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해야 할 일, 와야 할 결과 (3)
-피디님, 보도자료 모두 냈습니다.
주재윤의 전화였다.
내가 턴투더 레이블에 곡을 주는 것부터, 승낙을 받아 작업이 결정되고, 곡이 곧 발표되는 것까지 단계적으로 대중들에게 알린 그였다.
“수고했어요. 확인해볼게요.”
-아, 그리고 피디님. 어제 론 스미스가 트위터에 피디님을 언급했더라고요.
SNS를 하지 않는 나이니 이런 소식에 당연히 느릴 것이라 예상한 것 같았다.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네, 알고 있었어요.”
-맞다, 다큐멘터리 팀도 있으니 그분들이 알려주신 것···.
“눈앞에서 올렸거든요. 사진 찍자는 걸 간신히 떼어내고.”
-······네?
주재윤의 목소리가 붕 떴다. 자신이 뭘 들은 건지 생각하는 것처럼. 이윽고 ‘그 말은···론 스미스랑 같이 계셨다는 말씀이신가요?’라고 물었고 내가 긍정하자 그는 후다닥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다음 보도자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나는 회의실로 향하며 핸드폰을 뒤적였다.
어제 보다 말았던 론 스미스의 트위터가 다시 떠올랐다.
내용은 이러했다. 과거에 플로라의 곡을 리트윗했던 일과 이번에 하서윤, 최정아의 곡들을 언급했던 것을 얘기하며 내가 현재 턴투더 레이블에서 현지 뮤지션과 작업을 하고 있단 걸 구구절절 써서 올렸다.
그 아래로 달린 댓글이 수백 개다. 어제만 해도 수십 개였는데 말이지···.
-론, 궁금하지 않아. 너는 그냥 안나 샤피로 앨범만 끝내주게 뽑아주면 돼.
-턴투더 레이블이? 정말 실력이 있는 건가?
-론이 언급했던 곡들 들어보니 생각보다 괜찮은걸?
-할 일 진짜 없네. 알아듣지도 못하는 언어로 부르는 노래가 뭐 그렇게 좋다고. 아마 론도 뜻 모르고 들었을 듯.
-멜로디는 정말 좋아! 번역기 돌려보니 가사도 괜찮고.
-노래까지 번역기 돌려야 한다니. 그럴 거면 차라리 다른 나라 언어로 된 소설을 보는 게 어때요?
-며칠 후에 나오는 건 영어겠지? 한번 지켜보자고.
-너나 실컷 지켜봐. 난 안나 샤피로를 기다릴 테니까.
슥 훑다가 그만뒀다. 대충 봐도 저 안에서 갈리는 온도 차를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따뜻하거나, 미적지근하거나. 아니면 아예 확 차갑거나.
그래도, 곡이 발표되면 저 반응들이 모두 펄펄 끓기를 기대한다. 결코, 쉽게 일어날 일은 아니겠지만···.
핸드폰을 품에 넣고 회의실 문을 두드렸다. 안쪽에서 들려오는 반응에 문을 열고 브랜이 앉아있는 테이블 끝까지 다가갔다.
브랜도 핸드폰을 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나와 같은 걸 보고 있었나 보다.
“론이 노이즈 마케팅을 해주고 있더군요.”
노이즈 마케팅···?
갸웃거리자 브랜이 웃으며 말했다.
“론이 트위터에 언급하면 그건 무조건 노이즈 마케팅이죠. 그 친구 이미지상 좋은 반응을 끌어내기 힘드니까.”
그제야 그의 말을 이해하곤 끄덕였다.
이거, 어제 사진을 피할 게 아니라 핸드폰을 뺏었어야 했나?
“그래서, 이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요?”
“네.”
내 대답에 주억거리던 브랜이 넌지시 물었다.
“곡 발표되는 거 보고 가도 될 텐데?”
“제 스케줄도 빠듯하고, 함께 온 다큐멘터리 팀도 편성 문제나 그런 것들 때문에 미팅이 줄줄이 잡혀 있어서요.”
“아.”
그의 고개가 끄덕인다. 그러다 멈칫하며 내게로 향했다.
“근데 의외네요?”
“어떤 게요?”
“난 나한테도 인터뷰 요청을 할 줄 알았는데···.”
은근한 목소리였다.
“아니, 뭐. 하고 싶단 얘긴 절대 아니고.”
저게 난 하고 싶다는 거로 들리는걸.
사실 이러면 이게 웬 떡이냐다.
앤 더글라스를 비롯한 수많은 스타를 만들어낸 턴투더 레이블의 수장. 그를 인터뷰한다는 건 다큐멘터리 팀도 나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거였지. 가능할 리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얼른 말했다. 최대한 능청맞게. ‘척’ 하면서.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 했는데.”
“이제야···?”
그의 눈이 가늘어진다. ‘이렇게 떠나기 직전에?’ 라는 눈빛쯤 되려나.
“다큐멘터리 팀은 당연히 거절하실 거라 생각했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물어 봐주겠다고 했죠.”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지. 그들이 내게 부탁한 적도, 내가 해주겠다고 한 적도 없지만. 당연히 거절할 거라 얘길 나누는 건 들었으니까.
나는 뻔뻔하게 부탁했다. 급조해서.
브랜은 의심스러워하면서도 끝내 승낙했고.
메시지 한 통을 넣어놓자 브랜과 얘기가 모두 끝날 무렵엔 김혜령과 팀원들이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저, 정말이에요, 피디님?”
김혜령이 아니라고 하면 바로 안 들린다고 귀를 막을 기세로 물어왔다.
“네. 통역사분 오기로 했으니 들어가서 기다리면 될 것 같아요.”
“와! 진짜 너무 감사해요! 뭔가 거물급 인터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시점이었는데, 이렇게 턴투더 레이블 대표와 인터뷰를 하게 될 줄이야!”
“다큐멘터리가 잘 만들어지는 게 저와 아더 레이블에도 좋은 거니까요.”
할렐루야라도 외칠 모양새인 그녀와 팀원들을 지나쳐 라운지로 나왔다.
이제부턴 알아서 잘 하겠지.
나는 라운지 안쪽을 훑었다.
소파에서 대본 같은 걸 넘기고 있는 빌 앨런.
성큼 다가가 배를 툭툭 두드렸다.
“배고프네요. 뭐라도 좀 먹으면서 얘기하죠.”
#건물 안에 있는 시장이다. 한국의 시장과는 느낌이 사뭇 다른. 차라리 마켓이라 해야 하나?
길가 쪽, 작은 가게에서 토스트를 받았다. 안쪽 바 테이블로 자리를 잡았다.
에그슬럿.
‘난 이걸 한국에서 먹게 될 줄 알았는데 말이지.’
국내에 들어온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과거로 돌아와 미국에, 그것도 음악 작업을 하러 온다는 건 꿈으로도 못 꾸는 얘기였지.
‘꽤 맛있네.’
우물거리며 빌 앨런을 보았다.
그도 이미 크게 한 입 베어 물고 바쁘게 입을 움직이는 중이었다. 흘러내리는 안경을 툭툭 올리며. 그러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불쑥 묻는다.
“제 입장이 되게 이상해진 거 알아요?”
갸웃거리자 그가 말을 이었다.
“브랜 대표님의 조건은 이거였어요. ‘인지도가 어느 정도 쌓이기 전까진 무조건 팝을 해라’ 그래서 안 하려 했는데, 프로듀서님의 멜로디에 끌려서 이렇게 작업을 해버렸죠. 정말 반강제적인 느낌이었어요.”
“전 협박한 적 없어요?”
내가 텅 빈 양손을 들며 말하자 빌이 낄낄댔다.
“그랬죠. 그냥 프로듀서님의 곡이 그랬다는 거예요. 어쨌든. 그래서 인지도가 쌓일 때까지 팝을 하게 되었네요. 계약서에 사인을 해버렸으니 빼도 박도 못 하죠.”
그냥 내용만 들으면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빌의 표정은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후회해요?”
“후회요? 음, 전혀요. 다시 돌아가면 거절해야지. 따위의 느낌이 조금도 안 드네요. 전 포크도 아닌 이 곡을, 또 선택할 것 같아요.”
순간 훅, 하고 뭔가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극찬이네···.
“고마운 얘기네요.”
빌이 끄덕였다.
우리 둘은 다시 한동안 먹는 것에 집중했다. 서니 사이드 업이 탁 터지며 바삭한 토스트를 적셨다. 그러다 빌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걸 전부 본 건 프로듀서님이 처음일 겁니다.”
고개를 들었다. 뮤튜브를 얘기하는 거겠지. 나는 묵묵히 탄산음료를 마셨다. 꾸덕진 노른자의 느낌이 쑥 내려간다.
“볼만 했어요. 화질도 별로고 믹싱도 제대로 안 되어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음색이 좋으니까.”
“그래도 그걸······솔직히 저한테 하라 해도 못 할 것 같은데. 대단하시네요.”
글쎄. 오히려 반대지.
“대단하지 않으니까 다 본 거예요. 내 눈을 이정표 삼기엔 항상 부족하다 느끼고, 그렇다고 ‘이 뮤지션과 해야겠다’라는 의지 없이 작업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라.”
“그럼 영상 속 제가 프로듀서님께 그런 의지를 드렸군요?”
“네. 분명히 줬어요. 영상 속 그분이.”
빌이 웃었다.
“아······이젠 좀 후회되네요.”
“네?”
빌이 소스만 흥건한 포장지를 구겼다.
“프로듀서님의 레이블로 갈 걸 그랬어요.”
서니 사이드 업처럼 일렁이는 그의 눈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거, 저보고 사란 거죠?”
“영어가 많이 느셨네요?”
헛웃음을 삼키며 자리를 정리했다.
빌은 또 곡을 받을 날을 기다리고 있겠다며 라디오 녹화를 준비하러 움직였고, 나는 다시 턴투더 레이블로 향했다.
아침에 숙소에서 짐도 모두 빼 왔겠다, 곧장 한국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기에 딱히 급할 게 없었다.
인상과는 다르게 은근 투머치 토커인 브랜. 그의 인터뷰는 아직도 끝날 기미가 안 보이길래 곧장 8층으로 올라갔다.
복도 끝, 앤의 작업실.
은은하게 울리는 이펙터 먹지 않은 기타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나는 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과감하게 하행하는 기타 리프.
그에 맞춰 느껴지는 고양감.
나는 문 앞에 도착하기 전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가 연주하는 리프의 정체를.
전신이 따끔거릴 정도로 전기가 올랐다. 모를 수가 없지. 앤 더글라스를 있게 한 히트곡들을 가뿐히 넘어서며 그의 대표곡이 되는 ‘Around the world’ 기타 리프였으니까.
문 앞에 다다르자 널따란 등판이 인기척을 느끼곤 천천히 돌아섰다.
“어? 장 프로듀서.”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들렀습니다.”
“오, 잘 왔어요.”
앤은 거구의 몸을 일으켜 의자 하나를 내게 건넸다.
의자에 앉으며 용건을 풀어놓았다.
“생각해보니 절 추천해 준건 앤인데, 감사하단 인사를 제대로 안 했더라고요.”
“하하하, 그럴 필요 없어요. 나도 추천받은 거라.”
추천?
“윤에게. 그가 장 프로듀서에 대해 얘길 하는데 항상 놀라운 것들뿐이었죠.”
윤태영을 말한다는 걸 눈치채고 피식 웃었다.
그 천재가 여기서도 나 비행기 태웠나 보네.
“세뇌한 보람이 있네요.”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세뇌가. 쭉 지켜보니 윤의 말대로 뛰어난 프로듀서였어요. 장은.”
그의 말에 웃음이 났다.
“그나저나, 어땠어요? 좀 전에 내가 연주한 기타 리프.”
“엄청 좋던데요?”
“그래요?”
당연한 거 아닌가.
명곡이다. 곡을 이루는 수많은 요소 중에서도 단연 저 리프가 최고였고.
내 진심어린 표정이 느껴졌는지, 앤이 끄덕였다.
“역시, 장은 그렇게 들어줄 것 같았어요. 듣는 귀 없는 브랜은 이 리프를 들을 때마다 항상 별로라고 하던데.”
“그건 진짜 이상하네요. 정말 좋은데···리프가 완성된다면 지금보다도 더 좋아질 것 같고요.”
내가 푸스스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왜인지 순간 앤의 표정이 이상하게 굳어졌다.
영문을 모르는 내게 앤이 미간을 좁히며 물어왔다.
“리프가 미완성인 걸 어떻게 알았죠?”
#김혜령과 팀원들을 만난 건 서너 시간이 흐른 뒤였다.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예상했었어요. 여기 대표님이 생각보다 말이 많죠.”
“하핳···.”
우리는 아직 그의 회사란 걸 깨닫곤 볼륨을 줄이고 웃어댔다.
“그럼 피디님은 빌 앨런하고 계속 같이 계셨던 거예요?”
“아뇨. 앤도 만나고 왔습니다. 감사 인사하러.”
감사 인사를 하려고 갔다가, 이상한 쪽으로 빠졌지만.
덕분에 이들을 기다리는 게 심심하진 않았지.
어떻게 미완성 리프인 줄 알았느냐···.
그거 변명하느라 진땀을 빼는데, 정작 앤은 다른 것에 집중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완성할 수 있겠는지.
수개월이라고 한다. 이 리프를 붙잡고 있은 지가. 지난번 내가 레드리시와 함께 왔을 때도, 결국 리프조차 완성을 못 해 이번 앨범에 실을 수 없었다고 했지.
그의 질문이 이어졌고, 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이라기엔 너무 염치없고. 그냥 작은 힌트들을 주었다. 매우 결과론적인. 완성본을 알기에 할 수 있는 힌트들이었지······.
“그나저나 큰일이에요.”
“···네? 왜요?”
김혜령이 정신이 돌아온 날 보며 말했다.
“괜찮은 영상을 너무 많이 찍었어요. 이거 한화에 넣으려면 진짜 제 살을 깎는 심정일 것 같네요.”
“그러니까, 김 감독. 몇 배속을 해서라도 모두 넣자니까?”
중년 남자가 애달프게 말했다.
청년은 SNS에 올릴 거라 말했다가 중년 남자의 잔소리에 파묻혔고.
다큐멘터리라.
아마 3부작 중 첫 회가 이번 일을 다루게 되겠지.
이전에 최정아 메이킹 필름의 위력을 실감한 나로선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편성도 안 되어있고, 섭외가 나뿐이었지만 턴투더 레이블과의 작업이 모두 해결해 주었고.
‘기대되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기대되는 일이 남아 있었다.
곡 발표.
떠올리니 오금 저리듯 울렁거린다.
와야 할 결과가 문 너머에 바짝 붙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