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09화 (109/221)

109. 올 댓 재즈 (2)

“마이원이 그런 쪽 장르의 뮤지션도 키웠었어요?”

내 얘기가 끝나고, 한 직원이 의아해했다. 다른 직원들의 표정도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예전에는요. 비주류 장르를 하는 인디 뮤지션들 위주로 영입하고 그쪽으로 자리를 굳혀보려는 듯했었는데, 제대로 이름을 알린 팀은 없었죠. 그러다 운 좋게 만든 팀이 확 뜨면서 마이원이란 회사가 알려지기 시작했고요.”

그러니 마이원 자체가 알려지기 이전의 뮤지션들은 사람들이 모르는 거고.

나도 은유란은 전혀 모르는 뮤지션이었다. 그녀의 밴드라는 서울의 와인은 더더욱.

질문한 직원이 가볍게 손뼉을 쳤다.

“아, 그럼 아이틴이?”

“네. 궁여지책으로 만든 여자 아이돌이었죠. 근데 그녀들이 덜컥 대박 나버렸고. 그다음부턴 확실히 그런 쪽으로 힘을 싣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마이원하면 아이돌 회사라는 이미지가 생겼구나···.”

내 설명에 끄덕이는 머리들. 모두가 한없이 심각하거나 고심하는 표정들이다.

그럴 만도 하지.

날 선 댓글들과 근거 없는 비판. 그리고 사실과 다른 기사.

호시탐탐 트집을 잡으려는 이들이 도처에 깔린 상황이기에.

이게 누군가의 삐뚤어진 팬심이든, 소속사나 개인의 장난질이든 하루에도 열두 번씩 여론이 뒤집히는 연예계에서 좋지 않은 상황임은 확실했다.

‘근데, 의외로 괜찮네.’

정작 나는 이 상황에 덤덤할 수 있었다.

오히려 머리가 식는달까.

차갑게 내려앉은 머리로 이 상황을 보고 있었다.

근심 어린 표정의 김지희가 볼펜을 달깍거리다 입을 열었다.

“마이원이 큰 기획사는 아니지만, 아이틴이나 박혜진으로 꽤 인지도가 높아지는 추세이니 콜라보는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한데···.”

그녀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이어진다.

“재즈···라는 게 사실 클래식보다도 열악한 장르라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사실 여론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재즈가 아닌, 다른 장르의 무명 가수여도 상관없으니까요.”

맞는 말이다. 무명이 중요한 거지, 재즈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렇기에 설득이 필요할 거로 생각했었다.

내가 작게 끄덕이며 설득을 시작하려는 때.

주재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재즈가 확실히 대중들에게 생소한 장르죠. 고루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그는 김지희의 말에 동조하는 듯하더니 어느새 내 쪽을 돌아보며 웃고 있었다.

“근데, 그래서 확실히 괜찮은 선택 같아요. 이 시점엔.”

응?

의외의 결론이었다.

직원들의 시선이 모여들자 주재윤이 말을 이어간다.

“유명 가수들도 그런 게 있거든요. 예술기라고.”

누군가 되물었다.

“예술기요?”

“네. 들으면 딱 뭔지 아실 거예요. 대중적인 모습으로 성공한 뮤지션이 갑자기 완전 비주류 장르의 음악을 콜라보한다거나, 그림을 그린다거나. 패션에 손을 댄다거나 하는 시기···뭔지 아시겠죠? 그때가 딱 예술기죠.”

직원들이 각자 누군가를 떠올린 듯 끄덕였다. 나도 당장에 떠오르는 이름이 꽤 많았다.

“한창 상승가도를 달리다가 어느 정도 정체기가 올 것 같을 때 쓰는 이미지 메이킹이에요. 대중적인 인물이 예술적인 한 가지를 손대는 순간, 그 사람의 급이 변한다고 해야 하나. 뭐, 페이즈2가 시작되는 거죠.”

김지희가 입 모양을 동글게 말며 끄덕인다. 그러더니 날 돌아보며.

“그럼, 이게 피디님의 예술기가 될 수 있다?”

“네,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주재윤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하다 내 어리둥절한 표정을 봤는지 입꼬릴 올렸다.

“이거, 의도 하신 거 아니죠?”

“아무렴요.”

당연하지. 마케팅의 마짜도 모르는데.

‘역시’라고 중얼거리는 주재윤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그래서······.

해도 된다는 거지?

#[유란 씨. 저 김혜령이에요. 미팅 때 해주신 얘기 너무 괜찮은 것 같아서, 제대로 인터뷰 진행하고 싶은데 언제쯤 가능하실까요?]

둥글게 말린 앞머리.

새하얀 얼굴에 오밀조밀하게 들어간 이목구비.

까치발을 들어도 160을 넘기가 힘들 것 같은 키.

은유란이 진동에 이끌려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옮겼다. 잠시 내용을 읽고서, 다시 집어넣는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 쭈뼛거리며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부르셨어요?”

“어, 유란아 이리와 앉아봐.”

혀부터 식도까지 기름칠한 듯한 목소리에 은유란이 꺼림칙해 하며 자리에 앉았다.

양손을 깍지 낀 마이원 대표가 능청맞게 물었다.

“그, 유란이가 계약 기간이 얼마나 남았지?”

“······5일 남았죠.”

“어이구, 벌써 그렇게 됐나? 그럼 재계약을 얼른 해야겠네?”

“네?”

은유란의 얼굴에 의구심이 차올랐다.

이건 뭔 소리지.

불과 한 달 전이었다. 자신이 재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던 건.

그때 대표가 어떤 반응을 보였었는지 그녀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뭐? 재계약? 허, 꽤 뻔뻔하네. 지난 계약 기간 동안 회사 입장에서 완전 마이너스였던 건 알고 있나? 실력 있는 작곡가 붙여줬는데 앨범 망해. 공연 수수료? 그거 떼서 우리가 뭐 얼마나 벌었을 거 같아. 그거 다 네 홍보비로 나갔어. 서울재즈페스티벌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그걸 회사에서 백날 밀어주면 뭐해. 본인이 잘해야지. 본인이.’

-라고 했던 그 대표가 맞나? 이 정도면 세계관 최고의 기억상실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 제가···.”

은유란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종이 한 장이 앞에 놓였다.

“여기 계약서. 얼른 찍고 다시 열심히 해보자. 이번엔 앨범도 대박 내고, 큰 무대도 서봐야지.”

“대표님. 저 재계약 하지 않기로···.”

“허헛. 설마 그때 일 때문에 그래? 재계약 물어봤을 때 내가 뭐라고 한 거?”

기억상실이···아니네?

대표는 얼굴에 능구렁이를 감은 것 같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땐 내가 이런저런 문제로 좀 예민해서 그랬어. 하긴,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내 뮤지션한테.”

잠자코 듣던 은유란의 속에서 울컥하고 뭔가가 올라왔다.

내 뮤지션?

“그 말씀 듣고 저 다른 거 준비하는 중이거든요. 밴드 멤버들이랑 작은 카페를 하나 차리려고···.”

“카페? 그거 쉬운 거 아니야. 괜히 목돈 날리지 말고 재계약 하자고. 어때, 좋지?”

“······.”

인자하게 웃던 대표의 입매가 씰룩거렸다.

“대체 왜? 뭐가 문젠데?”

“문제는 아니고요. 갑자기 왜 이러시는지도 모르겠고. 사실 저 여기 있으면서 회사가 손해를 많이 봤다고 하셨지만, 저도 정말 힘들었거든요. 따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정도로.”

“그래서, 굴러들어온 복을 차내겠다?”

“복이요?”

은유란이 의아해하자 대표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다시 능구렁이를 둘러 가렸지만.

“내가 최 실장한테 얘기해서 너 앨범도 준비하고 그러라고 다 얘기해놨는데. 정말 안 할 거야? 이제 2집 냈잖아? 삼세판은 해 봐야지. 안 그럼 평생 후회한다?”

은유란은 화가 났다.

이 순간에 흔들리는 자신에게.

지난번 재계약은 꿈도 꾸지 말라는 얘길 듣고서 밴드 멤버들과 술김에 그토록 다짐했었는데. 이제 그만하자고···.

“그럼······저희 밴드 모두 재계약하는 건가요?”

“어? 아니지. 너만 할 거야 이번엔.”

“네? 왜요?”

“너 더 크게 지원해 주려고. 밴드로 활동하면 괜히 인디 이미지만 심어줘. 재즈 이미지도 좀 지우고, 대중음악 작곡가. 아주 유명한 사람 붙여줄 테니까 우리 제대로 해보자고. 내 능력 잘 알잖아? 아이틴, 박혜진처럼 될 수 있다니까?”

“······.”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러니까-.”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역시 안 할래요.”

“이런, 멍···!”

은유란은 윽박지르려는 대표에게서 시선을 떨궜다.

‘재즈도, 밴드도 하지 않으면 내가 음악을 할 이유가 없는데.’

그걸 모른다. 눈앞의 배불뚝이 아저씨는.

“후아···너 이거 기회야. 다신 안 올 기회라고. 쯧, 시간 좀 줄 테니까. 후딱 맘 정리하고 다음 주 중으로 와. 다시 계약서 작성하게. 알았어?”

은유란은 말없이 일어났다. 돌아서려던 그녀가 대표에게 물었다.

“아, 저 그때 인터뷰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던 거 있잖아요···.”

“그랬나?”

전혀 모르겠다는 목소리.

“미팅하러 간다고···.”

“최 실장한테 얘기한 거 아니고? 아 어쨌든 그거 뭐.”

“거기서 인터뷰하자고 연락이 와서요.”

“기자야? 뭐 상관없지. 어딘진 모르겠지만 해, 해.”

대표가 손을 휘적거렸다.

은유란은 입술을 안쪽으로 말며 끄덕였다. 그리고 곧장 대표실을 나섰다.

“별 쓸데없는 거 가지고.”

그녀가 나간 문을 보며 삐뚤어진 입매로 중얼거리는데, 직원 한 명이 들어왔다. 아이틴의 매니저인 최 실장이었다.

“어. 세은인 뭐래?”

“아까 일로 마음이 단단히 상한 모양입니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뭐, 기론지 가론지 그 자식이랑 작업 안 하면 뭐 있던 팬들이 떠나가? 벌던 돈이 사라져?”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작 대표도 세은 못지않게 장기로와의 콜라보가 탐이 났다.

‘이걸 인연으로 잘 이어가면서 곡들도 받고, 듀엣 같은 것도 시키면 분명히 또 대박난다!’

과거였다면 일개 프로듀서가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최근 몇 년 동안 그가 보여줬던 행보. 그리고 아더 레이블의 초창기 모습과 지금을 생각하면 가능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말 그대로 동아줄이었다.

“문제는 은유란, 쟤가 주제도 모르고 삐죽거린다는 건데.”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최실장이 의견을 내놓았다.

“차라리, 은유란한테 사실대로 말하면 쉽게 해결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대표는 인상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고갤 내저었다.

“그러다. 아더 레이블이랑 연락해서 홀라당 그쪽으로 계약하면 어쩌고.”

“아···.”

“성질머리 같아선 오늘 억지로라도 계약서 작성하게 만들고 싶었는데. 괜히 나중에 문제 될까 봐 못 그랬네.”

팔걸이를 톡톡 치며 입맛을 다시던 그가 생각을 정리하고는 말했다.

“장 대표···에이씨. 나이도 어린애한테 대표소리 하려니 거북하네. 아무튼, 걔한테도 다음 주에 언제 시간 되냐고 물어볼 테니까. 걔랑 쓸 계약서도 준비해놔. 그때 맞춰 은유란도 부르고.”

“마음 바꿀까요?”

“왔더니 장기로가 떡하니 있는데, 지가 별수 있어? 도장 찍어야지.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일 텐데.”

대표가 걱정 없다는 듯 웃었다.

“사람은 가슴 뛰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해.”

회사를 일으켰던 성공.

마이원 대표는 그 순간이 한 번 더 찾아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고 있었다.

#“음, 여기 진짜 빵 맛있네.”

하늘하늘한 차림의 김혜령이 빵을 찍어 먹으며 혼잣말을 했다. 그러다 발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었다. 은유란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살짝 숨이 찬 채로.

“여기 계단 높죠?”

“하하, 제가 운동 부족이라.”

민망한 표정으로 걸어오던 은유란이 순간 목각인형처럼 딱딱하게 움직였다. 어디서 많이 본 걸음걸이. 김혜령은 장기로를 떠올렸다.

“너무 카메라 의식하지 않으셔도 돼요.”

은유란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게 될 리가···.

조금 떨어진 대리석 테이블 위에 카메라가 올려져 있었다. 반대쪽에도 하나 더. 그리고 보니 올라오는 계단을 향해서도 하나 있었던 것 같다.

“하하···.”

어색하게 앉는 은유란.

그 모습이 귀여워서 한참 웃던 김혜령이 박수와 함께 인터뷰를 시작했다.

여러 이야기들이 오갔다. 미팅 때보다 훨씬 농도 짙고 디테일한 그녀의 음악 인생.

‘장 피디님하고는 완전히 다르네.’

극과 극이었다.

뭘 해도 되는 사람과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그녀가 큰 걸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행복하게. 그게 전부였지만,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김혜령은 이 답답하지만 현실감 있는 이야기에 함께 분노하고, 함께 속상해했다.

모든 얘기가 끝나고 나서. 잠깐의 사담이 오갈 때 은유란이 웃으며 얘길 꺼냈다.

“아, 지난번에 기로 프로듀서님 뵌 거요. 밴드 멤버들이랑 친구들한테 엄청 자랑했거든요.”

“그랬어요?”

“네, 그땐 감독님이 <프로듀서> 감독님인 줄도 모르고 나온 거라 이게 뭔 상황이지, 하고 진짜 놀랐었는데.”

그녀가 흐릿하게 웃는다.

“감사해요. 감독님의 다음 다큐에 제 인터뷰가 들어간다는 게······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요.”

“정말 그만두실 생각이에요?”

“네.”

단호하지만, 그래서 더 억지 같은 대답.

나중에 카페 차리면 놀러 오라는 말을 끝으로 그녀와 일별했다.

김혜령은 싹 비워진 접시를 보며 중얼거렸다.

“또 내가 다 먹은 것 같네.”

덩달아 복잡해진 마음으로 테라스를 훑었다.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산뜻해진다.

‘아직 두 달이 안 됐지.’

꽤 즐겁게 나눴던 대화. 그것만으로 유익했다고 생각할 무렵 걸려온 전화. 그리고 미국에서의 촬영. 그 모든 게 여기서 시작되었다.

‘내 감독 인생이 바뀐 곳이지.’

그리고 어쩌면···.

은유란에게도 이 동네가 비슷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음악 인생이 바뀐 곳으로.

고민을 마친 김혜령이 핸드폰을 들었다.

-네, 감독님.

전화 너머로 들리는, 비범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

“장 피디님. 저 오늘 유란 씨 인터뷰 진행했거든요.”

-역시.

“네?”

-아, 아녜요. 서울에 있었구나 싶어서···근데요?

고개를 기울이던 김혜령이 전화를 건 이유를 다시 떠올리며 물었다.

“피디님, 유란 씨한테 관심 가신 거 맞죠?”

-그렇죠? 아, 물론 뮤지션 대 프로듀서로서···.

“풉. 누가 뭐래요?”

-크흠.

침음성에 한참을 웃던 김혜령.

그녀는 입을 달싹였다.

오늘 들었던 은유란의 이야기.

그 몇 년째 이어져 온, 남 일 같지 않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 같은 답답한 이야기가.

이제부턴 바뀌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을 갖고서.

“유란 씨, 마이원이랑 곧 결별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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