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 나 혼자만의 경쟁 (1)
“시간 참 빠르네.”
퀭한 눈을 창밖에 붙인 채, 커피를 휘적거리던 여자가 중얼거렸다.
뮤직비디오 감독 섭외와 컨셉에 맞는 장소를 선정하는 등, 최정아 앨범의 부가적인 것들을 준비하느라 찌들어있는 김지희였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주재윤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벌써 정신 차리고 보니 하서윤 컴백일이네요.”
“들렸어요?”
김지희가 푸스스 웃자, 주재윤이 끄덕인다.
“목소리가 무슨 밖에 마지막 잎새가 달랑거리는 줄 알았잖아요. 지금쯤 떨어졌어요?”
“아니요, 안 돼요. 정아 씨 정규 앨범 내는 건 보고 갈래요.”
“이왕이면 좀 더 살아서 차트 1위에 얼마나 오래 있는지도 보고 가요.”
“아, 그럼 참 좋겠는데···가능할지 모르겠네.”
둘의 대화에 직원들이 둘이 콩트 찍냐며 쿡쿡대고 웃었다.
그때 맞은 편에 앉은 직원이 모니터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다가 신기한 듯 외쳤다.
“발매 당일이라 그런가, 지금 반응 장난 아녜요. 피디님 기사가 하서윤 기사만큼 올라온다니까요?”
이에 김지희가 핸드폰을 꺼내어 확인했다.
[하서윤, 오늘 자정 전격 컴백···!]
[하서윤 X 프로듀서 기로. 이 두 명의 조합이 기대되는 이유···]
[프로듀서 기로, 이번에도 성공할 수 있을까?]
물밀 듯 올라오는 기사를 훑던 김지희가 한 기사에 시선을 못 박았다.
[프로듀서 기로가 넘어야 할 과제는···?]
참 누르고 싶게 생긴 헤드라인이다.
그러나 막상 들어가니 내용은 별것 없었다.
기로 프로듀서의 댄스곡이 두 번째이고.
그렇기에 플로라 때의 자신을 넘어야 한다는 고지식한 평론가들이 자주 하는 소리.
제인 이전까지만 해도 솔라톤의 누구, ENB의 누구 이름 대면서 넘어야 한다, 이겨야 한다. 경쟁붙이더니. 이젠 경쟁 붙일 상대가 좀처럼 없나 보다.
‘자기 자신을 넘으라네.’
김지희가 웃으며 기사를 빠져나왔다.
이번엔 커뮤니티 쪽을 훑는다.
-오늘이네요! 하서윤 신곡 나오는 거.
-기로 프로듀서가 작업했다길래 기대하는 중.
-나만 별로일 거 같음? 기로 프로듀서가 댄스곡이라니. 좀 그런데···.
-기로 프로듀서가 플로라 데뷔곡도 작업했었는데 뭔소리. 사람들이 기대도 안 했던 플로라 음원, 음방 1위까지 시켰음.
-기로 프로듀서 까는 사람치고 기로 프로듀서 곡 제대로 들어본 사람 없음.
-윗분 말에 동의함. 음악에 관심 많은 사람이면 깔 수가 없지. 기로 프로듀서는.
-헛소리할 시간에 티저를 장 번 더! 보고 온 내가 승리자. 말 나온 김에 한 번 더 보고 온다.
여긴 늘 그렇듯 화기애애하다. 우스갯소리로 기로 특공대라 불리는 친위대들이 상주해 있거든.
그 사이, 주재윤도 이것 저것 확인을 마쳤는지 모니터에서 시선을 뗐다.
“괜찮네요. 반응.”
“그러게요.”
생각보다 뜨뜻미지근한 두 사람의 반응에 직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지 않아요? 진짜 대박인데?”
이에 김지희는 주재윤과 눈을 맞췄다.
그리고 비슷한 생각을 한 듯, 마주 보며 웃었다.
먼저 입을 연 건 주재윤이었다.
“나도 처음 왔을 때 딱 저런 반응이었죠?”
“무슨. 더 했죠. 올라온 기사 헤드라인을 하루종일 달달 외우고 다녔잖아요. 만나는 사람마다 댓글까지 줄줄 읊어주고.”
“그랬나···.”
둘의 대화에 직원은 더욱 아리송해진다. 그 표정을 본 김지희가 말했다.
“유희 씨가 이상한 게 아녜요. 우리가 이상한 거지.”
“맞소.”
유희 씨라 불린 직원의 표정이 더욱 모호해지자, 김지희의 말이 이어진다.
“우린 너무 익숙해졌거든요.”
“익숙···해져요?”
“장 피디님이 곡을 낼 때마다 매번 이런 반응이다 보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한 직원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두 명의 눈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며 날 향해있다.
서기영과 오나연.
나름 10년 전으로 돌아오면서 정말 아주 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들을 보니 난 이번에도 서서히 아재가 되어가는 중인가보다.
이들이 경청하는 자세까지 보이니 무슨 선생님이라도 된 것 같네.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어.”
말을 놓지 말 걸 그랬나. 진짜 선생님 같은걸.
‘서성걸음’에 대한 내 피드백에 오나연이 흐뭇하게 웃는다.
옆에서 서기영은 꽤나 자극받은 표정이었다. 둘을 붙여 놓으며 생긴, 생각지도 못한 효과랄까.
“자, 오늘은 이쯤하고. 각자 또 열심히 곡 뽑아보자.”
“질문, 질문 있습니다!”
오나연이었다.
끄덕이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작업을 하다가 어려우면, 또 피디님께 피드백을 요청해도 될까요!”
“당연하지.”
“막 갑자기 머리가 지끈지끈거려도요?”
“그건 병원을 가야하지 않을까?”
“앗···.”
오나연이 눈알을 굴린다. 마땅한 핑계를 찾듯이.
“그럼 갑자기 오인페가 고장 나거나, 콘덴서 마이크가 아프면요?”
그러자 이번엔 서기영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건 수리를 맡겨야 하지 않나?”
오나연이 펄쩍 뛰었다.
“고장 난 게 아닐 수도 있잖아. 내가 엄청난 기계치거든.”
“가져와. 내가 고쳐줄게.”
“······.”
말문이 막힌 오나연이 볼을 부풀린다. 마치 복어처럼.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귀엽네.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얼굴의 오나연과 덩치는 크지만 얼굴은 마찬가지로 파릇파릇한 서기영.
둘이 티격태격하고 있으니 진짜 학생들 같다. 내 정신적 나이가 서른일곱이니 더욱 그렇게 보이는 걸지도.
아무튼, 피드백 시간이 끝났고, 끝까지 티격태격하던 둘도 각자의 작업실로 흩어졌다.
둘의 성장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느는 게 확연하게 보이니 더 그렇다.
저래 보여도, 한 명은 자작곡으로 차트 줄 세우기를 한 싱어송라이터고. 다른 한 명은 미래의 보증을 받은 유명 작곡가.
지금에야 경험과 차근차근 늘려온 실력으로 이것저것 봐줄 수 있지만, 이게 언제까지 갈까?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금세 따라잡힐지도···.’
멜로디를 듣는 능력이 없다면?
탑 라인만 놓고 비교하면 지금 당장도 내가 부족할 수도 있다.
‘편곡은 노력의 영역이지만, 탑 라인은 재능의 영역이니까.’
쿡쿡 쑤시는 자극을 받으며 작업실로 들어섰다.
그래도···.
많이 발전했지. 나도.
두툼한 악보들이 여기저기에 쌓여있다.
아이디어를 적어놓은 노트들도 산더미다.
멜로디가 사라질까, 과거로 돌아온 이점이 흩어질까.
두려워하며. 그리고 즐거워하며 노력한 흔적들.
그래.
그동안 물밑에서 열심히 노력해왔으니···.
이제 그 결실을 수면 위로 띄울 때다.
#대학교 때 이런 수업을 들은 기억이 있다.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초상화를 그리는 게 왜 어려울까?’
벙찐 학생들. 자신들이 다른 강의실에 들어왔나, 수강신청을 잘 못 한 건 아닐까, 혼란스러워하는 눈초리들이었다.
이에 교수님이 제시한 답은 의외였다.
‘사람을 안 봐서.’
당시엔 나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가 사람은 왜 안 봐?
교수님의 설명이 덧붙여지고 나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지.
'화가는 문득 그리고 싶은 게 떠오른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화가의 그림엔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게 묻어나오기 시작하지.'
'같은 이유다. 누가 부를지를 특정하고 곡을 만드는 게 더 어려운 것은. 이번에 누구 노래를 들었는데, 그 노래의 리듬이 죽이더라. 그러니 이번 곡에 그 리듬을 써보자! 그러다 보면, 누가 부를 곡인지는 사라지고 하고 싶은 음악만 남는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맞추어 노랠 만드는 건 훨씬 더 어려운 거다.'
하지만 어렵기 때문에, 그걸 해냈을 경우 가창자에게도 좋고, 대중에게 사랑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덧붙이셨지···.
나는 최정아를 보았다.
실제로 보고 있는 건 아니고.
떠올리며 상상했다.
그녀의 음색은 어떻고.
그녀의 실력은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어떤 습관을 갖고 있으며.
어떤 걸 부를 때 더 편하게 부르고, 어려워하는지.
그걸 깔아두고, 멜로디를 떠올린다.
‘신기하네.’
과거엔 코드를 짚어가며 흥얼거리며 곡을 만들었었는데, 지금은 머릿속에 오선지가 널려있는 느낌이다.
듬성듬성 이가 빠진 멜로디들.
그중 하나를 꼽아 흥얼거렸다.
‘이건······좀 아닌가?’
또 다른 걸 하나 잡고 흥얼거리고.
‘이것도 애매한데······?’
그러다 목소리로 판단이 모호해지면, 건반으로도 쳐본다. 가상 악기를 바꿔가며 스트링으로도, 플롯으로도.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오전지들을 연주하고, 솎아내었다.
이거다, 싶은 게 나올 때까지.
멜로디 덕에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다. 덕분에 머릿속 오선지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
그냥 들려올 땐, 너무나 간단했는데, 이 한 작업에 며칠이 걸렸는지 모른다.
그래도 나름 만족스러운 건, 하나의 멜로디라도 건졌다는 것.
물론 가창자를 성장시키는 신기한 능력도 없을 테고, 완벽하게 딱 들어맞는 곡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내 높아진 기준을 통과한 첫 멜로디였다.
‘여기서부턴 자신 있지.’
곡을 발전시키는 건, 멜로디를 들으며 항상 해왔던 거니까.
그 전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새벽이다. 그것도 한 시.
핸드폰을 들고 작업실을 나왔다.
자작하게 남은 컵을 커피머신에 올려놓고 추가로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앞 소파에 앉아 음원 사이트에 들어갔다.
긴장감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확실히 이전보단 덜 했다.
‘역시.’
들어가자마자 가장 윗자리에 하서윤의 이름이 떡하니 보인다.
사실 이건 너무 당연한 거라···.
내가 보고 싶은 건 곡에 대한 피드백.
곧장 리뷰란으로 들어가는데, 화면이 홱, 하고 바뀌었다. 전화가 오고 있었다. 발신인은······.
-차트 봤어요?
“네, 방금요.”
-내가 차트 1위 했다고 신나서 전화한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요. 그건 당연한 거라···
“방금 생겼어요. 그 오해.”
-하지 말라는 건 꼭···휴, 아무튼, 그래도 곡 만들어준 피디님인데 그냥 입 싹 닫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 안부 차···인사 차···전화해봤어요.
말이 많아지네.
피식 웃으며 말했다.
“축하해요.”
-······피디님도요. 곡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더라고요.
“그래요?”
-피디님을 이길 곡을 만들려면 피디님을 섭외할 수밖에 없단 얘기도 있던데요?
“에이 그 정돈···.”
-뭐, 딱히 틀린 말 같진 않네.
하서윤의 새침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곡은 진짜 좋았으니까.
“사람은 안 좋았다는 얘긴가?”
-빙고.
한 방 먹인 것에 고소해하는 그녀와 몇 마디를 더 나누다 전화를 끊었다.
마침 다 내려진 커피.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잔을 들고, 한 모금 홀짝이며 하서윤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자연스레 의문이 생긴다.
내가 처음부터 만든, 작업실에 띄워진 곡.
저 곡을 지금껏 내가 들어온 멜로디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일까?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어렵다는 걸 알지만.
부족하단 것도 알지만.
그래도 만약···.
최정아에게 새로운 멜로디가 들려온다면.
그래서 두 곡 모두 앨범에 실린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