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3. Original Sound Track (3)
“관련 기사 들어가면 죄다 박경호 얘기네.”
대기실이라 쓰고, 정신과 시간의 방이라 일컫는 공간.
자신의 차례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조연들 사이에 박경호의 이야기가 화두로 떠올랐다.
“아니, 앨범 폭삭 망한 중고신인이 어떻게, 아더 레이블에 들어갔지? 빽이 있나?”
“빽이 있는데 앨범 하나 말아먹었다고 독립영화부터 시작해서 공중파 드라마로 왔겠어? 심지어 본업은 보컬트레이너라던데.”
“인터뷰 보니까 기로 프로듀서인가 그 사람이 직접 컨택했다더라. 노랠 엄청 잘했던 거 아닐까?”
“목소리가 좋긴 했지.”
온갖 오피셜과 추측들이 튀어나왔다.
이에 허탈해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젠장. 누군 몇 년째 쥐똥만 한 소속사에서 가뭄에 콩 나듯 물어다 주는 일 하고 있는데.”
“그니까. 이 바닥 역시 될 놈 될 이라니까.”
“말은 바로 해야지. 경호도 몇 년 만에 물들어 온 건데.”
“우린 물도 안 들어오니 그렇지.”
마땅찮은 얼굴로 대화를 듣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걘 딱 봐도 지조가 없어 보였어. 뭐 앨범도 예전에 냈다가 망했다며. 그래서 돈 못 버니까 이쪽도 기웃거렸던 거지. 그러다 또 저쪽에서 제의 오니까 홀라당 가버린 거고.”
그의 말에 몇몇이 조금 밝아진 얼굴로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그러네. 완전 박쥐 아냐. 우린 연기가 좋아서 이거 하는 거잖아? 그치?”
“와, 좀 그런데? 나 같으면 제안 와도 안 받았다.”
편해지다 못해, 신이 난 목소리들이 넘실댔다.
꼬투리 하나 잡아주니까 신나서 물어뜯는다.
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허구한 날 돈, 차, 여자 얘기만 하던 이들이 갑자기 연기의 꿈을 가진 돈키호테마냥 으쌰으쌰 하는 것이 아니꼬워서.
하지만 반박했다간 갑론을박이 벌어질까, 아무도 나서지 않는 눈치였다.
그때 평소 박경호와 친하게 지냈던, 조연 배우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소리가 꽤 커서 모두에게 들릴 정도였고. 자연스레 시선이 몰렸다.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기쁜 소식을 들어 가지고.”
핸드폰을 내리며 그가 환하게 웃었다.
“경호가 이번 일로 비중이 엄청 늘었다네요?”
박경호 얘기로 끓어오르던 대기실이 삽시간에 차게 식었다.
#“잘됐네요. 네. 그러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봬요.”
전화를 끊자 앞에 앉아 쥐포를 뜯던 학준이 형이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온다.
오랜만이다. 학준이 형과 이렇게 마주 앉는 것도. 형이 오죽 바빠야 말이지.
“어떻게 됐다는데?”
나는 전화로 들은 내용을 풀어 놓았다.
박경호가 무려 타이틀 곡을 맡는 것에 총괄 피디와 작가가 고민 끝에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는 것. 그리고 그에 걸맞게 박경호의 비중을 대폭 늘린다는 것. 이 두 가지 겹호재를 말이다.
“이야, 진짜 잘됐네!”
학준이 형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한다. 그러더니 날 보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아주 대표 역할 제대로 했어. 장 대표.”
대답 없이 웃자, 학준이 형이 말을 이어갔다.
“지희 씨가 그러더라고, 직원들 대부분이 성사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고. 근데 그걸 단번에 성사시켜 버렸네? 직원들도 아주 깜짝 놀랐을 거야.”
“뭐, 잘 됐으니 다행이지.”
천천히 곱씹었다. 판을 그리고, 짜고, 깔았던 일련의 과정들을.
그때의 나는 생각보다 과감했다. 내가 알던 나와는 달리.
이런 게 꽤 체질이었던 걸까?
맥주잔에 담긴 콜라를 쭉 들이켰다. 달달함과 청량감이 한 번에 몰려온다.
프로듀서로서 곡을 만들고, 대표로서 판을 만든다.
성공이 불투명한 프로젝트는 성공하도록 만들고. 성공이 분명한 프로젝트는 더욱 크게 성공하도록.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짜식. 진짜 든든하네.”
학준이 형이 날 보면서 말했다.
묘한 느낌이었다. 누군가한테 든든하단 말을 들어본 게 언제지?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선 찾을 수 없었다.
“이제 네가 하는 일이면 뭐든 믿고 따라갈 만 한 것 같다.”
이어지는 그 말이 꽤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부담감이 없진 않았지만, 지금은 그 부담감마저도 기분 좋게 느껴지네.
그나저나···.
“그런 말은 참 고마운데 말이지. 김 가수, 내일 라디오잖아. 술은 좀 적당히 하셔.”
“에라이.”
학준이 형이 내가 뺐을세라 맥주를 훅 털어 넣었다.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을 흘리는데, 그가 탄산에 몸부림을 치다가 입을 연다.
“아무튼, 난 엄청 기대된다고.”
“응?”
“예전에 했던 꿈 같던 얘기들이 이젠 하나씩 현실이 되고 있잖냐.”
그가 또다시 흐뭇하게 웃는다.
“앞으론 네가 또 얼마나 더 대단해질지. 그게 너무 기대된다. 아주 꿀 잼이야.”
#얼마나 더 대단해질까···.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이다.
눈앞에서 날 보며 도도하게 앉아 있는 하서윤에게.
정말 놀라운 여자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어떻게 내가 그렇게 매달렸는데, 다른 사람한테 곡을 줄 생각을 할 수 있어요?”
“잘 되던데요. 그 생각.”
하서윤의 눈매가 더욱 표독스러워진다.
이에 느긋하게 답했다.
“전 하서윤씨 곡 작업할 생각 없어요.”
“왜, 왜!”
“솔직히 말해요?”
“그래요, 어디 한 번 들어봅시다. 해봐요!”
“왜냐면······.”
“아니! 하지 말아봐요.”
하서윤의 새하얀 손이 훅 들어와 내 입을 틀어막았다.
“자존심에 스크래치 날 것 같으니까.”
“으렁걸룽···.”
“뭐라고요?”
손가락으로 내 입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그녀의 손···을 가장한 재갈.
“아.”
푸하. 손이 내려가고 자유를 찾은 입으로 똑똑히 말했다.
“그런 거로 스크래치 날 자존심은 아닐 것 같다고요. 철판을 두른 것 같던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안 좋은 뜻이죠?”
좋게 들리긴 힘들지 않나?
갸웃거리며 몸을 돌렸다.
“손님 왔는데 어딜 가요!”
“녹음 준비해야죠. 오늘 ‘제 뮤지션’ 녹음 날인데.”
입술을 앙 다물고 미간을 한껏 찡그린다.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뭐, 뭐요. 왜요?”
그러게. 여전히 곡 작업을 같이하고 싶진 않은데···.
왜 신경이 쓰일까?
투정 부리는 애에게 훈수하고 싶은 마음이려나.
“어째서 곡 작업 할 생각 없냐고 물었죠?”
“말하지 마요. 싫어. 안 들을 거야.”
귀를 막으려 하는 그녀에게 말했다.
“말 안 해요. 근데 보여줄 순 있을 것 같네.”
“···?”
“보려면 봐요. 녹음하는 거.”
끔뻑이는 하서윤을 뒤로하고, 그대로 계단을 올라 녹음실로 향했다.
위에선 최 기사가 녹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가 늦었죠?”
“얘긴 전해 들었어. 사생팬이 왔다며?”
안티겠지.
어이 빠진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 앉았다.
“데모는 들으셨죠?”
“어, 들었지. 이번 친구는 저음역 대가 엄청 단단하던데?”
“네, 그것도 제가 꽤 드라이하게 가믹싱 한 거라, 참고해서 이펙터 걸어주세요.”
“그려, 그려. 근데···.”
“···?”
“사생팬이 여기까지 왔는데?”
하서윤이 또각또각 녹음실로 들어와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팔짱을 끼고 다리도 꼰다.
“구경은 해도 된다고 했죠?”
“방해만 안 하면요.”
하서윤이 콧방귀를 뀐다.
“어디 얼마나 잘 부르는 사람인지 한 번 보죠, 뭐. 잘 불렀으면 지금까지 무명이었겠느냐마는.”
“벌써부터 방해가 될 것 같은데.”
“······.”
다행히 사생팬이 말을 참 잘 듣네.
#박경호가 도착한 건 20여 분 정도가 지나서였다.
“어···괜찮아요?”
“네, 넵. 괜찮습니다.”
잔뜩 상기된 얼굴이다.
“컨디션 너무 안 좋아 보이는데요?”
“잠을 좀 설쳤어요···근데 정말 괜찮습니다.”
그때 뒤쪽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괜찮아 보이는구만 뭘.”
“방해할 거예요?”
고개를 돌려 묻자 다시 조용해진다.
그제야 하서윤을 본 박경호가 놀란 눈을 하고는 어버버 거렸다.
“신경 쓰지 마요. 그냥 스태프라고 생각해요. 스태프.”
“네? 아, 네···.”
“일단 들어가서 톤부터 맞추죠.”
눈을 끔뻑이는 박경호에게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얼빠진 얼굴로 부스에 들어간 박경호.
최 기사는 그에게 발성을 시키며 톤 작업을 진행했다.
그 사이, 나는 가사지와 악보 등을 깔아놓고서 박경호를 살폈다.
그는 보면대에 가사지를 올려놓고서 심호흡하고 있다. 가뜩이나 수음이 잘 되는 콘덴서 마이크라 거친 숨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온다.
괜찮겠냐고 재차 물었지만, 목소리만큼은 의지가 콸콸 넘친다. 다만, 여전히 유리 너머의 눈빛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단순한 긴장이면 다행이겠지만···.’
걱정하며 녹음을 시작했다. 내 사인과 함께 메트로놈이 넘어갔다. 박경호가 크게 숨을 들이쉰다. 그리고.
우뚝.
들어가야 하는 타이밍에 목에 뭐가 걸린 사람처럼 멈춰버렸다.
“경호씨?”
-어, 죄송합니다. 잠시···잠시만요.
그가 두 걸음쯤 물러선다.
그리고 고개를 떨군 채.
가만히 얼어붙었다.
“정말 무슨 일 있나?”
최 기사의 걱정 어린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그러게. 어제 통화할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왜 저러지?
꽝꽝 언 얼음은 녹을 줄 몰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안 되겠다 싶어 옆에 걸려있는 헤드셋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최 기사에게 부탁했다.
“스피커 끄고 헤드셋으로만 소리 넣어주세요.”
헤드셋을 끼고서 토크 백 버튼을 지그시 누른다. 그리고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정말 괜찮다는 듯이.
“상태가 안 좋은 거면 미뤄도 돼요. 정말로요. 좀 쉬었다 해도 되고요.”
-아, 아녜요. 쉬었다 한다고, 다음에 한다고 다를 것 같지가 않아요.
무슨 소릴까?
의아했지만 천천히 기다렸다.
박경호가 민망한 듯 내뱉었다.
-나름 보컬트레이너라는 놈이 서른이나 먹고서······하아, 저도 당황스럽네요. 어젯밤부터 계속 떠오르던 생각들이 여기서니까 더 심해졌어요.
“어떤 생각인데요?”
-말하기도 창피한 것들이에요. 꼭 그때 같다. 처음 앨범 녹음하던 날. 무슨 타임머신이라도 탄 것 같네.
“···.”
-근데···그때처럼 또 실패하면 어쩌지?
“···.”
-하하, 이상하죠? 저도 이게 처음 겪는 기분이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대응을 갈구하던 머리가 멈췄다.
“알 것 같네요.”
-네?
“타임머신 탄 것 같다면서요. 저도 그 기분 충분히 알 것 같다고요.”
아니, 사실 아는 것 같은 게 아니라 알지.
“다시 해볼 기회가 생겼는데, 이번에도 잘 안되면 어떡하지 하는 거. 난 간절한데, 세상은 나한테 간절하지 않은 것 같은 거.”
-······.
헤드셋 너머가 정적에 휩싸인다.
박경호의 가쁜 숨소리가 멎었다.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더라고요.”
나는 말을 이었다.
“기회가 두 번 주어졌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러니 겁먹지 말자고.”
-···!
내가 그랬으니까.
박경호가 잠시 고개를 들어 날 본다. 그리고 이내 눈을 감으며 심호흡을 크게 했다.
두 걸음 다시 앞으로.
뒷걸음질 칠 때보다 한결 가볍게.
-다시 해보겠습니다.
녹음이 재개되었다.
이때부턴 순조로웠다.
통기타 스트로크와 함께 보컬 트랙에 박경호의 목소리가 새겨진다.
목소리에서 더덕더덕 붙어있던 불안과 긴장, 망설임은 싹 씻겨져 내려갔다.
그리고 멀끔해진 그의 노래가 성장하기 시작한다. 늘 그랬듯이. 끝도 없이.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파트가 진행될수록, 박경호의 표정엔 자신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된다. 이번엔 되겠구나. 나도 할 수 있겠구나.
그렇게.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몇 시간이 흐르고.
녹음이 끝났다. 아주 성공적으로.
나는 뻐근한 몸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려 뒤쪽을 보았다.
“···갔나 보네.”
소파가 텅 비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