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20화 (120/221)

120. 고래 발등에 불을 붙인다 (3)

사람들에게 정통 재즈가 먹혀든 건지, 아니면 은유란과 서울의 와인이기에 먹혀든 건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환호와 함성이 백색소음처럼 느껴질 만큼 흔하고 익숙한 이 콘서트에서,

각 솔로가 끝날 때마다 어느 때 보다 더 큰 박수가 연달아 쏟아졌다.

그들이 무대를 내려올 때쯤엔 이미 포털 사이트 연예란에 그들의 이야기가 가득 메워지고 있었다.

<뮤튜브 라이브 성공적인 첫발! 동시 시청자 100만 돌파!>

<은유란과 서울의 와인, 재즈 뮤지션의 저력을 보이다>

<기로 프로듀서, 결국 재즈마저 성공시키나···?>

물론 아닌 구석도 있었지.

<100억 아이돌 엔돌피노의 정치원의 집에서 나오는 세은. 연애 경험 전무하다던 발언이 지난주?>

“저런······.”

아드레날린을 펌프질하는 콘서트 소식들 끄트머리에 포스트 하서윤이라던 아이틴, 세은의 기사가 박제되어 있었다.

스캔들에 과거 발언들이 하나둘 겹쳐지며 제대로 몸살을 앓는 중이다.

그는 봤을까?

은유란과 서울의 와인이 만든 재즈 무대 말이다. 자신이 방치했던 인재들이 제대로 날갯짓 하는 걸 보길 바라고 있었는데···.

‘이러면 아주 정신이 없겠는데?’

그 성격이면 지금쯤 일 터지고 정신이 나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을 것 같다. 구겨진 얼굴이 선한걸.

입맛을 다시다가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는 은유란과 서울의 와인을 반겼다.

무대에 오르기 전보다 더 상기된 얼굴들이다. 얼떨떨하고, 멍하고, 잘 했나 싶고, 실수한 건 없나 싶은.

은유란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후아, 진짜 떨렸어요. 저희···괜찮았어요?”

“박수 소리 들었잖아요. 끝내줬어요. 솔직히 녹음 때 보다 잘 하더라고요.”

“앗, 그럼 안 되는 거 아녜요?”

“안 되는 게 어딨어요. 매번 달라지는 게 재즌데.”

내 말에 은유란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간다.

그렇게 복도를 걸었다.

아직 콘서트가 끝나진 않았지만, 아더 레이블의 순서는 모두 끝이 났지.

‘이제 한숨 돌리겠네.’

그때 뒤따라오던 서울의 와인 멤버들이 수군댔다. 마이원 어쩌고 하는 걸 보니, 핸드폰으로 기사를 확인한 것 같았다.

누구 하나 대놓고 통쾌해하는 이는 없었지만,

우리들 사이에 은은한 고소함이 풍기고 있는 건 확실했다.

#‘아직 콘서트가 안 끝났나?’

주차를 마치고 올라가자 콘서트 못지않은 열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다들 무대에서 혼을 두고 올 것처럼 춤추고 노래 부르던 이들인데···.

여전히 어찌나 팔팔한지 활어마냥 펄떡거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잔 부딪히는 소리와 구호 같은 것들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계단과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선 낯익은 얼굴들이 사이다와 콜라만 깔아두고 홀짝이고 있었다.

“기사 봤지? 그래, 나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해. 너희들 나이 때. 그럴 수 있어. 연애하고 싶고, 또 니들이 좀 이쁘니? 잘난 놈들이 대쉬 하겠지. 걔네도 눈이 있으니까!”

노파심을 양면에 측면까지 치덕치덕 바른 설교가 한창이다. 설교자는 오랜만에 보는 지영환 매니저. 당연히 대상자는······

“피디님!”

신소영이 벌컥 소리쳤다. 마치 이 잔소리를 탈출할 동아줄을 발견한 것처럼.

자연스레 조막만 한 얼굴들이 내 쪽으로 또르르 돌았다.

“어, 피디님! 아니지, 이제 대표님이시잖아?”

신소영의 의문에 유예지가 끄덕인다.

“아 맞네. 대표님!”

그 옆에서 배시시 웃으며 꾸벅 인사하는 한유하. 배가 고팠는지 입에 각종 음식을 한가득 물고 있었다. 입을 열 상태가 아니네.

지영환 오랜만이란 얘길 나누며 악수를 했다. 그러자 이때다 싶었는지 신소영이 나를 끌어앉혔다.

“오늘 저희 무대 보셨어요?”

“당연히 봤지.”

“······그게 다예요?”

“진짜 잘하더라.”

“헤헤. 이모 콜라 한 병 더 주세요!”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꾸준히 모니터링을 해왔던지라 해줄 말들이 제법 많았다. 그들도 내게 해줄 얘기가 많았고.

여전히 함께일 때 멜로디가 들리는 플로라. 그녀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더 레이블의 뮤지션들이 있는 끄트머리 테이블까지 가는 동안 몇 번이나 다른 테이블에 앉아야 했다. 무슨 스테이지 게임마냥.

이현과 짠하고, 다시 만난 에잇퍼스트 매니저의 사과도 또 받고. 비스트로가 데려온 래퍼들과 스웩 넘치는 인사도 하고, 이성원과 어색한 인사도 하면서.

마침내 아더 레이블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기서 여기까지 오는 게 뭐 그리 힘들어?”

“휴, 그러게.”

학준이 형의 말에 웃으며 자리를 훑었다.

순간, 빈자리가 만들어지길래 앉았다. 자리를 만들어준 최정아가 열심히 입을 오물거리며 앞접시와 젓가락을 건넨다.

파티는 늦게까지 이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지치긴커녕 더욱 텐션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걸 라이브로 송출하면 100만이 뭐야. 200만은 훌쩍 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진귀한 광경들이 끝도 없이 나온다.

그렇게 1년 치 웃을 거 다 웃은 것 같이 입꼬리가 얼얼할 때쯤.

나는 고깃집을 나섰다.

-피디님, 잘 들어가셨어요?

“지금 막 도착했어요.”

신발장 앞에서 받은 은유란의 전화를 시작으로 박경호와 학준이 형, 그리고 최정아와도 연달아 통화를 마쳤다.

그제야 냉장고에서 맥주 한 잔을 더 꺼내어 앉을 수 있었다.

청승 떨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가끔 이럴 때가 있다.

조용하고 편한 집에서.

딱 한 캔만 더 마시고 싶은.

맥주가 아니라 윤활유 같다. 청량감 있는 목 넘김 뒤로 오늘 있었던 무대들이 하나하나 밀려 올라온다. 무슨 홀로그램처럼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모든 무대가 기대 이상이었지.’

새삼 내가 저들을 프로듀싱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시 생각하니 또 넘치는 의욕.

적용해보고픈 아이디어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이제 외부에서 들어오는 의뢰들은 서기영과 오나연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나는 내 뮤지션들에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년엔 말이지······.’

어느새, 올해가 끝나가고 있었다.

#은유란과 서울의 와인이 국내 메이저 차트들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게 소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더 큰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빌보드.

뮤튜브의 영향이었는지,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장르별 차트에 그들의 이름이 올라갔다. 덕분에 직원 사무실은 콘서트 때의 열기를 아직도 이어가는 중이었고.

“재즈로 빌보드 장르 차트를 들어간 국내 뮤지션이 지금까지 있었나요?”

한 직원의 물음에 누구 하나 곧바로 대답하지 못한다. 알 리가 없으니.

“이제 한 명은 알잖아요. 은서와!”

“빌보드라니! 이건 빌 앨런하고 또 다른 경우잖아요!”

“다르지, 다르지. 이건 온전히 우리 힘으로 만든 결과인데.”

비록 장르별 차트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직원들은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빌 앨런이 HOT 100에 들었을 때 보다 더.

직원 사무실이 떠들썩해져 가는 모습을 웃으며 지켜보던 김지희가 입을 열었다.

“소속 뮤지션 잘되는 건 몇 번이든 기분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이에 주재윤이 끄덕였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요원들이 임무를 완수하는 동안 뒤에서 서포트하는 모니터링 요원이 된 기분이랄까. 열심히 서포트한 만큼 결과가 따라주니까. 더 기쁘네요.”

“맞아요. 고생한 보람이 있어요.”

웃으며 키보드를 두드리던 주재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린터 앞으로 향하더니 출력된 프린트물들을 정리한다.

그 길로 나가려는 주재윤에게 김지희가 말했다.

“그거 피디님 드리는 거죠?”

“네. 이거 콘서트 관련 후속 보도자료라서요.”

“피디님, 지금쯤 나가셨을걸요?”

“아, 맞다. TKM 가신다고 하셨었죠.”

주재윤이 자신의 기억력을 탓하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가서 대표님이랑 무슨 얘길 하시려나.”

이에 김지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번 콘서트 피디님 머리에서 나온 거잖아요. 가서 무슨 상이라도 받아 오시지 않을까요?”

#상패들이 가득한 책장을 보다가 이내 시선을 내렸다.

책상에서 빠져나와 소파에 앉는 유재완 대표.

지난번과는 확연히 달라진 눈빛이 먼저 보였다. 뭐라 설명하긴 애매하지만, 어느 정도 인정받은 느낌이랄까.

“콘서트. 성공적인 이벤트였지.”

“네.”

일주일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회자 될 정도이니까.

유재완 대표가 웃었다.

“VMN 어워드가 코 앞인데, 아직도 화제성은 콘서트 얘기로 집중되어 있으니 VMN 쪽도 답답하겠어.”

그러면서 은근하게 말했다.

“어쩌면, 경각심을 느끼고 초대장이 수정 돼서 올지도 모를 일이지.”

바라던 바였다.

TKM의 승리. 뭐 그런 걸 떠나서. VMN 어워드를 나가서 결코 손해 볼 일은 없으니까. 간절한 VMN의 반응도 좀 보고 싶고.

“표정을 보니 이미 그럴 거라 생각하는 것 같군.”

“그냥,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쪽에서 먼저 굽히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요.”

“의외로 성격이 있네?”

그가 웃는다.

“처음엔 그냥 작곡밖에 모르는, 능력 있는 프로듀서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의외로 기획자로서의 능력도 있고. 대표로서의 자리도 잘 해내고 있고······.”

갑자기 시작된 칭찬에 어색하게 웃었다. 갑자기 왜 이런데. 공로를 치하한다며 품에서 상장이라도 꺼낼 기세였다.

“확실히···.”

유재완 대표가 말끝을 늘리며 나를 보았다.

“오늘만큼은 자네가 갑이겠구만.”

“네?”

“슬슬 얘기해야 하지 않겠나.”

순간, 느낌이 왔다.

나도 콘서트가 끝난 시점부터 계속 고민해오던···.

“자네 계약 말이네.”

#“정말 그렇게 해주시려고요?”

차나 얻어 마실까 하고 가볍게 올라온 최영준 본부장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런 반응에도 유재완 대표는 유유자적하게 찻잔을 들었다.

“지난번에 자네랑 얘기했던 사내 개편 얘기. 그거 인사팀장에게 하면서 같이 얘기해놨어.”

그렇다는 건 이미 유재완 대표의 마음이 정해졌다는 거였다. 장기로가 제안한 대로.

“어쩌겠어. 이 시즌엔 능력 있는 친구가 갑인걸. 난 오늘 명백한 을이야.”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는다.

“그 친구 자기 소속 뮤지션들에 대한 애정이 상당합니다. 그것 때문에라도 섣불리 나가진 못할 텐데···.”

그렇게까지 해줄 필요 있느냐는 의미였다.

이에 유재완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붙잡아두면 더 큰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지. 이 업계에서 그런 일 많잖아. 실장이 연예인 빼서 나가고, 팀장이 직원들 빼서 나가고.”

최영준 본부장의 말문이 막혔다. 30년 가까이 이 업계에 있으면서 실제로 봐온, 비일비재한 일들이었기에.

“숨구멍 제대로 뚫어놔 줘야 그런 일이 없어.”

유재완 대표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끌끌 웃으며 시선을 돌린다.

상패가 가득 올려진 진열장 옆 구석에 기대어진 것이 보인다.

오래된 통기타와 헤져버린 케이스.

“낚시 가서 종일 통기타나 치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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