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 Original Sound Track (2)
“그러니까···.”
김지희가 눈을 깜빡인다.
한 1초에 7번 정도.
“박경호라는 분이···부르실 거라고요?”
“네.”
그녀의 눈이 홍보 담당자에게로 향한다. 여전히 7번씩 빠르게 점등하며.
그가 고개를 저으니 이번엔 카운터에서 도너츠를 오물거리는 여직원에게로 옮겨간다.
“저도 처음 들어봐요.”
“휴우. 나만 처음 듣는 이름이 아니구나. 정말 다행······일 리가.”
피식. 김지희의 걱정 가득한 표정에 대고 부채질을 해줬다.
“드라마에 출연하는 조연이에요.”
“조연···.”
꽤 길게 얘기한 것 같은데 그녀의 머릿속엔 조연이란 단어 하나만 남았나 보다. 그녀가 서둘러 노트북을 두들기길래 나는 느긋하게 도너츠를 베어 물었다.
갓 구워져 나온 도너츠라 내가 설탕을 먹었나 싶을 정도로 스르르 사라져 버리네.
그사이 빠르게 호구조사를 마친 김지희.
“브리드라는 그룹 활동을 했던, 중고신인이고요?”
“그렇더라고요.”
여직원도 찾아봤는지 ‘헙’하고 숨을 들이켜며 감탄했다.
“잘생겼다. 되게 느낌 있게 생겼어요.”
“그러네요. 딱 배우상이네. 꽃미남은 아닌데 개성 있게 잘생긴.”
“맞아요, 그거!”
여직원과 홍보 담당자의 쿵 짝 때문인지. 당당하게 대답한 나 때문인지.
김지희가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웃었다. 그리고 그대로 날 보며 말꼬릴 올린다.
“피디님은 항상 갑자기 엉뚱한 곳으로 튀시는 거 아시죠?”
“네, 알아요.”
사실 내가 아니라 멜로디가 그러는 거지만.
그때 홍보 담당자가 커피 냄새 풀풀 풍기며 다가왔다.
“근데 지희씨 말처럼 걱정이긴 하네요. 상반기 기대작들만큼은 아니지만, 캐스팅도 잘 된 데다가 피디나 감독도 전작이 평타 이상이라 팬들의 기대도 상당하더라고요.”
이에 김지희가 끄덕인다.
“그러니까요. 분명히 그쪽에서 반대할 텐데요. 심지어 원래 정아씨를 원했다면서요.”
커피로 입가심하며 끄덕이자, 김지희가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아님, 무슨 생각이 있으신 거예요?”
#“무슨 생각 하세요?”
요새 내 생각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네.
여학생이 동글동글한 눈으로 날 보고 있다.
나는 펜을 들고 있고, 종이도 들고 있는데. 막상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고.
“···사인을 까먹고 못 만들어왔어.”
“연예인 맞아요?”
“아니잖아.”
“아?”
큰 깨달음을 얻은 여학생이 어쩔 수 없다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끔찍한 상황에 직면했다.
“약속하셨죠? 사진 찍어주시기로.”
“다음엔···.”
“다음에 안 오실 거잖아요?”
“······.”
“이봐, 이봐. 얘들아 찍자!”
어쩐지 도끼로 찍을 것 같은 뉘앙스다. 나는 약속을 못 지킨 채무자쯤 되는 거 같고.
박경호의 레슨생들이 내 주위로 몰려들어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으악, 너 존 못.”
“야, 넌 거울이나 봐.”
“뭐가. 잘 생겼구만.”
“얘 정신 나갔는데?”
레슨생들이 살벌하게 팩트를 나열하는 사이, 여학생은 계속 옆에 붙어 이것저것 질문한다.
쌤이랑 친하냐. 친해질 거냐. 자기랑은 친해질 계획 없냐.
‘그게 왜 글로 튀지?’
그러다 마침내 정말 갈 데까지 간 질문이 튀어나온다.
“누가 제일 예뻐요?”
나는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설마 여기서 골라달라는 건가? 자강두···.
다행히 여학생이 고개를 젓는다.
“아뇨, 우리 말고요. 피디님이 작업한 가수 중에서요.”
“······.”
“다들 엄청 예쁘기로 유명하잖아요. 그중에서 누가 제일 실물 깡패예요?”
순간 여러 얼굴들이 빠르게 떠올랐다.
최정아와 유지은, 제인······.
얼른 꾹 눌러 수면 밑으로 가라앉혔다.
고민할 뻔했잖아.
이 중에서 내가 누굴 꼽는 것도 웃기다.
그때 한쪽에서 누가 존 못이냐를 두고 투덕거리던 남학생이 대답했다.
“난 하서윤.”
“나 하서윤이랑 작업한 적 없는데?”
“어, 그랬어요···?”
그러자 남학생과 투덕거리던 여학생이 은근히 물었다.
“왜? 왜 좋은데, 하서윤이.”
그러자 남학생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팔짱을 끼고 턱을 매만지며.
“솔직히 얼굴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잖아. 그래서 난 좀 더 전체적인···.”
둔탁한 퍽 소리가 났다. 옆에 있던 여학생이 쌍심지를 켜고 으르렁거린다.
“짐승!”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때마침 박경호가 레슨을 끝내고 나온다.
반갑네. 어쩌면 멜로디를 들었을 때보다 더.
“피디님 그만 괴롭히고 얼른 집에들 가.”
“안 괴롭혔어요. 그쵸?”
“괴롭혔어.”
“앗.”
레슨생들이 썰물처럼 빠지고, 마침내 조용하게 박경호와 마주할 수 있었다.
“힘드셨죠?”
“아뇨. 엄청 힘들었어요.”
“···?”
피식 웃으며 그가 건네는 차를 받아 들었다. 한 모금 마시고 자리에 앉는 박경호에게 말을 꺼낸다.
“3회분 전달받아서 모두 봤어요.”
무려 3시간이 넘는 걸 앉은 자리에서 모두 보았지. 드라마의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재미없었다면 그렇게 못 했을 거다.
‘심지어 가 편집본인데.’
완성본은 얼마나 더 재밌을지 기대가 될 정도다. 특히나,
“제가 연기를 1도 모르지만, 그래도 드라마가 재밌다는 것과 경호 씨가 연기를 잘한다는 건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얼마 나오지도 않는걸요.”
“그러니까요. 그런데도 정준철 감독님 말처럼 완전 씬 스틸러던데요?”
“하하···감사합니다.”
“노래, 연기 둘 다 재능있으신 건 정말 사기캐인데.”
내 말에 박경호가 민망함으로 얼룩진 얼굴을 든다. 그럴 리 없다는 눈으로 날 보며 묻는다.
“···제가요?”
“연기야 아니라고 하면 제가 할 말이 없겠지만, 노래는 정말 그래요. 그러니 자신감을 좀 가지세요.”
“······.”
박경호는 대답이 없었다. 감격한 것 같은 눈빛만 보내올 뿐, 저러다 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다행히 그러진 않았지만.
“아, 노래 들어보셔야죠?”
“곡이 벌써 나왔나요?”
“네. 여기 스피커가···.”
책상 위에 놓인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해 음원을 틀었다.
로코의 분위기를 고려해 채운, 리얼 악기 위주의 밴드 사운드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뒤를 잇는 멜로디 라인. 일단은 서기영의 목소리가 러프하게 얹어져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경쾌함과 묵직함 사이에서 외줄을 타기 시작한다.
빠져들 것처럼 집중한 박경호를 보며 곱씹었다. 이번 작업이 재밌었다고.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새로웠다.
결국, 멜로디가 들렸기에 평소와 비슷하게 곡을 발전시키지 않을까, 싶었지만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평소 멜로디와 가창자. 두 가지의 조화에만 신경을 썼다면, 이번엔 드라마의 분위기. 즉, 이야기가 끼어 있었지.
세 가지를 조율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가 맞으면, 하나가 엇나가기 마련.
세 가지를 저글링 하듯 조화롭게 굴려야 했고,
‘결국, 해냈지.’
잠시 후, 노래가 끝났다.
박경호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이걸, 제가 부른다고요?”
끄덕이자, 박경호의 입매가 천천히 올라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돌연 심각한 얼굴로 돌아왔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드라마 조연인 제가 OST를 부른다는 게, 제작진이 과연 수락할지······.”
희망고문이 별 게 아니다. 될 것도 같은데, 자신은 항상 안 되는 쪽이었다면.
그게 희망이고 고문이지.
나는 빙그레 웃었다. 희망만 듬뿍 담아서.
“그니까요.”
“···?”
“그래서 계약을 좀 빨리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
“네?”
대중들이 주목하고 있다.
제인 곡까지 대박 낸 프로듀서의 다음 행보를. 그래서 한 템포 먼저 알려줄 생각이다.
유명세가 있으니,
써먹을 수 있을 때 써먹어야지.
#며칠 뒤. 정준철 감독이 대표로 있는 ‘그라운드 뮤직’ 사무실로 향했다. 허허실실한 얼굴로 정준철 감독이 반겨온다.
“생각보다 일찍 연락이 와서 놀랐습니다.”
의외라는 듯, 그가 말했다.
“다른 쪽에서 일하시던 분들이 OST 작업에 참여하면 적응을 잘못하거든요. 심할 땐 곡을 하루 만에 넘겨야 할 때도 있으니까. 그래서 피디님껜 넉넉하게 드린 건데, 역시 장 피디님이네요.”
열렬한 칭찬을 웃어넘기며 지난번과 같은 회의실에 앉았다. 잠시 후 직원까지 쪼르르 와 앉자, 나는 가져온 노래를 끝까지 들려주었다.
정준철 감독의 수염이 파르르 떨린다.
“사실 엄청 기대했는데···.”
그가 흥분해서 한 톤 올라간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건 기대 이상입니다. 장 피디님!”
박수 치고 손이라도 덥석 잡을 기세다. 테이블 폭이 넓어서 다행이지.
작게 웃으며 그의 리액션을 받아주는데, 직원이 훅 치고 들어왔다.
“근데, 보컬 분은 누구시죠? 남자분이시네요? 한울씨나 서기영씨는 아닌 것 같고···가이드 보컬인가요?”
올 게 왔구나.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박경호씹니다.”
“···?”
“···?”
순간 정적이 흘렀다.
“박경호씨면, 우리 나레이션 한 그 친구?”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냐는 듯 정준철 감독이 물었다.
난 끄덕였고.
#노래를 듣고 깜짝 놀란 정준철 감독이었다.
곡이 좋은 건 기본. 머릿속에 드라마의 장면들이 그려지는 듯했다. 그만큼 드라마의 분위기를 잘 표현한 곡이었다.
‘기가 막히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희열이 끓어올랐다. 기로 프로듀서의 포텐에 뜨뜻미지근하던 드라마의 총괄 피디에게 보란 듯이 들려줄 수 있으리라!
그랬는데···.
“박경호씨를 보컬로 하시겠다고요?”
직원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고, 장 피디는 끄덕였다. 직원이 정준철 감독을 보았다. 어떻게 좀 해보라는 표정으로.
“그···그 친구여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이에 장 피디가 답했다.
“경호씨보다 이걸 더 잘 부를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요.”
억지스러운 대답이었다.
만약 좀 전에 노래를 듣지 않았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정준철 감독은 들어버렸다.
그리고 어렴풋이 수긍해 버렸다.
장 피디가 왜 저렇게 말하는지.
음악을 하다 보면 퍼즐이 맞춰지듯 ‘이거 아니면 안 돼.’하는 부분들이 생기는데. 딱 그런 지점이리라.
하지만. 안되지. 안 돼.
“무슨 얘긴진 알겠어요. 근데 이게 단순히 음반을 내는 게 아닌 드라마다 보니 가수의 인지도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어요. 제가 통과를 시킨다고 해도, 분명히 연출 쪽에서 허락이 안 떨어질 거예요.”
장 피디가 끄덕거린다. 통했나 싶었는데, 다시 물어온다.
“그래도 한 번 여쭤봐 주실 수 있나요? 그쪽에서 절대 안 된다고 하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될 리가 없을 텐데···.”
옆에선 직원이 답답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정준철 감독은 고민했다.
장 피디를 뚫어져라 보면서.
‘왜 저렇게 태연할까?’
마치 전화를 하면 일이 순탄하게 흘러갈 거라 예상하는 듯한······.
‘아니지.’
직원 말처럼 그럴 리가 없었다.
그래도 정준철 감독은 앞으로도 장 피디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고. 결국, 끄덕이며 복도로 나왔다.
“분명히 승질낼 텐데, 이 형.”
괴팍한 드라마 피디를 떠올리며 입술을 적셨다.
연결음이 길어진다.
촬영 중은 아닐 텐데.
회의 중인가?
고민하다 귀에서 떼려는데, 핸드폰 너머에서 전해지는 공기가 바뀌었다.
“여보세요?”
-어, 정 감독. 그렇지 않아도 내가 연락하려고 했는데.
“엉? 왜? 아니, 왜요?”
정 감독이라 갖춰서 부르는 걸 보니 주변에 제작진들이 함께 있는 듯했다.
-그 친구 있지, 박경호라고. 1화에 나레이션 들어간.
“···어?”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저 친구 얘길 하려고 전화를 걸었는데, 상대도 용건이 같다니.
-왜 연기 좋다고 비중을 늘리네, 마네 했던 친구.
“어, 어어. 알죠. 알아. 근데 왜요?”
-그 친구가 아더 레이블 소속으로 들어간다네? 알고 있었어?
“···아니, 몰랐어요.”
-그래? 아무튼, 방금 기사 났는데, 벌써부터 아주 난리도 아니더라고. 생각보다 기로 프로듀서? 그 친구 화제성이 대단하던데?
“내가 말했잖아요.”
-흐흐, 그니까. 몰라봐서 미안하다.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 서 작가랑 비중 늘리기로 합의를 봤거든···근데 또 그것만으론 뭔가 좀 부족한 것 같아서.
장준철 감독이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떻게, 기로 프로듀서한테 얘기해서 OST 한 곡 못 넣나? 그 친구 노래로 해서 내면 화제성 확 끌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
얘길 해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곧장 핸드폰을 확인하자 피디의 말대로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심지어 실시간 검색어에도 올라 있다.
‘보도자료만 낸 게 아니네. 인터뷰를 엄청 했나 본데?’
장 피디가 부산히 움직인 흔적이 보였다.
터덜터덜 회의실로 돌아왔다. 정준철 감독의 표정을 본 직원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물었다.
“절대 안 된다고 그러죠?”
“······.”
정준철 감독은 그러거나 말거나, 장 피디를 보았다.
그는 여전히 태연했다.
그 모습에 헛헛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거···.
‘판을 제대로 깔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