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70화 (70/221)

070. 재능들이 한자리에 (1)

“투표?”

이정명 피디가 눈을 끔뻑인다.

이내 상황을 파악한 듯 피식 웃는다.

“한 번 부딪히긴 하겠다 싶었는데. 꽤 아기자기한 해결책을 찾았네요?”

“미국적인 해결책이라고 해두죠.”

내 대답에 그가 껄껄 웃어 재꼈다.

“재밌겠네. 다들 녹음 때문에 지쳐있는데 환기 좀 시켜주도록 하죠. 회의실로 불러서 제대로 해봅시다.”

끄덕이는데, 그가 등받이에 허리를 쭉 펴며 덧붙인다. 살짝 걱정스러운 얼굴로.

“근데 그 데모 나도 들어봤잖아요. 연주가 좋다고 생각하긴 했지만···글쎄. 톰 베젤의 연주를 이길 것 같진 않던데.”

그래서 답했다.

“그건 하룻밤 사이에 만든 라인이었습니다. 뼈대쯤 되는 거죠.”

내가 듣는 멜로디처럼.

“그래서 아쉽다고 음원을 하나 더 보내왔습니다.”

내가 멜로디를 발전시키듯이.

“그 데모를 녹음한 친구가요?”

“네.”

“그래서 장 피디는···거기에 자신이 있다?”

이정명 피디가 흥미로운 듯 묻는다.

내가 곧바로 답했다.

“아뇨, 확신입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등받이에 축 기대어 무언가를 생각하던 이정명 피디가 다시 물어왔다.

“근데 톰 베젤이야 장 피디한테 쪽 주려고 일을 벌인 거라 치고. 장 피디는 이런 거에 왜 동의한 거예요?”

내가 바로 대답하지 않자 그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여기 모인 연주자들은 한국의 연주자들과는 달라서 인정 못 하겠으면 일 제대로 안 해요. 결과가 좋지 못하다면 창피당하는 거에서 안 끝나고 녹음 일정 내내 차질이 생길 건데. 그렇다고 결과가 좋아도 딱히···.”

말꼬릴 늘어트리며 고개를 천천히 기울인다.

이득 없는 대결을 왜 하냐는 거다.

그의 말이 맞다. 얻는 게 없지.

“사실 그것 때문에 왔습니다.”

그래서 왔다.

얻어낼 걸 만들어 보려고.

#

예정되어있던 회의 시간이 다가왔다.

회의실로 연주자들과 엔지니어들이 들어선다.

각 녹음실에서 오전 내내 일을 하다 와서 그런지 다들 피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사람이 꽤 많아 일부는 탁상에 둘러앉고 나머지는 벽에 기대어 서야 했다.

그 때문인지 좋게 말하면 자유로워 보이고 나쁘게 말하면 어수선한 회의 풍경이다.

이윽고 회의가 시작되었다.

진행 중인 7개의 곡에 대한 진행 상황과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중간 점검 식의 회의가 오갔다.

그렇게 한 곡, 한 곡. 토론과 피드백들이 오가고.

마침내 내가 작업 중인 곡 차례.

이정명 피디가 미소를 지으며 담담히 말했다.

“이 곡에 경우엔 지금 베이스 라인에 대한 의견이 두 개로 갈리는 상황입니다.”

스크린에 두 파일을 띄운 그가 덧붙인다.

“그래서 들어보고 투표 한번 해볼까 해요.”

그의 말에 사람들의 표정에 흥미로움이 떠올랐다.

“재밌겠네.”

“베이스면 톰 베젤이잖아?”

“그 친구가 두 라인을 다 만든 건가?”

“그렇지 않을까? 베이시스트가 그뿐이니.”

그때였다. 한쪽에 가만히 앉아있던 톰 베젤이 입을 열었다.

“하나는 내 연주가 맞고, 다른 하나는 이름 모를 한국의 연주자예요.”

“뭐? 한국?”

의아해하는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내 쪽을 보며 씩 웃는다.

관심 없다는 듯 무시하자, 이내 딱딱하게 굳어졌지만.

“뭐야, 그러면 이거 그냥 톰 베젤 찾기잖아.”

“그렇겠군. 톰 베젤이 이길 확률이 높은 거 아냐.”

“푸흐, 톰의 연주 찾기. 그건 그거 나름대로 재밌겠네.”

“어, 자네 나랑 내기할래? 어제 기가 막힌 바를 하나 찾아놨는데. 톰 베젤 맞추는 사람이 오늘 쏘는 거로.”

회의실이 웅성거렸다. 이에 이정명 피디가 탁상을 퉁퉁 친다.

“일단 두 곡 다 듣고 얘기합시다.”

그가 파일 하나를 틀었다.

재생 화면이 나타나며.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데모 위에 얹어진 베이스라인.

톰 베젤의 연주였다.

장난기 어린 얼굴로 옆 사람과 떠들던 사람들이 어느새 자신들의 귀에 바짝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오.”

누군가는 감탄하고.

누군가는 작게 끄덕이며.

누군가는 신나는 듯 까딱까딱 리듬을 탔다.

몇몇은 톰 베젤을 돌아보며 씨익 웃기도 했다.

이게 너지? 라는 표정으로.

이윽고 화려하고, 리듬감 넘치는 연주가 끝이 났다.

“이거네. 이게 톰이야!”

“확실한 것 같은데?”

“근데 정말 잘 쳤네. 몸이 들썩거리더군.”

“이거 톰 베젤 찾기가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린 것 같은데?”

다시 왁자지껄해지는 분위기.

톰 베젤의 웃음이 더욱 짙어져 가는데, 누군가 말했다.

“두 번째 연주도 빨리 들어보죠.”

돌아보니 톰 베젤 이전에 녹음을 진행했던 드러머였다. 그의 말에 주변이 조용해지자 이정명 피디가 다음 파일을 틀었다.

잠시 후, 아까처럼 집중하는 표정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조용하다.

정적인 회의실에 리드미컬한 데모만 흘러나온다.

아, 하나 더 들리는 소리가 있긴 하다.

톰 베젤의 눈이 굴러가는 소리.

그는 멍하니 연주를 듣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그 이후론 주변을 계속 훑고 있다. 불안한 눈동자로.

마침내 연주가 끝났다. 돌아보니 이정명 피디가 날 보고 있었다. 몹시 놀란 표정이었다.

이 정적이. 놀란 표정들이 날 뿌듯하게 한다. 윤태영의 진짜 가치가 이제야 드러나는 것 같아서.

입꼬리를 올리는데, 연주자 중 한 명이 정적을 깨고 말했다.

“이건···누군데?”

#

“톤이 놀라운데?”

“그러게. 처음 듣는 톤인 것 같은데···.”

“근데 또 곡에는 완벽하게 스며들더만. 독특한데 튀진 않잖아.”

“거기다 연주도 딱 깔끔했어.”

웅성거리는 소리가 회의실에 가득 찬다.

그럴수록 톰 베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결과를 직감한 사람의 표정이랄까.

가볍게 손을 드는 것으로 결과를 확인했는데 이건 뭐, 숫자를 셀 필요도 없었다.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차이가 났거든.

그대로 끝이 난 회의. 사람들은 여운이 남는지 회의실을 나가면서도 계속 윤태영의 베이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연주는 훨씬 단순했는데. 곡에는 완벽하게 어울렸다느니. 톤을 대체 어떻게 만진 건지 궁금하다느니. 몇몇은 남아서 이정명 피디에게 물어보기까지 했다. 대체 누구냐고. 저런 연주를 하는 사람이 알려지지 않았을 리 없다고.

그런데 그 일이 한국에선 가능하지. 조금 씁쓸한 일이지만.

회의실이 텅 비었다.

나를 비롯한 이정명 피디와 제인, 김 실장과 팀원들.

그리고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의 톰 베젤과 그의 매니저만이 남았다.

“젠장.”

그가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본다.

입을 달싹이는데 필시 욕일 것 같다.

옆에서 매니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양새다. 불쌍하게도.

“이거 무효야.”

얼씨구? 너무 진부해서 놀랍네.

톰 베젤이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대부분이 스튜디오 직원들이랑 니네 나라 사람들이었잖아.”

“외부에서 온 연주자들도 전부 두 번째에 손들지 않았나?”

“이, 이···!”

“그리고.”

나는 조금 차갑게 그를 보았다.

“아까 그 연주를 들었는데도 왜 졌는지 모른다면 그건 연주자로서 더 큰 문제인 것 같고.”

화가 나서일까. 창피해서일까.

그의 얼굴이 더욱 꾸깃꾸깃해졌다.

“고작 코딱지만 한 나라의 프로듀서 따위가···!”

흥분하니 본색이 나오는구만.

“그 코딱지만 한 나라의 베이시스트한테 진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사람 얼굴이 썩는다면 저렇게 되겠구나, 싶을 정도로 놈의 얼굴이 거무죽죽해진다.

놈이 고개를 홱 돌린다. 이정명 피디를 보며 허연 이를 드러냈다.

“나 이 작업에서 빠집니다. 애초에 이따위 급 떨어지는 작업, 하지 말았어야 했어.”

내가 크게 웃었다.

“와, 우리가 처음으로 생각이 맞네요.”

“···이!”

그때 매니저가 그를 말렸다.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짓다가 우릴 돌아보는데 꽤나 사나웠다. 불쌍하단 말은 취소다.

“이거 소송으로 갈 수도 있는 문제예요.”

역시, 소송의 나라네.

그때 김 실장이 앞으로 나섰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뭐···?”

“약속한 돈은 줄 거니까. 깔끔하게.”

“···!”

오 멋있어. 저게 TKM 기둥을 뽑은 자의 멋짐인가.

김 실장의 시선이 톰 베젤에게로 향한다.

“그러니 쉽게 돈 버셨다고 기뻐하셔도 됩니다. 얼른 가세요. 비행기 표도 구하셔야 할 텐데.”

“뭐, 이런 미친놈들이 다 있어!”

이성을 잃은 톰 베젤이 길길이 날뛰었다. 매니저는 그런 놈을 질질 끌고 나가버렸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김 실장이 입매를 비튼다.

“어디서 제인한테 급 떨어진단 소릴 하고 있어.”

그런 그에게 엄지를 치켜세워주려는데, 이정명 피디가 나를 불렀다.

“장 피디.”

“네?”

“그 연주자, 언제쯤 올 수 있습니까?”

윤태영을 말하는 건가?

‘맞나 보네.’

기대감으로 범벅되어 있는 이정명 피디의 눈과 마주쳤다. 저럴만하지. 윤태영이 보내준 연주는 그를 줄곧 옆에서 지켜본 나에게도 충격적일 정도로 역대급이었으니까.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확인해보겠습니다.”

#

테라스로 나왔다.

후련하고 산뜻하다. 난간까지 다가가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이 동네만 그런 건진 몰라도 코를 아무리 벌름거려도 한국의 숲처럼 풀 내음이 안 나.

그런 생각도 잠시.

핸드폰을 꺼내 드는 순간, 심장이 벌컥거리기 시작했다.

윤태영의 번호를 찾는데, 두근거림이 더욱 강렬해진다.

연결음이 이어지다가 멈추고.

건너편의 공기가 달라졌다.

-네, 피디님.

윤태영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 하다.

어서 말을 해주고 싶어진다.

“보내준 음원, 반응이 엄청 좋았어요.”

-정말요? 그냥 좀 아쉬워서 보내드린 건데, 다행이네요.

“그런 것치곤 너무 열심히 연주해서 보냈던데요?”

-거기 대단한 연주자들도 많을 텐데, 혹시 다 같이 들을지도 모르니까. 하하···.

민망한 듯 말하던 윤태영이 물었다.

-녹음은 잘 진행되고 있어요?

“사실 그것 때문에 전화했어요.”

-네? 무슨 문제 있어요?

윤태영의 목소리가 짐짓 심각해진다.

그럴수록 내 입꼬리는 올라가고.

문제라···.

“대답에 따라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일정이 급한데, 없으면 문제긴 해서···.”

-네?

내가 물었다.

“여권 있죠?”

얼떨떨함과 들뜸의 적절한 조화를 보여주던 윤태영이 당장 짐을 싸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흐뭇하게 웃으며 실내로 들어왔다.

테라스를 한 번 나갔다 왔을 뿐인데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상쾌함이다.

입가엔 미소가 들썩인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서 겅중겅중 걷는데, 회의실 문이 열리며 김 실장이 모습을 보였다. 그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피디님. 이것 좀 보세요.”

불쑥 건네는 패드.

순간 불안해진다.

좀 전까지만 해도 다시 태어난 기분 어쩌고 그랬는데.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도 김 실장 표정을 보니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걸쩍지근한 느낌으로 패드를 받아 든다.

그리고 화면을 보는데···.

“이거···.”

포털 사이트 연예란에 기사들이 주르륵 떠올라 있었다.

<제인 & 기로 프로듀서. 새 앨범 작업 중?>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작업 진행 중. 기대감 증폭···!>

<프로듀서 기로. 스포츠카 소유? 음원으로 대체 얼마나 벌었길래···?>

“생각보다 일찍 알려지긴 했는데. 그래도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그런가요···?”

내 입에서 영혼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마지막 기사에 골이 띵 할 정도로 어이없어하는 참이라···.

그때 김 실장이 덧붙였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번 앨범 타이틀을 피디님 곡까지 더블 타이틀로 진행할까 하는데,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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