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 준비 (1)
봄이 가고, 날씨가 더워질 때쯤.
하서윤이 앨범 소식을 알렸다.
동시에 그녀의 곡을 작곡한 이가 나라는 사실까지 알려지며, 인터넷이 시끌시끌해졌다.
일반적인 대중은 단지 하서윤과 내 이름에 기대했고.
하서윤의 골수팬들은 잠시 의아해하는 모양새였다.
그녀의 지난 앨범이 누구 때문에 1위를 찍지 못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러니 그들의 눈엔 이게 적과의 동침처럼 보였을 거다.
다행인 건 그들 중 대다수가 이 동맹을 찬성한다는 것.
여러모로 많은 시선들에서 기대가 느껴지고 있다.
한편, 박경호는 마지막 촬영을 끝냈다.
드라마가 끝나는 것도 몇 주가 남지 않은 상황.
일단은 방송 출연이 몇 개 잡혀있어 그쪽 일을 끝낸 후, 향후 계획을 논의해야 했다.
곽 감독이 박경호를 탐내하는 만큼, 다음 작업에 공백기가 그리 길지 않을 것 같고···.
그 사이, 레드리시는 미국 전역을 돌고 있는 중이다.
턴투더 레이블과 골든보이스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슈퍼 콘서트가 연일 매진을 기록하면서, 덩달아 레드리시의 인지도도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다고.
뭐, 학준이 형은 걱정이 없다. 늘 그랬듯 예능에서 빵빵 터트리며 고정 자리를 늘려나가는 중이다. 당분간 곡 작업을 하진 않을 것 같은데···모르지. 또 언제 마음이 변할지.
혹은 멜로디가 변할지.
마지막으로···.
최정아.
“······정아는 작년부터 잡혀있던 대학 축제 행사들만 마치면, 이번 활동은 끝났다고 보시면 돼요.”
김지희가 소속 뮤지션들에 대한 보고를 맺었다.
이에 작게 끄덕이며 마른 입술을 적셨다.
최정아의 활동이 곧 끝난다.
내가 약속했던, 앨범을 만들어야 할 시기가 다가오는 거다.
‘설령 그때까지 최정아에게서 새로운 멜로디가 들리지 않더라도 말이지.’
무언가가 전신을 지그시 누르는 듯하다.
부담감이다. 울렁거리기도 하고, 두근거리기도 하는 양가감정 같은 부담감.
불안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느끼는 중이랄까.
‘확실히 준비해야지.’
하서윤 작업 이후 틈틈이 머리를 혹사시켰다.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그러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고.
그렇게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곡을 함께 만들 프로듀서. 엔지니어들. 그리고 이를 받쳐줄 직원들까지.
다행히 순조롭게 퍼즐들이 하나, 둘 맞춰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아쉬운 부분이 남아있었다.
비단 이번만이 아니었다.
하서윤과의 작업에서도 여러 번 필요하다고 느꼈지.
바로, 믹싱과 마스터링.
최 기사 혼자서 감당할 수 없게 되어 포기했던 후반 작업이다. 현재는 TKM과 업체에 번갈아 가며 맡기고 있는.
그걸 다시 가져오고 싶었다.
“후반 작업을 전담하는 팀을 만들까 해요.”
직원들의 시선이 다시 모여들었다. 눈이 어느새 참 많아졌다. 직원들이 그만큼 늘었지.
“후반 작업이면 믹싱, 마스터링 말씀이세요?”
“네. TKM으로 보내거나 다른 업체에 맡기는 것보단 그편이 곡 완성도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그리고 이왕이면, 검증된 사람이 그 팀을 맡아줬으면 좋겠는데···.
고민 끝에, 나는 나만이 낼 수 있는 답을 찾았다.
미래의 기억을 이용하는 것.
그러려면···.
“일단, 찾아야 하는 분이 있어요.”
#“피디님. 알아봤는데 그분, 은퇴 후에 신촌 쪽에서 작은 작업실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작업실이요?”
“네. 돈 없는 대학생들 대상으로 믹싱, 마스터링을 저렴하게 해주고 계세요.”
재능기부, 그런 건가.
진즉에 알았다면 학생 때 갔을 텐데.
옅게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거기 위치 좀 찍어 보내줄래요?”
“넵!”
뿌듯함이 넘실거리는 김지희를 뒤로하고 곧장 작업실에서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가지고 나왔다.
두 개를 모두 착용하며 홀로 나서자, 카운터에 있던 여직원이 갸웃거린다.
“그거 그렇게 둘 다 하면 오히려 더 튈 거 같은데요?”
그런가···?
마스크를 빼서 주머니에 넣었다.
“오, 훨씬 괜찮아요. 스타일리시해 보이고, 완전 연예인 같고.”
“···그냥 마스크 써요?”
“장난이에요. 지금 딱 좋아요.”
씩 웃는 여직원에 따라 웃으며 몸을 돌리는데, 그녀가 다시 말을 꺼냈다.
“아 참, 방금 민주 대리님한테 전화 왔었는데요.”
“민주···대리님이요?”
“네. 어, 모르셨나 보네. 승진하셨어요.”
“어후, 잠시만요.”
얼른 핸드폰을 꺼내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기프티콘과 함께.
자, 다시.
“그래서, 전화가 왔었는데요?”
“내일 정 대리님이 새로 오실 프로듀서 분이랑 같이 오신 대요.”
서재원 팀장이 말했던, 나처럼 공모전으로 뽑힌 신입 프로듀서.
퍼즐이 온다.
그리고 지금, 또 하나의 퍼즐을 구하러 갈 참이지.
얼른 사무실을 나와 밴에 시동을 걸었다.
핸드폰을 연결해 노래를 틀고, 곧장 신촌으로 출발했다.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니 금세 목적지였다. 근처 주차장에 밴을 세워두고 지도를 따라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이 한쪽에 서서 도란도란 회의 중인 게 보였다. 건물을 보니 저기인 것 같은데···.
“여기 괜찮은 거 맞아?”
“엄청 유명하다니까?”
“그니까 싸서 그런 거 아니냐고. 좀 허름하고 찝찝하던데.”
“애초에 싸서 온 건 맞지. 어차피 믹싱 마스터링을 우리가 할 수야 없고, 그렇다고 업체에 백만 원씩 주고 맡기지도 못하잖아.”
“그래도 기본 퀄리티는 나와야 안 쪽팔리지 않겠어?”
“걱정하지 마. 여기도 퀄리티 좋다는 후기도 많으니까.”
우려 섞인 대화를 들으며 건물 지하로 내려갔다.
어쩔 수 없는 지하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코끝에 얇게 덮인다.
지하에 작업실이 있어 봤기에 꽤 익숙한 냄새였다. 오랜만에 맡네.
주변이 확 어두워지길래 선글라스를 뺐다.
그리고 계단 끝에 작게 나 있는 문을 열어젖혔다.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공간.
홀과 방 하나가 전부였다. 방에는 녹음실 부스처럼 창이 나 있어 내부가 훤히 보이고.
창 너머로는 백발이 무성한 남자가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의 주위엔 위에서 본 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학생들이 있었고.
“어, 아까 전화 주신···.”
반대쪽에서 홀을 청소하던 젊은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끄덕이자 그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안내한다.
“지금 앞 타임 분들이 아직 안 끝나셔서요. 잠시 소파에서 앉아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네, 그러죠.”
“커피라도 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모양과는 다르게 훅 꺼지는 소파에 앉아 작은 방 안을 들여다봤다.
소리가 제대로 들리진 않지만, 곡에 관한 얘기를 주고받는 듯했다.
나는 백발의 남자를 유심히 보았다.
적어도 5, 60대 정도는 되어 보인다.
이상한 일은 아니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연령대가 다양한 반면, 엔니지어들. 특히나 저분 같은 믹싱 엔지니어들은 연령대가 위쪽에 몰려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감각만큼, 아니 어쩌면 감각보다 더 경험이 중요한 영역이라는 것. 그렇기에 대부분 연령층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 동안 방안을 들여다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데, 젊은 남자가 청소를 마치곤 슬쩍 다가온다.
“보통 다른 곳에선 후반 작업에 관한 내용을 인터넷으로 주고받는 경우가 많은데, 기사님은 저렇게 직접 만나서 얘기하시는 걸 선호하세요. 학생분들이 원하시면 저렇게 강의를 하기도 하고요.”
“저러기 쉽지 않으실 텐데···.”
특히나 가격이 저렴하다면 더더욱.
“그렇죠. 대단하시죠. 어, 끝났나 보네요. 바로 들어가실까요?”
“네. 그러죠.”
소파에서 일어나 방 쪽으로 향했다.
마주나와 신발을 신던 이들 중 하나가 나를 슥 보다가 우뚝 멈춰 서더니 옆에 친구를 툭툭 친다.
“야.”
“왜?”
“저기···.”
“응? 어···!”
지하에 내려와서까지 선글라스를 쓰는 건 아니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더라도 계속 쓰고 있었어야 했나 보다.
나를 본 학생들의 표정이 도화지 마냥 빳빳하게 펴지고 있는 걸 보니.
“맞지? 기로 프로듀서.”
“에이, 그분이 여길 왜 와?”
“마, 맞는 거 같은데?”
그런 학생들의 반응을 이상하게 보던 젊은 남자가 나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어? 하하, 그러고 보니 정말 닮으셨네요?”
“······.”
“···닮으···닮으신 게 아닌가.”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훅 줄어들었다.
내 반응에 눈치를 챈 듯.
살짝 떨리는 목소리를 낸다.
“본인이신가···.”
#“유명하신 분이라고요?”
백발이 무성한 남자. 주대철 기사가 안경을 고쳐 쓰며 물어왔다.
‘네’라고 대답할 순 없어 어색하게 웃는데, 옆에서 젊은 남자가 끼어든다.
“정말 유명한 분이세요. 그···아, 심혜경. 심혜경 선생님 아시죠? 그분이 이 분 노래 듣고 극찬을 하셨다니까요?”
그러자 주대철 기사가 젊은 남자를 퉁명스럽게 본다.
“너 내가 하라는 건했어?”
“하핫, 진즉에 했죠.”
“······.”
젊은 남자가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주대철 기사는 그 모습이 못마땅한 듯 혀를 차고.
“아무튼, 그런 유명한 분이 나한테 믹싱을 맡기러 오시진 않았을 테고. 무슨 일로?”
유명하기론 만만치 않으셨으면서.
사실 업계인들 사이에선 나보다도 유명했었을 거다. 무려 대가란 소리까지 들으셨던 분인데.
“저희 회사에서 이번에 후반 작업 전담팀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만한 경험이 있는 분을 모시고 싶어서요.”
“은퇴한 노인네 불러다가 부려먹으시겠다는 건가?”
비슷하긴 한데···.
“절대 귀찮은 일 없으실 겁니다. 그냥 자리를 잡을 때까지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그 팀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에고, 안 합니다. 그런 거.”
“아뇨. 팀 말고요.”
“···?”
“아드님이 자리를 잡으실 때까지요.”
주대철 기사의 눈이 옆으로 굴렀다.
“···저요?”
거기엔 부친의 경험과 자신의 재능으로 국내 최고의 믹싱 엔지니어가 될.
주기훈이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와, 속전속결이시네요.
“빨리 준비해야죠.”
그리고 잘.
레이블에게도 최정아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첫 정규 앨범이 될 테니까.
어느새 또다시.
내 인생의 첫 번째가 쌓여가고 있었다.
과거와는 달리 항상 성공이란 결과를 꼬리에 달고.
차에 시동을 거는데,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지희 씨는 TKM에서 봤다고 했죠? 내일 올 프로듀서.”
-네. 봤어요. 나이가 기영이랑 동갑인가 그럴 거예요. 귀여우시던데요?
궁금증이 부풀어 오른다.
‘누굴까?’
처음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TKM에서 아무도 오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공모전 당선자가 오는 건 기정사실인 듯했으니까.
그러다 정 대리가 보내준 음원들을 확인했다.
당선자가 공모전에 낸, 그래서 수상한 곡들.
총 세 곡이었고, 듣자마자 깜짝 놀랐다.
지금 당장 음원으로 내도 될 만큼, 퀄리티가 높다. 그리고 그걸 떠나 일단 노래가 좋았다. 보컬과 가사까지도 모든 게 완벽하게 느껴질 정도.
그래서 요즘 계속 듣고 있다. 공부나 분석 같은 게 아니라, 순수하게 노래가 좋아서.
안 그래도 서기영을 볼 때마다 자극을 받고 있는데···.
자극을 받을 사람이 하나 더 늘 것 같은 느낌이지.
더욱 궁금해진다.
이런 프로듀서가 TKM에 있었다는 얘긴 들어본 적도 없는데.
당연히 지금 듣는 노래들을 미래의 나는 들어본 적도 없고.
대체, 누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