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해야 할 일, 와야 할 결과 (4)
비행기 안. 어두운 조도 속에 고요한 진동만 울린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기대감 때문일까?
억지로라도 자려고 와인을 마셨는데, 오히려 심장만 더 벌컥거린다.
몇 차례 뒤척이다, 영화를 틀었다. 새로 나온 음악 영화.
‘이거 못 봤었는데.’
몇 번 보려 시도하다 이런, 저런 일로 극장에서 못 보고.
그 이후론 한참 까먹었다가 시간이 흘러 음악을 관둔 후에 티비에서 해주는 걸 봤었지.
아, 보진 않았구나. 괜히 마음이 음울해져 채널을 돌렸던 거로 기억한다.
이번엔 다 보자. 그래도 음울해질 일 따위 없으니.
두근거리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영화에 집중했다.
바보 같았지. 음악 영화잖아. 주인공이 복잡한 일들을 겪으며 끝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다.
하하, 더 두근거리는걸···.
영화가 끝나고, 문득 옆을 보았다.
저러다 비행기 안 공기가 모자라진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입을 쩍 벌리고 자는 팀원들.
유일하게 김혜령 자리에만 조명이 은은하게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안경까지 쓰고 말똥말똥한 눈으로 뭔가를 적고 있다. 비행기 안에서 콘티를 수정한다고 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여기나 저기나 다를 게 없네.’
곡도 스케치 단계부터 완성본까지 꽤 많은 수정을 거치듯 말이다.
그녀를 보다가 나름 깨달은 게 있어 앞에 두었던 노트북을 펼쳤다.
역시 잠이 안 올 땐 레퍼런스를 쌓는 게 최고지. 물론, 이 일 한정이지만. 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이런 생각을 가질 리 없었겠지. 그렇게 한숨도 못 자고, 한국에 도착했다.
“피디님, 금방 연락드릴게요!”
김혜령과 그녀의 팀원들이 손을 휘적거린다. 나는 이제야 한 꺼풀 씌워진 피곤에 끔뻑이며 그들과 일별했다.
집에 도착하니 늦은 밤.
그대로 매트리스 위로 풀썩 쓰러졌다.
뭔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그대로 눈이 감긴다.
‘이제, 진짜 끝났네···.’
#-라고 생각했는데.
“피디님, 정말 오랜···! 어디 아프세요?”
늦은 오후. 사무실로 들어서자 여직원이 인사를 하려다 걱정을 한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곧장 커피머신기로 다가갔다.
“새벽같이 지은 씨한테 연락이 와서···.”
“와서요?”
“미국 왔는데 어떻게 연락 한번 없냐고···.”
“혼났군요?”
“어차피 올 수 없는 거리라 괜히 콘서트 방해하기 싫었다고···.”
“변명했군요? 그러다 더 혼나셨을 거구요?”
추출 버튼을 누르며 여직원을 보았다. 당신 말이 모두 맞다는 듯이.
“어, 피디님. 귀에서 피가···.”
손으로 귀를 만지자 여직원이 꺌꺌 대고 웃는다.
“농담이에요.”
“그게 농담으로 안 들릴 만큼 혼났어요.”
“역시 귀여운 지은 씨.”
한 번 더 귀여웠다간···.
나는 으스스 몸을 떨며 어처구니없는 말 하나를 떠올렸다.
“······돈 모아서 비행기 살 거라던데요.”
“네에? 지은 씨가요?”
“스포츠카로는 동부와 서부를 횡단할 수 없다나 뭐라나.”
다시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아 관자놀이를 짚었다.
숨넘어갈 듯 웃는 여직원. 그 뒤로 우리 목소리를 들은 직원들이 우르르 나왔다.
인사는 잠깐, 업무는 시작이었다.
이제 진짜 끝나긴···개뿔.
“피디님, 론 스미스 만나신 거 자세히 말씀해주실래요? 이거 추가 보도자료를 좀 내고 싶은데. 아, 그러면 혹시 안나 샤피로도 만나셨어요?”
“경호 씨 그제 오디션 다녀왔거든요. 곽 감독님이야 당연히 오케이시고, 거기 작가님도 엄청 마음에 들어 하셨나 봐요. 역할은 드라마 음악 제작하는 회사 젊은 CEO인데······.”
“아 그리고 다큐멘터리는 어느 정도 진척이 된 상황인가요? 그것도 보도자료로······.”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겨우겨우 커피잔을 들고 홀짝이는 내게 여직원이 조심스레 묻는다.
“저도 얘기해도 될까요?”
“······네.”
“우선 인터뷰가 정말 많이 들어왔어요. 역대급으로. 아무리 잘 배치해보려 해봐도 이건 올해 안에 하실 수 있는 양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솎아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그럴게요.”
“그리고···.”
또?
“내일 <색다른 도전> 녹화 한 번 더 있으신 건 잊지 않으셨죠?”
아 맞다.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었네.
“일정표에 리스트업 해드릴···어머.”
말을 이어가던 여직원이 순간 손뼉을 치며 놀라 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니 그녀가 패드에서 시선을 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피디님 곡 발표도 내일이잖아요? 거긴 정오에 발표니까······피디님이 한창 녹화하실 때겠네요?”
#세트장. 말 그대로 꾸며진 장소다.
정면에서 봤을 땐 화려해 보이고, 뭔가 있어 보이지만 그 뒷면은 철골과 합판으로 가득한 것처럼.
그리고 세트장 위에서의 연예인들은 사실상 연기자나 다름없다. 그 위에서 서글서글한 미소와 배려, 예의범절을 연기하는 연예인들.
연기에 모든 힘을 소진한 그들이 세트장 밖으로 내려오면 가면이 옅어지는 순간이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중계 인터뷰어가 가져온 꽃다발이 방송국 쓰레기통에서 발견된다거나.
모 연예인에게 배달된 팬의 도시락이 맛없어 보인다고 모 스태프의 식도를 유랑 중이거나.
그리고, 사람이 모이면 빠질 수 없는. 험담이 심심치 않게 입에서 흘러나온다거나.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분명히 있었다.
“장 피디님, 오늘 녹화도 참여하죠?”
“어. 오늘까지 온다더라.”
새하얀 얼굴에 훈훈한 외모.
지선주가 대기실에서 나와 세트장을 훑으며 생글거렸다.
그의 매니저, 임기태가 얼굴을 굳혔다.
“그때 생각하니 또 빈정 팍 상하네. 재수 없는 놈.”
지선주를 까고 대체 어떤 놈과 작업을 하나 지켜보려 했는데, 그리고 지금껏 승승장구하던 그가 발이 삐끗하길 내심 기대했는데.
갑자기 해외 진출이라니.
그것도 턴투더 레이블의 새로운 뮤지션에게 곡을 주는 거로.
“어깨가 더 올라가 있겠어.”
“너무 싫어하진 마세요. 턴투더 레이블이면 절 거절할 만했죠.”
“으이그 착해 빠진 녀석.”
임기태가 혀를 차는데, 마침 세트장 쪽으로 다가오는 남자가 있었다. 올림머리가 어색한지 이마를 매만지며 걸어오는 장기로였다.
덩달아 입매를 씰룩거리는 임기태.
“얼씨구, 연예인도 아니면서 무슨 머리를 저렇게 올렸어?”
“그래도 꽤 잘 어울리는데요?”
“하아. 진짜 맘에 안 드네. 몇 시에 곡 발표하더라? 아주 폭삭 망했으면 좋겠어. 그 ‘튠즈’란 사이트엔 별점 시스템 있다던, 아예 0점 나와버렸으면 좋겠네.”
지선주가 웃으며 고갤 저었다.
“0점은 안 나와요. 별 반 개부터 줄 수 있어서.”
“그래? 젠장, 아쉽네. 그럼 0.5점. 그러면 당연히 차트는 진입조차 못 하겠지. 거긴 차트인만 해도 엄청난 거라며.”
“미국이잖아요. 쏟아지는 곡 숫자가 차원이 다르니까요.”
“그럼 그건 전혀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촬영 끝나자마자 아주 비웃어주겠어.”
임기태가 다짐하듯 말했다.
지선주는 못 말리겠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여전히 서글거리는 시선으로 장기로를 빤히 보았다.
#한 1년 만에 머리를 깐 것 같은걸. 사실 그땐 그냥 머리가 짧아서 이마가 드러난 거지만.
‘어색하네.’
머리를 뭔가가 고정시키고 있는 뻣뻣함을 느끼며 세트장 끝에 있는 둥그스름한 가죽 의자에 앉았다.
옆 의자엔 익숙한 얼굴이 앉아있었다. 오디셔닝 때 같이 심사를 봤던 디바 송지현.
“오랜만이에요, 피디님!”
“그러게요.”
“왁이는 잘 있어요?”
그녀의 물음에 피식 웃었다.
왁이는 서기영의 팬들이 그를 부르는 애칭이었기에. 물론 서기영은 이 애칭을 들을 때마다 불판 위의 오징어 마냥 몸을 비비 꼰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지.
“네. 곡 작업 활발히 하면서 잘 있어요.”
“와, 지난번 기영이 앨범이 나오자마자 차트 줄 세우는 거 보고 저희 회사 대표님한테 들들들 볶였어요. 쟬 데려왔어야 한다면서.”
송지현이 자신의 얘기를 빠르게 내뱉다가, 갑자기 나에 관한 이야기로 선회했다.
“그나저나 오늘 피디님 곡이 공개되는 날이죠?”
“맞아요.”
“거기가 정오면, 가만있자. 여기는······.”
시간을 계산하는 듯 골똘해지는 송수현에게 나긋한 소리가 들려왔다.
“한 4시간 뒤죠. 촬영 끝나기 좀 전쯤이요.”
동시에 내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어, 선주야?”
“누나. 잘 지내셨어요?”
“그러엄, 잘 지냈지. 너도 잘 지냈지?”
화기애애한 인사가 오간다. 지선주였다. 지난번 나와 함께 작업하게 될 줄 알고 인사를 건넸다가 조금 민망해졌을.
“피디님도 잘 지내셨죠? 아, 아니지. 엄청 바쁘셨겠네요.”
“네. 뭐···.”
서글서글한 웃음이 이어졌다.
“촬영 끝나고 집 가면서 피디님 곡 꼭 들을게요.”
지선주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나는 그 뒤를 빤히 보다가 송지현에게 넌지시 물었다.
“지선주 씨랑 잘 아는 사이세요?”
“이렇게 방송이랑 음방 촬영하면서 몇 번 마주쳤죠? 애가 너무 싹싹해서 금세 친해졌어요. 내가 저 정도 인기가 있었을 땐······솔직히 스타병 걸려서 가관이었는데.”
“그렇군요.”
“뭐, 외모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애죠. 그래서 가끔은······.”
“···?”
“아녜요. 그냥 너무 착해서 신기할 때가 좀 있더라고요.”
대수롭지 않게 던지는 말을 듣고, 천천히 끄덕였다.
그 사이, 스태프들이 분주해지며 촬영이 시작되려 했다.
촬영에 집중할 생각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배우, 예능인들이 차례대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프로그램. 나는 거기에 대해 코멘트를 다는 역할이었다.
다행이지. 눈앞에서 누군가 노래를 부른다면, 심지어 잘 부른다면 나는 집중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물론, 다른 때였다면.
‘······역시 안 되나.’
지금은 다르다. 몇 시간 후면 내 곡이 세상에 공개되지 않나. 그것도 처음으로, 미국에.
대중음악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내 곡이 얼마나 먹힐지가 판가름 난다.
심지어 이번에도 멜로디를 듣지 못했지.
오롯이 내가 전부 만든 곡이었다. 다른 것에 집중이 잘 안 될 수밖에.
밀려드는 생각들과 대치한 채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점차 생각이 줄어들며 어느새 타 분야 연예인들의 노래에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역시, 세상엔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저 중엔 당장에 데뷔해도 손색이 없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내심 감탄하며 마침내 녹화를 마쳤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마지막 노래가 끝나고, 코멘트를 달자마자부터.
나는 다시 내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기대가 무겁게 내려앉아 어질거리는.
목이 탄다. 물병을 열고 물을 마셨다.
식도로 울컥울컥 들어간다. 당장이라도 핸드폰을 꺼내 보고 싶었지만, 그건 또 좀 아닌 것 같았다. 괜히 촬영에 집중 못 했던 것처럼 보일까, 싶어서.
곧장 세트장을 내려서며 핸드폰을 켰다.
시선이 여기저기서 꽂힌다. 뭔가 저들은 모두 내 성적을 확인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다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름은 기억이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지선주의 매니저. 그의 표정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끼는 순간, <색다른 도전>의 피디가 내 쪽으로 달려왔다.
“피디님, 혹시 인터뷰 하나만 따로 따도 될까요?”
“절요? 뭐···참가자분들에 대한 코멘트를 다는 건가요?”
“아뇨, 아뇨!”
피디가 씩 웃었다.
“아직 확인 못 하셨군요?”
마침 손에 쥔 핸드폰이 켜졌다.
“확인이라면···.”
“좀 전에 공개된 곡 말입니다. 마침 프로듀서님 마지막 촬영이시기도 하니까. 짧게 소감을 넣고 싶어서요.”
“아, 잠시만요.”
피디의 말에 더는 참지 못하고 ‘튠즈’를 들어갔다.
미국 최대 음원 사이트. 여긴 평점이 중요하다 했었지. 향후 차트인 가능성이 있는지 예측할 수 있는 좋은 척도라고.
물론 신인 뮤지션에 신인 프로듀서 조합이 차트인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꿈이 큰 걸지도 모르겠다만···.
빌 앨런을 검색하자, 이미 눈에 익은 앨범 자켓이 떠오른다.
평점 4.3점. 생각보다 엄청 높다. 그리고.
‘이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제목 위에서 붉게 빛나고 있었다.
실시간 차트, 82위라는 글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