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4. 카타르시스의 순간
드라마를 총괄하는 곽 피디.
촬영장에선 곽 감독으로 불리는 남자가 자신의 풍채를 작은 의자에 욱여넣었다. 흡족한 입꼬리를 그리며.
“아 표정 좋네. 좋아.”
작은바(bar) 안.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이나라가 술에 만취해있다. 그녀에게 박경호가 천천히 다가간다.
-미안해요. 전 나라씨와 연애하기 싫어요.
-왜죠?
-왜냐면······.
-아녜요. 말하지 마요. 상처받기 싫으니까···.
“컷! 오케이! 아, 좋다.”
곽 감독이 벌떡 일어나자 의자가 같이 딸려 올라오다가 툭 떨어졌다.
“너무 좋았어. 나라 술 취한 연기 너무 좋은데? 소품 팀이 실수로 진짜 술 갖다 놓은 줄 알았잖아.”
“헤, 감사해요. 감독님.”
“그리고 경호씨.”
그의 시선이 박경호에게로 돌았다.
“연기가 나날이 좋아져? 원래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뭐랄까. 더 자신감 넘쳐졌다고 해야 하나? 사람이 변한 거 같아. 아 물론 좋은 의미로.”
“감사합니다.”
“아무튼, 이번 씬 표정 연기 너무 좋았어. 경험담 아니지? 껄껄!”
박경호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곽 감독이 돌돌 말린 대본을 지휘봉처럼 휘휘 저었다.
“자, 다음 씬 찍으러 가자!”
스태프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덩달아 걸음을 옮기려는 박경호에게 이나라가 말을 걸었다.
“요새 기사 엄청 뜨시더라고요.”
“아, 네.”
“그럼 앨범도 곧 나오나요? 언제쯤 나와요? 아, 아직 너무 이른가. 제가 음반 쪽은 잘 몰라서···.”
“그게······곧, 나올 것 같아요.”
“에? 곧이요?”
“네.”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찔끔하는 박경호였다.
그가 OST에, 그것도 타이틀 곡으로 참여한다는 건 방영 직전에 공개되어야 하는 사실 중 하나였으니까.
지금부터 공개해버리면 정작 드라마 방영 때는 그 효과가 미미할 것을 걱정한 드라마 홍보팀의 전략이었다.
이나라가 싱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오, 목소리가 워낙 좋으시니까 기대돼요. 나오면 꼭 들어볼게요!”
“감사합니다.”
박경호가 감사 인사를 건네며 돌아섰다. 촬영장 곳곳에서 그를 향한 시선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다 그의 눈길에 흩어진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친구를 제외하곤.
친구는 송사리 떼처럼 사라진 시선들의 면면을 훑으며 시원하게 웃었다.
“크흐, 사이다.”
“그거 물인데?”
친구가 자신의 손에 들린 병을 흔들었다.
“그니까. 근데 널 보니까 물인데 사이다로 느껴져. 내가 요즘 너 잘 되는 맛에 산다.”
“뭐라는 거야, 갑자기.”
“그런 게 있다. 아주 불 켜지자마자 도망가는 쥐새끼들 같네. 없을 땐 그렇게 망상을 분출해대더니.”
히죽 웃는 친구를 보며 갸우뚱거리는 박경호였다.
“근데.”
친구가 박경호를 유심히 살폈다.
“큰 소속사가 좋긴 한 가보다? 정말 어딘가 자신감이 넘쳐. 반하겠어.”
“그런 거 아냐.”
“뭘 아냐. 변했단 소리 들을까 봐 그래? 야, 좀 변하면 어때. 뜨면 변해야지. 그럼 뜨기 전에 변하나?”
“아니, 그게 아니라···.”
박경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소속사 덕이 아닌, 프로듀서 덕이라고.
녹음 이후 조금씩, 그리고 확실히 자신의 삶이 변하고 있었다.
녹음 당시 들었던 이야기가 컸다.
두 번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니 될 것처럼 해라.
실패를 반복할까 두려운 자신에게 위로이자, 응원이자, 주문이었다.
‘이제 20대 후반이라고 들었는데···.’
전혀 그렇게 안 보인다. 자신보다 10년은 더 산 사람처럼 느껴진다.
‘후우, 좋았어.’
프로듀서를 떠올리니 또다시 든든해지는 박경호였다.
#곽 감독은 촬영을 모두 마친 뒤, 편집실까지 들러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홍보 담당자가 있는 회의실로 들어온 그는 가장 처음 보이는 의자에 아무렇게나 몸을 꾸겨 넣었다.
“으어, 되다 돼.”
“들어가서 쉬시지 않고요. 내일도 촬영 일정 꽉 차 있잖아요?”
“그래도 확인할 건 해야지.”
곽 감독은 이번 드라마에 그야말로 자신을 갈아 넣고 있었다. 자신의 이전 성적을 넘어서기 위해서.
“오늘 촬영은 어떠셨어요?”
“순항이었지.”
“다행이네요.”
끄덕거리는 홍보 담당자를 향해 곽 감독이 히죽 웃었다.
“특히 박경호 그 친구가 아주 괜찮았어. 이것저것 시켜봤는데, 다 곧잘 하더라고. 이 작품 끝나면 비중 큰 롤 많이 들어오겠는데 싶을 정도로.”
“하긴, 비주얼 되고 연기되고 이제 화제성도 생겼으니 충분히 가능하겠죠.”
“그니까. 먼저 찜을 좀 해놔야겠는데······이제 소속사가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음악에 집중한다고 할까 봐 걱정이네.”
곽 감독이 코끝을 찡그리며 눈알을 굴렸다. 조만간 그쪽 대표랑 한 번 자리를 만들어봐야겠다며.
“거기 최정아, 그 친구도 비주얼 엄청나던데, 연기시킬 생각은 없나······아 참, 홍 작가랑은 연락해봤어?”
“네. 타이틀곡 데모만 종일 반복재생으로 들으시면서 열심히 집필 중이시래요. 노래가 좋으니 집필 분위기도 잡히고, 글도 술술 써지신다나 봐요.”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네.”
“그런가 봐요. 솔직히 좋긴 엄청 좋잖아요. 저도 요새 계속 들어요.”
곽 감독이 긍정의 웃음을 흘렸다.
“이번에 준철이한테 술 한 번 제대로 사야겠네. 처음에 기로 프로듀서 잡아야 한다고 하길래 무슨 가수도 아니고 프로듀서를 들이미냐고 뭐라 했었는데.”
따라 웃던 홍보 담당자가 노트북을 훑으며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아더 레이블에서 이번에 앨범을 내는 주자가 있나 봐요.”
“그래?”
“네. 서기영이라고. 오디셔닝이란 오디션 프로에서 1등 한 가수예요.”
“어어, 알 것 같다. 누군지. 그 친구 앨범 나온 데?”
“네. 오늘요.”
이에 별생각 없이 끄덕이는 곽 감독.
홍보 담당자가 기도할 기세로 희망 사항을 말했다.
“이거 진짜 대박 났으면 좋겠네요.”
곽 감독이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봤다.
우리 드라마 대박 나길 기원해도 모자랄 판에 거기 대박은 왜 또 바라냐는 듯이.
홍보 담당자가 재빨리 설명했다.
“기로 프로듀서가 잘 될수록 우리 드라마가 잘 될 확률에도 도움이 되는 거잖아요.”
“그게 그렇게······되겠네?”
“그렇다니까요.”
“야, 씨. 나도 빌자. 어떻게, 애들한테 문자 돌릴까? 다 같이 빌자고.”
숨넘어가게 웃는 홍보 담당자를 보며 곽 감독이 곰 발바닥 같은 두 손을 모았다.
#늦은 밤.
작업실에서 일을 마무리 짓고 털레털레 근처 횟집으로 향했다.
점원의 안내를 받아 안쪽 깊숙한 곳의 방으로 들어가자 직원들이 나를 반긴다.
“오셨어요?”
생각보다 많은 인원에 놀랐다. 서기영 앨범 성적도 함께 확인하고, 회식도 할 겸 편한 데로 모이라고 했는데 대부분 다 온 것 같았다.
김지희가 건네는 젓가락과 수저를 받아들며 물었다.
“아, 고마워요. 기영이는요?”
“아버지랑 통화하러 갔어요.”
“아아.”
서기영과 똑 닮은. 닮다 못해 절제된 감정 표현까지 닮은 그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들의 우승에 흐뭇해하던.
부모님이란 단어에는 묘한 연결 고리가 있나 보다. 항상 다른 이의 부모님을 떠올리다가도 어느새 홱 하고 내 부모님이 떠오르는 걸 보면 말이다.
‘나도 연락 한 번 드려야겠네.’
미국을 다녀온 이후론 연락이 좀 뜸했던 것 같아 반성하는데, 서기영이 들어왔다.
“어, 피디님 오셨어요?”
“잘 통화했어?”
“넵.”
“아버지랑 같이 확인 안 해도 돼?”
“지금 아버지도 친구분들이랑 계세요. 어디서 배우셨는지 제 음원 나오면 음원총공하신다고.”
주변에 있던 직원들이 빵 터져서 킥킥댄다.
“지금 아버지의 사랑을 얘기하는데 웃겨요?”
“피디님은 왜 웃으세요.”
“웃겨서요. 그냥 물어본 거예요.”
결국, 다 같이 킥킥댔다.
‘편해진 것 같네.’
직원들과 말이다.
몇 달 안 됐지만, 이젠 정말 하나의 팀처럼 느껴졌다.
‘든든하다.’
시끌벅적한 그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 사이, 회가 끝도 없이 나온다.
술판이 벌어졌다. 내가 있는 테이블만 제외하고. 청담동에 남은 마지막 청정구역쯤 되겠다.
“나왔어요!”
김지희의 외침과 함께 핸드폰을 찾는 직원들의 손이 분주해졌다.
각자 역할까지 정한다.
“난 리뷰란을 볼게.”
“그럼 난 순위를 볼게. 아, 아직 없지 참.”
“난 여친을. 아 이것도 아직 없어.”
“피디님, 얘네 취했어요!”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서기영의 첫 앨범. 그리고 아더 레이블의 첫 정규앨범이 음원사이트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도 결국 참지 못하고 젓가락을 내려놨다.
콜라로 목을 축이며 현재 차트 순위를 확인했다.
‘너무 치열한데?’
차트 상단.
1위부터 30위까지의 경쟁이 잔뜩 과열되어 있다. 유명 아이돌들과 힙합이 대부분.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슬쩍 서기영을 보았다.
괜찮은 척해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손이 움찔움찔하는데 핸드폰을 집을까 말까 고민하는 모양새다.
가뜩이나 긴장해도 티가 안 나는 서기영인데, 저 정도면 엄청 긴장한 것 같네.
그때 직원 중 하나가 소리쳤다.
희소식이었다.
“리뷰란 터질 것 같은데요? 오디셔닝 청자들 전부 몰려온 것 같아요!”
“커뮤니티들 반응도 엄청 좋아요. 딱 서기영에게 바랐던 노래 스타일이라네요!”
파스타 집이란 걸 오디셔닝 때 알려주고.
이번엔 온갖 파스타 요리를 다양하게 준비했으니까.
우린 대중이 원하고 기대하는 걸 딱 맞춰서 준 거다.
“긴장 좀 풀어.”
서기영에게 말했다.
그러자 김지희가 웃으며 말한다.
“피디님도요.”
그래야지. 그래야지···.
“이건 매번 편해지질 않네요.”
고작 한 시간이.
아주 긴 기다림으로 느껴졌다.
회를 집어 먹어도 아무 맛이 안 느껴진다.
아, 원래 회는 그런가.
어쨌든. 입안이 바싹바싹 말라 연신 콜라만 들이켰다. 그러다 속이 더부룩해질 때쯤.
“1시다!”
차트가 재배열된다.
그리고.
파스타는 승리했다.
면발마냥 길게 늘어선 수록곡들이 차트 상단에 쾅 박혀 있었다.
직원들은 환호한다.
서기영은 나를 향해 제법 환하게 웃다가, 아버지의 전화를 받으러 다시 나갔고.
더부룩함이 쑥 꺼진다.
회가 맛나다.
매번 긴장되지만. 그만큼 항상 큰 카타르시스를 주는 순간이었다.
“자자, 이제 맘 편히 먹읍시다!”
“피디님, 저희 더 시킵니다!”
한 시간 동안 멈춰있던 회식이 다시 굴러간다. 그리고 회식이 마무리될 때쯤.
면발이 기어이 차트의 정점을 찍었다.
주르륵.
TOP10 안에.
서기영의 곡만 7곡이었다.
#직원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왔다.
“잘 먹었습니다, 대표님!”
“아 맞아. 대표님이셨어. 대표님, 대표님!”
“······.”
내가 아무리 바지사장, 뭐 그런 거여도 해고는 가능하지 않을까? 갑질이니 뭐니 뉴스에 나오려나?
“후아.”
옆에서 비척대는 김지희의 얼굴이 벌겋다. 결국, 다른 테이블에서 한 잔 마셔 버렸지. 한 잔에 저렇게 취하면 가성비가 좋은 건가.
“피디님.”
“네.”
“저 궁금한 거 있는데 여쭤봐도 돼요?”
“뭔데요?”
갸웃거리자 김지희가 살짝 풀린 혀로 말을 이었다.
“다음 작업은 뭔가요? 또 어떤 무명 신인을 데리꼬 오실 건가요? 제가 그래도 A&R인데 매번 힘드렁, 힘드렁 이러는 게 너무 읎어 보이자나요. 피디님은 척척 해내는데. 그래서 저도 이번엔 방법을 미리 찾아보려구요.”
속사포로 쏟아내는 말들.
잠시 당황했지만 그녀가 어떤 얘길 하고 싶은진 알 것 같았다.
“충분히 잘해주고 있어요.”
“아녜요. 전 부정···부정 머신이잖아요. 피디님 그건 좀, 저건 좀. 개뿔. 다 해내시는데 뭘.”
김지희가 너무 진지하게 말하고 있어서 웃음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 있다.
박경호도 그렇고, 요새 다들 봄을 타나.
“정말 잘해주고 있어요. 이번 기영이 앨범도 솔직히 음악 외적인 부분은 전부 지희씨 머리에서 나왔잖아요.”
“맞아. 그래찌.”
그녀가 눈을 깜빡인다.
“······그럼 저 도움이 되고있는 거네요?”
“그럼요. 그것도 엄청요.”
마침 여직원과 홍보 담당자가 후다닥 달려와 김지희를 부축했다.
“아이고 내일 이불을 얼마나 차려고.”
“어떻게 한 잔에 이렇게 되지?”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쿡쿡 웃었다.
그러면서 몸을 돌렸다.
다음이라···.
박경호의 OST 작업이 완전히 끝나면.
그러면···.
그때, 핸드폰이 옆구리를 간질인다.
꺼내며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확인했다.
‘귀신 같네.’
내가 떠올린 걸 어떻게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