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95화 (95/221)

095. 나 혼자만의 경쟁 (3)

여의도 빌딩 숲 사이에 위치한 사운드펍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대부분이 비슷한 차림이었는데, 반팔 셔츠에 노트북 모양대로 늘어난 가죽 가방. 그리고 항상 바빠 보이는 표정이 닮아 있었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새하얀 블라우스에 인디 핑크 컬러의 슬랙스를 입은 여자가 낮은 구두를 또각거리며 사운드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채 기자!”

“어? 문 기자님! 안녕하세요.”

무리 사이를 걷던 채연주에게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문 기자가 알은체를 해왔다.

“어떻게 점점 더 예뻐져? 이런 험한 일을 왜 하는지 모르겠네. 이쪽에 관심 있으면 차라리 연예인을 해.”

“에이, 그 정돈 아니죠. 근데, 기자가 험한 일이에요?”

“험하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험한 일이야, 이게. 으으.”

치를 떠는 듯한 그의 말에 채연주가 가볍게 웃었다.

“그나저나, 정이철이는 잘 지내지? 요즘도 기사로 주식하나?”

“주식이요?”

“왜 그거 있잖아. 걔 잘하는 거. 이번엔 누가 떠오를 기삿거리인가~하는 거.”

“그랬었죠. 근데 요즘은 계속 아더 레이블 기사만 써요. 정확히는 기로 프로듀서.”

“그으래? 그럼 아직도 거기가 상승주인 게 맞나 보네? 대체 언제까지 상승주일랑가.”

문 기자는 정말 주식 정보라도 얻은 양 입맛을 다셨다.

둘은 프레스 석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노트북을 꺼냈다.

세팅을 마친 문 기자는 주변을 빙 둘러보다가 알은체란 알은체는 다 하고 다닌다.

채연주는 회사와 몇 가지 내용을 주고받다가, 장기로에게도 자신이 왔음을 메시지로 알렸고.

그 사이, 순회 인사를 마치고 돌아와 투덜거리는 문 기자.

“후아, 다들 난리도 아니네. 역시 험한 일이라니까. 왜 하필 여름에 이렇게 쏟아져 나오냐.”

채연주가 쿡쿡 웃었다.

“시원한 카페가 호황일 때라?”

“오, 젊고 신선한 해석.”

“엄청 치열하겠죠? 이번 7월 차트.”

“그럴 것 같네. 썸머 워야, 썸머 워. 왕좌도 엄청 자주 바뀌겠지. 뭐 기사 쓸 게 많은 건 좋은데···젠장. 내가 지금 일주일 세 쇼케이스만 몇 개를 다니는 건지.”

한참을 떠드는데, 조명의 조도가 낮춰졌다.

여기저기서 시끌시끌하던 기자들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파격적인 톤의 정장을 차려입은 MC가 모습을 드러냈다.

쉴 새 없이 떠들던 문 기자가 의자에 기대어 키보드 위로 손을 올린다.

“어디 한 번 상승주가 만든 첫 정규 앨범은 어떤지 보자고.”

이에 채연주도 다리를 꼬고, 턱을 괴었다.

흥미진진했다.

이미 나온, 그리고 앞으로 쏟아질 쟁쟁한 뮤지션들의 앨범.

그 속에서 최정아의 첫 정규 앨범이 어떤 활약을 하게 될지가.

그때 상승주에게 답변이 왔다.

여기 와 있다네?

끝나고 갈 곳이 생겼다.

#“수고했어.”

“···?”

쇼케이스를 마친 최정아가 대기실로 들어오며 큰 눈을 반짝였다. 물음표를 띄운 채.

“긴장하셨어요?”

어?

순간 찔끔하는데, 옆에 있던 매니저가 의문을 던졌다.

“에이, 피디님이?”

지금껏, 긴장해도 티 안 내려 노력했었지.

오늘은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고. 적어도 최정아에게만큼은.

입이 바싹바싹 마르네.

색다른 느낌이었다. 첫 정규 앨범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결정적으로 이번 앨범에 수록된 내 곡들 때문이다.

세 곡. 그중에 두 곡이 더블 타이틀이다.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두 곡이란 말이지.

그중 하나는 내가 처음부터 만들어낸 곡.

다른 하나는 뒤늦게 들린 멜로디로 만들어낸 곡.

내 관심사는 온통 여기에 있었다.

현재 나의 실력은 멜로디와 비교해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너무 형편없이 뒤처지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런 생각들 속에 파묻혀 있으니 누군가 눈치챌 정도로 긴장이 될 수밖에.

“그나저나, 오늘 반응 진짜 좋았어요.”

최정아 매니저가 살짝 흥분한 얼굴로 말한다.

그러게.

팬들의 반응은 물론이고, 기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일부러 그들이 나가는 통로 주변에 잠깐 서 있기도 해봤었지.

그러다 몇몇 기자가 눈치채는 바람에 갑자기 복도에서 기자회견을 할 뻔도 했고. 마스크를 썼는데, 어떻게 알아보는 건지···. 기자의 촉 그런 건가?

어쨌든, 이번 쇼케이스에서 자신감 있게 수록곡 전부를 오픈했는데, 모두 상상 이상으로 좋다는 평이었다.

‘타이틀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는데···.’

때마침 들어오는 연락에 복도로 나섰다. 문을 열자 환하게 웃고 있는 채연주가 보였다.

“오랜만이에요. 피디님이 와 계실 줄은 몰랐는데, 엄청 반갑네요.”

능글스러운 반응에 웃으며 물었다.

“반응, 어땠어요?”

“다 보시지 않았어요? 아까 입구 쪽 소란스러운 거 다 봤는데?”

“변장이 안 통하더라고요.”

“실내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눈길이 안 가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쩝. 실내에서 선글라스보단 나을 것 같았는데 말이지.

입맛을 다시자 채연주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반응 진짜 좋았어요. 대박 느낌이라는 기자들도 있었고, 여름이랑 어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찰떡이라는 기자들도 있었고. 아, 참. 상승주의 기세가 무섭다는 헤드라인을 내신 분도 있었어요.”

상승주?

최정아한테 하는 소린가?

의아해하는데 채연주의 눈이 가볍게 휘었다. 얇아진 눈 사이로 눈동자가 반쯤 열린 문틈으로 향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아 씨 인터뷰 좀 따도 될까요?”

“그거 노리고 온 줄 알았어요.”

“노리고 오다뇨. 피디님 보고 싶어서 온 건데.”

퍽이나.

피식 웃으며 끄덕였다.

“한 번 물어볼게요.”

문을 여니 최정아가 이미 이쪽을 뚫어져라. 보고있었다.

다가가자 대뜸 먼저 물어온다.

“누구예요?”

“어? 아는 기자님.”

“아.”

“혹시 인터뷰 가능하냐는데? 피곤하면 안 해도 되고.”

최정아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시선은 문 쪽으로 고정한 채로.

“가능할 것 같아요.”

“오케이, 알겠어.”

다시 복도로 나가 채연주를 데리고 들어왔다.

“자리 비워줘야 해요?”

“아뇨? 취조 할 거 아닌데요?”

“푸흐, 그럼 옆에 있을게요.”

벽에 붙어있는 소파에 앉았다. 채연주는 최정아가 앉아있던 테이블에 마주 앉았고.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이번 앨범의 숨은 의미나,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좋았던 점, 어려웠던 점들을 묻는.

인터뷰를 지켜보다가 이내 다른 생각으로 빠져들었다. 중간중간 내 얘기가 나온 것 같기도 했지만, 귀에 잘 안 들어왔다.

울컥울컥 올라오는 상념들 때문에.

어서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확인받고 싶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나와 다른 점이 꼭 미래를 알고 있다거나, 멜로디가 들리는 능력을 얻은 것만은 아니라고.

많이 늘었다고.

성장했다고.

그러니,

나는 멜로디가 들린다는 이유만으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고.

#“나연이는?”

테이블로 다가오는 서기영에게 김지희가 묻자, 그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긴장된다고 부모님이랑 통화하러 갔어요. 누가 보면 자기가 가순 줄 알겠어요.”

어깨까지 으쓱거리며 승리자인 양 말하는데, 김지희가 웃었다.

“앨범 내봤다 이거지?”

“훗.”

“방금 웃는 거 되게 타성에 젖어 보였어. 다음 앨범 컨셉은 그거로 가자. 타성에 젖은 2집 가수.”

“그건 좀······.”

“어허, A&R 말 들어야지.”

그 모습을 웃으며 보다가, 옆을 돌아봤다. 다이어트 바 하나를 야금야금 먹고 있는 최정아에게 물었다.

“괜찮겠어? 긴장했을 때 그런 거 먹으면 체해.”

“전 괜찮아요.”

최정아가 날 빤히 보며 말한다.

“피디님은 뭐 먹지 마세요.”

“어? 왜?”

“그냥요.”

오전에도 느꼈지만, 최정아가 어쩐지 나를 훤히 들여다보는 듯했다.

그렇게 티가 나나?

다행히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긴 하다만···.

그때였다. 김지희가 테이블로 가져온 노트북을 달깍거리며 말한다.

“곧 열두 시에요.”

내 시선도 핸드폰으로 향했다.

‘그러네.’

꽤 많은 앨범을 냈고, 그때마다 긴장하기야 했지만, 오늘은 유난히 심하다. 뭐가 얹힌 것처럼 답답하고, 또 벌렁거린다.

시간은 째깍째깍, 정상적으로 흘렀다. 과거로 점프하는 일 따위 없이. 하긴, 그런 걸 겪는 건 한 번이면 족하지.

그리고 마침내 12시.

반응들이 하나둘 올라온다.

-노래 전부 다 너무 좋다. 이거 비 올 때 들으면 감성 봇물 터질 듯.

-나 비 오면 빨래마냥 축 처지는데, 이거 들으니 장마가 기다려짐.

-포크에 발라드에 클래식까지. 완전 감성에 취하라고 작정하고 만든 곡들인 것 같아요. 진짜 최고···!

-타이틀 두 곡 다 미쳤네요. 적어도 이 두곡은 바로 TOP10 들어가고 시작할 듯.

-가만, 지금 1위 누구죠?

-‘센세이션’이요. TOP10 안에 지금 ‘센세이션’에 ‘마이린’에 ‘아이시스’까지 있음.

-앗. 쉽지 않겠네요···.

-모레엔 ‘투탑’도 컴백한다던데.

-와, 전부 팬덤 빡센 그룹들.

-지금 센세이션 팬들이 수성전 준비 중이라네요. 최정아한테서 1위 지키겠다고.

-괜히 지난주부터 차트 전쟁이다, 썸머 워다, 하는 게 아님.

반응들을 쭉쭉 내린다.

가타부타 말이 많았지만, 나에겐 형광펜이라도 칠해 놓은 것처럼 두 개의 타이틀 제목만 툭툭 걸렸다.

‘새여름’과 ‘빗소리’.

전자는 내가 홀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든 곡. 후자는 최정아의 세 번째 멜로디를 듣고 만든 곡.

대체로 좋은 반응들뿐이라 뭔가를 판단하기엔 어려워 보였다.

역시, 순위에 신경 쓰인다.

이러나저러나,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기준이잖나.

‘얼마 안 남았네.’

처음으로 정확한 순위를 확인할 수 있는 1시까지 말이다.

어느새 내려와 쪼듯이 반응을 확인하는 오나연과 좋은 반응만 쏙쏙 골라서 읽어주는 김지희. 그리고 그녀의 얘길 들으며 마른 입술을 핥는 최정아. 먹다 남은 다이어트 바.

······1시다.

머릿속에서 자명종이라도 울리는 것 같다.

뎅, 뎅.

엄지를 움직였다.

화면이 하얗게 번지더니, 이내. 새로 고쳐진 차트를 내놓았다.

김지희가 말했다.

“3위네요! 출발이 좋아요.”

“세상에! 제 곡들이 TOP 20 안에 들어 있어요!”

오나연이 방방 뛰었고.

최정아는 아쉬운 듯 말했다.

“그래도 아쉽네요. 타이틀 두 개 중에 한 곡만 TOP10에 들었잖아요.”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 없어요. 지금 TOP10 안에 있는 곡들 전부 만만치 않은 타이틀 곡들이니까.”

김지희의 설명에 끄덕이는 최정아.

나는 핸드폰 화면을 끄며 말했다.

“수고했어, 정아야.”

“헤, 피디님도요.”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정아의 시선이 따라 올라온다.

“어디 가세요?”

나는 빙그레 웃었다.

혹여 티 날까, 더 환하게.

“바람 좀 쐬러.”

#작년 이맘때쯤엔 짓기 시작하던 건물들이 지금은 완공되어 빛나고 있다.

‘저 건물 덕에 다 가리네. 그때가 좋았는데.’

괜한 심술이 나는 걸까.

전망에 대해 투덜거리며 난간으로 다가갔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3위.

김지희의 말처럼 시작으로 괜찮은 성적이다. 보이 그룹 ‘센세이션’과 솔로로 데뷔한 ‘메이린’. 팬덤이 이미 탄탄한 두 팀 다음이란 건, 입소문이 타기 시작하면 충분히 앞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문제는···3위가 빗소리란 거지.’

내 곡이 아닌 건 아니다.

멜로디가 들린다고 해도, 그건 극히 일부분. 그것도 뼈대일 뿐이니까.

분명 발전시킨 탑 라이너도, 트랙 메이커도 나였다.

하지만, 맨땅부터 쌓아 올린 ‘새여름’으로 마음이 기우는 건 어쩔 수가 없네.

심지어 빗소리와 같이 타이틀을 달고 경쟁하는 곡이 더욱 분명하게 나뉜다.

새여름, 13위.

열 계단이다.

무려인가, 고작인가.

큰 차이가 아닌데. 초능력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멜로디와 맞붙어서 이 정도 차이면 정말 괜찮은 건데.

내가 내심 기대를 많이 했나 보다.

어쩌면···.

어쩌면, 내가 그냥 성장한 정도가 아니라 더이상 멜로디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아니, 그보단 못하더라도 조만간 그렇게 될 만큼 성장하진 않았을까?

“하하.”

아직···멀었나 보네.

#눈을 떴는데 푸르게 어둡다.

눈부심을 참아가며 창밖을 보니 하늘이 우중충하다. 곧 비가 내릴 것처럼.

호재네.

핸드폰을 머리맡에서 찾아 집어 들었다.

연락이 잔뜩 쌓여있다. 갑자기 다들 내게 안부를 묻고 싶은 건 아닐 테고.

짐작 가는 대로, 재빠르게 음원 차트를 확인했다.

‘역시나.’

빗소리가 센세이션을 밀어냈다.

1위에 올라선 거다.

‘이래서 연락이 많이 와 있었구나.’

뿌듯함이 차오른다. 어젯밤 생각을 많이 내려놨다. 편해졌지. 미우나 고우나, 내 손을 거친 곡이니까.

그때였다. 차트를 훑던 시선이 멈췄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어···?

최정아, 새여름.

6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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