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 미국답고 좋네
한 파트 녹음이 끝났다.
나는 톰 베젤이란 베이시스트를 보았다.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베이스를 내려놨다. 방금 자신의 연주에 퍽 만족한 듯 보였다.
‘그래, 연주는 괜찮았지···.’
그런데 왜일까. 오히려 내 머릿속엔 윤태영의 이름이 둥둥 떠다닌다.
아이러니하다. 톰 베젤이 잘 칠수록 윤태영이 더 돋보이는 것이.
윤태영은 얼마나 잘 쳤던 건지 돌아보게 된다.
‘그건 그렇고···.’
이정명 피디와 제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뒤쪽에 서 있으니 표정들이 안 보이네.
뭔가 아쉬운 게 있긴 한데, 내 작업이 아니니 끼어들기도 좀 그렇고···.
그때 이정명 피디와 무슨 얘기를 속삭이던 제인이 토크백을 누르며 말한다.
“잠깐 쉬었다 해요.”
톰 베젤이 휘적휘적 부스에서 나왔다. 그는 이정명 피디를 보며 물었다.
“한 번에 끝내지. 웬 휴식입니까?”
그런 그에게 옆에 있던 제인이 입을 열었다.
“연주 너무 좋았어요.”
“하핫, 그러니까. 빨리 끝내고···.”
“근데-.”
“···?”
“연주는 좋았는데, 제 곡엔 좀 아쉬운 느낌이었어요.”
톰 베젤의 눈썹이 꿈틀댔다.
“뭐라고요?”
“어쩐지 허전한 느낌이···.”
그녀가 말끝을 흐리자, 잠시 눈을 끔뻑이며 톰 베젤이 어이없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길게 이어지던 웃음을 뚝 멈추며, 그가 물었다.
“이번이 디렉 처음이죠?”
“···네?”
“아,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요. 확인하고 싶어서 물어본 거예요. 피디님? 작곡가님? 아티스트?”
“그냥 제인이라고 불러요.”
“그래요. 제인. 제 말 좀 들어봐요. 아직 뭐 많이 남았잖아요. 다른 악기들도 다 들어와야 하고, 믹싱에 마스터링에. 당연히 허전하죠. 베이스 혼자 MR 만드는 거 아니니까.”
“그렇죠. 근데 전 그런 얘기가 아니라···.”
제인의 표정이 굳어진다.
톰 베젤이 웃는 낯으로 말을 잘랐다.
“그럼 녹음 한 번 더 할까요? 그래서 괜찮은 거 고르실래요?”
멀찌감치서 지켜보며 놀라는 중이다.
저렇게 얄미울 수 있다는 것에.
제인도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자신의 곡으로 하는 첫 디렉이기도 했지만.
지금껏 녹음실에서 누군가에게 이런 태도를 당해본 적이 없을 테니까.
제인에게서 시선을 뗀 톰 베젤이 이정명 피디를 보며 물었다.
“그렇죠. 피디님?”
이 상황을 관조하던 이정명 피디는 그를 빤히 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린다. 내 쪽으로.
“장 피디는 어떻게 생각해요?”
예상치도 못하게 바통이 내 손으로 넘겨졌다.
제인도 내 쪽을 돌아본다. 한국어였지만 뉘앙스 때문인지 톰 베젤도 내 쪽을 보았다. 쟨 또 누구야라는 표정이다.
안 그래도 아쉬운 게 있긴 했다. 아마 제인이 느낀 것과 비슷할.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게. 미숙한 영어로 입을 열었다.
“톤이 문제인 거 같은데요?”
순간 톰 베젤의 표정이 미묘하게 구겨진다.
“톤···?”
“곡하고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은 아니라서요.”
그가 퍽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받아친다.
“가장 대중적인 톤인데? 저 장르에 잘 어울리는.”
“그래서 같은데요?”
나는 그를 보며 말했다.
“평범해서.”
“···평범.”
톰 베젤이 미간을 찌푸리며 읊조린다.
글쎄. 누군가는 내가 조금 공격적이라고 볼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게 또 사실 맞다. 살짝 기분이 언짢다.
우리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그랬지만.
음악적으로 봤을 때 더 그랬다.
베이스에 있어서 연주만큼이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톤.
그 톤에 따라 곡 자체가 변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톤은 베이시스트의 실력을 가르는 또다른 척도였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베이시스트들은 하나같이 톤 잡는 솜씨가 뛰어나다.
윤태영이 세계적인 베이시스트가 되는 것도 톤 메이킹 실력이 크게 한몫을 했지.
반면, 톰 베젤이 고른 톤은···.
‘사실 골랐다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이 곡에 대해 고민한 흔적조차 없으니까.
이러면 엔지니어가 톤을 만져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곡의 장르만 보고, 그 안의 뉘앙스는 아무 상관 없이. 무난 무난하게. 대중적이게.
그래서 거슬렸다.
사람에 대한 무시도.
곡에 대한 무시도.
“······.”
톰 베젤도 나만큼 얹잖은 표정이었다.
분위기가 냉랭하게 얼어붙는데, 이정명 피디가 끼어들었다.
“저 친구 말이 틀렸다는 생각은 안 드는군.”
못을 박는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톰 베젤이 이정명 피디를 보았다.
나를 볼 때처럼 날카로운 눈은 아니었다.
그도 이정명 피디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겠지. 유명 스튜디오의 수장이자, 프로듀서, 게다가 명문대 교수니까.
짧은 침묵 끝에 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어느새 돌아와 있었다.
미국인 특유의 쿨함이 느껴지는 제스처와 얼굴.
“뭐, 오케이. 슈퍼스타들도 좋아했고, 빌보드에 걸린 음원에도 쓰였던 톤이···마음에 안 들 수도 있는 거지.”
정작 내뱉는 말에는 쿨은 커녕 가시가 콕콕 박혀있었다. 생선 마냥.
생선을 뱉어낸 그가 녹음실로 들어간다.
그 뒷모습을 보던 이정명 피디가 피식 웃는다.
“역시 정확했어, 장 피디.”
이걸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덕분에 나는 저 베이시스트한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것 같은데?
앞으로 녹음도 같이 해야하는구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정명 피디는 제인을 돌아보았다.
“네가 한 말도 맞았지만 느낌만으론 제대로 디렉할 수가 없어. 핵심을 짚는 연습을 해야 해. 그러니 잘 배워둬.”
제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날 돌아본다. 눈빛에서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기꺼이 배우겠다는.
“······.”
숙련된 조교. 뭐 그런 게 된 기분이네.
잠시 후. 녹음이 다시 시작되었다.
짧은 시간에 톰 베젤은 곡에 잘 어울리는 톤을 잡아냈다.
새삼 대단하긴 하다.
이래서 재능, 재능 하는 거지···.
레코딩 불이 들어오고, 연주가 이어진다.
‘훨씬 괜찮네.’
제인의 작은 머리도 앞에서 까딱거리고 있었다.
쩝.
그런데 아직도 입이 쓰다.
뭐랄까···.
갈릴레이가 법정을 나서면서 이런 심정이었으려나.
머릿속에 맴돈다.
그래도 윤태영이 더 낫다고.
#
“누가 보면 슈퍼스타인 줄 알겠어.”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
톰 베젤은 녹음실에서의 상황을 떠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매니저는 그의 눈치를 보며 동조했다.
“흉내라도 내고 싶나 보지.”
“그게 같잖다는 거야. 그 늙은 피디만 아니었어도···.”
그의 말에 매니저가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래도 이 피디 그 사람은 입지가 꽤 있어. 알지?”
“그래서 참았잖아. 안 그랬으면 다 엎었지. 특히 그 멍청한 발음으로 아는 척하던 놈이 거슬려. 프로듀서랬지?”
매니저가 끄덕였다.
“어. 그것도 너랑 작업하게 될······쓰읍, 녹음 첫날부터 좀 꼬인 것 같다.”
“꼬이긴. 오히려 잘됐는데.”
“어?”
톰 베젤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온 말투는 싸늘했다.
“프로듀서랍시고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꼴 못 보지.”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린 톰 베젤이 계속 말했다.
“딱 봐도 프로듀서 단지 얼마 안 된 애송이야.”
“어려 보이긴 하더라. 동양인이라 가늠이 잘 안 되긴 해도.”
“우리가 부른다고 와주니까, 자기네 나라 연주자들처럼 밑으로 보이나 본데. 확실히 알려줘야지 뭣도 아니라는 걸.”
이에 매니저가 고개를 내저었다.
“뒤끝 긴 톰, 또 나왔네.”
“흐흐, 요새엔 거물들이랑 작업하면서 꼭꼭 숨기고 있었는데 말이지.”
“그래서 어쩌려고?”
“뭘 어째. 간단해. 내 멋대로 하는 거지. 그리고 그게 더 나았다는 것만 증명하면 되잖아?”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지. 내 심기를 건드렸는데.”
톰 베젤은 목을 뒤로 젖히며 조소를 그렸다.
“어딜, 지가 그동안 봐왔던 허접한 연주자들이랑 같은 취급을 하고 있어.”
#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탁상 위의 핸드폰이 가벼운 종 소리를 냈다.
메일이 들어왔다는 알림.
뒤이어 벨소리가 이어진다.
몸을 툭툭 말리며 다가가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아, 피디님.
윤태영이었다.
“잠시만요.”
볼에 묻은 물기가 화면에도 덕지덕지 붙길래 수건으로 닦았다. 그리고 다시 귀에 가져갔다.
“네.”
-아, 거기 시간이 많이 늦었다는 걸 깜빡하고···죄송합니다.
“아뇨. 저 늦게 자는 거 알잖아요. 근데 무슨 일이에요?”
-그, 제가 메일 하나 보냈거든요.
좀 전의 종소리가 윤태영의 것이었나 보다.
-베이스 라인 드린 게 하룻밤 새 만든 거라 아무래도 아쉬운 게 많아서요. 이미 녹음 진행 중이겠지만 혹시 몰라 발전시켜 보내드렸습니다.
“아···.”
나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가 나갔다. 그러자 윤태영이 당황한 듯 말을 이었다.
-아, 뭐 당연히 거기 연주자분이 저보다 뛰어나실 거고. 그러니 더 좋은 라인 만드시겠지만···그래도 최선이 아니었던 것 같아 아쉬워서요. 욕심도 나고···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내 목소리 때문인지 그의 목소리도 착 가라앉았다.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긴 하다만.
근데 그걸 설명할 여력이 없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있거든.
“일단 메일을 좀 확인해볼게요.”
전화를 끊고서 곧장 메일을 열었다.
윤태영이 보낸 음원 파일을 튼다.
뚝. 뚝.
물기 가득한 머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개의치 않고 계속 들었다. 끝까지.
바닥이 흥건해질 때쯤.
노래가 끝났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생각했다.
어떡할까.
대체 어떻게 해야.
···윤태영을 쓸 수 있을까?
발전된 라인을 들으니 더 미치겠다.
내 곡에만이라도. 저 연주를 넣고 싶어서!
“후아.”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거울에 내가 비친다.
윤태영의 욕심 어린 눈빛이···
어느새 나에게 옮아 있었다.
#
-!
심장이 뿌리째 울린다.
첫 타자인 드럼 녹음이 순조롭게 마무리 단계를 향해 가고 있었다.
‘좋네.’
감탄을 머금고 디렉을 보다가 시계를 보았다.
갑자기 스트레스가 몰려올 것 같다.
바로 다음이 베이스 녹음인데, 오질 않고 있으니.
그게 톰 베젤이란 점에서 더욱 불안했다.
드럼과 베이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드럼을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베이스의 라인도 변한다.
물론 드러머가 데모 가이드라인 안에서 치고 있으니 크게 달라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원활한 녹음을 위해선 베이시스트가 드럼 연주를 완벽히 숙지해야 했다.
그러나 드럼 녹음이 끝나도록. 톰 베젤은 기어이 얼굴도 비추지 않았다. 전화를 해봐도 받지 않는다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컵에 받아온 물이 타는 듯한 갈증에 바닥을 드러낼 무렵, 톰 베젤이 녹음실로 들어왔다.
“아, 미안해요. 미안.”
“늦으셨어요.”
“그러니까요. 미안합니다. 얼른 시작해요. 뭐, 빨리 끝내버리면 되지. 일정에 맞게.”
말은 저런데 눈은 히죽 웃고 있었다.
일부러 늦게 왔나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데. 비약이려나.
“일단 드럼 라인 들어보세요.”
부스로 들어간 그가 드럼 라인을 가만히 듣더니 말했다.
“데모랑 크게 달라진 것도 없네.”
그러면서 베이스를 집어 든다.
“바로 하죠.”
자신감 넘치는 제스처와 함께 곧바로 베이스 녹음이 시작되었다.
드럼 라인. 그것도 심장보다 낮은 곳에서 쿵쿵거리는 킥 위로, 저음 가득한 베이스 소리가 얹어진다.
나는 신이나 연주를 하는 톰 베젤을 보았다.
머지않아 내 손이 녹음을 끊었다.
톰 베젤이 고개를 든다.
근데 어리둥절한 표정이 아니네.
마치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왜요?”
본인이 더 잘 아는 것 같은데?
“왜 데모대로 안 합니까?”
그가 옅게 웃는데, 그게 참 엿같게 보인다.
“더 발전시킨 거죠.”
“데모를 기준으로 발전시켰어야죠. 이건 아예 다른 느낌인데.”
“그래도 더 좋으면 된 거 아닙니까. 너무 자존심 부리시는 거 아녜요? 이거 연주자는 서러워 살겠나.”
노골적인 말투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확실해요?”
“···?”
“발전시키는 것보다 이게 더 낫다고 확신해요?”
잠시 눈을 굴리던 톰 베젤이 크게 웃는다. 마치 자신이 할 소릴 내가 했다는 듯이.
“그럼요. 어디 뭐 투표라도 할까요?”
저렇게 옳다구나 하고 의도를 비친다.
입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화가 나서가 아니라.
웃음이 나와서.
이 순간, 톰 저 친구에게 고마울 지경이다.
구실을 만들어 줄 줄이야.
이에 나도 빙그레 웃었다.
노골적으로.
“해봅시다, 투표. 미국답고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