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18화 (118/221)

118. 고래 발등에 불을 붙인다 (1)

TKM 연말 자선 콘서트가 이루어질 올림픽 공원에 도착해 대기실로 향했다.

무대에 설 뮤지션들이 넘치다 보니 평소였으면 혼자 대기실을 썼을 이름들도 오늘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은유란과 같은 대기실을 쓰게 된 최정아처럼.

“전 보사노바 특유의 그 통통 튀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보사노바 좋죠. 라틴도 좋고요.”

“맞아요, 라틴은 신나요! 그러고 보니 뭔가 보사노바랑 비슷한 느낌이네?”

“보사노바를 빠르게 연주하면 라틴이 돼요.”

“정말요?”

은유란의 수줍은 설명에 최정아는 활기차게 호응해주었다. 걱정 없겠네. 역시 차 안에 같이 태워 보내길 잘했지.

“피디님.”

대기실 안을 둘러보며 무슨 과자가 구비 되어 있나 따위를 의미 없이 훑는데, 최정아 매니저가 음료수를 건넸다.

“아, 고마워요.”

마침 목이 말랐는데 생수밖에 없더라.

캔을 따서 들이키자 매니저가 묻는다.

“대표님은 대기실 따로 없으세요?”

“지금 뮤지션들 쓸 방도 없는걸요.”

내 말에 매니저가 대기실을 훑으며 이해한 얼굴을 보였다.

오렌지가 좀 가라앉은 것 같아 술잔 돌리듯 서너 번 돌리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라커룸에도 사람이 있어요. 저처럼 무대 안 서는 사람은 대기실 순찰이나 돌고 무대 점검하러 가야죠.”

매니저도 자신의 음료수를 마시며 부스스 웃는다. 그런 그에게 목소리 볼륨을 줄이며 물었다.

“아참, 요즘 정아는 별문제 없어요?”

“없어요. 가끔가다가 예전 버릇 (-스케줄 끝나고 몇 시든 노래를 연습하는)이 나올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대표님한테 전화한다고 하면 조용해져요.”

“오, 좋은데요? 그거 약빨 떨어지면 진짜 저한테 전화해줘요. 혼 좀 내게.”

매니저가 크게 웃었다.

최정아와 은유란의 시선이 확 느껴졌다.

급하게 웃음을 뚝 그친 매니저가 딴청을 피운다.

“어디 보자, 다음 주 스케줄이···.”

그 모습을 보며 낮게 웃다가 물었다.

“유란 씨는 어떤 것 같아요?”

“성격 좋으세요. 정아랑 비슷한 면도 꽤 있는 것 같고.”

“그래요?”

끄덕이는 그에게 말했다.

“그럼, 유란 씨도 같이 케어해 볼래요? 이번에 신입 로드 뽑아서 붙여줄게요.”

매니저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눈을 굴렸다. 대기실을 굴러 최정아와 은유란을 훑고 빠르게 내 앞에서 멈췄다.

“······전 좋습니다.”

그 사이, 만들어진 욕심 나는 표정.

내가 웃었다.

“음료수 잘 마셨어요.”

그럼 이제······김 실장님인가?

#랙케이스를 엘카트에 실어 옮기던 신입 스태프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다 못해 파르르 떨렸다.

그들 사이로 두터운 패딩을 입은 여자가 홱 지나갔다. 톡톡 튀는 빠른 발걸음으로. 과즙향이 잔향으로 남아 스태프들의 코를 간질였다.

멍해졌던 눈들이 돌아온 건 여자가 이미 복도 코너를 꺾은 후.

“대박.”

“봤어?”

“봤지. 안 보이면 병원 가야지.”

“나 오늘 처음 봤다. 진짜 이쁘긴 하네. 알고는 있었지만···.”

“TV랑 또 다르네. 실물이 더 예뻐. 이게 말이 돼?”

“괜히 하서윤 하서윤 하는 게 아니구나.”

“아씨, 인사라도 할걸!”

아쉬워하는 스태프들에게 다른 스태프가 말했다.

“퍽이나 받아줬겠다. 성격 까칠하기로 엄청 유명한데.”

“그거 루머라던데?”

“뭐래, 팩트라던데. 팀장님 피셜이야.”

그 말에 그나마 나머지보다 2주 정도 먼저 들어온 안경 낀 스태프가 콧방귀를 꼈다.

“그 양반이 누구보고 까칠을 논해.”

“그렇긴 해요. 그나저나, 아직 시간 많이 남았는데 무대 쪽으로 왜 가는 거지?”

카트를 느릿하게 밀며 혹시나 돌아올까 뒤돌아보자 안경 낀 스태프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무대 점검하러 가나 보지.”

“아, 오!”

깨달음을 얻은 표정들에 대고 안경 낀 스태프는 더욱 아는 척을 했다.

“춤추는 사람 중에 예민한 사람들은 공연 전에 본인이 꼭 확인해야 해. 그래야 무대를 완벽하게 컨트롤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겠네요.”

“하서윤의 춤이라···미쳤다. 춤 쩔지.”

“그 정도 몸매면 무릎만 까딱거려도 춤이야. 패딩 입은 걸 봤는데도 혼미하던데 무대 의상 제대로 입으면 캬······. 미치겠네.”

그렇게 떠들면서 창고 쪽으로 향하는데 오만상을 쓴 남자가 반대쪽 코너에서 나타났다.

“뭐가 미쳐?”

스태프들이 속한 하청업체의 팀장이었다.

“아, 아닙니다.”

“난 말 하다 마는 거 진짜 싫어해. 얼른 말해.”

지한테 말한 것도 아닌데, 뭐래.

-라는 표정을 짓는 스태프들 사이에서 안경 낀 스태프가 나섰다.

“사실 오다가 하서윤을 만났거든요. 무대 점검하러 가는 것 같던데, 얘네들이 처음이라 신기해서···.”

“에? 뭐라고?”

순식간에 오만상이던 팀장의 얼굴이 물음표로 가득해졌다.

“하서윤이 무대점검을 한다니, 그게 뭔 우리 집 뽀삐 공중제비 도는 소리냐?”

“···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듯 질문이 이어졌다.

“아니, 그보다 걔가 벌써 왔어?”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 들어서자 분주한 스태프들이 보였다. 몇몇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왔고, 나도 수고하신다며 악수나 인사를 하며 중앙을 가로질렀다.

부채꼴 형태의 관람석은 물론이고, 경기가 이뤄지던 중앙까지 모두 의자가 놓여있었다. 수용인원 1만 5천 정도. 코첼라를 겪었다 보니 사람 머릿수로는 이제 놀라지 않는다.

뭐, 이 정도는 대단한 규모라고 할 순 없지만, 겨울에 이 정도 규모로 콘서트를 하는 게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서울 쪽에선 킨텍스, 63빌딩, 코엑스 정도?

주변을 훑으며 빙 돌아 무대 뒤로 향했다.

텅텅거리며 철제 계단을 오르니 전혀 다른 시야가 펼쳐진다.

나도, 관객도 아닌.

뮤지션이 보는 광경.

걸음을 옮겼다. 간이 의자와 보면대들이 잔뜩 놓여있는 이곳.

‘여기가···최정아의 단독무대와 박경호와의 듀엣을 받쳐줄 오케스트라.’

걸음을 옮긴다.

서울의 와인의 즉흥 연주가 만들어질 그랜드 피아노와 드럼 등을 지나쳐 뮤지션들이 설 무대 중앙으로 향했다.

의자들이 빽빽하게 무대를 향해있다. 플라스틱 덩어리도 이 정도로 많으면 위협적이다.

하물며 모두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 상태로 환호성을 지르며 오직 나만 본다면···.

‘다리가 후들거릴 것 같은걸.’

뮤지션들은 오히려 그걸 원동력 삼는다. 에너지로 치환해 그 어느 때보다 폭발적인 모습을 여기서 보여주지.

역시, 대단······.

“피디님?”

뒤쪽에서 갑자기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하서윤이 무대로 올라오고 있었다.

나긋은 착각이었을지도.

“무대 욕심 있어요?”

“없어요.”

“노래는 좀 부르시나?”

“못 부르고요.”

“근데 왜 그러고 있어요?”

짧은 랠리 끝에 하서윤이 갸웃거린다.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냥, 원래 이렇게 공연 전에 올라와 봐요.”

하서윤이 무대를 훑는다.

여길 당신이 왜? 하는 표정으로.

나는 다시 무대 아래를 내려다봤다.

“내 뮤지션들은 이런 광경을 보면서 노랠 하는구나. 여기서 부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뭐, 그런 생각 해요. 이게 은근히 곡 작업에 도움이 돼요. 뮤지션을 이해하는 거니까.”

대충 설명하고 고개를 돌렸더니 하서윤이 나를 보고 있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표정으로. 폭력적이었던 구미호가 꼬리를 감춘 느낌이다.

사람으로 둔갑한 그녀가 뜻밖의 질문을 불쑥 던졌다.

“그럼, 나도 이해하려고 했어요?”

“그랬죠?”

“······.”

주고받던 랠리가 또다시 뚝 끊겼다.

거리가 꽤 떨어져 있어 얼굴이 세세하게 보이는 것도 아닌데, 왜인지 그녀의 표정이 넘실댄다. 조명 때문인가?

기다려도 대답이 오지 않길래 말했다.

“실패했지만.”

“뭐요!?”

낄낄대며 하서윤을 보았다. 이젠 넘실대는 게 아니라 성난 파도가 치고 있다. 주변으로 가면 안 되겠네. 내가 방파제도 아니고.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가며 물었다.

“무대 점검하러 왔어요?”

“다, 당연하죠. 무대 점검하러 오지 왜 왔겠어요!”

발끝이 무대 가장자리에 딱 걸린다. 높긴 높다. 이번엔 발을 스케이트 타듯 쭉 밀었다. 끼익, 거리는 마찰음이 나며 멈췄다.

이런 걸 체크하러 오는 건가?

매 공연마다?

하서윤을 빤히 보았다.

“왜, 왜요?”

“의외로···.”

“뭐요. 또 뭐라고 하려고···.”

“멋질 때가 있어서요.”

하서윤이 더 말하려던 걸 삼킨다. 입이 방지턱을 넘은 것처럼 덜컥거렸다.

심기를 건든 것 같아 얼른 덧붙였다.

“너무 꼬아 듣지 마요. 진심이니까.”

이럼 좀 괜찮겠지?

“나 원래 멋졌어요.”

역시 하서윤.

너무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나도 편하게 답했다.

“알아가는 중이에요.”

“······.”

“갈게요. 그리고 여긴 괜찮은데, 저쪽은 좀 미끄러우니까 스태프한테 잘 얘기해야 할 것 같아요.”

“······.”

대답이 없다.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바닥을 살피는 그녀를 뒤로하고 무대를 내려왔다.

#이윽고, 시작된 리허설은 어느 때보다 길었다.

그냥 음방 리허설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그럴 수밖에 없지. 오늘의 콘서트는 생방송과 다를 게 전혀 없거든.

실시간으로 송출하기 위한 준비가 파견 나온 뮤튜브 직원들과 방송팀의 지휘 아래 철저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7시쯤부터 입장이 시작되었다.

무대나 관객석이 전혀 보이지 않는 대기실 쪽 복도에 서 있는데도 공기가 달라진다.

이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MC가 투입되자 공연장 전체가 떠들썩해진다. 이따금 터져 나오는 환호성은 멀찍이서 들으니 사람 소린지 괴물 소린지 헷갈릴 정도.

핸드폰을 꺼내어 뮤튜브를 틀었다.

따로 검색한 것도 아닌데, 첫 화면에 커다랗게 떠오른다. 실시간이란 빨간 딱지를 붙이고서.

화질 좋고, 음질 좋고, 싱크······.

“네에에에!”

-···네에에에!

거의 비슷하고.

화질도, 음질도 지금껏 타 사이트의 서비스와는 차원이 다르단 평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공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시작부터 쟁쟁한 TKM 뮤지션들이 출격한다.

보통 이런 소속사 기획의 콘서트에선 인지도 있는 뮤지션들을 최대한 뒤쪽으로 미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는 그런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지. 대신 섞어버렸다. 인지도가 약한 뮤지션들 사이에 팬덤이 강력한 뮤지션들을 넣어 몰입도를 높인 거다.

쉴새 없이 이어지는 공연.

마침내 다섯 번째 순서였던 포텐업이 마지막 곡을 시작하고.

동시에 대기실 문이 열리며 최정아가 나왔다.

딱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원피스를 입고서.

나를 본 최정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쩐지 비장하기까지 하다.

옆에 붙어 복도를 걸었다.

“긴장 안 돼?”

“넵.”

“이제 정말 걱정도 안 된다.”

든든하네. 든든해.

“······윽, 긴장되는 거 같아요.”

“갑자기?”

“네. 갑자기. 급성 긴장인가 봐요.”

뭔가 앞에 두 글자 붙인 건데 확 심각한 느낌이다. 응급실 정도 돼야 나올 용어 같네.

“그래? 그럼 나도 급성 걱정할게.”

내 말에 도도하게 걸어가던 최정아가 웃음이 터졌다. 스텝이 꼬여 휘청거릴 정도로. 뒤쪽에서 오늘부로 김 실장이 된 매니저가 웃고 있었다.

“급성 걱정이 웃겨?”

최정아가 입을 싹 닦고 웃음을 그친다.

“아뇨. 안 웃겨요.”

그러면서 배시시 웃는다.

“좋아요.”

“좋을 것까지야.”

머리를 긁적이며 앞을 보았다.

무대 뒤쪽이 가까워진다.

이미 세 줄로 대기하고 있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후우···.’

긴장도, 걱정도 아닌.

급성 기대증(?)에 걸린 것 같다.

이 공연에서 엿볼 수 있겠지.

어쩌면 내년부터 시작하게 될, 최정아와 현중필이 만들 시그니처 콘서트의 가능성을.

고작, 세 곡.

그나마 그중 마지막 한 곡은 박경호와 듀엣.

그러니 이 무대는 맛보기였다.

분명히.

‘그런 생각으로 만들었는데···.’

#지이이잉-.

암전된 공연장에 수많은 인원이 올라섰다.

그러더니 괴기한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다. 그 사이사이로 기대감이 스며들었다. 언뜻 수많은 실루엣이 무대를 스친 게 보였겠지. 아마 백댄서일 거라고 유추하며, 엄청난 규모의 공연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다 괴기한 소리가 점점 겹쳐지면서 사람들은 알아채기 시작했다. 뭐가 이런 얇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지.

그때쯤부터, 천천히 조명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관객들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기대한 것과는 다른. 하지만 마찬가지로 엄청난 규모의 공연이.

“오케스트라···.”

누군가 입을 벌렸고.

“어, 통기타···?”

누군가는 황당한 물음을 던졌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

그 순간, 무대 중앙에 있던 최정아가 통기타를 튕겼다.

팅-!

그리고 그게 신호였는지 수많은 현악기들이 일제히 활을 켰다.

하나의 음을 집요하게 연주하는 수십의 악기.

그 웅장하면서도 날카로운 소리가 순식간에 관객들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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