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17화 (117/221)

117. 고래 싸움에 새우는 (5)

<뮤튜브와 손잡은 TKM. 특별한 연말 콘서트 예고>

<영상 공룡과 음악 공룡이 보여줄 TKM 연말 자선 콘서트에서 기대되는 것들>

<뮤튜브 라이브 스트리밍, 기존 인터넷 방송 사이트들을 넘어서 TV 채널까지 위협할 수 있을까?>

<기로 프로듀서의 선택을 받은 은유란과 서울의 와인. 이번 콘서트가 데뷔 무대 될 것>

오랜만에 스캔들이 아닌 것으로 연예란이 뜨겁다. 기자들은 지각변동까지 운운하며 설레발에 한창이었다.

그게 VMN 박한철 국장을 불쾌하게 했다. 그는 이딴 어그로성 기사에 조회 수를 올려주는 것 자체가 싫다며 눈을 치켜떴다.

“우리 어워드 바로 앞에 떡하니 콘서트 일정을 잡았다 라.”

VMN 어워드는 국내 최대 어워드다.

당연히 직원들, 스태프들뿐만 아니라 뮤지션들도 엄청난 준비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각 소속사에 웬만하면 스케줄을 널널하게 만들어 놓으라고 푸쉬를 해둔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너도나도 더 눈에 띄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알아서들 혈안이 되겠지만.

“이건 도발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VMN 어워드 날짜 뻔히 알면서 시기를 이따구로 잡은 걸 보면?”

박한철 국장이 묻자 듣고 있던 피디가 끄덕이며 덧붙였다.

“알아보니 꽤 급하게 결정된 것 같더라고요.”

“유재완 대표가 우리한테 쌓인 게 많긴 했나 보네. 그래도 그렇지. 판단력이 너무 흐려진 거 아닌가. 이러면 오히려 지들 손해라는 걸 모르네.”

피식 웃는 박한철 국장에 피디는 조심스레 다른 이름을 언급했다.

“이번 일, 장 대표 머리에서 나왔다는 거 같습니다.”

“···장 대표? 그 프로듀서 나부랭이?”

박한철 국장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그러면서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때 양 피디 프로그램에서 한 명 자른 것 때문에 기분이 제대로 상했나 보네. TKM도 그런 놈 말에 휘둘리는 걸 보니 말 다 했군. 인터넷 방송 따위로 저들끼리 노는 거 중계해봤자 누가 봐준다고.”

말을 이어가는 동안 그의 조소가 더욱 진해져 간다.

“차라리 잘 됐어. 도발도 당했겠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갑을 관계를 정해야겠네. VMN 어워드에 초대되는 아더 레이블 뮤지션 몇 명이나 돼?”

“한···4명 됩니다.”

“뭔, 뭐 그렇게 많아? 코딱지만 한 레이블에”

“차트 1위를 한 뮤지션이 몰려 있다 보니까···.”

박한철 국장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 식이니까 소속사에서 방송국 알기를 뭐 같이 아는 거야. 차트 1위에 인기 좀 있으면 떠받들어 주니까. 그 중 딱 한 명 빼고 나머진 다 빼. 누구 부를 거야?”

“그럼 최정아···정도만.”

“오케이, 아더 레이블은 그걸로 끝.”

그가 짧게 정리하며 씩 웃었다.

“다음은 TKM. 거긴 몇 명이야?”

“근데 이래도 되는 걸까요? 사장님이 아시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 피디에게 박한철 국장은 혀를 차며 되물었다.

“모르실 거 같아?”

“네?”

“사장님이 이걸 모르실 거 같냐고. 다 알고 계셔. 근데 가타부타 말 없으시지? 그게 뭐겠어?”

박한철 국장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자문자답했다.

“나한테 믿고 맡기신 거야. TKM 버릇 고쳐 보라고.”

#-연말 콘서트 푯값에 예매 경쟁에 갈 엄두도 안 났는데, 이게 웬일임? 보일러 틀어놓고 귤 까먹으면서 시청하겠습니다.

-위 댓, 그게 문제가 아닐 텐데. 같이 보러 갈 사람이 없는 거 아님?

-와, 명치를 뚫어버리네···.

-다들 못 가는 처지에 그러지 말고, 님들은 어떤 무대가 제일 기대됨?

-닥치고 제인이지.

-제인이지2222.

-최정아지. 최정아지.

-난 하서윤. 이런 콘서트는 댄스 보는 맛임!

-그건 맞지. 그런 의미에서 기대되는 건 하서윤이랑 플로라랑 퀀텀보이즈 정도. 근데 사실 제일 궁금한 건 따로 있음.

-은서와?

-은서와···?

-아, 이걸 모르네. 은유란과 서울의 와인!

“······.”

별 걸 다 줄이네.

-라고 생각하면 늙은 거라던데.

내 정신 나이가 마흔에 다다르고 있는 게 맞나 보다.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넣었다. 그리고 암울한 기운이 맴도는 사무실을 훑었다.

어제부터 이 모양이다.

정확히는 VMN 어워드에 초대된 레이블 뮤지션이 최정아 한 명이란 걸 알고 난 이후부터 실망감이 짙어지다 못해 패색에 가까워지고 있다.

특히나 김지희가 기대가 컸는지 입을 꾹 다문 채로 우물거렸다.

“올해엔 기영이도 가고, 한울 씨도 가고, 경호 씨도 갈 줄 알았는데···.”

그럼 사실상 전부잖아.

뭐, 저 기대가 그만큼 유력했던 이유가 있긴 했다. 모두 차트 1위를 했었거나, 그만큼의 인지도를 쌓은 뮤지션들이 되었기에.

아더 레이블 뮤지션 모두가 VMN 어워드 포토존에 설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그녀였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너무 VMN 콧김에 움츠러들 필요 없어요. 입장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몰라요.”

“네?”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는 김지희.

그래,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

유재완 대표에겐 가려운 부분을 속 시원히 긁어주기 위해 가지 않아도 되는 파티쯤으로 말했지만.

막상 이렇게 당하고 보니 생각이 좀 바뀐다. 생각보다 내가 변덕이 심한 타입일까? 이젠 VMN이 오히려 간절해지는 그림이 보고 싶어지는데?

‘그러기 위해선···.’

“우선 이번 콘서트가 생각 이상으로 잘 돼야 겠죠.”

“티켓 파워를 입증한다 해도 과연 VMN이 태도를 바꿀까요? 갑자기 초대를 늘리는 모양 빠지는 행동을 할 것 같진 않은데.”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VMN이 가장 신경 쓰는 쪽이 터져주면, 뒤늦게라도 없던 초대장을 뿌려댈걸요?”

“가장 신경 쓰는 쪽···?”

내가 끄덕이며 답했다.

“해외 시청자들이요.”

#상황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코첼라 페스티벌의 주최 측인 골든보이스가 모 인터뷰에서 우리 콘서트를 언급했다. 우리의 라이브가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내년 코첼라도 뮤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을 시작할 생각이 있단 얘길 꺼낸 거다.

어차피 예정된 미래였지만, 정황상 우리가 물꼬를 튼 게 되어버렸다. 덕분에 뮤튜브 코리아뿐만 아니라 본사에서 팔을 걷어붙였다.

단순히 코첼라 때문만이 아니다. 코첼라를 시작으로 유명 페스티벌들이 줄줄이 엮여 올 터.

뮤튜브 본사가 움직이며 덩달아 우리 콘서트도 해외에서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 가운데,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고마워요.”

-뭘요. 부탁이 없었어도 트윗했을 거예요. 나도 엄청 기대 중이거든요. 내가 그동안 트윗했던 뮤지션들을 한 자리에서 볼 기회니까. 거기에 이번 재즈곡의 라이브 버전도 너무 궁금하고요.

“시청자 한 명은 확보했네요.”

-그럼요. 거기 1이 떠 있으면 무조건 저인 줄 아세요.

론 스미스와의 유쾌한 통화를 마치고서 사무실로 향했다.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주재윤에게 말했다.

“지금 론 스미스가···.”

“알아요. 트위터 이미 확인했습니다. 지금 보도 자료 만들고 있고요.”

오?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웃는 주재윤. 그런 그에게 엄지를 내밀어 주고 다른 직원들을 훑었다.

며칠 전과는 딴 판이다. 물에 젖은 생쥐 마냥 축 쳐져 있던 직원들이 점점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좋은 기사, 좋은 소식이 하나씩 터질 때마다 얼굴도 밝아진다.

그때 밖에서 한창 중국어로 통화 중이던 직원이 들어왔다.

해외 관련 업무를 도맡아 진행하는 직원이었다.

그의 등장에 직원들이 우스갯소리를 시작한다.

“이번엔 뭐 없어요?”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콘서트 10위라던가.”

“10위는 너무 낮은 것 같고. 1위 올라간 거 뭐 없어요?”

“빌 앨런 때처럼 이상한 순위 좀 확인해봐!”

평소엔 헛헛하게 웃었을 직원의 표정이 메마르다 못해 퍼석거린다.

뭐지?

나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표정도 의문스러워하는데, 직원의 입이 열렸다.

“어, 그게······터진 것 같은데요?”

터져? 뭐가?

내가 얼른 물었다.

“뭐가요?”

“경호 씨요.”

“경호 씨가 왜요?”

내 말이 빨라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직원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 중국 현지에서 연락 왔는데, <가장 너다운 날씨에> 인기가 심상치 않다고.”

“···그런데요?”

“덩달아서 박경호 씨 반응도 심상치 않다고···.”

“···!”

#“기영이는 아버지랑 공연장으로 바로 온다네요.”

“비 피디님도 래퍼들이랑 같이 오시겠대요.”

“나연이는 소리ON 엔터랑 미팅 후에 이따가 저희랑 같이 갈 거고. 그치?”

“넹···.”

그때 직원 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큰일 났어요! 경호 씨 밴이 지금 근처에서 퍼져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대요!”

“갑자기!? 그럼 TKM 쪽에 차량 지원을···.”

“거기도 지금 없을걸요?”

“앗!”

“마침 정아가 헤어 때문에 근처래요. 차 돌려서 이리로 오겠대요!”

정신이 없다 못해 마이너스로 치달은 직원들의 얘길 듣다가 시선을 돌렸다. 은유란과 서울의 와인이 도착해 있었다.

“왔어요?”

“네. 어···무슨 문제 있어요?”

“문제는 없는데, 정신도 같이 없어요.”

“하하···.”

어리둥절한 은유란과 서울의 와인을 한쪽에 앉혀두고 잠시 기다리자, 박경호와 그의 매니저가 죄지은 사람처럼 나타났다.

“죄송해요.”

“두 분이 죄송할 일은 아닌 것 같고. 다친 덴 없어요?”

“네, 그냥 갑자기 서버린 거라···.”

“그럼 됐죠.”

소속사 차량들은 킬로 수가 어지간한 화물차량을 능가한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쉽게 퍼지기 마련이다.

‘이 기회에 차도 싹 바꾸자.’

돈 쓸 생각에 웃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검은 밴 한 대가 골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정아 왔네요. 내려갑시다.”

나와 박경호 일행, 그리고 은유란 일행이 우르르 계단을 내려갔다.

최정아가 보인다. 자리 정리하느라 위에만큼 정신이 없는···.

차에 뭘 저렇게 쟁여 놓고 다니는 거지?

인형부터 베게, 과자와 빵을 쉴새 없이 퍼 나르고 있었다.

“앗, 피디님.”

그러다 우릴 발견하고 민망한 듯 웃는 최정아.

“···탈 자리가 있긴 해?”

“한, 한 명 정도?”

“그럼···.”

그때 박경호가 얼른 끼어들었다.

“피디님이 타고 가세요.”

“네? 전 운전해야죠.”

은유란과 서울의 와인이 타고 있는 회사 밴을 가리켰다.

여전히 죄인 모드인 박경호의 매니저가 나섰다.

“운전은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 그럼···.”

탈! 탈!

최정아가 갑자기 더 열정적으로 짐을 정리한다. 무슨 청소업체에서 나온 사람처럼 의자 시트까지 세차게 털어가며. 뭐가 그리 좋은지 입꼬리까지 살짝 올라가 있다.

왜 저러나 싶어 보다가 고개를 돌렸는데, 은유란이 눈에 들어왔다.

“아! 유란 씨가 타요, 여기.”

“저, 저요?”

“거기 죄다 남잔데 불편하잖아요. 얼른 이쪽으로 타요.”

곧바로 은유란을 밴에 끌어다 넣고 최정아를 보았다. 그녀는 청소를 관두고 목 베개를 바닥에 떨어트린 채 황망한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이분 어려 보인다고 반말하면 안 돼. 나보다 많···.”

드르륵! 차 문을 닫아버리는 은유란.

그대로 차가 출발한다.

나도 회사 밴에 올라타 서울의 와인과 함께 낄낄댔다. 마침내 박경호까지 모두 타자, 천천히 출발하는 밴.

의자 뒷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과일 사탕을 꺼내어 돌리는데, 박경호가 나를 빤히 보며 웃는다.

“아까 정아 씨 표정 장난 아니던데요?”

“뭔가 이상했죠? 웃었다가 울 것 같다가···.”

설마 또 힘든 순간이 온 걸까?

처음 멜로디가 변하기 직전처럼?

“같이 오케스트라 무대 연습할 때 별문제 없었어요?”

“······그땐 없었죠. 당연히.”

“당연히?”

“피디님, 생각보다 눈치가······.”

이내 고개를 젓는다.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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