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23화 (123/221)

123. VMN 어워드 (2)

나는 멍하니 하서윤을 보았다.

애국가 2절이 이렇게 어울리는 여자가 또 있을까?

철갑을 두른 듯한 하서윤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아, 뭐···.”

비록 첫 만남이 유쾌한 편은 아니었지만, 대뜸 외모 지적을 하고, 자신 때문에 최정아가 1위를 뺏길 거라는 둥 헛소리를 퍼부었건만.

꾸준히 한 점 부끄럼 없는 모습에 이젠 거부감도 없다. 그냥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을 뿐. 이래서 사람은 꾸준해야 하나···.

그때 한 기자가 큰 소리로 물어왔다.

“하서윤 씨도 같이 찍으실 건가요!?”

“그러려고요.”

하서윤이 방긋 웃는다.

그 모습에 기자들은 얼른 셔터를 눌러댔다.

완벽한 피사체를 발견한 듯이.

이윽고 보다 나은 컷을 얻기 위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기로 프로듀서님 옆에 서주세요! 정아 씨랑 양옆에 서면 뭔가 미의 균형도 맞을 것 같고 역대급 사진 나올 것 같은데!”

동시에 하서윤이 움직였다. 비켜서는 학준이 형의 자리를 차지하고서 방송용 미소를 풀풀 풍기며 내 쪽을 본다. 정확히는 내 옆의 최정아를.

“안녕하세요···.”

“네, 대화 나누는 건 처음이네요?”

“네.”

“얘기 많이 들었어요. 피디님한테.”

순간 최정아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누가 밥 더 많이 먹나 경쟁하듯 받아쳤다.

“저도에요. 선배님 얘기 많이 들었어요.”

“어머, 정말요? 피디님이 내 얘길 해요?”

“아, 아니···그게 아니라.”

오히려 하서윤이 반색하자 최정아는 당황했다. 이에 피식 웃는 하서윤. 그녀의 시선이 내 팔에 살짝 얹어져 있는 최정아의 손에서 멈췄다.

그러더니 다시 한번 씨익 웃는다. 흡사 고양이가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표정이다. 불길한데···.

“자, 자. 얼른 포즈 잡아주실까요! 저희 시간이 얼마 없는데!”

그러자 하서윤이 움직였다. 그녀의 손이 훅하고 허리와 팔 사이로 파고들었다.

“기자님, 이렇게요?”

“아, 좋네요!”

어이, 기자 양반. 좋긴 뭐가 좋아.

“······.”

덩달아 최정아의 손이 내 반대 팔을 콱 잡는 게 느껴진다. 어리둥절할 새도 없이 팍팍 터지는 셔터들.

표정 관리, 표정 관리···.

될 리가.

지금 내 모양새를 봐라. 흡사 경찰서에서 끌려 나오는 범죄자 같다. 이 사진이 연예란에 박제될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길다 길어···.’

내게는 유독 길었던 포토타임이 끝났다. 이미 어워드 다 끝난 것만 같은 피로감이 몰려온다.

그렇게 터덜터덜 레드카펫을 걸어 어워드가 있을 VMN 메인 홀로 들어서자, 하서윤이 스르륵 팔짱을 풀었다. 내가 무심코 돌아보자 그녀가 턱 끝을 살짝 들어 올린다. 여전한 미소로.

“아쉬워요?”

“그럴 리가.”

머리로 생각한다는 게 입으로 나왔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하서윤의 반응이 달랐다.

평소처럼 성을 내긴커녕 여유롭게 웃는다.

누군가 괴롭힐 방법을 찾은 악동처럼.

그리고······.

“그, 정아야. 팔이 좀 아픈데.”

“앗, 죄송해요.”

드디어 양팔이 자유를 찾았다.

하서윤이 피식 웃는 소리가 한 차례 더 들려온다.

돌아보니 팔짱을 푼 최정아가 살짝 의기소침해 있었다. 터무니없는 급성 긴장을 운운할 정도로 좀처럼 긴장하지 않는 최정아인데, 지금은 어쩐지 긴장한 얼굴이다. 예전 최정아의 모습이 보인달까.

애써 피하는 눈빛에 물어보려는 찰나, 시상식장 안에 있던 시선들이 우릴 향해 쏟아졌다.

위층, 관객석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다.

원래도 자신들이 응원하는 뮤지션을 부르느라 소란스러웠지만, 지금은 더더욱.

덕분인지 우리 쪽을 보는 시선들이 빠르게 늘어났다.

“기로 피디님, 안녕하세요.”

“프로듀서님!”

“노래 잘 듣고 있습니다.”

그중 몇몇은 간단하게 인사를 건네기도.

“혹시, 명함 좀······.”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나뿐만이 아니다. 최근 ‘급’이 달라진 박경호와 빌보드 장르별 차트의 주인공, 은유란도 꽤 큰 관심을 받았다.

최정아야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아름다움을 보고 있다’라는 말풍선을 띄운 시선들이 끈질기게 그녀를 쫓는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절반 정도의 시선은 우리와 함께 입장한 하서윤에게 분산되어 있다는 정도?

누군가 중얼거렸다.

“와, 비주얼들이······둘이 예능 하나 찍으면 그림이 무슨 영화 같겠다.”

동감한다.

비주얼 부분에서만.

“둘이 그냥 진짜 영화를 찍어도 되겠는데 뭘. 배우들한테 보이는 아우라가 보인다.”

그건 어렵고.

최정아가 배우 뺨 두어 번 칠만한 비주얼이란 점은 인정하지만, 가장 중요한 연기력이 0에 수렴하잖나.

그러고 보니 아이러니하네. 노래에 감정을 싣는 건 내가 본 어떤 뮤지션보다 뛰어난 최정아가 연기에 감정은 못 싣는다는 게.

재능이란 게 참 오묘하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아더 레이블에게 배정된 자리로 향했다.

중간에 하서윤이 자신의 자리로 사라지자 최정아의 표정이 조금은 풀어진 듯했다.

“······.”

“···왜요?”

“아냐···.”

고개를 저으며 무대 중앙, 맨 앞쪽에 앉았다. 좋은 자리였다. 무대가 가까이 보이고, 뒤돌면 관객석이 한눈에 들어오는.

나는 새삼스러운 기분에 입술을 매만졌다.

뮤지션의 실력보단 인기를 판가름하는 VMN 어워드.

안 와도 된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엔 크게 변함이 없는데······.’

그럼에도 두근거린다.

무대의 규모에.

VMN 어워드란 이름이 갖는 상징성에.

국내 내로라하는 유명 뮤지션들이 전부 주목하고 있단 생각에.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이들이 무대에 서서 노래하고, 이에 사람들이 감탄할 모습을 상상하니까.

심장이 잘게 뛴다.

얼른 그 모습을 보고 싶었다.

#레드카펫이 송출되는 동안 시상식장은 뮤지션들에게나 관객들에게나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바로 위, 상황실은 이미 생방송으로 인한 전쟁터였다.

TV를 통해 송출되는 것과는 달리 자잘한 사고와 자연스러운 수습의 연속이었다.

연출팀과 스태프들 모두 바짝 긴장할 수밖에.

그런다고 터질 일이 안 터지진 않지만···.

“피디님! 박혜진 어깨끈이 풀려서···!”

조연출의 다급한 외침에 어워드 총괄을 맡은 감 피디가 버럭 성을 냈다.

“나도 보여 임마! 그거 말할 시간에 얼른 시상식장 한 번 잡아서 넘길 생각을 해야지 그걸 일일이 보고하고 있냐! 근데 쟤 일부러 저런 거 아냐!?”

곧 혈압으로 쓰러질 것 같은 감 피디를 보며 B팀 감독이 킬킬댔다.

“웃음이 나오냐?”

“잘됐지 뭐. 시청률은 오르겠네. 저 봐, 바로 오르잖아.”

그가 가리킨 것처럼 시청률 그래프가 미세하게 오르고 있었다.

쩝. 입맛을 다신 감 피디가 안경을 벗어 눈을 꾹꾹 눌렀다. 그러면서 또 다른 걱정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그나저나 욕먹을까 걱정이다.”

“뭐 때문에?”

“순서. 아더 레이블한테 좋은 시간대 몰아준 거.”

“왜 큐시트 보고 사람들이 뭐라 한데?”

“아직 그런 건 아닌데···.”

B팀 감독이 대수롭지 않게 손을 휘적거렸다.

“그럼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나도 좀 걸려서 반응 살펴봤는데, TKM 연말 콘서트 이후로 아더 레이블 주가가 거의 그래프를 뚫고 올라갈 지경이라 다들 납득 하는 거 같더라고. 그리고 화제성을 우선으로 순서 정했다는데 누가 뭐라 할 거야.”

“요새 아더 레이블이 그 정도냐···.”

“몰라서 묻는 거냐?”

“알지. 알아. 근데 그래도 한울 얘는 좀 약하잖아?”

회사원 출신으로 소개가 되며 친근감도 있었고, 입담도 좋아 데뷔보다 먼저 이름이 알려졌던,

그러다 아더 레이블이라는 게 알려지고 데뷔곡이 나오며 차트 상위권까지 올랐던 뮤지션.

하지만 그 이후론 뚜렷한 커리어가 없었던 뮤지션이다. '음악'적으론.

B팀 감독이 ‘아, 걔가 있었지?’하는 표정으로 감 피디를 보았다.

“아더 레이블에선 가장 인지도가 낮긴 하지. 곡 낸 지 꽤 돼서 화제성도 이젠 그닥이고, 예능에서 웃긴 이미지로 많이 소비되기도 했고.”

“그니까. 차트 상위권 한번에 예능 인지도 빼곤 딱히······.”

“뭐, 그거라도 있는 게 어디냐.”

감 피디의 한숨이 깊어졌다.

“미치겠네. 국장님은 사장님 눈치 보느라 무조건 시청률 잘 뽑혀야 한다고 성화고, 장 대표는 아무리 봐도 약한 애를 가장 좋은 시간대에 꽂아달라 뻗대고. 이거 완전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게 생겼어.”

그러다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다짐했다.

“시청률 폭망하기만 해봐. 그땐 이판사판이지. 장 대표한테 전화해서 아주 지랄해야겠어.”

하지만 그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다.

1부 공연이 시작되면서, 유독 아더 레이블 소속 뮤지션의 순서 때마다 시청률이 파도처럼 넘실댔기에.

“이게 시청률이냐, 코사인이냐.”

B팀 감독의 말에 감 피디가 어이없어했다.

시청률 뿐만이 아니다. 반응마저도 폭발적였다.

TKM 연말 콘서트의 여운에 아직도 젖어있는 이들이 포털 사이트 실시간 톡으로 몰려와 활자 벽돌을 쌓아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해외 시청률.

박경호의 무대 때 송곳처럼 치솟는 걸 보고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 정도면 한울에서 삐끗해도 나머지가 덮고 남겠네.

-라고 감 피디는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1부가 끝났다.

광고가 시작되자 시청률이 정말 극적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너무 당연한 그림이라 놀라지도 않았다. 다만 아쉬웠다.

‘지금까지 좋았는데···.’

매우 좋은 상황이었다. 아더 레이블 순서 때마다 시청률이 터져주니 다른 순서에서도 효과를 톡톡히 봤다.

게다가 아직 최정아가 2부 순서에 떡하니 있잖나. 자연스레 떨어진 시청률은 제자리를 찾을 테고, 그 이상을 기대해볼 만도 했다.

하지만 하필 2부 첫 순서가 한울이었다.

파급력 있는 뮤지션을 배치해야 할 시점에 장 대표의 요구로 한울을 배치하게 된 거다.

첫 스타트가 정말 중요한 건데. 2부부터 보는 이들도 적지 않아 그들을 끌어들이고, 잠시 다른 채널로 갔다가 돌아온 탕아들까지 꽉 붙잡아 고점으로 향해야 하는데.

‘진짜 아쉽네, 아쉬워···.’

마침내 2부가 시작되었다.

한울이 무대 위로 등장하고, 신호에 맞춰 관객들이 환호를 질렀다.

‘역시.’

커다란 함성과는 달리, 광고 때 떨어져 나간 시청률은 복구될 기미가 안 보인다.

데뷔곡. 그것도 최근 TKM 연말 콘서트에서도 했던 곡을 지금 또 하려고 하니, 사람들이 보고 싶을 리가······

“어?”

감 피디가 홱 돌아봤다. 시선 끝엔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온 조연출이 보였다.

“야, 노래 저거 아니잖아?”

“마, 맞는데요?”

“뭔 소리야. 저게 한울의 Daybreak라고?”

“네. 리허설 때 분명히 저 곡이었는데······.”

감 피디가 다시 무대 쪽으로 고갤 돌렸다.

뒤쪽에서 B팀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편곡을 했나 본데···?”

그 순간, 광고 때문에 깍였던 시청률이 복구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당연한 거다. 다시 방송이 시작되었으니 채널을 돌렸다가 돌아오는 이들이 있는 건 당연한 건데···.

‘생각보다···엄청 빠르게 복구되잖아?’

어리둥절한 감 피디 옆으로 다가온 B팀 감독이 나지막하게 감탄했다.

“와, 근데 노래 진짜 좋네···원곡도 좋았지만 이건 완전 다르게 좋네.”

그러면서 덧붙였다.

“그나저나, 한울이 원래 저렇게 잘 불렀었냐?”

#지쳐가는 이들이 더러 보인다.

특히나 비연예인. 작곡가의 자격으로 온 프로듀서들은 1부가 끝날 때쯤 되니 더욱 힘겨워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쌩쌩하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긴커녕 없는 것 같았다.

곁에 있던 뮤지션이 사라지고, 무대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환호 속에서 내가 만든. 아니, 나와 함께 만든 곡을 부른다.

그 순간이 짜릿하다 못해 저릿했다.

VMN이란 이름을 지웠다.

그러니 시상식장만 남았다.

시상식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내 뮤지션들만 남았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감탄사가 FX(노래 속 효과)처럼 들린다.

이 시상식장 전체가 커다란 스피커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또 한 명이 테이블에서 사라지고, 무대 위로 올랐다.

학준이 형.

형이 노랠 부르기 시작했다.

Daybreak.

내가 가장 처음 들었던 멜로디이자, 학준이 형의 데뷔곡이 새로운 모습으로 공개되었다.

곡빨이라고 했었나···?

최근 스멀스멀 출몰하는 학준이 형에 대한 평가였다.

대중이나, 평론가나 할 것 없이 비슷한 얘길 했었지.

심지어 멜로디마저도, 형에게 두 번째를 쥐여주지 않았다.

그렇게 ‘웃긴 뮤지션’에서 ‘뮤지션’이란 단어가 옅어질 때쯤. VMN이 음악 예능 섭외를 해왔다.

나는 이게 기회일 거라 생각했다.

이 기회를 발판 삼아 두 번째 곡을 내리라.

하지만 불발이 되었지. 형의 탓도 아닌, 방송사 갑질에 의한 불발.

아무렇지 않은 척, 다른 예능에 출현해 노래보단 입담을 풀어놓는 형을 보면서. 곧장 리메이크 작업을 시작했다.

이 무대를 위해.

그리고 이 무대를 본 대중들이 형의 다음 곡을 먼저 원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곡빨?

오늘만큼은, 그 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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