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80화 (80/221)

080. 차이 (2)

“어떻게 처리하라고 이렇게 큰걸···.”

귀여운 투정으로 봐주기엔 스케일이 좀 컸다.

직원 중 누군가 중얼거리자 하서윤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는다.

“잘 보관해놨다가 크리스마스 때 트리로 쓰면 되지 않겠어요?”

아, 크리스마스트리. 화환을···?

깨를 볶은 듯 고소해하는 얼굴로 직원이 아닌 내 쪽을 바라본다.

“그럼 조만간 또 봐요.”

얼굴에 철갑상어를 둘렀나.

살포시 웃고는 힐을 또각거리며 사라졌다.

별말 없이 얼른 가준다니 기쁜 소식이긴 한데. 조만간 또 보자는 말에 괜스레 서늘해진다. 다음에 볼 땐 또 무슨 기상천외한 행동을 할지 모르니···.

“이런 화환은 얼마일까요?”

여직원이 멍하니 화환을 올려다보고 있다.

천장에 닿아 휘어있는 화환이라니.

“얼마든 돈 주고 사고 싶진 않네요.”

몇 번을 봐도 얼얼하다. 한 방 먹은 것 같아.

마치, 내 곡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귀찮은 일들이 계속 생길 거야, 알겠지? 라는 메시지가 담긴 듯한······.

그래도 안 할 거지만.

여직원이 피식 웃었다.

“뭐, 경축 리본 같은 거 다 걷어내고 전구 두르면 크리스마스트리 느낌이 날 것도 같긴 하네요.”

진심인가?

신기하게 올려다보는 직원들을 뒤로하고 작업실로 들어왔다.

‘혼을 쏙 뺐네.’

그나마 잠은 깼다. 저걸 보고도 안 깬다면 그게 이상한 거겠지만.

정신을 부여잡고 잘 동여맨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자, 이제 하려던 걸 해볼까.’

미디 프로그램을 켜고 앉았다.

이른바 작곡 연습.

작곡에 연습을 붙인다는 게 재능있는 이들에겐 우스운 일일 수도 있다. 연습한다고 될 일인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노력으로 채워나가야 하는 이에겐 연습 외엔 기댈 곳이 없잖아.

‘계속 채워야지. 더디더라도.’

지금처럼 멜로디가 들려오지 않더라도.

의존증에 걸려 우왕좌왕하지 않기 위해.

‘게다가 최근엔 꽤 고무적이지.’

내가 부쩍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기영을 봐줄 때도, 습작을 만들 때도 많은 변화가 느껴졌다.

이제는 멜로디 없이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 멜로디 때문에 그동안 안 썼던 음악 근육을 키워 보자.’

봄날에 화환 가지고 크리스마스트리 어쩌구 하는 사람은 머릿속에서 지우고.

#겉보기엔 건반을 아무렇게나 누르는 것 같겠지만, 머릿속은 심득을 갈구하는 무협지의 주인공마냥 팽팽 돌고 있다.

내 경험과 과거의 공부했던 것들을 박박 긁어모아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을 찾았다.

일단, 멜로디를 만들 때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건···.

‘중심음이지.’

멜로디가 붕붕 뜨지 않도록 잡아주고 눌러주는 일종의 무게 추랄까.

그 ‘중심음’들이 이어져 작은 선율을 만들고, 거기에 리듬을 집어넣어 하나의 파트를 만드는 거다. 그 파트들이 모여 전체 멜로디가 완성되는 거고.

지금껏 나는 이 단계들 중 가장 첫 단계를 프리패스, 하이패스, 슈퍼패스 했다.

중심음 잡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

내가 듣는 멜로디가 바로 그 중심음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멜로디에 의존하지 않으려면 첫 단계를 스스로 해낼 줄 알아야 했다.

‘어떻게···?’

가창자를 집요하게 분석해야겠다. 멜로디가 가창자에게서 들려오듯. 나도 그들에게서 중심음을 뽑는 연습을 해야 한다.

가창자와 중심음들이 반대로 놓고 봐도 어울릴 수 있도록.

흔히 테마(Thema)라고 하지.

그들이 가진 테마. 즉 세계관을 잡고 거기에 맞게 뼈대를 잡는 거다.

‘누가 좋을까···.’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넣고 오른손만 건반 위에 올렸다. 스케일을 연달아 몇 번 치다가 떠올렸다.

그래, 학준이 형.

‘형에게서 다음 멜로디가 들려온다면 어떤 느낌일까.’

형의 성격. 현재 갖고 있을 감정과 상황. 고유의 음색과 박자감. 습관. 지향점.

그 모든 것들을 떠올려본다.

정확하지 않아도 좋다.

정해보는 거니까.

머릿속에 키워드들이 두둥실 떠올라 산개한다.

‘쉽지 않네.’

어느 한 키워드에 집중하여 중심음을 만들면, 다른 키워드와 이질감이 생긴다.

이 모든 키워드를 아우르는 중심음이 필요하다.

이윽고,

‘···영 아니네.’

완성 시켰다. 3할. 아니, 2할 정도 충족시킨 중심음들을.

학준이 형의 곡인 듯, 아닌 듯. 애매한 결과물이 탄생했다.

‘체력 소모가 장난 아니야···.’

가만히 앉아있음에도 진이 쭉쭉 빠진다.

정신적, 감정적 소모는 더 하다.

마치 배우가 배역을 연기하듯.

가수가 가사를 음미하듯.

“후우.”

그래도 조금은···늘었나?

아쉽다.

자신의 멜로디를 부르는 가창자들처럼.

눈에 띄게, 성큼성큼 늘어주면 좋을 텐데 말이지.

그래도 닫힌 입술 사이로 웃음이 배어 나온다.

비록 한참 부족하지만.

그래도 멜로디의 대안을 찾은 것 같아서.

‘이번엔 이런 식으로···.’

나는 가상의 토크 백 버튼을 눌러, 나에게 디렉을 했다.

‘장기로, 넌 열 번, 아니 백 번 더 다.’

그러면서 내심 원하는 것을 떠올렸다.

이번엔 멜로디에 대한 부담감을 좀 내려놓고.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선택해보자고.

#서기영의 자작곡들이 화로에서 듣기 좋게 익어가는 동안, 아더 레이블의 직원들도 바빠졌다.

보도자료를 뿌리고, 홍보를 시작한 것이다.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SNS와 각종 커뮤니티에서 흔히 떡밥이라 불리는 것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굉장히 호의적인 반응으로.

“기영이가 오디셔닝에서 사람들에게 인상 깊긴 했나 봐요.”

“그러게요. 하긴, 오디셔닝 최초로 음원 차트 1위를 찍었잖아요.”

김지희의 말에 홍보 담당자가 끄덕거리며 답한다.

함께 앉아있던 여직원도 핸드폰을 슥 훑더니 한마디 거들었다.

“기사도 계속 나오고 있어요. 기로 사단이 또 성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면서.”

“기로 사단. 그거 요즘 자주 나오는 말이네요.”

“드라마 작가에게 쓰는 건 봤어도 프로듀서에게 붙는 건 처음 봐요.”

기분 좋게 웃던 홍보 담당자가 갑자기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래서 장 피디님은 다음 작업 정하셨대요?”

이에 도리질하는 김지희와 여직원.

“아뇨. 아직 말씀 없으셨어요. 뭔가 염두에 둔 게 있으신 것 같긴 하던데.”

“아무래도 레이블 대표 자리 앉고 부담이 많으신가 봐요. 신중하시네.”

“하긴, 부담되죠. TKM 직원들부터 네티즌들까지 장 피디님이 뭘 선택할지. 또 성공시킬지. 전부 궁금해하고 있는데. 여기서 까딱 삐끗하···.”

여직원이 하던 말을 멈추고 자신의 입을 찰싹 때렸다.

“이 조동아리···.”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지희가 은근슬쩍 물었다.

“하서윤은···역시, 안 되겠죠?”

몹시 아쉬운 표정으로.

자신의 입을 집게손가락으로 찝고 있던 여직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싫어하시던데요. 화환이 아주 화룡점정을 찍었죠.”

“쩝. 흥행 보장되고 딱인데···.”

대화를 지켜보던 홍보 담당자가 말했다.

“근데 하서윤도 쉽게 포기 안 할 것 같지 않아요?”

“그건 그래요. 보통이 아닌 것 같아. 아니, 근데 왜 그렇게까지 피디님 곡을 받으려고 하는 걸까요?”

“피디님 곡 받으려는 곳이야 넘치잖아요.”

“그래도 무려 하서윤인데요?”

“제인도 받았는데요 뭘.”

김지희의 대답에 여직원이 입을 아 벌리고 끄덕였다.

그때였다.

장기로가 작업실에서 나와 그들이 모여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는 홍보 담당자를 향해 물었다.

“기영이 홍보는 잘 되고 있어요?”

“넵. 반응이 점점 끓어오르고 있습니다.”

“다행이네···. 아마 후반 작업도 2주 내로 끝날 것 같아요. 슬슬 더 디테일한 떡밥이 풀려도 될 것 같아서요.”

“곡에 대한 정보들을 조금씩 풀겠습니다.”

끄덕거린 장기로가 이번엔 여직원을 보았다.

“저 다음 프로젝트 정했는데 그쪽에 연락 좀 해줄래요?”

순간, 세 사람이 모두 화들짝 놀랐다.

“오, 드디어! 어디로 연락하면 될까요?”

궁금증에 반짝거리는 세 쌍의 눈을 보며 장기로가 답했다.

“정준철 감독님이요.”

김지희와 홍보 담당자가 갸웃거리는데, 여직원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그 드라마 OST 들어온 거!”

#정준철 음악 감독은 가상의 선을 앞에 두고 초조해하는 중이었다.

데드라인.

밟으면 죽는 마감이란 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옆에서 함께 초조해하던 직원이 입술을 질겅거리다가 답답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감독님.”

“엉.”

“이번 주 내로 3회분 촬영 끝난대요. 이제 정하셔야 해요.”

“정하긴 했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는 정준철 감독.

직원은 고구마를 한가득 머금은 사람처럼 답답해했다.

그도 그럴 게, 방영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타이틀 곡이 안 나온 상황인 거다.

물론 흔한 일이긴 하다. 방영 3일 전에도 타이틀 곡이 안 나와 벼랑 끝까지 몰린 적도 있었다. 이쪽 업계가 원래 그렇지.

하지만 그건 피치 못한 상황인 거고.

지금은 그냥 뭐랄까. 하염없이 한 프로듀서의 답변만 기다리는······.

“무슨 짝사랑 하세요? 기로인지 가로인지 지금 거절 답변조차 안 오고 있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니까요. 이제 그만 포기하시고 얼른 다른 후보들한테 연락 돌리죠. 이러다 진짜 후회하세요. 내일 피디님 만나면 뭐라고 하시려고요···.”

“그런가. 포기해야 하나.”

흡사 고백해놓고 답변을 기다리는 남고생 같았다.

직원이 이번엔 방법을 바꿨다. 어르고 달래기.

“그 프로듀서 곡 받는다고 드라마 대박 나는 거 아니잖아요. 정 아쉬우시면 중, 후반부에 또 연락해보세요. 일단 타이틀 곡은 뽑아 놓고···.”

그러나 정준철 감독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OST가 아무리 잘나도 대박 드라마를 만들진 않지. 맞다.

하지만 드라마의 생명력을 연장해 주는 게 바로 OST다.

그 노래만 들어도 드라마의 장면들이 떠오르는 것처럼.

그 여운이 짙을수록 다음 화를 기다리는 거고, 봤어도 또 보게 되는 거다.

그렇기에 정준철 감독은 아쉬웠다.

다음 작품에 또 러브콜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번 작품이어야 할 것만 같은 강한 충동에 휩싸인다.

“너도 ‘브릿지’ 들어봤을 거 아냐.”

“제인 이번 앨범 타이틀이요?”

“그래. 그거 들으면 딱 안 느껴져?”

“좋구나? 노래는 좋죠. 것도 무지. 근데 그래도······.”

“아니, 그거 말고.”

“?”

정준철 감독이 열변을 토해냈다.

“이 프로듀서는 곡으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구나! 드라마 주제곡을 만들면 기똥차겠구나!”

“···짝사랑 맞네.”

직원이 허탈하게 중얼거리는데, 새하얀 테이블이 덜덜거렸다. 위에 놓인 핸드폰이 진동하고 있었다.

“제 거네요. 네, 여보세요···.”

직원이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댄다.

그동안 정준철 감독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관자놀이를 뽑을 기세로 꾹꾹 눌러댔고.

그때 직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누, 누구시라고요?”

그녀의 시선이 홱 돌았다.

정준철 감독에게로.

“···?”

귀에서 핸드폰을 떼며 작게 속삭인다.

“아, 아더. 아더레이블.”

“···!”

정준철 감독이 화들짝 놀라 그녀의 핸드폰을 빼앗듯 받아 들었다.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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