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 청사진
제인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자신의 입으로 나온 가사가 헤드셋을 통해 귀로 들어온다.
수백, 수천 번 들었던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
하지만 그녀는 며칠 전부터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역시···.’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제인은 또 한 번 확신했다.
‘이 곡 때문이야.’
처음엔 단순하게 생각했다.
오늘 노래가 좀 되잖아?
-이렇게.
컨디션이 좋은 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앨범 작업 때문에 동시에 여덟 곡을 번갈아 부르면서 의문이 생겨났다.
어떤 노래는 잘 되고.
어떤 노래는 안 된다.
이 둘을 가르는 기준은 예상과는 달리 컨디션이 아니었다. 목 상태와는 관계가 전혀 없었다.
‘그럼 뭐지?’
연습하면서 계속 확인했다.
그리고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장 피디님의 곡을 부를 때만···.’
그때만 작은 고양감이 꿈틀댔다. 목을 가로막는 어떤 벽을 갉아 먹듯이.
이 곡이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너무 오바하나···?’
물론, 이런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가창자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들이 곡이 필요로 하는 부분들과 딱 맞아 떨어져,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창자를 성장시키는···.
하지만 본인이 체감할 정도로 실력이 늘 수 있다는 건 조금 비현실적이었다.
그저 플라시보일지도 몰랐다.
“······.”
제인이 1줄을 부르고 눈을 떴다.
색색의 수많은 눈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놀란 기색이 묻어있었다. 모두에게. 심지어 선생님, 이정명 피디에게 조차도.
하지만 유일하게 조금 다른 눈빛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곳에 제인의 시선이 멈췄다.
눈을 마주하는 순간 알아챘다.
놀랐다기보단, 기대하는 눈빛이다.
다시 부르면 어떨까.
고대하는 눈빛이다.
설마···.
정말 알고 있었던 걸까?
이 노래가, 날 성장시켜줄 거란걸?
말도 안 되지.
그게 가능하다고?
가창자에게 어울리는 노래를 넘어서, 가창자를 성장시키는 노래.
그걸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하지만 모르겠다.
왜 저 표정은···.
‘얼른 한 번 더 부르라고 시켜보자.’
‘그럼 더 좋아지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바짝 마른 분홍빛 입술을 적시며,
제인이 먼저 말했다.
“···한 번 더 불러볼게요.”
#“문제네요. 문제.”
제인 전담팀 홍보 담당자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마우스 휠을 드륵드륵 내렸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든 전담팀 팀장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우는 거야, 웃는 거야?”
“복잡한 감정의 결과랄까요?”
“뭐?”
“이거 뭐, 홍보할 게 없어요. 알아서 홍보가 되고 있어서. 그래서 난 홍보 담당자로서 뭘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일이 없는 건 월급쟁이로서 웃을 일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제인의 4집 앨범에 대한 떡밥이 돌기 시작한 건 SNS에서부터였다. 누군가 미국에서 제인을 보았고. 그녀가 앨범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부터.
이것만으로 제인 팬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기엔 충분했는데, 심지어 그 자리에 기로 프로듀서가 있었다. 그림이 나왔겠지. 둘이 작업을 하는구나.
독보적인 뮤지션인 제인과 한창 대중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오르고 있는 기로 프로듀서.
둘이 곡을 만든다. 심지어 미국에서.
이 떡밥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근데 걱정이 좀 되긴 하네요.”
“뭐가?”
“반응이 너무 좋아서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잖아요. 막상 뚜껑 열어봤는데 별로면 어쩌죠?”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구냐.”
“그렇긴 한데···문제는 지금 커뮤니티에 그런 걸 우려하는 글들이 꽤 많이 올라온다는 거예요. 우려인지 지능적 안티인진 몰라도 갑론을박으로 시끌시끌해요.”
“그래···?”
혀를 차던 팀장이 잠깐 고민을 하더니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오늘 그 곡 녹음이 끝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가만 시간이······.”
시차를 확인한 팀장이 전화를 걸었다.
스피커 폰으로 바꾸자 연결음이 크게 울린다. 다른 직원들도 흥미로운 눈빛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네, 팀장님. 여보세, 흠. 여보세요?
착 가라앉다 못해 갈라지는 목소리. 반면에 주변은 좀 시끄럽다. 브라보, 어메이징. 이런 단어들이 언뜻언뜻 들려온다.
“목소리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네? 아뇨, 그냥 목이 좀 말라서요.
“그래? 아 다른 게 아니라. 오늘 녹음 마무리된다고 했잖아? 그거 어떻게 됐나 궁금해서.”
-그렇지 않아도 방금 끝났습니다. 후우···.
김 실장의 목소리가 떨린다.
팀장의 눈이 옆으로 돌아갔다. 홍보 담당자가 잔뜩 불안한 눈빛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 그런데? 어땠어, 녹음은?”
-아 그게 솔직히···.
팀장과 홍보 담당자를 비롯한 모두가 괜히 마른 침을 삼켰다.
이윽고 김 실장의 대답이 들려왔다.
-미치겠던데요.
“어?”
목소리는 여전히 떨린다.
-제인이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 줄···아니지. 노래는 원래 잘 불렀죠. 최고로. 근데 오늘은 더 최고였어요. 곡이랑도 너무 잘 어울리고 후, 아직도 벙벙하네요. 미쳤어요, 이거. 아마 나오면 난리 날 거예요.
#녹음이 끝나고 나는 곧장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풀썩.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푹신함이 온몸을 감싸 안는다.
절로 눈이 감긴다.
녹음 준비 때문에 며칠 밤을 꼬박 지새웠기에 기분 좋은 몽롱함이 이불처럼 내 위로 덮였다.
스윽, 하고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침대의 푹신함도 푹신함이지만, 지금 기분이 좋은 이유는 녹음 때문이었다.
녹음의 결과가···지금 곱씹어도 울렁거릴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확실히 제인은 제인이었다.
디렉을 받아들이는데도 거부감이 전혀 없었고. 한 마디 한 마디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오히려 자신이 먼저 다시 부르겠다고 계속 요청했다.
‘목이 상할까 봐 말려야 할 정도였지.’
음악에 대해 열정이 엄청났다.
자신을 음악에 녹여내고 싶어 하는 게 느껴졌다.
감탄했고, 자극받았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보여주는 성장 속도가 엄청났다.
이미 완성되어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안정된 음색과 피치.
멜로디는 그런 그녀조차도 성장시켰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 성장 속도였다.
그녀의 재능이 작용한 걸까?
성장은 보폭을 넓히더니 급기야 뛰기 시작했다. 이러다 녹음이 끝나기도 전에 한계를 넘어서 다른 멜로디가 들리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서울 정도로 대단했어.”
완벽했던 녹음을 곱씹으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앞으로 하루.
믹싱 엔지니어와의 간단한 회의만 끝내면 제인 앨범의 일정이 완전히 끝이 난다.
이제는 푹 자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초인종 소리에 눈을 떴다. 비척대며 침대에서 빠져나와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당연히 윤태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맞았다. 윤태영‘도’ 있었지.
제인과 김 실장, 그리고 자주 만난 스튜디오 직원들과 함께.
나는 윤태영을 보며 웃었다.
“요즘 독특한 조합에 자주 껴있네요?”
“하하···.”
윤태영이 어색한 소리를 내는데, 제인이 싱긋 웃는다.
“녹음도 다 끝났는데 두 분 다 룸에서 딱 이러고 계실 것 같더라고요.”
*제인이 자주 찾는다는 근처 펍으로 향했다.
작은 조명들이 은은하게 깔리고, 늘어지는 재즈가 흘러나오는 곳.
녹음이 끝났음을 자축하는 조촐한 축하 파티릴까. 연주자들의 흥덕에 분위기가 들썩였다.
‘나오길 잘했네.’
짧뚱한 잔에 동그란 얼음 하나가 예쁘게 깎여 들어가 있다.
황금빛 술과 함께 흔드니 조명에서 떨어지는 빛이 반사되어 꽤 오묘한 색을 자아냈다.
열정적인 음악 작업 후, 펍에서 한 잔.
‘다들 좋아라, 할 텐데.’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같이 왔으면 싶은.
꽤 많다.
곡 작업을 해오면서 만났던 마음에 맞는 사람들.
“무슨 생각해요?”
시선을 올렸다. 연주자들과 유쾌하게 떠들던 제인이 날 보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요. 같이 왔으면 좋았겠다 싶어서요.”
“팀원들이요?”
그녀에겐 저 단어가 익숙할 거다.
전담팀이 따로 있으니.
뭐, 비슷하지. 팀원···.
“네. 팀원들이죠.”
“흐응. 저도 보고 싶네요. 저희 팀원들. 앨범 잘 나올지 걱정이 많은 것 같던데.”
살짝 취했는지, 제인이 눈을 힘없이 떴다. 그게 뭐랄까. 굉장히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번에 많이 배웠어요.”
잔에 담겨있는 얼음만큼 투명한 눈이 날 향한다.
“선생님과는 또 다른 스타일이라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가요?”
입술을 핥으며 끄덕인 제인이 눈웃음 지었다.
“솔직히 선생님 스타일보다 피디님 스타일이 더 맞아.”
“다행이네요.”
무려 제인이 내게 뭔가를 배웠다니. 이건 이거 나름대로 듣기 좋은 말이었다.
그때 그녀가 불쑥 얘길 꺼냈다.
“저도, 저도 그런 거 만들고 싶어요. 저에게 딱 맞으면서도···.”
돌연 날 보는 눈빛이 강렬하다.
“저를 성장시키는 곡.”
순간 놀랐다.
“···.”
“지금은 놀라시네. 역시···.”
제인이 작게 웃으며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말을 시작했다.
“아까 녹음하는 순간부터 그런 곡을 만드는 게 제 목표가 됐어요.”
황금빛 위스키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얼음 같다. 조명 때문인지 강렬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이럴 때, 괴수 영화 속이었다면 이런 대사가 나올 것만 같다.
‘내가 뭘 깨운 거야.’
피식.
앞으로 그녀가 만들 곡들이 머릿속에서 줄줄이 나열된다.
당장 다음 앨범부터.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자작곡들로만 앨범을 채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니앨범도 아닌, 정규앨범을 그렇게 낸다는 건.
괜히 뮤지션들이 몇 년씩 걸리는 게 아니지.
하지만 그녀는 매해, 꾸준히 자신의 자작곡들을 묶어 대중에게 공개한다.
그리고 모두 성공시켰다.
성공의 이유?
곡이 나날이 갈수록 좋아졌으니까. 그것도, 그녀만이 낼 수 있는 좋음이었고.
독보적이란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음악적 언어는 능숙함, 유창함 따위를 넘어서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이미 그녀는 그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그 목표 이룰 겁니다. 곧.”
내 대답에 제인이 밝게 웃었다.
#스튜디오가 횅하다.
녹음을 마친 연주자들이 대부분 떠나니 가뜩이나 넓은 스튜디오가 더 넓어 보인다.
나는 아침부터 믹싱 엔지니어를 만나, 그에게 필요한 내용을 전달했다.
곡을 만질 때 어떤 것들을 중점적으로 만질지 작곡자의 관점에서 풀어 설명했다.
엔지니어는 또 그들의 관점이 있으니 타협도 필요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회의를 하고서 이정명 피디가 쓰는 사무실로 향했다.
“어, 왔나?”
그는 차 한잔을 내게 건넸다.
“내일 떠난다고?”
“네.”
“아쉽구만.”
그는 입맛을 다시며 찻잔을 내려놨다.
그리고 물어왔다.
“지난번에 내가 얘기한 건 생각해봤나?”
내게 계약 기간을 물었을 때.
그때 덧붙였던 말에 대한 질문이었다.
만약에 TKM을 나오게 된다면, 이라는 전제가 깔린 영입 제안.
나는 천천히 내 생각을 끄집어냈다.
“만약에 제가 TKM을 1년 뒤에 나오게 된다면···.”
어렴풋이나마 그리고 있던 그림을 펼친다.
나조차도 부끄러워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았던. 아주 옛날에 어느 술자리에서 내뱉었던 꿈.
“그땐 어디에 속하려고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직접적이진 않지만, 솔직했다.
이에 이정명 피디가 끄덕인다.
“그런가?”
“네.”
내게는 큰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유명 뮤지션들과 작업할 수 있는.
꿈의 무대라는 빌보드도 노려볼 수 있는.
“아쉽네.”
“저도요.”
그 기회를 방금 버렸다.
아쉽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정은 너무나 쉬웠다.
내 사람. 내 팀. 내 뮤지션.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뛰는 일들이 기다릴 것만 같았으니까.
10년까지 거슬렀는데,
성공을 담보로 가슴 뛰는 일을 팔기는 싫었다.
그래, 내가 만들자.
여기서 놓쳤을 뮤지션보다 더 대단한 뮤지션을.
연신 입맛을 다시던 이정명 피디가 물어왔다.
“그럼 이제 한국으로 가나?”
“아뇨. 내일 LA행 비행기를 예매했습니다.”
“LA는 왜?”
그 물음에 또다시 든든함이 차오른다.
“제 뮤지션들과 만나기로 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