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올 댓 재즈 (3)
‘오랜만이네.’
지상인데도 지하 같은 쾨쾨함이 묻어나는 계단을 올라 3층에 올라섰다.
안쪽에서 둥둥거리는 소리가 들리길래 조심스레 문을 밀었다. 형형색색의 작업실. 문 바로 앞 덩그러니 놓인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안쪽에선 윤태영이 날 발견하곤 살짝 웃어 보였다. 그의 앞에는 레슨생이 베이스를 튕기고 있었고.
선생님이 윤태영이라 그런가.
‘엄청 잘하잖아?’
덕분에 기다리는 게 심심하지는 않았다.
리듬에 맞춰 까딱거리다 보니 어느새 ‘수고하셨습니다!’라며 레슨생이 일어났다.
“수고했어요.”
부스스 웃는 윤태영과 가방을 챙겨 돌아서는 레슨생.
“어···?”
그리고 채널 바꾸듯 돌아가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냥 봄. 의아하게 봄. 놀라서 봄.
“기, 기, 기···.”
윤태영이 끄덕였다.
“맞아요. 기로 프로듀서님.”
“저분이 여길 왜···.”
“음. 그러게요. 오신다는 얘긴 들었는데, 무슨 일인지는···.”
내가 피식 웃었다.
“밥 같이 먹으려고요.”
“밥! 선생님 기로 프로듀서님이랑 밥 같이 먹는 사이에요!?”
도대체가 자신에 대해 어필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굳이 안 해도 돼서 그런가. 얼굴이 잘생기면 충분히 그럴 만도···.
“녹음도 같이 했는 걸요.”
“네에에!?”
입을 쩍 벌리며 자신의 선생과 날 번갈아 본다. 대박이라며 한동안 떠날 줄 모르던 레슨생이 작업실을 나서고, 윤태영이 다가왔다.
경첩이 고장 났는지 반쯤 닫히다 만 문을 보며 물었다.
“저 친구가 마지막 레슨생이죠?”
“네.”
윤태영에게 레슨은 단순히 생계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나와 함께하며 주머니 사정이 나아졌음에도 레슨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추가로 받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남은 마지막 레슨생이 좀 전의 학생이었다.
“큰 보람을 줬던 일인데···이제 베이스에 더욱 집중해야죠. 피디님에 맞춰서.”
욕심 많은 천재가 지금까지보다 더 집중한단다. 어딘가 결연한 눈으로 날 보면서. 그러다 자신의 배를 매만지며 말했다.
“허기지네요. 이제 밥 먹으러 가죠. 뭐 드실래요?”
“아, 그전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 좀 도와줘요.”
#겨울이 슬슬 돌아올 눈치를 보는지 밤공기가 쌀쌀맞다. 겉옷을 입었는데도 서늘할 정도로.
“안 추워요?”
윤태영은 후드 하나 뒤집어쓰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전 괜찮아요. 원래 추위 잘 안 타서. 근데······갑자기 여긴 왜 온 거예요?”
서늘한 공기와는 정반대로 거리는 축제 분위기로 뜨겁다. 다양한 분장을 한 이들이 곳곳에 보인다. 덕분에 내가 이 밤에 시커먼 선글라스를 쓴 게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
“요즘 빌스 못 갔죠?”
“그렇죠.”
“재즈도 통 못 들었겠네요?”
“네. 아, 설마···.”
눈치챈 듯한 윤태영이 고개를 비스듬히 들어 올렸다. 거리 한쪽에 ‘올 댓 재즈’란 간판이 반짝이고 있었다.
빌스에서 살다시피 한 윤태영이 올 댓 재즈를 모를 리 없지.
“재즈······좋죠.”
좀 전까지만 해도 배고프다던 윤태영이 오늘 본 중에 가장 환하게 웃었다. 역시 밥보다 음악이 일용할 양식인 사람이다. 이 천재는.
우리는 올 댓 재즈 안으로 들어가 소파 자리에 앉았다. 입장료와 음료를 주문하고, 들어 올 때부터 봐둔 무대 앞쪽 테이블로 시선을 돌렸다. 세 남자와 그사이에 앉아있는 홍일점. 은유란이 보인다.
내 목적을 아직 모르는 윤태영이 테이블에 올라온 맥주를 쭉 들이켜곤 주변을 훑었다.
“올라올 때보니까, 이 시간대 연주자가 은유란과 서울의 와인이던데요?”
“알아요?”
“아뇨? 오늘 처음 듣는 이름이에요.”
흥미로운 눈빛으로 악기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무대 위를 지켜보는 윤태영.
나는 캔 콜라를 따 얼음 잔에 부었다. 그리고 홀짝이며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이윽고 스피커로 흘러나오던 노래가 멎었다. 조명도 몇 개가 툭툭 꺼졌다. 조도가 약해지자마자 갑갑한 선글라스를 벗고 무대 위에 시선을 올렸다.
성큼 올라서는 서울의 와인 멤버들.
웅성거리던 공간이 나무로 된 무대 바닥이 끼릭 거리는 소리까지 크게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뒤이어 머리를 찰랑이며 올라오는 은유란.
계단을 단상 뛰어오르듯 힘겹게 올라서는 걸 보며 곳곳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비웃음이라기보단 귀여워하는 느낌이었다.
공연이 막 시작하려는 찰나. 내가 윤태영에게 말했다.
“형. 이 팀 어떤지 잘 봐주세요. 특히, 보컬 말고 나머지 멤버들이요.”
이게 굳이 윤태영과 함께 온 이유였다.
은유란이야 멜로디가 들리는, 검증된 뮤지션이었지만 그녀의 밴드는 다르잖나.
진짜 무명 재즈 밴드.
그렇기에 나보다 재즈에 이해도가 깊은 윤태영이 그들을 평가해줬으면 했다.
내 다음 작업이 재즈가 될 거란 걸 눈치챈 걸까? 살짝 놀란 눈빛으로 날 보던 윤태영이 이내 끄덕였다. ‘재즈는 의왼데.’라고 중얼거리며.
이윽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트리오. 건반과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드럼이 만드는 배경 위로 은유란의 목소리가 얹어졌다.
앳되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음색은 성숙하다. 허스키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맑고 청아하단 느낌은 들지 않는. 마치 바닥에 바짝 붙어 노면을 읽어가는 타이어의 느낌이랄까. 거기에 더해지는 그루브는 단조로운 헤드(-후렴)를 특별하게 들리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공연은 40분가량 계속되었다.
지루할 틈이 전혀 없었다.
곡을 팽팽하게 당겨주는 각자의 솔로.
그중에서도 수줍게 이어가는 은유란의 스캣은 공연을 펄떡거리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터져 나오는 박수에 동참했다. 그리고 윤태영을 보았다.
“···저런 재즈 밴드를 제가 왜 몰랐죠?”
윤태영의 표정과 목소리는 한없이 진지했다.
“글쎄요. 소속사가 방치해서···?”
소속사가 있는 게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를 여실히 보여주는 경우다.
소속이 있으니 마음대로 활동도 못 하는데, 소속사는 나 몰라라.
인지도를 쌓을 수 있을 리가.
그래놓고 내가 찾아가자 그제야 부르는 꼴이라니···.
“아무튼, 어때요?”
“보컬이야 뭐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네요. 피디님이나 저나 입 벌리고 봤으니.”
그랬나?
“그리고 저 밴드는······.”
윤태영이 악기를 정리하고 무대를 내려오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수준급이에요. 특히 서로 합이 잘 맞네요. 평소엔 보컬을 빛나게 하면서도 솔로 파트에선 자신이 튈 줄 아는 연주자들이에요.”
“그래요?”
작게 끄덕이며 그들을 보았다. 은유란과 서울의 와인.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완벽하네. 저 구성, 그대로 데려오기에.
“카페는 더 나중에 차리셔야겠네.”
작게 중얼거리며 콜라를 비웠다. 덩달아 맥주를 비우는 윤태영.
“···?”
“가실 거잖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눈빛만 봐도 알죠. 욕심이 번지르르한 피디님 눈빛.”
사돈 남 말 하네.
피식 웃으며 끄덕였다.
“이제 진짜 밥 먹으러 가요.”
“넵.”
곧장 이것저것 어깨에 메고 나가려는 은유란과 일행에게로 다가갔다.
“오 우리 팬 생긴 건가?”
드러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리와 가까워지자 표정이 점점 변했다. 마치 아까 전 윤태영의 레슨생처럼.
“야. 팬은 아닐 것 같은데···?”
“그러게. 사실 내가 팬이야.”
숙덕거리는 멤버들 사이에서 멍한 표정의 은유란을 보았다.
“우리, 저번에 봤었죠?”
#시선들이 몰려드는 걸 피해 근처 고깃집으로 향했다.
아주 마침. 그들은 공연의 뒤풀이를 할 예정이었고, 우리는 밥을 먹어야 했으니.
“저흰 치킨이어도 되는데.”
낯가림이라곤 요만큼도 없어 보이는 서울의 와인 멤버들이 신나게 고기를 구우며 이것저것 질문을 쏟아냈다.
“평소에 재즈 즐겨 들으세요?”
“레드리시는 지금 계속 해외에 있는 거예요? 저 유지은님 완전 팬이거든요.”
“어, 그럼 윤태영 베이시스트는요? 앤 더글라스랑 작업 끝나고 아예 들어오셨나요?”
고기 한 점씩 입에 넣으며 질의응답을 해나가다 살짝 놀랐다. 옆에서 흡입하듯 먹는 것에 집중하던 윤태영도 순간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질문한 이는 트리오의 베이시스트.
“태영이 형 아세요?”
“그럼요! 악기가 악기인지라 피디님 곡 들을 때마다 인상 깊었거든요. 그래서 찾아봤죠. 얼굴은 모르지만, 그래도 엄청 팬입니다. 특히 이번 앤 더글라스 앨범은 진짜······.”
“와, 형이 들으면 무지 좋아하겠어요.”
쿨럭. 옆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된장찌개가 칼칼하긴 하지.
그 소리 덕에 이목이 쏠렸다.
“근데, 옆에 분은 혹시 연예인이세요?”
“얌마. 딱 보면 모르냐. 이렇게 잘생기셨는데?”
“나 아까부터 테이블 밑에서 핸드폰으로 계속 찾고 있었잖아. 아더 레이블 소속이신가 하고.”
윤태영이 날 본다. 어쩔까? 하는 얼굴로. 더불어 이 상황이 민망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아, 저희 소속은 맞는데. 연예인은 아녜요. 베이시스트지.”
순간 물 위에 떠 오르듯 붕 뜨는 표정들.
특히나 베이시스트는 사고의 흐름이 토네이도라도 만났는지 어버버하고 있었다.
“서얼마···”
“윤태영이라고 합니다.”
쐐기를 박자 베이시스트의 눈, 코, 입이 다 열렸다. 팬이라며 야단법석을 떨더니 평소 궁금했던 게 산더미라며 아예 개인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동경하던 뮤지션과의 만남. 그게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지 알기에 그러려니 했다.
윤태영은 생전 처음 겪는 상황에 꽤나 당황한 듯 보이지만, 나는 내심 뿌듯해졌다.
빌스에서 자조 섞인 얘길 내뱉던, 그때의 윤태영이 떠올라서.
술이 들어가며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아직 이 상황이 어색한 듯 눈알을 굴리는 은유란에게 물었다.
“고기는 먹을 만해요?”
“네. 넵!”
“다행이네요.”
끄덕이다가 넌지시 던졌다.
“재즈, 매력적인 거 같아요.”
“그쵸.”
“그래서 해볼까 하는데. 어때요?”
“···네?”
“해볼래요?”
주변이 확 조용해졌다. 돌아보니 서울의 와인 멤버들의 시선이 이쪽을 향해있었다. 웃음기 쫙 뺀 표정으로.
“···지금 내가 잘 못 들었나?”
“나도 들은 거 같은데?”
“방금 스카웃 제의한 거 맞지?”
상황 파악을 마친 멤버들이 벌떡 일어났다.
“누나 이거 기회야.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왔어. 얼른 잡고 올라가!”
“피디님 저희 누나 잘 부탁드립니다!”
“제 술···아니, 차 가져오셨댔지. 자 콜라 받으시죠!”
오버스러운 반응에 웃음을 터트리며 은유란 쪽을 보았다. 눈을 동그랗게 뜬 은유란은 멤버들을 보며 뻐끔거렸다.
“야, 우리 카페는···.”
“우리라뇨. 이제 저희 카펜데요?”
“누나 아메리카노 겁나 맛 없어. 샷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무슨 카페야.”
술기운에 들뜬 멤버들이 서로 어깨동무까지 하고 으쌰으쌰 하는데, 정작 은유란은 사방이 막힌 곳에 있는 사람처럼 당황스러워한다. 그녀가 다시 날 보며 물었다.
“농담이시죠?”
“일단 진담이긴 한데······.”
“한데?”
갸웃거리는 은유란에게 시선을 떼고, 재즈에서 치어리더로 장르를 바꾼 서울의 와인 멤버들을 보았다.
누군 김치국을 사발째로 들이키던데, 여긴 한 숟갈을 안 뜨네.
“은유란 씨한테만 제안하는 거로 보였나 봐요.”
응원이 뚝 멈췄다.
“재즈를 보컬로만 만드는 것도 아닌데.”
“···!”
장난기 어린 내 표정에 윤태영이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손목을 확인했다.
“마침, 딱 자정이네요.”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각자의 핸드폰과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는 은유란과 서울의 와인.
지금 막,
그들의 소속이 사라졌다.
타이밍 좋게. 내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