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 코첼라 페스티벌 (3)
캘리포니아주의 인디오는 사막이다.
그렇다고 붉은 가루가 휘날리고 낙타가 지나다니는 사막은 아니고, 황량한 도시쯤을 떠올리는 게 맞다.
그리고 이곳에서.
세계 최고, 최대의 축제로 불리는 코첼라 밸리 뮤직 앤 아트 페스티벌이 매년 개최된다.
광활한 땅 위에 화려한 공연장과 구조물들이 올라가고. 수많은 뮤지션들과 아티스트들이 무대와 부스를 꾸린다.
매년 25만 명의 사람들이 모이는 거대한 축제.
그런 이곳에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레드리시가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국내의 반응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코첼라 페스티벌에 대해 몰랐던 사람들도.
코첼라를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페스티벌이라 여기던 사람들도.
한국인. 최초.
이 두 단어는 사람들의 흥미를 확 잡아끌었다.
거기에 잊을만하면 올라오는 기사들.
대중들은 알게 되었다.
코첼라가 어떤 페스티벌이고. 거기에 한국인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가는 레드리시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반응은 페스티벌 시작 당일인 오늘까지 꾸준히 뜨거워졌다.
근데 이게 국내에서만 화제인 건 아닌가 보다.
“LA 한인들 모두 몰려올 기센데요? 이번이 아니면 언제 코첼라에 한국인이 서는 거 보겠느냐고.”
커다란 스타크래프트 밴 안에서 편하게 10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이병국이 핸드폰을 뒤적거리며 여러 소식들을 전했다.
그가 영어를 못 하는 게 다행이지 싶네.
미국인들 반응은 또 다르니까.
레드리시에 대한 언급의 대부분이 ‘지켜보겠다’ 같은, 스릴러 느낌의 글들이었다.
“신기하네요.”
휙휙 지나가는 사막의 풍경을 보며 윤태영이 말했다.
“가족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 말에 레드리시 멤버들도 끄덕인다.
“우리 엄마는 가게 아니었으면 따라올 기세였는데.”
“동영상이랑 사진 열심히 찍어 오래. 돌아와서 꼭 보여달라고.”
사실 무대에 서지 않는 나조차도 비슷한 마음이 드는데. 공연을 하는 레드리시나 윤태영은 어떻겠나.
아직 뮤튜브에서 스트리밍을 발표하기 전이라는 게 아쉬웠다.
“턴투더 레이블 측에서 촬영팀이 온다고 하니까 좋은 화질로 보여드릴 수 있을 거예요.”
내 말에 반색하며 끄덕이는 머리들이다.
그때였다. 턴투더 레이블의 남직원이 우리를 부르며 차 창밖을 가리켰다.
지평선 끄트머리에 형형색색의 구조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드넓은 사막 한가운데에 세워진 축제의 성.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와야 할 페스티벌이라고 했나?’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기 그냥 호텔이야!”
카라반들이 늘어서 있다. 겉보기엔 꽤 낡아 보이는.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유지은의 말대였다. 호텔방이 따로 없을 정도.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때 밖을 기웃거리던 이병국이 슬쩍 다가온다.
“옆 트레일러에 존 셔젤이라고 붙어있어요.”
“···!”
R&B의 황태자다.
“그 옆엔 키이스 스콧.”
춤추는 피아노맨이고.
이병국이 줄줄이 읊는 이름 모두, 하나같이 라인업 상단에 있던 유명 뮤지션들이었다.
유지은과 윤태영이 크게 놀라했다. 특히 유지은은 ‘여, 여여여, 옆에?’라면서 작은 창문에 머리를 딱 붙였다. 혹시나 지나가진 않을까.
나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 이름에 주문이라도 걸린 건지, 묘한 기분이다. 어느새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바로 옆에 그 대단한 뮤지션들이 있다니까 누가 가슴팍을 두드리는 것처럼······.
뛴다. 동경하는 뮤지션들을 향해.
그때 기성운이 툭 던졌다.
“해가 져야 공연하는 사람들이 벌써부터 와 있겠냐. 아직 텅텅 비어있을걸?”
“또, 또 부정 필터···.”
“현실 필터란다.”
다시 티격태격하는 레드리시를 보며 웃었다. 슬쩍 돌아보니 윤태영도 나와 같은 자세로 구경 중이었다.
시트콤 보는 것 같아, 재밌긴 하지.
그때 남직원이 들어왔다.
“리허설까진 아직 시간이 있으니, 구경 좀 하고 오셔도 돼요.”
“오!”
유지은이 소파에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스멀스멀 일어나는 우리를 향해 남직원의 당부가 이어진다.
“입장 시작하면 핸드폰이 바로 먹통 될 거예요. 길 잘 외워두세요.”
만 단위의 사람들이 몰리니 핸드폰이 터질 리 없지.
끄덕이며 카라반을 나섰다.
우리는 각자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병국과 기성운은 비어 존으로 향한다고 했고, 윤태영은 누나에게 보낼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겠다고.
그리고 유지은은······.
“어디 가시는 거예요?”
어째선지 쫄래쫄래 쫓아온다.
“공연장이요. 근데 비어 존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아···뭐. 생각해보니 제가 설 공연장은 한 번 봐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지금 얘기했는데?”
유지은이 눈을 흘겼다.
“쫌 넘어가요.”
“넵.”
“근데 공연장은 왜요?”
“한산할 때 보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으니까요.”
“아.”
레드리시의 공연장은 카라반 대기실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는 거지만, 일단 철골들이 돔 모양으로 뼈대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색색의 천들이 철골 사이사이를 메우고 있다. 그 덕에 내부는 LCD 판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조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근데···.
“생각보다···.”
“너, 너무 큰데요?”
유지은이 벙벙한 표정으로 말끝을 올렸다.
수천 명은 가뿐히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이다.
여기가 코첼라의 공연장들 중, 중간 정도 크기라는 건 더 놀랍다. 앤 더글라스가 서는 메인 스테이지는 대체 얼마나 큰 거야?
“이렇게 클 줄 몰랐어요.”
“저도요.”
수용 가능 인원은 미리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보는 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생각했던 거에 비해 1.5배 아니, 2배는 되는 것 같다.
고개를 돌려 입구 쪽을 보았다. 다른 공연장과의 거리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
이거, 한 팀 보겠다고 올 거리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한 번 떠난 관객들이 다시 돌아올 일도 없을 거고.
‘앤 더글라스의 트위터가 얼마나 효과를 보여줄까···?’
의문이 맴도는데, 유지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싹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우리가······여길 채울 수 있을까요?”
#코첼라 페스티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입장이 시작되자 스태프들의 움직임이 더욱 바빠졌다.
둑이 무너진 것마냥 사람들이 쏟아졌기에.
그래도 백 스테이지 상황은 그나마 나았다.
여긴 관람객이 없는 유일한 곳이니까.
-!
물론 그들이 지르는 함성까지 없는 건 아니었다.
백 스테이지 너머에서 들려오는 환호성 속에서 엔지니어들은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눠야 했다.
“리허설 누구 차례지?”
“레드리시.”
“어!? 들어본 적 있어. 그 밴드 맞지? 앤 더글라스가 선택했다는.”
덩치가 큰 엔지니어가 관심을 보이며 말했다. 이에 털복숭이 남자가 끄덕였다.
“맞아. 아 저기 오네.”
엔지니어와 스태프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일단의 무리가 백 스테이지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 동양인이야?”
“몰랐어? 한국인이라던데.”
“전혀 몰랐어. 레드리시라길래 보스턴(-레드삭스의 도시) 애들인가 했지.”
둘의 얘기가 오가는 사이.
무리 중에서 레드리시로 보이는 네 명이 장비가 세팅 된 무대 위로 올랐다. 각자의 악기를 점검하며 리허설 준비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태프들이 숙덕거렸다.
“오, 보컬 예쁘잖아? 갑자기 응원하고 싶어지는걸?”
“귀여운데?”
“원피스 입고 기타 매니까 꼭 만화 캐릭터 같네.”
반면, 털복숭이 남자는 어딘가 실망한 표정이었다.
“앤 더글라스가 추천한 밴드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저 작은 체구에서 노래가 나오겠어? 발라드나 R&B를 부르면 모를까 밴드라니.”
그 말에 키 큰 엔지니어도 고갤 끄덕였다.
“그래도 앤 더글라스가 추천한 밴드인데, 형편없진 않겠지.”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게 양날의 검이고. 자칫 잘못하면 망신당하기 딱 좋잖아. 생각해봐 공연 시작하자마자 우르르 빠져나가는 관객들을.”
“으, 그거 진짜 보는 사람도 힘겨운데.”
키 큰 엔지니어가 몸서리쳤다.
“실력이 웬만큼만 돼도 좋겠다. 그 광경은 도저히 못 보겠어.”
“그걸로도 힘들걸?”
털복숭이 남자가 레드리시를 보며 말했다.
“코첼라 관객들이 다른 장르에는 다 유한데. 유독 밴드에는 냉정한 편이거든.”
#리허설을 마치고서, 또다시 대기 하게 된 유지은의 감정 굴곡이 심상치 않았다.
‘소리 들려요? 사람 지금 많은 것 같은데?’
‘아닌가? 아까보다 좀 줄어든 것 같기도 하고.’
‘확실히 줄어들었어···.’
‘아닌가?’
과거 소공연장에서의 자신감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앤 더글라스 내한 공연에서 보인 긴장한 모습과도 사뭇 달랐다.
오히려 앨범을 낼 때의 모습에 가까웠다. 리뷰란이 텅 비어있을 것 같다며 걱정하던.
물론 지금은 공연장이 그렇게 되진 않을까 걱정 중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아까부터 지금까지 환호 소리에 큰 변화 없어요. 일정해요.”
“그래요?”
“네.”
"아닌 거 같은드에···."
유지은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구른다.
그 사이, 이전 팀의 노래가 마지막으로 치닫는 게 느껴졌다.
이윽고 분주해지는 스태프들.
공연장은 끝을 알리는 환호로 가득 찼다.
“긴장해도 돼요. 그래도 될 만큼 연습했으니까.”
“후우, 후우. 넴···.”
“근데 불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유지은의 어깨에 꼬인 스트랩을 풀어주었다.
“그래도 될 만큼 연습했으니까.”
유지은이 살며시 웃으며 입을 달싹이는데, 진행요원이 달려와 준비해달라며 말했다.
나는 얼른 무대에서 내려왔다.
공연장에 존재하는 두 개의 무대.
곧 이전 팀이 공연을 한 무대가 레일을 따라 들어오고, 이 무대가 공연장으로 향할 거다. 느릿하게, 덜덜 거리면서.
공연장이 보이기까지 터널 너머로 몇 명이나 있을까? 이러면서 가만히 기다려야 하는 거잖아?
솔직히 저건 신밧드의 모험보다는 확실히 무섭겠다.
끼릭-!
무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유지은의 얼굴이 조금 나아진 것을 확인하며, 씩 웃었다.
그녀도, 그리고 나머지 멤버들도 나를 향해 웃었다.
마음이 조금은 놓인다.
레드리시의 무대가 계속 움직여 천막에 가려졌다. 나는 얼른 백 스테이지를 벗어나 공연장으로 돌아갔다.
공연 시작 직전이 되니까. 닥치니까.
솔직히 나도 불안하다.
공연장을 봤는데, 사람이 없으면?
혹은, 다들 떠나고 있으면?
우르르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레드리시는 어떤 기분일까?
이런 걱정들을 누르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마침내 공연장이 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섰다.
“······.”
잠시 그곳을 보다가, 시선을 돌려 무대를 보았다.
마치 회전목마처럼, 레드리시의 무대가 중앙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유지은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그녀는 웃고 있었다. 빽빽이 들어차 있는 관객들을 향해.
순간, 유지은의 피크가 작렬한다.
일렉 기타의 거친 소리가 터져 나오고.
분위기가 순식간에 타오른다.
꾸물거리던 머릿속 걱정들과 함께.
그래, 잠시 잊고 있었다.
존 셔젤. 키이스 스콧. 앤 더글라스.
내가 동경하던 그 이름들 사이엔, 분명히 레드리시도 있었다는 걸.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공연장의 입구 쪽을 돌아봤다.
순간, 피부가 냉탕에라도 들어간 듯 쭈뼛거린다.
끝이 없다.
이미 공연장은 빽빽한데.
밀려드는 사람들이, 정말 끝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