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고래 발등에 불을 붙인다 (2)
VMN 예능국.
양 피디가 오늘도 어김없이 후배 피디를 불러서 티 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콘티나 캐스팅 관련 서류가 천장에 닿을 기세로 쌓여있는 대신, 묵직한 노트북이 올려져 있다는 것. 화면 속에선 최정아의 무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들끓던 환호가 순식간에 사그라들고, 적막 속에서 시작된 무대는 4분 남짓의 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동안 찻잔을 허공에 고정한 채로 넋 놓고 있던 후배 피디가 정신을 차렸다. 뒤늦게 통증이 오는지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아이고, 저려라···라이브 퀄리티나 볼까 했는데 공연을 넋 놓고 봤네요.”
그러면서 몹시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최정아···이제 섭외 힘들겠죠?”
“당분간은 힘들겠지. 우리가 TKM 소속을 그렇게 갈아 댔는데.”
양 피디는 복잡해진 얼굴이었다. 둘의 시선이 다시 화면에 고정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지막한 감탄.
“···이거 그냥 음방인데요?”
“음방보다 더 하지. 현장감을 극도로 살렸잖아. 마치 우리가 콘서트장에 있는 것처럼.”
마침 변하는 화면에 그가 가리킨다.
“이거 봐. 이 앵글 죽이네. 꼭 관객의 시점으로 보듯이 낮은 곳에서. 보통 이런 구도 우린 안 쓰잖아.”
“그렇죠. 이렇게 찍으면 바로 지적 들어오죠. 가수 제대로 안 보인다고.”
“현장감을 모르시니까.”
“하긴, 부장님이나 국장님이 콘서트에서 손이라도 흔들어 보셨겠어요?”
불만 그득한 후배 피디의 말에 양 피디는 주억거리며 TKM의 연말 자선 콘서트를 평가했다.
“음질도 화질도 나무랄 데 없고, 방송국 특유의 뽕삘도 없고. 거기다 TKM 뮤지션들 실력까지. 시상만 안 한다뿐이지 그냥 이게 연말 가요제네.”
“시청률···아니지, 시청자도 이 정도면 대박 아녜요? 인터넷 방송이 이 정도가 가능한 거였나?”
화면 상단엔 빨갛게 새겨진 실시간 표시가 깜빡이고 있고, 그 옆에 20만이란 숫자가 떡하니 박혀있었다.
VMN이란 국내 최대 케이블 방송사 입장에서 그 숫자가 엄청나다곤 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인 건 분명했다.
“최정아는 최정아네. 무대 오르자마자 만 단위로 뛰어버렸어.”
“섭외하고 싶다. 섭외하고 싶어···.”
중얼거리는 후배 피디를 보며 양 피디가 웃었다. 후배 피디는 섭외를 주문처럼 외우다가 갑자기 물었다.
“다음은 누구려나요? 훅 떨어지는 거 아닌가?”
그 사이, 최정아의 두 번째 공연이 끝났다.
그리고 무대 위로 그림자 하나가 더 올라선다.
“듀엣을 하려나 본데요?”
“머리 썼네. 최정아 효과를 끌고 가겠다는 거 아냐.”
“박경호도 이제 꽤 유명하죠. 드라마 중국이랑 동남아에서 대박 났다던데.”
“그래도 주연급까진 아니었잖아?”
“그렇긴 한데···.”
둘은 별생각 없이 화면을 보다가 이상함을 느끼고 서로를 돌아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둘의 표정엔 ‘이게 무슨 일이지?’하는 게 모두 담겨 있었다. 놀라서 커진 눈이 다시 화면으로 향한다.
그 사이,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백에서 천 단위로. 천에서 만 단위로. 그리고 그 이상으로.
맨 앞자리 숫자가 훅훅 바뀌고 있었다.
마치 걸려있던 제한이 풀린 것 마냥.
비약적으로 치고 올라가는 숫자에 둘은 한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건, 양 피디였다.
“VMN 어워드에 아더 레이블에선 누구 불렀댔지?”
“최정아만요.”
“이런···그래서 걔라도 온대?”
“그건 잘···.”
양 피디의 표정 굳어져 갔다.
이 순간에도 시청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었다.
#무대 건너편의 상황이 적막 속에서 숨죽이고 듀엣 공연을 보고 있다면.
무대 뒤편의 상황이 오히려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시청자 수가 두 배. 아니, 이제 세 배로 뛰어버렸다. 누군가는 100만을 곧 넘는다며 덩실거렸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박경호가 이제 월드 스타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최정아와 박경호의 듀엣이 클라이맥스로 치달았을 때만큼은 무대 너머의 관객들처럼 숨을 죽였다.
듀엣이 끝나고 박경호의 단독 무대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시청자 숫자는 계속 올라갔다. 멈출 기세가 없다. 풀 악셀을 밟은 제인의 새빨간 스포츠카를 보는 것 같다.
이윽고, 시청자가 100만을 찍었다는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쯤. 나는 무대에서 내려온 최정아와 함께 대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은유란이 서울의 와인과 함께 복도에 나와 있었다.
이미 제정신들이 아니었다.
“피, 피디님. 지금 시청자 수 보셨어요?”
“네, 보고 왔죠.”
“으아아···아, 아 정아 씨. 공연 진짜 잘 봤어요.”
은유란이 얼른 정신을 차리며 최정아에게 말했다. 최정아는 그 모습이 귀여운 듯 웃었고.
“언니도 화이팅 하세요.”
“저, 저요? 저······어떡하죠?”
애처로운 눈빛이 날 향한다.
서울의 와인 드러머가 멤버들에게 툭 물었다.
“우리 가장 큰 공연이 어디였지?”
“강남에 오리 고깃집 개업식. 거기 오픈빨로 모인 4, 50명 앞에서 한 게 가장 관객 많았을걸?”
“근데 지금 여긴 관객석만 2만 명이잖아!”
1만 5천 명이지만···딱히 그게 중요한 것 같진 않네.
“시청자는 그 50배···.”
“소, 솔로 파트 코드가 뭐였지?”
“나 손이 고장 난 것 같은데? 드럼 못 치겠어!”
난리도 아니다. 레드리시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다.
그때였다. 복도 끝에서 이어셋을 한 스태프가 뛰어온 것은.
“은유란과 서울의 와인, 준비하실게요!”
#복도를 걷는 동안.
서울의 와인은 바짝 긴장해서 야단법석을 떨 여유조차 없는 듯했다.
“물소들이 달려오는 것처럼 들려.”
“그럼 우린 심바인가?”
“아니 무파사. 깔려 죽겠지···.”
이상한 소릴 중얼거리며 복도를 걷는다.
은유란도 저 대화에 동참만 안 했다뿐이지 표정은 다를 바 없었다.
하긴, 당연한 거지. 나조차도 이렇게 가슴이 쪼그라드는데···.
한걸음이 가까워질수록 함성이 커진다.
박경호가 가장 너다운 날씨에 OST로 달궈놓은 열기를 다음 팀이 제대로 이어받았다.
이름이 뭐였더라···.
‘아, 에잇퍼스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8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
이제 막 데뷔를 마친 신인이었지만, 환호성은 포텐업과 비교해도 큰 차이 없었다.
데뷔 전부터 방송을 통해 인지도를 다져왔기 때문. 이미 인기가 어지간한 그룹 못지않았다.
복도 끝에 다다르자 한쪽에 모인 매니저들이 보였다.
“다음이 누구지?”
“그 누구냐. 이름 겁나 긴 아더 레이블.”
“이번에 장 대표님이 프로듀싱한 재즈 밴드?”
“맞아. 재즈 밴드!”
무대 뒤편에서 쑥덕이는 무리 중 비스트로만큼이나 건장한 매니저가 으스댔다.
“야, 어떡하냐 걔네. 하필 우리 애들 다음에 지루한 재즈라니. 갑자기 엄청 처질 거 아냐.”
“···.”
주변에서 맞장구를 쳐주던 이들은 먼저 나를 발견하곤 조용해졌다.
하지만 남자는 여전히 내 존재를 모르고 떠들어댔다.
“뭐, 그만큼 우리 애들이 대단하다는 걸 증명하는 계기가 될 수는 있을 것···.”
그러다 동료 매니저들의 표정을 봤는지 돌아본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는 덩치에 맞지 않게 화들짝 놀랐다. 저승사자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이 되어선 입을 달싹였다.
“저, 저 그게···.”
응, 안 들을 거야.
얼굴은 기억할 거고.
노려보던 시선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
은유란과 서울의 와인이 따라오는 쪽으로.
우선은 이쪽이 먼저다.
‘분명히 들었을 텐데.’
괜히 무대에 오르기 전에 멘탈이 나가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은유란이 고개를 숙이곤 나를 불렀다.
“피디님···.”
이거 봐. 내 저놈을 당장 갈궈서 멘탈 회복의 밑거름으로···.
“재즈가 뭔지 보여주고 올게요.”
이글이글 타오르는 은유란의 눈이 보였다.
서울의 와인도 마찬가지다. 마치 성스러운 무언가를 모욕당한 사람처럼 보인다.
“지구를 쪼갤 듯 쳐주지.”
“옥수수 털 듯 건반을 뽑아주겠어.”
“목숨줄보다 질기다는 베이스 줄. 오늘 끊어 보겠네.”
한마디씩 내뱉은 그들이 계단 앞에 선다.
여전히 긴장한 듯 굳어있다.
하지만 얼굴엔 어느새 물음표 대신 느낌표가 떠올라 있었고.
누군가에겐 사소한.
그리고 지루하기만한.
재즈.
그게 이들에겐 전부였다.
저 매니저는 그 전부를 건드린 거고.
나는 시선을 돌렸다.
에잇퍼스트 매니저가 쭈뼛거리며 다가오고 있었기에.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무대가 처음이라 들떠서 헛소리를···.”
“자기 연예인 이쁜 건 알겠는데, 조심 좀 해요.”
“넵. 정말 죄송합니다.”
찐 만두처럼 쪼그라드는 매니저에게서 시선을 떼고 무대를 내려오는 에잇퍼스트가 보았다. 하얀 의상을 걸레 비틀 듯 짜내자 땀이 주르륵 떨어진다. 모든 걸 무대 위에서 쏟아내고 온 모습. 표정들은 지쳤다기보단 한없이 밝다.
“···수, 수고했어. 잘했어.”
매니저가 부리나케 달려간 생수를 나눠준다. 칭찬은 하고 싶고, 내 눈치는 보이고.
남아있던 뒤끝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걸 느끼며 다시 은유란과 서울의 와인을 보았다.
무대 위로 오를 준비를 마친 그들도 날 보았다. 여전히 비장한 표정들로.
잠시 후, MC가 다음 순서를 소개한다.
특별한 장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관객들이 눈치챈 듯 들끓었다.
MC가 극적인 동작으로 큐 카드를 내리그으며, 신호가 떨어졌다.
곧바로 은유란과 서울의 와인이 올라선다.
에잇퍼스트 매니저의 걱정과는 달리, 환호는 아까보다도 더욱 커져간다.
그렇게.
그들의 뒤늦은 쇼케이스이자, 한 번뿐인 음악방송이자, 데뷔 무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같은 시각, 마이원 엔터테인먼트.
“어때? 지루하다지? 별로라지? 별거 없다지?”
마이원 대표가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내며 최 실장에게 눈치를 주었다.
실장 혼자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다.
꼴 보긴 싫고. 궁금은 하고. 망했으면 좋겠고. 시청자 수 하나라도 올려주기 싫으니 실장에게 패드를 넘긴 마이원 대표였다.
덕분에 최 실장만 난처하게 되었다.
‘귀가 어떻게 돼먹은 거야.’
연주는 대단했다.
노래는 끝내줬고.
마이원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만약 자신들이 살신성인으로 키웠다면, 그래놓고 저기서 저렇게 잘한다면 억울할 정도로.
특히나 은유란의 목소리가 노래와 만나니 재즈 특유의 몽롱함이 극대화되었다. 지루함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오히려 그것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니까.
반응은 또 어떤가.
기로 프로듀서의 효과 덕에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했는지 시청자 수는 떨어지긴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었다.
‘이걸 사실대로 말해, 말어.’
고민하는 찰나.
마이원 대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핸드폰을 툭툭 치며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뭐? 최고의 라이브? 아직 한 곡 끝나지도 않았구만. 지들이 뭘 안다고!”
그새 올라온 기사가 있나 보네.
아집으로 출렁이던 눈썹이 점점 더 내 천자를 그려간다. 최 실장도 확인해보니 기사가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한 곡이 끝날 때까지 도대체 기사 몇 개가 올라오는 건지. 모두 극찬이었다.
“제, 젠장! 애써 키워서 남 준 꼴이잖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 안 되는 팀은 가지치기하자며 가장 먼저 은유란과 서울의 와인을 언급했던 마이원 대표였다. 그가 한껏 억울한 표정으로 성을 내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지쳤는지, 행복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괜찮아. 까짓거. 저러다 금방 식어. 공연이야 신기하지 음원은 아직 차트 인도 못 했잖아?”
“그렇죠.”
“그리고 우리한텐 아이틴이 있어! 아쉬울 거 없다고! 맞잖아?”
“맞습니다.”
“이번에 기획한 세은이 솔로, 아주 제대로 투자해 보자고. 프로듀서도 장 대ㅍ···장기로 그 자식만큼 유명한 놈 데려다 쓰고!”
“······.”
앵무새처럼 대답하던 최 실장도 이 대목에선 말을 삼켰다.
그러려면 해외 유명 프로듀서를 써야 하는데? 우리가 그 정돈 힘들지 않나?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얘길 마음속 갈대 속에서 외치는데, 품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마이원 대표는 한참을 아집스럽게 중얼거리다가 전화를 마친 최 실장에게 물었다.
“뭐야, 누구야?”
“아는 기잔데요.”
“근데?”
“······.”
“뭔데, 말을 해.”
최 실장은 한껏 무거워진 입술을 힘겹게 뗐다.
“세은이가······정치원이랑 사진이 찍혔다고.”
“뭐? 그게 뭔! 어디서!?”
“정치원 오피스텔 지하 주차장에서······.”
“이런 미친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