 달리 어투는 산뜻하다.

뭐가 투성이란 거지?

우리의 무대를 두고 하는 얘긴가?

나는 내내 감탄만 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는데.

뭔가 꼬투리를 잡힌 건가?

그때 최연석 감독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오픈한지 반년도 안 된 무대잖습니까. 애초에 오페라 홀에는 완공이란 건 없고.”

“계속 보완해 나가야 하는 공간이니까. 뭐, 뜻밖의 수확이지. 이번 공연으로 보이지 않던 결점들도 확인했으니.”

아···?

순간 머리를 두드렸던 복잡한 감정들이 쑥 내려갔다. 걱정 인형이 또 발동했네.

안도하며 최연석 감독 옆으로 다가선다.

나를 훑는 책임자의 시선.

그녀를 향해 인사했다.

“아더 레이블, 장기로입니다.”

“작곡자이자 편곡자. 그리고······지휘자?”

“네?”

되묻자 여교수는 최연석 감독을 보며 슬며시 웃었다. 최연석 감독의 웃음소리도 귓등을 친다.

뭐지?

여교수가 다시 날 보았다. 웃음의 잔향이 남은 채로.

“난 아직 클래식이 대중화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뜬금없이 조금은 진지한 화두가 던져졌다.

하지만 내 대응을 원했던 건 아닌지 그녀가 말을 이었다.

신중한 표정으로.

“하지만 만약 내가 틀렸다면. 대중화가 되어야만 한다면······.”

더 신중한 자세로.

“그게 장 대표의 방식이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그리고 다시 미소로.

“오늘 공연 잘 봤어요. 계속 그렇게 음악 자체를 향유 해줘요. 늙은 나는 마지막 남은 고집을 부리며 클래식을 지켜 갈 테니.”

뜬금없던 화두가 오늘 공연에 대한 평으로 귀결되었다.

그리고는 발걸음을 옮긴다. 최연석 감독에겐 인사도 없다.

분명히 지금 이 장면이 드라마였다면, 멋진 엔딩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교수님.”

난 아직 해야 할 말이 남아 있단 말이지.

아름다운 이별. 멋진 엔딩 따위가 되긴 글렀단 소리다.

“내년에도 여기서 하고 싶은데요. 이 공연.”

최연석 감독이 옆에서 크게 웃는다. 역시 나라면서. 여교수도 황당한 표정으로 날 빤히 본다.

왜?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저렇게 호의적일 때 약속을 받아놓는 게 좋잖아?

이내 피식 웃는 여교수.

그녀가 끄덕인다.

“내년에 또 들어볼게요. 그럼 그때의 내가 선택을 할 테니. 더 유연해져 있을 수도 있고, 더 꼬장꼬장할 수도 있으니 감안 하시고.”

애매한 약속을 남기고, 여교수가 떠났다. 최연석 감독은 역시 꼰대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뭐랄까. 무대 위에서나, 밖에서나 아주······.

완벽한 마무리였다.

첫 최정아의 단독 콘서트는.

‘그리고 이곳에서 두 번째도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

내가 그렇게 만들 생각이니까.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마침 핸드폰이 울렸고.

주인공의 목소리가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오늘 오페라 홀 전체를 울리던 그 목소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가녀리고, 간드러지게.

-어디에요?

내가 벅차게 웃었다.

“지금 가려고.”

박수를 준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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