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15화 (115/221)

115. 고래 싸움에 새우는 (3)

장기로가 대표실을 나가고, 홀로 남은 유재완 대표는 흐릿하게 웃으며 찻잔을 마저 비웠다.

“시원하네.”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차가 식어 미지근해지긴 했어도 시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속이 시원하다 느껴졌다.

VMN 어워드까지 동원해서 협박했는데, 숙이고 들어오긴커녕 저들끼리 콘서트를 연다?

다를 때였다면 몰라도 현 상황에선 VMN을 향한 도발이었다. 날짜까지 비슷하면 더더욱 완벽할. 다시 생각해도 속 시원한 대답이다.

어떻게 하면 VMN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을까? 갑질을 피할 수 있을까?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런 터무니 없는 대답이라니.

냉수를 사발로 들이킨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그렇게 마시다간 분명히 탈이 난다.

그래서 냉정하게 말했다.

오답이라고.

VMN 어워드를 진짜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수인데, 그 수가 얻을 수 있는 게 너무 적다고.

기껏해야 자선 콘서트를 했다는 이미지 정도 얻고 끝나는 거라면 엄청난 손해가 될 것.

최소한 VMN 어워드과 저울에 올렸을 때, 절반까지라도 되어줘야 직원들을 설득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나.

이건 속만 시원한 무리수였다.

자신의 얘길 모두 들은 장기로는 덤덤했다. 의외였다. 뭐 실망하는 기색이라도 있으면 소속 뮤지션이 프로그램에서 제외돼 화가나 내뱉은 말이라고 치부할 텐데. 오히려 한술 더 떠 이런 소릴 했다.

‘무게를 맞춰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가요제와 콘서트가 급이 맞을 수 있을지. 장기로가 어떤 방법을 가져올지 궁금해졌다.

“···능구렁이한테 제대로 된 협박을 하는 건 좀 미뤄볼까?”

유재완 대표는 VMN 방송국 사장 놈의 얼굴을 떠올리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수화기를 들며 말했다.

“기획팀장 올라오라고 해.”

#“설마!”

“맙소사!”

“진짜요?!”

세 번의 각기 다른 감탄사가 터져 나오고.

휘둥그레진 눈이 나를 향했다.

“정말······저희 합주실이에요?”

아더 레이블 내에 만든 합주실.

레드리시가 한국에 있을 때도 생각은 했었지만, 그들이 원래 자신들의 합주실을 고수했기에 흐지부지 넘어갔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제대로 된 합주실을 만들었다.

“스, 스테인웨이! 이거 우리 합주실 보증금보다도 비싼 건데!”

“이거 영롱한 색 좀 봐!”

“타마 스타 클래식···!”

흐느적거리는 서울의 와인을 보면서 말했다.

“좀 더 편하게 연습하시라고 만들었어요. 악기는 일단 제 기준으로 넣긴 했는데, 만약에 따로 원하는 게 있으면···.”

“그, 그 기준이 금액이셨나 봐요. 제일 비싼 걸 사 오셨는데, 저희가 따로 원하는 게 있을 리가···.”

심벌을 정성스레 매만지는 드러머의 말에 내가 빙그레 웃었다.

그때 한참을 멍하니 있던 은유란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듯한 얼떨떨한 목소리로.

“정말 저희한테 이렇게 투자하셔도 되는 거예요···?”

“네, 되는 거예요. 운 좋게 모셔왔는데 투자를 안 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

옆에서 ‘맞지, 맞지.’ 라고 끄덕이며 악기와 한 몸이 되어가는 서울의 와인.

그 사이, 은유란의 표정엔 많은 것들이 스쳐 갔다. 피식 웃었다가, 흐뭇해졌다가 그러다 결국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이 되어버렸다.

“지난번에 피디님 오셨을 때요. 그때 막 의욕 생긴다고 하셔서, 저도 막 불끈해서 연습하려는데 또 비가 오는 거예요. 그래서 주인아주머니한테 비 오면 물 새니까 보수 좀 해달라고 그랬는데···어후.”

뭔가 울컥하고 올라왔는지 입꼬리가 아래로 쳐진다.

“월세도 쥐똥만큼 내면서 뭘 바라는 거냐고···60만원 쥐똥 아닌데···.”

코맹맹이 소리가 되어가는 은유란. 그녀는 흐느끼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말을 이어갔다.

“열심히 할게요. 진짜로.”

“네, 저도 열심히 해볼게요. 최고의 데뷔 무대가 될 수 있도록.”

“···?”

뚝 그치며 고개를 드는 은유란과 눈이 마주쳤다.

“데뷔···무대요?”

내가 웃으며 끄덕였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TKM 기획팀장은 대표실에서 내려와 팀원들과 회의를 시작했다.

주제는 간단했다.

연말 자선 콘서트를 위한 기획.

하지만 회의까지 간단해지진 않았다.

오히려 최근 들어 했던 어떤 회의보다도 골치 아프고, 어려웠다.

그럴 수밖에. 연말 콘서트라는 무난한 기획이지만, VMN 입장은 다를 테니까. 어워드에 TKM 뮤지션 중에선 제인, 하서윤 정도만 초대하는···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연말 자선 콘서트를 해야 할까?’

절대 아니지.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결국 한가지 결론으로 좁혀졌다.

‘하면 안 된다.’

유재완 대표가 왜 이런 얘기에 꽂혔는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건 안 된다. 다행히 유재완 대표도 무작정 ‘방법을 찾아라’가 아닌, ‘아더 레이블의 장기로와 논의를 해봐라’였다.

어린 대표에게 가서 설득 내지는 보고를 하는 느낌이라 기분이 별로 좋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사옥을 나섰다.

“아차차. 회의 때문에 정신이 없었네···.”

괜히 갔다가 장기로가 없으면 낭패라는 생각에 얼른 전화를 걸었다.

-잠시만요. 아, 대표님이 와도 된다고 하시네요. 지금 바로 오시나요?

‘역시, 허락받는 기분이잖아!’

기획팀장의 입매가 삐뚤어졌다.

젠장.

자신보다 10살이나 어린 장기로에게 보고를 하러 간다는 생각에 한껏 기분이 안 좋아진 상태로 아더 레이블 사무실에 도착했다.

들어가자 여직원이 사근사근하게 응대하며 자신을 미팅룸에 앉혔다.

“마실 거 드릴까요?”

“아 괜찮습니다.”

“장 대표님 곧 내려오실 거예요.”

여직원이 나가고, 기획팀장은 책상을 툭툭 두드리며 유리 너머를 둘러보았다.

처음 와보는 아더 레이블.

규모는 작지만 그래도 꽤 괜찮았다.

‘바닥도 대리석이고.’

구둣발로 바닥을 퉁퉁 때리며 생각해온 말들을 정리했다. 만나러 오는 과정은 비록 좀 그랬지만, 그래서 더 만나면 확실하게 알려줄 생각이었다. 당신이 대표님께 말하고 간 제안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를···.

‘왔군.’

이윽고, 장기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간단한 인사 정도는 나눠본 적 있던 사이기에 단번에 알아보고 인사를 나눴다.

이제 왜 TKM에 자신 같은 사람이 필요한지 보여줄 시간. 기획팀장이 말문을 열었다. 조금 강하게.

“저희가 회의를 해봤는데, 이거 장 대표님이 말한 대로 진행하면 일이 커집니다.”

장기로는 눈을 껌뻑였다. 커지라고 제안한 건데? 라는 듯이. 타격이 들어가지 않자, 기획팀장은 답답해졌다.

“저희가 오기 전에 친분이 있는 메이저 3사와 케이블 채널 피디들에게 모두 확인해 봤습니다. 모두 콘서트를 굳이? 라는 입장이고 당연히 기대 시청률도 없어서 금전적인 부분은 일체 지원할 수 없다 하고, 또 다른 문제까지 동원해서 이러쿵저러쿵 돌려 말하지만, 사실상 중계는 어렵겠단 소리였습니다.”

“그런가요···?”

기획팀장이 애 달래듯 은근하게 말했다.

“차라리 시기를 최대한 앞당겨서 VMN 어워드랑 거리를 좀 두고. 거기에 뮤튜브! 아시는진 모르겠지만 이게 요즘, 말도 안 되게 영향력이 커지고 있어요. 여기다가 광고도 넣어서 화제성도 극대화를 시키면, VMN 심기 안 건드리면서도 자선 콘서트란 이미지도 챙기고 여러모로···.”

“뮤튜브 광고 넣는 거 좋네요.”

덤덤하게 답하는 장기로. 여전한 그의 표정을 보며 점점 더 답답해질 무렵이었다. 무슨 꿈속에서 주먹질하는 기분이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미팅룸으로 들어왔다.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내부를 훑는다. 그제야 장기로가 자세를 풀고서 미소를 그렸다.

“일찍 오셨네요?”

“이미 뭔가 회의가 한창이시길래 제가 늦은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갑자기 저희 기획팀장님이 오셔서요.”

남자의 시선이 기획팀장을 향했다.

‘뭐지? 원래 예정된 약속이 있었나?’

기획팀장이 의아해하는 동안, 남자는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성큼 다가왔다.

품에서 명함을 꺼낸다. 자연스레 기획팀장도 명함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명함 교환식이 끝나고, 시선을 내려 명함을 보려는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뮤튜브 홍보팀, 백윤석 팀장입니다.”

···뮤튜브?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등장에 기획팀장의 시선이 자연스레 장기로에게로 향했다.

그렇다고 멀뚱멀뚱 서 있을 순 없어 자리에 다시 앉았다.

눈이 마주치자 옅게 웃어 보이는 장기로.

다시 시선을 돌려 이번엔 뮤튜브 백 팀장을 보았다.

대체, 왜 여길···.

백 팀장의 시선은 장기로를 향해있었다. 그리고 그의 첫 말을 듣는 순간, 기획팀장은 머릿속이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희가 라이브 스트리밍을 준비한다는 걸, 대체 어떻게 아신 겁니까?”

#백 팀장이 신기함과 흥미로움이 섞인 눈으로 날 보고 있다. 본격적인 얘기에 앞서 이것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듯이.

반면 기획팀장은 흐리멍덩하다.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제가 미래에서 왔습니다’ 따위의 말도 안 되는 소릴 할 생각은 없었고, 그래서 준비한 변명(?)을 백 팀장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빌 앨런과 작업을 위해 미국에 갔을 때, 뮤튜브 TV에 대한 소식을 접했었습니다.”

일종의 케이블 채널. 뮤튜브에 올라오는 영상들과 메이저 방송사의 방송을 시청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LIVE라는 기능이 끼어 들어가 있었지. 실시간으로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이 가능했다.

“이게 만약 미국에 나온다면, 곧 우리나라에도 들어오겠다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제한이 많더라고요. 국내 메이저 방송사들 구조상 송출권을 줄 리가 없으니까. 통신사들의 반발이 제일 클 거고요. 결국, 이것저것 떼어내다 보니 가져올 만한 기능은 라이브 스트리밍 기능뿐이었어요.”

“허···.”

바람 빠지는 탄식을 들으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나라에 정말 잘 어울리는 기능이더라고요. 라이브가.”

“그렇죠. 하핫. 이거 참···하지만 저희 말고도 이미 선점하고 있는 업체들이 있을 텐데요?”

“국내에도 몇몇 라이브 스트리밍 사이트가 있긴 있죠. 근데 인식도 그다지 좋지 못할뿐더러 기능적으로도 약해요. 뮤튜브는 화질, 음질, 싱크 등을 전부 개선해서 런칭 할 것 같은데······제 생각이 맞나요?”

백 팀장의 눈이 커졌다. 더 커질 수 있었구나, 놀라울 만큼.

“지금 업계 종사자랑 얘기하는 줄 알았습니다. 주변에 그런 분이 계십니까? 절대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만, 기획사 대표님께 이런 얘길 듣게 될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늘 그렇듯, 결과를 알고 되짚는 건 훨씬 쉬운 일이니까.

옆에 마침 기획팀장도 있으니, 내 생각이라는 생색을 제대로 내자.

“그냥 어떻게 하면 콘서트를 더 좋은 기능으로 더 많은 사람한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퍼뜩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러자 참다못한 기획팀장이 입을 열었다.

“설마 그 라이브 스트리밍이란 기능으로 콘서트를 중계하려는···.”

“네. 그러면 뮤튜브는 서비스 시작 전, 기술력을 대중에게 제대로 보여줄 기회가 될 거고, 저희에겐 요즘 무섭게 커지고 있는 뮤튜브의 신기능을 등에 업고 화제성을 모을 수 있고요.”

기획팀장의 머릿속이 복잡해진 게, 겉으로도 확연하게 보일 정도였다.

나는 다시 백 팀장을 보았다.

“아, 저희 기획팀장님이 광고 얘기도 하시더라고요. 그거 혹시······.”

백 팀장이 시원스럽게 웃었다.

“해드리죠. 이 계약이 잘 성사되면 저희가 그냥 해드리겠습니다. 뮤튜브 영상을 틀기만 하면 나오도록.”

이에 나도 빙그레 웃었다.

옆에서 기획팀장만이 웃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계산해 온 답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아버린 사람처럼.

#“오셨어요?”

터덜터덜 들어오는 기획팀장에게 직원들이 인사를 해왔다. 동시에 오늘 있었을 담판에 대한 궁금증도 담아서.

“어땠어요? 뭐라셔요?”

“알겠대요? 팀장님 얘기 들으니까 아니다 싶다죠?”

“팀장님?”

잠시 멍하게 직원들을 훑던 기획팀장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거······.”

“···?”

“계산 다시 해봐야겠다. 처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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