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16화 (116/221)

116. 고래 싸움에 새우는 (4)

다음날 유재완 대표에게 연락이 왔다.

연말 자선 콘서트를 진행해도 좋다는 허락.

자연스레 제안한 내가 책임자처럼 되었다. 기획팀장은 나를 서포트 하기로 했고. 바라던 바였다. 이번 콘서트로 만들고 싶은 그림들이 있었기에.

우선, 이번 콘서트는 은유란에게 쇼케이스이자, 아더 레이블로서의 데뷔 무대이자, 음악방송. 그리고 음원 성공을 위한 발판이 되어줄 거다.

모든 시작이 여기서 나왔단 소릴 들으면 유재완 대표나, 기획팀장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모르겠지만···.

난 그러려고 시작한 거니까.

물론, 그 정도에서 그칠 생각은 없었다.

'레이블 식구가 몇인데.'

“예전이랑 완전히 다른 느낌인 거 아세요?”

반가운 얼굴이 낯선 표정을 지었다.

현중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선임 피디, 이주연. 그녀가 매우 신기하단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갸웃거렸고.

“모르겠는걸요?”

“뭐랄까···.”

“···?”

“연예인을 보는 듯한···.”

거울을 봤던 기억을 더듬다가 김이 팍 새버렸다. 내 표정 변화를 본 이주연 피디가 웃는다.

“단원들도 엄청 아쉬워했어요. 피디님이랑 더 친해져 놓을 걸, 하고.”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에이, 아까 로비에서도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러는 거 다 봤어요. 완전 그런 사람이시던데~.”

얄미운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부턴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는 필수인 것 같다고. 괜히 유명세에 취한 나르시즘 환자처럼 보일까 틈날 때마다 꼬박꼬박 뺐는데, 안 되겠네.

그녀와 근황 얘길 얼마나 했을까. 이윽고 문이 열렸다.

현중필의 예술감독. 최연석 감독이 활짝 웃으며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여전히 힘 있는 손으로 악수를 하고.

성악가처럼 묵직하고 힘 있고 교양까지 넘치는 목소리로···.

“이젠 정말 무슨 연예인 보는 것 같네요. 하하.”

옆에서 이주연 피디는 배를 잡고 웃어댔다.

영문을 모르는. 아니, 알 생각도 없는 듯한 최연석 감독이 바짝 다가와 눈을 빛냈다.

“작업 중이라는 얘긴 들었어요. 이번엔 재즈라죠?”

“네, 그렇게 됐습니다.”

“혹시 컨템포러리한 재즈 느낌인가요?”

좀 더 현대에 맞춰진.

그러니까, 대중성이 짙은 재즈냐는 물음이었다.

흔히 왈츠 리듬, 보사노바 리듬에 대중적인 멜로디를 붙여 만든 곡들처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통 재즈입니다.”

그러자 최연석 감독이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 모든 장르를 다 섭렵할 생각인가요? 매번 그렇게 새로운 장르라니.”

“어쩌다 보니···.”

말끝을 흐렸다.

멜로디가 시켰다고 말할 순 없잖나.

흐지부지한 내 대답에 낮게 웃던 최연석 감독이 물었다.

“그나저나, 벌써 다음 작업까지 진행 중인 건 아닐 테고···.”

왜 만나자고 했냐고 묻는 거겠지.

“정아가 정규 앨범을 냈었습니다.”

“알죠. 아주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최연석 감독이 진지한, 그러면서도 약간의 기대감이 서린 얼굴로 끄덕였다.

나는 그런 그의 진중한 태도에 대고 은근히 말했다.

“예전에 얘기했던 시그니쳐 콘서트 말인데요.”

그제서야.

최연석 감독의 눈이 어린아이처럼 빛났다. 클래식의 대중화를 꿈꾸는 자의 눈빛이랄까.

과거 최정아와 클래식 작업을 마치고, 최연석 감독이 그랬었지.

‘적당한 때에, 적당한 기회가 맞는다면 꼭 해봅시다. 그 시그니쳐 콘서트라는 거.’

내가 말했다.

“가능성을 시험해볼 적당한 자리가 생긴 것 같습니다.”

#최연석 감독을 만나 연말 자선 콘서트에 대한 내용들 전달하고, 치열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반응이 좋아서 가능성을 보게 될 경우, 내년부터는 최정아의 단독 콘서트로 방향을 잡자는 결론이 맺어졌다.

그 후, 예정되어있던 인터뷰 몇 개를 해치우고 나니 작업실은 들려보지도 못하고 하루가 다 지나갔다.

원룸에 들어오자마자 냉장고 쪽으로 향했다. 잔뜩 붙어있는 자석들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전부 유지은이 윤태영을 통해 보낸 선물들. 정신없긴 하지만 덕분에 볼 때마다 정신이 없어 피식 웃게 되는 효과가 있긴 하다. 한 번 더 보냈다간, 냉장고가 더 큰 게 필요할지도···.

차가운 캔 음료수 하나 꺼내어 휘적휘적 매트리스로 향했다.

벌써 밖은 어두컴컴하다.

그만큼 해가 빠르게 지고 있었다.

‘겨울이네.’

코첼라 페스티벌이 봄이었던 걸 생각하면,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흐르고 있는 게 새삼스레 느껴진다.

레드리시는 내년 코첼라에도 서게 될 거다.

그때보다 더 큰 무대에서.

내 기억이 맞다면 이번 연도부터 코첼라도 뮤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전 세계에 공연을 내보낼 거다. 레드리시도 이번엔 자신들의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줄 수가 있겠지.

괜스레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들의 부모님들 또한 내 부모님들과 다르지 않았겠지.

그러니 자식들이 성공한 지금, 그 뿌듯함 또한 마찬가지일 터.

무대에 올라선 모습은 얼마나 벅찰까···.

설핏 웃으며 탁상을 끌어왔다.

이불은 대충 돌돌 말아 벽에 박아두고 노트북을 펼쳤다.

기획팀장에게 온 메일들을 쭉 훑고서 주기훈에게 받은 6차 믹싱본까지 확인했다.

[정말 좋네요. 이제 마스터링으로 넘어가도 될 것 같습니다.]

[완성본과 사표를 같이 드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른 주대철 기사님과 상담을 해야겠군요.]

그러면 그 성질에 아들내미를 어떻게 할지는 안 봐도 훤하지.

[아뇨! 그, 농담입니다, 농담!]

[저도 농담이었어요.]

[끙······제가 이 나이 먹고 부모님한테 이른다는 소릴 듣게 될 줄은 몰랐네요.]

앓는 소릴 해대는 주기훈에게 결과물에 대한 당근을 듬뿍 갈아주고, 남은 음료를 입에 털어 넣었다.

‘앨범도 정말 막바지네.’

앨범 자켓과 뮤직비디오(-사실상 라이브 영상)도 착착 진행되어 마무리 단계다. 음원까지 마스터링이 끝나면 언제 컴백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준비가 끝난 거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까지 컴백 날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의아해하고 있고.

일각에선 역시나 기로 프로듀서에게도 재즈는 어려운 게 아니냐는 얘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를 정도.

‘것도 나쁘지 않지.’

악역이 선역으로 변했을 때 주는 쾌감이 남다르듯.

의심이 짙어졌을 때 더 큰 효과가 나타날 테니까.

물론 의도한 건 아니다.

은유란의 데뷔를 콘서트 바로 앞에 두려 했고, 아직 콘서트 날짜가 확정되지 않았으니까.

어쩔 수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보자···.’

노트북에 있는 음원들을 몽땅 재생 목록에 끌어놓았다.

아더 레이블 소속 뮤지션들의 모든 음원이 차례대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나는 노래를 들으며 머릿속으론 여러 가지 그림을 만들어보았다.

은유란의 쇼케이스 뿐만 아니라, 다른 뮤지션들의 무대까지도.

아더 레이블 모두가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빛날 수 있도록.

최정아, 학준이 형, 박경호, 서기영, 그리고 은유란의 노래와 모습들이 무대 위에 그려졌다.

두 가수를 듀엣으로 붙여보기도 하고, 기존 곡의 전혀 다른 편곡을 구상하기도 하며 퍼즐 맞추듯 계속 바꿔보았다.

각자의 음색과 성향에 맞게.

가장 좋은 무대가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이런 작업 또한,

역시 즐거웠다.

#보통 일복이 터졌다고 하지.

지금 기획팀장이 그 복에 겹다 못해 치이고 있었다.

장소섭외와 날짜 조율, 무대 디자인 등으로 각 업체와 입씨름을 하다가 회사에 들어와선.

진한 커피에 ppt 켜놓고 직원들이 준비해온 기획안을 종일 들여다봐야 했다.

그러다 또 나와서 장기로와의 회의.

터덜터덜 사무실로 돌아온 기획팀장은 짙게 내려온 눈그늘 사이로 주변을 훑었다.

크게 다르지 않을 몰골의 직원들이 회의실 책상에 널브러져 있었다. 심지어 코를 고는 소리도 들려온다.

짠하게 바라보다가도 시간을 생각하니 안 되겠는지 서류뭉치를 돌돌 말아 테이블을 두드렸다.

“어, 오셨어요···.”

“흐어아암. 회의는 잘 하셨어요?”

기획팀장이 쓰게 웃었다.

“어, 잘 하고 왔고. 여기서 또 해야지.”

“으어아악.”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는 비명에 기획팀장이 끄덕였다.

“더 질러둬. 이거 잘하면 매년 할 수도 있겠더라.”

“악! 저, 정말요!?”

좀비들의 아우성이 기획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획팀장은 초연하게 노트북을 펼쳤다. HDMI 선을 찾아 꽂고 프로젝터 빔이 켜지길 기다렸다.

직원 하나가 커피를 타오며 작게 읊조렸다.

“소리 지르는 것도 체력 낭비야.”

현명한 선구자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좀비들이 커피 등을 타와 테이블에 앉았다.

곧바로 시작된 회의.

기획팀장은 장기로와의 회의 내용을 쭉 읊었다. 그리고 직원들이 만든 TKM 쪽 뮤지션들의 컨셉도 정리하여 함께 띄웠다.

자신들과 아더 레이블. 양쪽 컨셉을 모두 훑어본 직원들은 이내 묘한 표정이 되어선 입을 달싹거렸다.

현명한 선구자 타이틀을 얻었던 직원이 총대를 메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거 잘못하면 TKM 콘서트가 아니라 아더 레이블 콘서트가 되겠는데요?”

#콘서트 일정이 정해졌다.

12월 7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신경 쓸게 한둘이 아녔다. 의상이나 퍼포먼스 같은 미적 영역이야 내가 체크할 필요가 없었지만, 곡만큼은 내가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기에.

오전에는 현중필 오케스트라와 최정아, 그리고 박경호의 협연을 확인했다. 고심 끝에 붙여놓은 조합인데, 시너지가 상당했다. 콜라보 앨범을 내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점심에는 은유란과 서울의 와인의 합주를 점검했고, 곧장 편곡 작업이 한창인 오나연을 도왔다. 그리고 서기영과 학준이 형을 차례대로 봐주고 나서야 사무실로 내려올 수 있었다.

“저 왔···.”

직원들이 모두 일어나 한 자리에 몰려 있다. 김지희가 홱 돌아보며 내게 손짓했다.

뭔가 싶어 갸웃거리자 그녀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광고 떴어요! 뮤튜브에.”

아, 오늘이었구나.

하루하루 정신이 없다 보니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른다. 하물며 며칠인지는 알까.

얼른 다가가 모니터를 보았다.

막 재생을 누른 직후였는지 로딩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윽고, 검은 화면에서 쏟아져 나오는 화려한 이펙트와 모션 그래픽.

격자로 빛나는 공간 위에 올림픽 경기장이 폴리곤 덩어리로 만들어지며 그 위에 형형색색의 빛들이 솟구친다.

그리고 그 위로 TKM과 아더 레이블의 로고가 새겨지며 뮤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이 함께한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15초짜리 짧은 광고가 끝나고, 직원들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끄덕였다.

“때깔 좋네요.”

“그쵸? 별거 없는 영상인데, 별 게 있어 보여요.”

“방금 제가 영상 다섯 개 아무거나 틀어봤는데, 전부 콘서트 광고 나와요!”

“오, 진짜네?”

그 와중에 주재윤은 입맛을 다셨다.

“아 마지막에 아더 레이블 로고가 작게 들어간 건 아직도 아쉽네요. 얘길 할 걸 그랬나.”

이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30초짜리 광고엔 얘기해 보죠. 반응은 좀 어때요?”

어느새 자리로 돌아간 직원들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잠깐 사이 그들의 흥분한 표정들이 파티션 너머로도 보인다.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어요!”

“와, 벌써 기사도 떴네!”

“반응 나쁘지 않은데요? 아니, 좋은데요? 엄청 기다려진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에요!”

직원들의 말을 들으며 입술을 적셨다.

사실 나도 그렇다.

콘서트가 기다려진다.

내가 짠 판이지만.

이 판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는 나로서도 전혀 모르니까.

다만, 기대하고 있는 것들이 있고.

그것들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은 있었다.

일이 진행되며 의외의 문제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동안에도, 자신감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머릿속에 그렸던 그림을 재현해 내는 뮤지션들을 보며 단단히 굳어졌지.

그렇게 확신과 자신감을 담금질하다 보니,

어느새 TKM의 연말 자선 콘서트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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