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VMN 어워드 (3)
아더 레이블로 온 지 1년이 좀 넘었다.
시간이야 지나고 나면 항상 빨랐다 싶지만, 이번엔 유난히 짧았다 느끼는 김학준이었다.
‘많은 일이 있었지···.’
회사에서 장기로를 응원하며 과장님한테 혼나기도 하고.
직원들에게 이거 들어보라며, 친한 동생이 작곡한 거라며 홍보하고.
그러다 어느새 히트곡 작곡가가 되어 연예란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기로를 보면서 왠지 모를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 모든 과정을 지나 기로가 내민 손을 잡았다.
음치를 찾는 방송에 출연해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게 되고, 마침내 데뷔했지.
차트인이라는 꿈도 못 꾸던 일이 벌어졌다. 천천히 오르더니. 기로의 유명세까지 더해져 상위권까지 올랐다.
‘성공적인 데뷔였지.’
방송 출연 덕분일까?
그 이후로 찾는 곳이 많아졌다.
특히 예능에서.
재미도 있었다. 나 자신이 굉장히 쓸모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김학준 대리가 아닌, 뮤지션 한울로서.
점점 더 많은 예능 피디들이 나를 찾았고, 나는 짧은 노래와 긴 입담을 펼쳤다.
그때부터였다.
기껏 다시 붙잡은 노래와 차츰 멀어지기 시작한 건.
돌아보니 레이블엔 많은 이들이 채워져 있었다. 모두가 재능 넘치는 뮤지션들이었다.
김학준 자신은 도저히 저렇게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진짜 재능들.
‘내가 잘하는 건······예능이구나.’
동생 알바를 그만두게 했다.
‘거봐, 역시 예능을 하니까···.’
집을 샀다.
‘역시 방송을 하니까···.’
기로가 찾아왔다.
곡 작업이 본인에겐 쉬는 거라면서.
역시···.
‘왜 또 싫다 하게?’
‘······.’
역시, 나는 음악이 좋았다.
도망치는 것도 습관이라 했다.
졸업하고는 회사로 도망치더니. 이젠 방송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웃는 낯으로 자책하며 하겠다고 말했다.
그날, 참 늦게까지 기로와 음악에 대해 얘기했다. 정말 오랜만에.
그리고 지금, 김학준은 무대 위에 서 있다.
VMN 어워드.
국내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시상식이자 뮤지션들의 축제.
VMN이 만든 이 무대가, 김학준에겐 장기로가 깔아준 판처럼 느껴졌다. 아니, 저 아래에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니 확실한 것 같네.
기분이 좋다.
컨디션도 좋다.
노래가 잘 불러 질 것 같았는데,
정말 그럴 느낌이다.
느낌이······
아닌가?
생각할 수 없었다. 곡이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었기에. 집중해야 했다.
곧 고음 파트.
애초에 가진 음역대가 높은 그였기에 올라가지 못할까 하는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고음으로 올라갈수록 음색이 답답해진다는 약점이 걸렸다.
아니나 다를까, 답답해진다.
스멀스멀 느껴지는 먹먹함이 목을 삼킨다.
목에 얇은 막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평소처럼.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오늘 컨디션이 너무 좋다는 것 정도?
김학준이 최대한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벌어진 입 사이로 고음이 뛰쳐나왔다.
#
무대 뒤편에는 수많은 표정들이 머문다.
후회, 아쉬움, 자책, 얼떨떨, 후련, 뿌듯.
김학준은 그중에서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이게 뭔가 싶었다.
‘연습 때보다도 훨씬 잘···한 거 같은데? 아닌가?’
헷갈렸다.
믿겨 지지 않아서.
인이어로 모니터링되어 들려오는 자신의 목소리는 분명히 평소와 달랐다.
잠시 답답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뚫고 나왔다. 청아한 고음이. 성대를 박차고서.
‘다시 할 수 있을까?’
단순히 컨디션이 너무 좋은 날이라.
목 상태도 최고고, 여러모로 모든 게 맞아 떨어진 날이라.
그래서 그런 거려나?
‘한 번 더 불러봐?’
목을 큼큼거리며 작게나마 불러보려다 말았다.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타 기획사 뮤지션들과 분주한 스태프들.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그들 사이에서 매니저가 성큼 다가온다.
“나 어땠······.”
그가 불쑥 핸드폰부터 내밀었다.
무슨 일 있나 싶어 재빨리 받아든 김학준의 눈에 동생 녀석의 메시지가 주륵 떠오른다.
한 번에 보낸 게 아닌, 공연 내내 보낸 메시지들.
[형, 파이팅!]
[오, 시작 좋아!]
[오늘 진짜 좋은데? 나 같은 막귀한테도 이게 들릴 정도면 엄청 대단한 거 아냐?]
[와! 형 오늘 대박이야!]
[인터넷 반응 봐봐. 미쳤어!]
김학준이 마지막 메시지를 읽고는 피식 웃으며 포털 사이트를 열었다.
실시간 반응들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고.
동생의 메시지대로였다.
올라오는 대부분의 반응들이 김학준, 자신에 관한 얘기들이었다.
미쳤다고 하기엔 과장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분명 평소와는 다른, 뜨거운 반응들이었다.
곡빨이라던 사람들 다 어디 갔냐 느니.
곡도, 편곡도, 가창도 모든 게 완벽했다느니.
“······자, 여기.”
어느 정도 읽다가 핸드폰을 다시 매니저에게 건넸다.
“왜, 더 보죠? 그 밑에 좋은 댓글 더 많은데. 악플 없었어요.”
“악플 있을까 봐 그만 본 거 아냐.”
“그럼요? 어디 아파요? 형 댓글을 안 봤으면 안 봤지, 보다가 브레이크 걸진 않잖아요?”
“너 날 언제부터 이렇게 잘 알았냐?”
“훗. 매니저로서 이쯤이야. 형은 관종이니까요.”
김학준이 자신의 매니저를 빤히 보다가 웃음을 터트리며 끄덕였다.
“기로가 왜 널 나한테 붙였는지 알겠다.”
“대표님이요? 왜요?”
“지랑 닮아서.”
그러면서 덧붙인다.
“댓글 반응은 오늘 밤에 천천히 곱씹을 거야.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지금은 더 중요한 반응이 있어서 그거 들으러 가야 해.”
“···?”
김학준은 간단하게 마이만 갈아입고서 다시 시상식장으로 들어섰다.
비어있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 조심스레 앉았다.
“왔어?”
다른 뮤지션들의 공연을 지켜보던 장기로가 시선을 돌려 묻는다.
김학준이 주억거리자 장기로가 작게 말했다.
“형, 오늘 최고였어.”
이 짧은 한마디가, 딱 그가 기대하던 반응이었는지, 김학준이 만족스레 웃으며 답했다.
“고맙다.”
서기영이 옆에서 엄지를 날리는 것에 시선을 빼앗긴 김학준은 보지 못했다.
자신이 대답하는 순간, 장기로의 눈이 살짝 커지는 것을.
최근 운동을 더 열심히 해 팔뚝이 터질 것 같은 서기영의 엄지 척에 김학준이 징그럽다며 티격태격하고 있다.
이를 보며 장기로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바꼈네···.’
#
<[레드카펫 이모저모] 여신미 뿜뿜한 두 뮤지션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기로 프로듀서>
<아더 레이블, 박경호 뉴아티스트 상 수상!>
<최정아, 올해의 앨범 상, 장르 콜라보레이션 상, 올해의 여자 가수 상···3관왕!>
“시청률이 괜찮게 나와서 문책은 면했는데, 이게 TKM···아니, 정확히는 아더 레이블 공이 크단 말이지? 이거 웃어야 해, 울어야 해?”
모니터에서 시선을 뗀 박한철 예능국장이 앞에 앉은 두 피디에게 물었다. 국장실로 불려온 감 피디와 B팀 감독은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고 입만 달싹였다.
“에효. 어제 드라마국, 이 국장이 비웃더라. 지들은 공중파도 아니니 배우들한테 힘 없는게 당연한데, 니들이 뮤지션들한테 지는 건 좀 아니지 않냐고.”
“······.”
“쪽팔려서 원···.”
“······.”
“암말 안 할 거야? 그 말 많던 놈들 다 어디 갔어?”
감 피디와 B팀 감독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왜 우리한테 지랄이지? 하는 표정으로. 간이라도 빼 줄 듯하던 충성심은 이미 휘발된 지 오래였다.
“에잇 싯팔. 유재완 대표, 그 양반 좀 잡아보려다가 새파랗게 젊은 놈한테 된통 당했네. 앞으로 TKM이든, 아더 레이블이든 차별 없이 써. 아니, 더 써. 괜히 사장한테 트집 잡히지 말고.”
이에 감 피디가 말을 꺼냈다.
“쓸 수가 없답니다.”
“뭐?”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고 난리더라고요. 콘서트랑 어워드 거치면서 거기 뮤지션들 주가가 한참 올랐잖아요. 엄청 바빠졌다고···.”
“바쁘긴 개뿔이! 지들이 유리하다 싶으니까 우리한테 뻗대는 거지!”
그렇게 한참을 성내다가 두 피디를 내보냈다. 그리고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이윽고 다시 유리문이 열리면서 양 피디가 쭈뼛거리며 들어온다.
“부르셨습니까?”
“어, 양 피디. 내가 얘기한 건 어떻게 됐어? 명호 빼고 다시 한울 넣는 거.”
“그게, 한울이 이미 다른 프로그램 논의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뭐?”
박한철 국장의 얼굴이 낭패라는 듯 굳어졌다.
“무슨 프로라는데?”
“그건 잘···UBC라는 것만 들어서···.”
“쯧.”
짧게 혀를 찬 박한철 국장이 손을 휘적거렸다.
“나가봐.”
또다시 혼자가 된 박한철 국장이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향한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언제 또 사장 놈이 호출할지 모르니까.
‘젠장.’
박한철 국장이 자신의 시계를 풀러 서랍에 처박았다.
‘또 뭘 받았더라···.’
게다가 이쪽으로 문제가 넘어가면 심각해진다. 사사로이 받은 것들을 합치면 기천 만원은 되었기에.
꼬투리가 잡힐만한 것들은 모두 없애야 했다.
그중 가장 위험한 거.
‘일단 한울부터 제자리에 돌려놓자.’
우선순위를 정한 그가 곧장 핸드폰을 들었다.
#
“양 피디님이 말씀 안 드렸나요? 프로그램이 논의 중인 게 있어서···.”
-들었어. 들었는데. 우리 양 피디가 하는 프로그램이 ‘음악’ 예능이거든. 한울 씨 다시 화제성 생겼다고 또 여기저기서 이미지 소모하는 것보단 음악 예능으로 아티스트적인 면모를 더 다지는 게 좋지 않겠어?
갑자기?
“논의 중인 작품도 음악 예능이라서요. 걱정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이번엔 인연이 아니었던 것 같네요.”
-크흠. 논의 중인 데가 UBC라며. 거긴 어떻게든 연예인 캐릭터 뽑아먹으려는 곳이야. 음악 예능이고 나발이고 이미지 소모만 하다 단물 다 빨리면 나오게 될걸?
얼씨구.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러면서 되뇌었다.
방송사 국장이다.
방송사 국장이다.
-장 대표. 한울을 위해서라도···.
방송사 국···장난하나.
욕이 나올 뻔했다.
누가 누굴 위해?
형 자리를 JME의 명호로 갈아치운 건 아예 잊었나?
아니, 근데 왜 하필 JME야. 더 짜증 나게.
“다행히, 그런 예능은 아니더라고요.”
-처음엔 아닌 척하지! 그런 다음 악마의 편집으로 짜 맞춰서···!
응. 그런 곳의 수장이 너야.
시끄러운 목소리를 듣다가 의아해졌다.
왜 이렇게 친한 척이지?
안면이 있긴 하지만 차 한 잔도 마셔본 적도 없고, 당연하게도 이번 일을 계기로 내가 눈엣가시일 텐데?
-음악 예능 하면 당연히 우리 VMN이지. 안 그래? 그러니 괜히 어설픈 프로그램 시키지 말고, 원래 하려던 양 피디 예능 들어와서···.
···아닌가? 친한 척이 아니라 애타 하는 건가?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학준이 형이 화제의 중심에 있긴 하다. 화제성을 대낮의 광합성 마냥 쭉쭉 받고 있지.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이상한데?’
잠시 그런 의문을 떠올리다 이내 고갤 저었다.
내 알 바?
아니지. 절대.
“국장님. 제가 지금 미팅 중이라서요. 다음에. 나중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언제? 몇 시쯤 끝나는데?
“아직은 잘···일단, 끊겠습니다-.”
뚝.
어후, 귀 아파라.
고개를 내저으며 미팅룸 문을 열었다.
그곳엔 <오디셔닝>을 연출했던 윤 피디가 서 작가와 함께 앉아있었다. 새 예능에 학준이 형을 쓰고 싶다는 러브콜을 보내와 만들어진 자리였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장 대표님 바쁘신 거 뻔히 아는데 뭘.”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는 서 작가.
옆에서 끄덕이던 윤 피디가 내가 자리에 앉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었더라······.”
이에 내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뮤지션들이 가면을 쓰고 노래를 부른다, 까지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