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14화 (114/221)

114. 고래 싸움에 새우는 (2)

TKM과 VMN 채널.

둘의 사이의 문제라는 건데···.

양 피디와의 전화를 끊자마자 정 대리에게 연락했다.

-이 새끼들이···.

내 얘길 전하자마자, 그가 험한 말을 내뱉었다. 그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던 모습이었다.

무슨 일인지 아직 듣지 못했지만, 하나는 알겠네. 일이 생각지도 못하게 꼬이고 있다는 거.

-프로그램 출연 때문에 자잘하게 계속 부딪혀 왔다더라고······.

프로그램 특성상 스케줄을 쪼개고 쪼개도 도저히 불가능한 것들이 있다. 몸을 많이 쓰거나, 녹화시간이 긴 프로그램들.

매니지먼트 팀이 그런 프로그램들을 몇 개 거절했나 보다.

그게 화근이 되었고, VMN이 칼을 빼든 것.

거기에 전혀 모르고 있던 아더 레이블이 옆에 있다가 베인 거고.

-하는 짓 보아하니 유치하다 싶었는데, 설마 아더 레이블까지 불똥이 튈 줄이야.

팬덤이 큰 퀀텀 보이즈 정도만 제외하고는 플로라도, 포텐업도 출연 예정 중이었던 프로그램이 하나씩 날아갔다. 그런데 학준이 형 자르는 거야 일도 아니었겠지.

“그러면, TKM은 어떤 식으로 대응할 계획이래요?”

-일단 여러모로 해결방법을 찾고 있긴 한데. 이게 뭐 어지간한 피디 선에서 결제되고 있는 일이 아닌가 봐.

양 피디도 그랬지. 위에서 내려왔다고.

그럼 적어도 임원급이란 소린데···.

입맛을 다신 정 대리가 힘없이 말을 이었다.

-사실 VMN에 더 이상 출연을 안 할 게 아니면, 어느 정도 굽히고 들어가야 한다는 거지.

“거지 같네요.”

-그치. 거지 같게 흘러가지.

한숨을 내쉰 정 대리가 말했다.

-게다가 그게 다음 달에 있잖아.

다음 달?

12월을 떠올리자마자 생각나는 게 있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 쐐기를 박듯, 정 대리가 말했다.

-VMN 어워드.

젠장.

#한국의 그래미라고 불릴 정도로 국내외 크게 인정받는 VMN 어워드.

규모 면에서나 인지도 면에서나 그나마 몇 개 없는 공중파 시상식을 압도한다.

5만 명의 관객이 모여들고.

이름값 하는 스타 뮤지션들이 총출동해 무대를 꾸민다.

당연히 VMN이 생중계를 하는데, 사실상 국내 시청률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해외에 시청자들이 국내의 열 배가 넘는다고.

그렇기에 커다란 축제임과 동시에 억 소리 나는 비즈니스의 현장이기도 하다. 좋은 반응을 얻으면 해외 진출까지 꾀할 수 있는 무대니까.

‘작년 아더 레이블에선 최정아만 초청을 받았었지.’

올해엔 2년 차로서 아더 레이블이 완전히 자리를 잡기도 했고, 뮤지션들도 그 어느 기획사보다도 타율이 압도적이었기에 꽤 많은 이들이 초청받지 않겠냐는 직원들의 기대가 있었는데······.

기대의 향방이 묘연해졌다.

방송 출연에 어워드까지.

VMN이 주관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한 점도 기대하기 힘들어지는 상황.

‘이 상황에 음악방송은···.’

턱도 없지.

생각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다.

이번 곡의 성공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아더 레이블의 앞길까지 막는.

오히려 이유를 모를 때 보다 더 무거워진 마음으로 정 대리와의 통화를 끊었다. 곧장 직원들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전달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목적지는 용산.

은유란과 서울의 와인의 합주실이 있는 곳이었다.

“피디님, 여기요!”

작은 빌라가 모여있는 골목길로 들어가자 길목에 은유란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활짝 웃으며 앞머리를 파바박 정리한다.

저러니 더 앳되어 보인다. 과장 조금 보태면 미성년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

계약서를 보기 전까진 나도 당연히 오나연 나이쯤 될 줄 알았지.

근데 계란 한판일 줄이야···.

“또 밤새셨어요?”

또? 아, 그러고 보니 녹음 당일에 내가 밤을 새운 상태였던 것 같긴 하다. 악기들 녹음이 중요해서 그거 세팅 체크하느라.

“그래 보이나요?”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잠은 충분히 잤는데, 머리가 밤샌 것보다 더 과부하 상태다. VMN과의 상황이 소속 뮤지션들에게 할 얘기는 아니기에 그냥 웃어넘겼다.

“믹싱 작업 되고 있는 거 확인 하느라 요.”

그러자 은유란의 얼굴에 미안함이 떠올랐다.

“저희 거요?”

뭔소리래.

“우리 거요.”

“아···.”

은유란의 입이 벌어지고, 그 반응에 괜히 민망해져 두리번거렸다.

“이, 이리로 내려가면 돼요?”

“아 네, 넵.”

그녀가 호다닥 앞장을 섰다.

며칠 전 왔던 비 때문에 물이 샜는지 계단 바닥에 깔아둔 카펫이 질척거렸다.

아래엔 스피닛(-소형 피아노)이라 불러도 될 작은 크기의 업라이트 피아노와 커다란 콘트라베이스. 간소화된 드럼과 각종 음향장비들.

그리고 서늘한 한기.

“너무 습해서 부득이하게 에어컨을 켰어요. 악기들 망가질까 봐···.”

아주 얼음 방이네.

내가 합주실을 구경하는 사이, 은유란이 재빨리 미니 난로를 틀었다.

“멤버들은 곧 올 거예요.”

끄덕이며 작은 스툴에 앉았다. 은유란도 쭈뼛거리며 반대편에 앉는다.

“믹싱···은 좀 어떤가요?”

“술술 풀리고 있어요. 약간 음질을 떨어트려 봤는데, 효과가 좋더라고요. 더 정통 재즈 느낌 나고.”

“로파이(Lofi-낮은 품질)!”

“네, 맞아요.”

은유란이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날 본다.

“너무 기대돼요.”

“카페 안 하길 잘했죠?”

“사실 커피 마시는 것만 좋아했어요.”

웃으며 난로를 내려다봤다.

저거 때문인가. 뭔가 냉랭하게 유지되고 있던 머리가 좀 녹는 기분이다. 따뜻하고 좋네.

“감사합니다.”

“저돕니다.”

“···.”

내 대답에 잠깐 머뭇거리던 은유란이 물었다.

“···저희가 피디님께 도움이 될까요?”

“네?”

“마이원에선 항상 손해라고 했거든요. 뭘 해도.”

내가 침묵하자 은유란의 시선이 힘없이 떨어진다.

“절대 손해 아닌데요?”

대답에 튕겨져 올라오는 머리.

“기사들 올라오는 거 못 봤어요? 기로 프로듀서의 장르는 어디까지인가, 이런 거. 존재 자체만으로도 저희 레이블에 도움이 되고 있어요.”

“‘우리’ 레이블.”

“아.”

이번엔 내가 입을 벌렸다.

은유란이 쿡쿡대고 웃는다.

“다행이에요. 재즈 하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한테 폐 끼치긴 싫거든요.”

“······.”

재즈를 하는 것.

그러면서 남에게 아쉬워지지 않는 것.

비슷하다. 과거로 막 돌아왔을 때 내가 가졌던 목표와. 난 재즈 대신 음악이란 것 정도?

소박하지.

성공이란 단어가 염두 되지도 않은, 작은 꿈이다.

근데, 나에겐 그게 그렇게 어렵더라.

은유란도 마찬가지일까? 비슷할 것 같다.

작지만 큰. 가까워 보이지만 까마득한···.

내가 말했다.

“의욕이 샘솟네요.”

“갑자기요?”

“네, 갑자기. 막 끓는데요?”

“···?”

음악도 하고 있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할 만큼은 된 것 같다. 꿈을 이룬 거지.

그럼 다음 꿈은 뭐여야 할까?

글쎄. 무슨 대표가 되면 걸리는 병이라도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냥 지금은······

내 뮤지션들이 성공했으면 좋겠다.

#“성공이네.”

VMN의 예능 국장, 박한철이 번쩍거리는 시계 알을 흔들어 제자리에 맞추고 숟가락을 들었다.

식판 위로 연신 젓가락질을 하던 피디가 웃었다.

“네, 반찬을 우리가 싹 걷어갔으니 빈 식판 보면서 생각이 참 많을 겁니다.”

국을 뜨던 피디도 거들었다.

“유재완 대표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네요. 한 성질 한다던데.”

파김치를 으적거리며 먹은 박한철 국장이 입매를 올리며 말했다.

“그래 봤자지. 요즘 소속 연예인들 좀 잘나가면 너도나도 저들이 솔라톤인 줄 알아.”

두 피디가 껄껄대며 웃자 박한철 국장은 비릿한 미소를 이어갔다.

“이 기회에 아예 제대로 길들여야지. VMN 어워드 때 지난해의 절반만 무대에 서게 한다고 계속 으름장 놓다가 막판에 서넛 정도 더 와도 된다고 하면 감사하다고 알아서 숙이고 들어오겠지.”

흐뭇하게 웃는 박한철 국장의 눈에 식판을 들고 가는 익숙한 얼굴이 걸렸다.

“어, 양 피디.”

“안녕하십니까, 국장님.”

초연한 표정의 양 피디가 꾸벅 인사했다.

“그 내가 말한 건 잘 해결됐나? 한울인가 걔 빼고 명호 넣으라고 한 거 말이야.”

“네.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

“좋네. 잘했네. 알겠어, 밥 맛있게 먹고.”

재차 꾸벅 인사한 양 피디가 사라지고.

그 뒷모습을 보던 피디가 물었다.

“한울이면, 아더 레이블에 있는 애 말하는 거 맞죠?”

박한철 국장이 끄덕였다.

“이거 장 대표가 아주 난처하겠네요. 쌤통이네.”

“장 대표?”

“아더 레이블 대표입니다. 기로 프로듀서로 더 유명하죠.”

“아, 알지 걔. 근데 걔가 왜 쌤통인데?”

박한철 국장의 물음에 피디가 고소하게 웃었다.

“전에 최정아 섭외 좀 하려고 그랬더니 바쁜 척을 무지하게 하더라고요. 어찌나 재수가 없던지.”

“그래? TKM 애들은 방송 쳐내는 게 취미인가. 우리가 피땀 흘려 열심히 방송 기획해서 밥상 차려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달려들 것이지. 뭔 따지는 게 그렇게 많아?”

탐탁지 않은 얼굴로 말하던 박한철 국장이 콧방귀를 꼈다.

“곡 좀 성공하니까 뵈는 게 없는 거야. 일개 프로듀서가 직함이 대표라고 대단해진 줄 아는 거지.”

그가 고개를 내저으며 조소했다.

“지금쯤 TKM에 쪼르르 달려가서 이르고 있겠네. 어떻게 좀 해달라고.”

#바쁘게 움직이는 차량과 사람들.

부쩍 앙상해진 나무.

이제 곧 첫눈이 내릴 것만 같다.

좀 더 지나면, 종소리도 들려오겠지...

“오랜만에 보는 건데, 딱히 좋은 일이 아니라서 유감이네.”

찻잔을 들어 올리며 웃는 유재완 대표.

나는 지금 청담동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TKM 대표실에 앉아있다.

“대충 상황은 들었다고?”

“네.”

뻑뻑하게 돌아가는 상황과는 달리,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속에 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이 꽤 여유로워 보였다.

공간이 주는 분위기일까, 아니면 진짜 유재완 대표가 그런 걸까.

그때 유재완 대표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불쑥 투덜거렸다.

“어디 이래서 엔터테인먼트 사업 하겠나.”

“네?”

“못 해 먹겠어. 아주.”

멍해져서 눈만 끔뻑였다.

이에 낮게 웃음을 흘린 유재완 대표가 말했다.

“오늘 하루에만 몇 명이 여길 들락날락했겠나. 팀장급 들은 전부 내 입만 보고 있는 상황이야. 어떻게 좀 해달라고.”

차를 한 모금 더 마시며 말을 이어간다.

“본부장은 나보고 VMN 사장을 만나보라더군. 근데 그 양반도 분명히 이 상황을 알고 있을 거거든. 결국, 방관 중이란 거지. 만나면 해결이야 되겠지만···그러기가 싫네.”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 느긋한 말투 뒤에는 이미 결정한 게 있을 거라고.

“곧 결정 내릴 테니까, 우선은 걱정 좀 내려놓고 하던 일에 집중하도록 하게.”

하지만 그 결정이 뭐든···.

나는 내 얘길 해야 했다.

TKM의 직원이 아닌,

아더 레이블의 대표로서.

“프로그램으로 안 통하면, 이젠 VMN 어워드를 가지고 협박을 이어갈 겁니다.”

대화가 맺어졌는데, 내가 다시 터버렸다.

“그래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 너머에 있는 유재완 대표가 나를 의외라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어떻게 좀 해달라고 온 게 아닌가? 싶은 표정이다.

목소리에 힘을 조금 빼며 답했다.

“쪼잔하게 파티 초대권 가지고 협박하는데, 굳이 그 파티를 가야 할까 싶습니다.”

“안 가면?”

“저희가 여는 방법도 있겠죠. 예를 들면······.”

다시 한번 창밖을 보며 말했다.

“연말 자선 콘서트 정도로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