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06화 (106/221)

106. 장작이 타오른다

[4.6/5점]

-······생각보다 평점이 좋은걸?

-노래도 괜찮아. 포크인지, 일렉트로닉인지, 팝인지 장르는 도통 모르겠는데. 그냥 좋아.

-궁금해서 들어봤는데, 꽤 신나잖아?

-너무 좋음. 이 곡이 만점이 아닌 건 단순히 동양인이 프로듀서라는 걸 불편해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 때문 아닐까?

-이상하게 몰고 가진 말자. 곡의 좋고 나쁨은 주관적인 거니까.

-맞아. 난 솔직히 생소해서 이상한걸. 목소리는 좋은데, 좀···이것저것을 다 섞어놓은 것 같아.

-계속 듣다 보니 익숙해짐. 아마 리믹스 버전이 조만간 클럽을 점령할 거 같은데?

-음···솔직히. 올해 곡들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곡인 듯?

-하나는 확실하네. 론의 트위터는 옳았어!

“평점이 계속 올라요.”

TKM 5층, 라운지. 이민주가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하자, 정 대리가 알로에를 오물거리며 웃었다.

“대단하네.”

“그러니까요. 실시간 차트는 벌써 70위에요.”

이민주가 감탄을 이어갔다.

“다큐멘터리도 무려 3부작으로 방영된다던데. 진짜 얼마나 더 유명해지려고 그러는지.”

“여기 있을 때랑 완전히 딴 판이야.”

“맞아요. 여기선 인터뷰 한 번 하는 것도 어색해하더니. 곡 소개 글 쓰는 거 오글거려 하고. 근데 이젠 인터뷰에서 청산유수시더라고요.”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드나.”

정 대리와 이민주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장기로가 TKM에 있었을 때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특히 곡 작업이 끝나고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던 장면을 얘기했을 땐 둘 다 배를 잡고 웃었다.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신입 A&R 직원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두 분······기로 프로듀서님이랑 잘 아세요?”

“응, 우리 담당이었어.”

“헉!”

이민주가 웃었다.

“그게 그렇게 놀라운 일이야?”

“그럼요!”

정 대리와 이민주가 짐짓 허리를 폈다.

“이거 뭔가, 덩달아 우리도 대단해진 느낌인데요?”

“그러게. 혹시라도 이직하게 되면 이력서에 넣을까 봐. ‘장기로 담당’이라고 적어서.”

“그럼 전 장 피디님에게 기프티콘 받았던 걸 면접 때 얘기할까 봐요.”

둘이 실없이 웃어대며 말했다.

“아, 차트 팍팍 올랐으면 좋겠네요. 국내에서 낼 땐 항상 1위니까, 미국에서 70위 하는 게 더 대단한 건데도 뭔가 아닌 것 같고 그래요.”

“그럴 수 있지. 뭐, 곧 그렇게 될 것 같구만 뭘. 벌써 열 계단이나 올랐는데.”

그때 신입이 불쑥 물었다.

“그럼 혹시, 다음 주쯤엔 빌보드 차트 가능성도 있는 거예요?”

정 대리의 표정이 짐짓 진지해졌다.

대형 스트리밍 사이트인 ‘튠즈’에서 이렇게 성적이 계속 오른다면······.

그가 말했다.

“장르 별 차트에 랭크 되는 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정 대리와 이민주의 축하 전화가 왔었다.

그들의 응원을 받으며 기분 좋게 전화를 끊자, 이번엔 싱글벙글한 김지희가 눈에 들어왔다.

손에든 서류가 종잇장처럼 가벼운···아, 종이구나.

어쨌든, 저기도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인다.

“아주 쌤통이다.”

그녀가 사뿐한 걸음으로 다가오며 입을 삐죽거렸다. 그 날카로운 끝은 인터넷에 올라왔던 글들을 향해 있었다.

“국내 뮤지션도 제대로 성공한 사례가 없는데 어떻게 프로듀서가 가서 성공하냐는 둥, 괜히 갔다가 망신당하지 말고 국내에서나 잘하라는 둥. 이런 댓글들 전부 사라졌어요, 피디님.”

“좋은 소식이네요.”

“그렇죠? 아주 얼굴 안 보인다고 막말하던 놈들 전부 박제를 해놔야 하는데.”

기분 좋게 씩씩대는 김지희를 보며 푸스스 웃었다. 다른 직원들은 옳소! 거리며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그중 특히나 높은 텐션으로 동조하던 주재윤이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다큐멘터리 팀에선 연락이 너무 없네요.”

“바쁜가 봐요. 나머지 회차도 구상해야 할 거고.”

“그럼 편성이 되더라도 꽤 늦겠네요. 최대한 빨리 되는 게 좋은데···.”

그러게.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그걸 전화해서 재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나도 정신없긴 마찬가지. 인터뷰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느라 목이 완전히 갔지.

“아.”

“왜요?”

“그러고 보니 색다른 도전에서도 짧게 인터뷰를 했어요. 출연 소감처럼···.”

“어떤 내용으로요?”

“이번 곡에 대해서 꽤 많이 얘기하긴 했는데. 이것도 도움이 되겠죠?”

주재윤이 동아줄이라도 만난 것처럼 밝게 웃었다.

“그럼요! 다큐멘터리만큼은 아니지만, 확실히 좋죠!”

얘길 듣고 있던 한 직원이 주재윤에게 말했다.

“근데, 좀 아쉽네요.”

“뭐가요?”

“국내 반응이 좋을수록 우리한텐 좋겠지만. 실상 튠즈 차트가 올라가는 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잖아요.”

그치. 그걸 견인하는 건 미국인들이니까.

그런데 주재윤이 오히려 씩 웃었다.

“거긴 걱정할 필요 없겠던데요.”

“···?”

“역시 턴투더 레이블이다 싶어요. 홍보에 얼마를 쓰는진 몰라도. 엄청나게 쏟아붓고 있더라고요. 특히 라디오 쪽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미국 전역에서 틀면 나올 정도라고 하네요.”

라디오···.

빌보드 싱글차트 HOT 100을 집계하는 대표적인 기준 중 하나.

물론 아직은 그걸 기대하기엔 턱도 없지. 이제 튠즈 실시간 차트 80위일 뿐인데.

하지만 분명한 건, 이제는 이런 터무니 없는 기대가 틈날 때마다 고개를 들 정도로 곡이 성공적인 스타트를 끊었다는 거다.

잠시 후, 작업실에 들어갔던 나는 커피를 마시며 자축하는 직원들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뭐 필요하세요?”

의아해하는 시선에 대고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는 개뿔. 목소리가 붕 뜬다.

“다큐멘터리 편성 확정됐대요.”

“어, 어!? 어디서, 언제요?”

당연히 주재윤의 반응이 제일 팔딱였다.

“TBC에서, 당장 다음 주에.”

“···!”

직원들이 입을 뜨헉 벌렸다.

“급하긴 했나 보네.”

“그치 방송국 입장에서도 뜨거울 때 기름을 붓는 게 훨씬 이득이니까.”

“아니, 그래도 너무 급한 거 아닌가요? 편집도 해야 하고, 다른 회차도 찍어야 할 텐데···.”

내가 얼른 대답했다.

“추가 촬영 없이 편집만 하면 된다더라고요. 콘티가 전면 수정돼서.”

“네? 그게 무슨······.”

“제 이야기만 다룬 대요. 3부작 통으로.”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새 방영 날짜가 되었다.

아침부터 여러 연락이 온다.

망가지는 모습 기대한다는 친구 녀석들의 전화부터. 혹시나 못 보게 될까 봐 채널과 시간을 재차 확인하는 부모님까지.

한편 직원들은 오늘이 기대되는지 아침부터 보글보글 끓어올랐다. 주재윤은 보도자료를 만드는 금맥이라도 찾은 것처럼 눈에 불을 켜겠다는 반응이었고.

다 같이 보자는 김지희의 요청을 가볍게 거절했다. 웬만한 건 같이 보겠는데, 도저히 내 얼굴이 방송 내내 나오는 걸 직원들하고 같이 보진 못하겠거든.

결국, 일찌감치 퇴근 후 티비를 틀었다.

유지은이 보내준 기념품들이 가득 붙어있는 냉장고를 열어 맥주를 꺼냈다.

‘맨정신으로 보기 힘들지도 모르니···.’

제대로 된 편집본을 보지 못했지. 편성이 빠듯하니 어쩔 수 없었던 문제.

다큐 속 내 모습이 어떨지 전혀 안 그려진다. 엄청 뻣뻣했던 것 같은데. 어색해하고.

‘불안하네.’

이미 한차례 경험이 있잖나. 나는 나름 평범하게 찍는다고 찍었던 최정아 메이킹 필름이 날 요상한 캐릭터로 만들었던······.

‘덕분에 유명세를 확실히 얻긴 했지만······이젠 그만 얻어도 될 것 같은데.’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매트리스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그 사이, 메시지가 한 통 들어와 있었다.

[스케줄 끝나고 서울 올라가면서 시청 대기 중!]

최정아다. 자신의 밴으로 보이는 차 안에서 패드를 펼쳐놓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옆에 팝콘도 있네.

[뭐가 그렇게 본격적이야.]

[피디님이 주인공인 다큐인데 너무 기대되잖아요. 오늘 촬영 하나도 안 피곤하더라고요.]

주인공은 아니고···.

[너도 내가 망가지는 게 보고 싶니?]

[망가져요!? 더 기대돼···!]

[······.]

얜 친구들보다 더하네.

고개를 내젓는데, 이번엔 전화가 왔다. 당연히 최정아겠거니 했는데 불쑥 들려오는 목소리가 앙칼지다.

-다큐 나온다면서요. 나 오늘 알았네.

갑자기 하서윤이라니.

“그, 뭐···네.”

-그 반응은 뭐예요? 내가 아는 게 싫어요?

“아녜요. 재밌게 봐요.”

-본다고 안 했는데요?

“안 봐요?”

더 잘됐네.

-아뇨? 볼 거예요. 아주 잘.

“······.”

-그리고 SNS에 글 하나 올리려고요. 응원 글.

너무 의외의 전개라 마시던 맥주를 그대로 뿜을 뻔했다.

“네?”

-나도 막 피디님 엄청 응원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사람들 내가 피디님이랑 작업하고 차트 1위까지 한 거 다 아는데 그냥 입 닫고 있기 좀 그래서 그래요.

“아무도 신경 안 쓸 것 같은···.”

-그냥, 내가 찜찜해서 그런다고요.

쩝. 서로 작업하고서도 어떻게 대화의 절반이 짜증일까.

“알겠어요. 올려요.”

-그, 쇼윈도 부부···아니, 컾···아니. 그, 그냥 쇼윈도처럼 친한 척하는 거니까. 너무 기분 나빠 말고요.

“기분 안 나빠요. 이 기회에 그냥 친해지죠. 뭐.”

-······뭐라는 거야. 끊을게요.

뚝.

하하. 진짜 끊었네.

화해의 손길이 퇴치 약이 될 줄은 몰랐는데.

다행히 하서윤에 대해선 내성이 생긴 터라 뭔가 엄청난 충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젠 웃긴걸.’

마침 다큐멘터리가 시작했다.

바짝 굳어 로봇처럼 움직일 나를 한 시간 동안 보고 있을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래서 괜히 핸드폰만 만졌다.

첫 장면은 내가 김혜령과 처음 만났을 때였다. 다큐멘터리에 대해 얘기를 듣다가, 브랜의 전화에 테라스로 나가는 것까지 모두 담겼다. 이때 미국에서 작곡 요청을 받았다는 자막과 함께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생각보단···.’

내 걸음걸이가 멀쩡하다. 적어도 삐걱거리는 느낌은 없네.

게다가 편집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시간의 흐름대로 착착 넘어가며 내가 했던 일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불을 차올려야 하는 이유랄 게 딱히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의 방영분이 끝에.

내가 삼겹살집에서 브랜의 전화를 받으며 1부가 막을 내렸다.

재···밌는데?

#-와 여기서 끊냐!

-호기심에 봤는데, 끝까지 다 봐버렸네요. 이거 진짜 무슨 드라마 보는 줄.

-다큐라 내일도 하는 게 진짜 다행. 한 주 기다리라 했으면 정말 곤욕이었을 듯!

-기로 프로듀서, 빌 앨런 영상 계속 볼 때 솔직히 감탄했음. 저렇게 열정적으로 만들 줄이야···.

-갑자기 끓어오르는 애국심 무엇. 이거 미국에서 기로 프로듀서님 까는 사람들한테도 보여줘야 한다.

-내일 녹음실에서 빌 앨런에게 ‘장 번 더!’ 하는 프로듀서님 기대해봅니다. BGM으로 Daft Punk의 One More Time 나왔으면.

-와, 위 댓 올려라. 추천 박자. 장 번 더!

컨텐츠는 장작이다.

불이 붙으면 곧바로 타들어 가는.

다큐멘터리 3부작 <프로듀서>는 그야말로 대형 장작이었다. 거기에 미국 최대 음원 사이트의 실시간 차트인이라는 쾌거가 부채질이 되어 더욱 활활 타올랐다.

결국, 첫 화부터 역대 TBC 다큐멘터리 기록을 모두 경신하며 시작했고.

다음날도 그다음 날까지도 자신의 기록을 전부 갈아치우며 막을 내렸다.

그렇게 장작은 모두 타 버렸지만,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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