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4. 나 혼자만의 경쟁 (2)
멜로디 없이도, 멜로디······.
의문 하나가 머릿속에 꽈리를 틀었다.
그 상태로 음원 작업을 이어갔다.
별수 있나.
항상 다짐하듯, 화살은 시위에 걸렸으니. 나는 맞출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고, 그저 과녁을 보는 거다.
문제는 멜로디가 들릴 때만 해도 선명하다 못해 코앞에서 보는 것 같던. 언제든 맞출 수 있을 것 같던 과녁이.
지금은 확신이 없기에 흐릿하게 보인다는 건데······.
내가 만든 멜로디를 발전시켜 하나의 곡으로 만들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전과 동일한 방법으로 쉴 새 없이 곡을 뽑아냈다.
앨범은 한 곡만으로 끝나지 않으니까.
나뿐만 아니라 서기영, 오나연 모두 곡을 끊임없이 만들어냈고, 그중에서 옥석을 가리듯 여섯 곡을 꼽았다.
곡을 들을수록, 그리고 비교하며 더 좋은 곡을 끄집어낼수록.
과녁은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선명해지고 있었다.
확신이 자라나고 있는 거다.
내 곡이. 아니, 수록곡 전체가. 이전의 멜로디를 듣고 썼던 곡에 비해 결코 모자라지 않다는, 그런 확신이.
“끝났드아···!”
작은 두 손이 번쩍 들어 올려졌다.
오나연. 그녀가 의자를 빙그르르 돌리며 창밖을 보더니 외친다.
“피디님, 피디님. 날이 밝았어요!”
차게 식은 커피를 툭 털어 넣었다.
그러게.
답답하다며 작업실에서 끄집어낸 컴퓨터들과 각종 음향 장비들.
특히 모니터 스피커와 헤드셋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먹다 남은 커피와 당 떨어진다고 한 입씩 먹던 초콜렛.
그리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서기영.
“기영아, 올라가서 자.”
“통기타, 첼로, 피아노, 드럼······.”
자신이 만든 곡에 필요한 악기들을 중얼거리는 녀석을 깨워 휴게실로 올려보냈다.
“나연이도 수고했어.”
기대 어린 눈으로 보기에 덧붙였다.
특히나 그녀는 최정아의 대역(?)을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노래도 곧 잘하고, 음역대도 넓어 가이드 보컬로도 열일 했지.
오나연의 눈동자가 모양 많은 유리잔처럼 반짝인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뭘.”
피식 웃는데, 그녀가 흐무적거렸다.
“낭만적이에요. 사무실에서 커피잔과 악보 이렇게 쌓아놓고, 밤을 지새우다니···!”
“······.”
낭만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게 분명한 오나연을 뒤로하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여섯 개의 곡.
포크와 발라드, 그리고 클래식.
세 개의 언어를 통해 탄생한 그녀의 곡들이 떠올라 있었다.
과녁이 이제는 코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다. 시위를 놓으면 곧바로 중앙에 꽂힐 듯말이다. 그만큼 지금 나는 확신이 차올라 있었다.
뿌듯함의 미소를 그리며 시간을 확인했다.
6시.
아직 좀 애매한 시간이네.
“나연아 안 피곤해?”
“전 거뜬해요.”
“의외네. 기영이가 먼저 방전될 줄은 몰랐는데.”
의기양양해진 오나연이 어깨를 으쓱거린다.
“쟤 덩치만 컸지. 쯧쯧. 음악은 엉덩이 싸움 아닌가요!”
“공부 아니고?”
“음악도 공부죠.”
“맞는 말이긴 한데···.”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아침 먹고 연락하자.”
“연락? 누구한테요?”
갸웃거리는 오나연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
“들려줘야지. 곡을 불러줄 사람한테.”
#녹음실을 울리던 소리가 사라지고.
가사지를 미끄러지듯 읽어내려가던 눈이 떨어졌다.
“이거······.”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온다. 서기영이나 오나연, 둘 중의 한 명의 것으로 추정되는.
스케줄이 끝나고, 한달음에 달려온 최정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노래 너무 좋아요. 전부···.”
살짝 감격한 표정이다.
이게 내 첫 정규 앨범이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집중하며 듣는 모습에 내가 작곡한 곡을 들을 땐, 나조차도 심장이 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최정아가 내게 물었다.
“이거 가이드 누가 부르셨어요? 가이드도 너무 좋은데···.”
내가 슬쩍 오나연을 보았다.
오나연이 몸을 배배 꼬고 있자 이를 눈치챈 최정아가 말없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럴수록 더 몸 둘 바를 모르는 오나연이었다. 이에 옆에 있던 서기영이 고개를 내젓는다.
“야, 너 그러다 꽈배기 될 거 같아.”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어, 사실 부러워.”
둘의 대화에 작게 웃던 최정아가 나를 보았다. 어딘가 오묘한 얼굴로. 사실 노래를 듣기 전부터 저랬던 것 같은데···.
‘컨디션이 안 좋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녀가 묻는다.
“다시, 다시 처음부터 들어도 돼요?”
“물론이지.”
그녀의 요청에 따라 여섯 개의 음원들이 재차 흘러나왔다.
한참을 듣다가 못 참겠다는 듯 일어나는 최정아.
“피디님, 저 한 번 불러볼게요.”
“그럴래?”
나도 궁금하던 차였다.
그녀가 이 곡들을 부르면 어떤 느낌일지.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만든 곡들이지만, 그럼에도 실제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테니까.
그녀가 부스로 들어가고,
나는 살짝 설레는 마음으로 의자에 앉았다.
“혹시 부르다가 불편한 곳 있으면 얘기해. 체크해 놓을 테니까.”
-넵.
정식 녹음이 아니기에 약식으로 간단한 이펙터만 걸고 녹음을 시작했다.
첫 곡부터 틀자, 최정아가 가사지를 보며 천천히 소리를 냈다.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더 성장했구나.
그동안의 노력을 증명하 듯.
최정아의 실력은 한층 더 발전해 있었다.
그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내면서 얼마나 연습한 걸까?
내심 감탄하며 그녀의 노래를 감상했다.
이 정도면 걱정할 게 없겠는걸?
그렇게 하나의 곡이 끝났다.
“···계속해보자.”
곡들이 이어진다.
마침내 내가 만든 곡에도 최정아의 목소리가 입혀졌다.
꽤 기대하던 순간이다.
멜로디의 도움 없이 만든, 내 첫 곡이 불려지는 것.
여전히 잘 부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제인과 하서윤 등과 작업하며 높아질대로 높아진 잣대를 들이대도, 분명히 괜찮다. 전혀 부족하지 않아.
‘근데 왜······.’
첫 곡이 끝나기 전부터 느껴지기 시작한 위화감이 머릿속을 움켜쥐고 있었다.
왜일까.
뭔가 부족한 듯한···.
‘역시, 곡 때문인가···?’
멜로디로 들린 게 아니라서.
그래서 부족한 걸까?
선명해졌던 과녁이 다시 흐려지는 듯하다.
그러나 노래를 계속 듣다 보니, 이내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게 문제였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과.
-어땠어요?
동시에 들려오는 최정아의 물음.
최고라는 오나연의 대답에 살풋이 웃으며 나를 본다. 내 대답을 갈구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이상하단 걸 아는 눈치네.’
컨디션이 안 좋은 이유가 이거였구나.
나는 재빠르게 표정을 숨겼다.
이런 사소한 것 하나가 중요했다.
툭 던진 말이 가창자에겐 날카롭게 벼려진 날붙이처럼 상처를 낼 수도 있기에.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가장 좋은 건,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것.
최정아에게 말했다.
“열심히 연습 했구나? 많이 늘었어.”
“헤헤, 네.”
살짝 안도하는 듯한 모습에 조심스레 얘길 꺼낸다. 최정아라면. 이미 두 번째 멜로디까지 온 그녀라면, 분명히 깨달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근데 연습량이 많아지면서 네가 놓친 게 있는 것 같아.”
#광고와 화보. 방송과 행사.
다채롭게 바쁜 일정이었다.
잠이 부족하다 못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동안, 최정아는 그럼에도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
‘곧 앨범을 낸다.’
그것도 싱글이 아닌, 정규 앨범.
비로소 1집 가수가 되는 것.
이게 가수에게 얼마나 큰 첫걸음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없다시피 했던 잠을 쪼개서라도, 연습을 해왔다.
곡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기대만 있었지.
다른 누구도 아닌, 장 피디님의 프로듀싱을 거친 곡들일 테니까.
연습이 이어질수록 실력은 늘었다.
늘수록 주변 시야가 넓어지듯 부족한 점들이 보였고.
‘뭔가 아쉬워···.’
첫 싱글과 두 번째 싱글에선 자신의 실력이 분명하게 차이가 났었는데. 그렇게 본인조차 느꼈었는데.
이번엔 그 차이가 미미하다.
당연한 걸까?
역시나, 곡은 좋았다.
모든 곡이 장 피디님의 곡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모든 곡이 좋았다.
불러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피디님 앞에서.
‘열심히 연습했구나? 많이 늘었어.’
그 얘길 듣는 순간, 물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애매함에 대해.
‘근데 연습량이 많아지면서 너가 하나 놓친 게 있는 것 같아.’
이어지는 장 피디님의 말.
‘네 강점이 잊혀졌어.’
그게 끝이었다.
피디님의 조언은.
‘내 강점······.’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모두 곡을 한층 더 대단하게 만든다.
무대 위에 서면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유지은도.
다른 차원에서 노래를 부르는 듯한 음색의 제인도.
노래와 춤을 모두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하서윤도.
모두 자신들의 강점으로 곡을 더욱 빛나게 한다.
‘나에게도 저런 게 있다고?’
대체 뭘까, 그게.
이전엔 어떻게 불렀더라?
그냥 부르진 않았지.
‘나는 노래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어지고.
마침내, 한 단어가 떠올랐다.
‘감정.’
#“피디님 소식 들으셨어요?”
늦게 출근한 내가 눈을 두어 번 껌뻑이자, 김지희가 물음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서페이스’가 컴백한 대요.”
그녀의 대답과 동시에 뒤쪽에서 다른 직원들의 추임새가 잇따라 들려왔다.
“그것도 해변 컨셉으로.”
“상체 탈의하고서.”
“와우!”
김지희가 저 말이 모두 맞다는 듯, 머리를 파닥거린다.
“아, 근데 그 그룹 컴백 일정이···.”
“네, 또 정아 씨랑 겹쳐요.”
“아···.”
직원들이 아우성이다.
“벌써 이게 몇 팀이에요. 아니 다들 짰나? 다 같이 죽자고 나오는 것 같은데···.”
“진짜 기사 말마따나 차트 전쟁이겠는데요?”
“대형 기획사들 다 끼어 있어서 이거 자존심 싸움으로 번질 수도······.”
문제긴 하다.
이 바닥 성적은 상황을 반영하지 않으니까.
그저 숫자 하나로 나타내니까.
확실히 이번 여름이 치열하긴 하네.
이게 대체 몇 번째냐. 한 팀도 부담스러운 인기 아이돌과, 뮤지션들이 대거 컴백을 알렸다.
곰곰이 생각하다 김지희에게 뭔가 말하려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피디님, 저 3층인데 한 번 봐주실 수 있나요?]
최정아의 메시지였다.
“일단, 오후에 회의합시다.”
“넵!”
끄덕이는 김지희를 뒤로하고, 계단을 올랐다.
최악의 경우엔 컴백을 미뤄야 할지도 모르겠는걸······.
그나저나, 최정아는 실마리를 찾은 듯했다.
자신에게서 사라진 강점에 대해서 말이다.
연습량이 많아지고, 노래에만 신경 쓰다 보니 자연스레 뒤로 밀려났겠지.
그녀가 분수대 앞에서 버스킹을 했을 때부터. 오래된 노래를 어색하지 않게 부르던 때부터 있던 그녀의 강점.
'듣는 사람을 공감케하는, 감정이.'
상념 끝에 3층에 오르자마자 최정아가 보였다.
웃으며 열심히 연습했냐고 물으려다가 입을 닫아 버렸다.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른 게 들려 버려서.
최정아는 자신의 강점을 찾는 것에 성공했고.
얄궂게도 이제야···.
이제서야, 멜로디가 변했다.
태양이 푹푹 찌는 날씨에, 최정아의 앨범이 완성되었다.
총 7곡.
그녀에게서 들린 멜로디가 포함되었다.
결국, 차트 전쟁이라 불리는 이 시기에.
나는, 나 혼자만의 경쟁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