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66화 (66/221)

066. 브릿지 (1)

간단한 인사가 오갔다.

막상 두 사람 앞에 서니 심장이 마구 뛴다.

멜로디까지 들리니 아주 난리다. 혈액이 왈칵왈칵 넘치는 기분이다.

하얗게 센 머리를 툭툭 넘기던 이정명 피디가 말했다.

“서재원이 추천한 작곡가라고 해서 궁금했어요. 그 친구가 사람 추천을 잘 안 하거든.”

흥미가 돋아있는 시선이었다.

그리고 그건 제인도 마찬가지였다.

인사를 나눈 후로는 입을 굳게 닫고 있어 어느새 멜로디는 사라졌지만,

어쩐지 날 요리조리 뜯어보며 신기해하는 얼굴이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진짜 연예인은 맞네.

난생 처음 본 연예인도 아닌데, 탑 급 아티스트라고 생각하니···

마치 면접장에 들어선 취업준비생이 된 기분이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이정명 피디가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내린다. 그리고 눈을 들어 올렸을 때. 무슨 재밌는 것이라도 생각난 듯 이채를 띄었다.

“우리가 이번 앨범 수록곡 중 하나를 두고 얘길 좀 나누고 있었는데, 한 번 들어볼래요?”

속으로 제인의 멜로디를 되뇌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갑자기 궁금해져서요. 장 피디는 이걸 듣고 어떻게 생각할지.”

김 실장은 옆에서 눈을 껌뻑였다.

제인의 살짝 처진 눈망울엔 흥미롭다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고.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갑자기 시험대에 오른 기분이다.

이 곡을 듣고 내가 원하는 말을 고르시오. (3점) 뭐, 이런 느낌인가?

그러고 보니 아까 들어올 때 둘이서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무슨 얘길 하고 있었지?

머리가 팽창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록곡이라잖아?

그건 곧, 내가 모르는 곡일 리 없다는 거였다.

머릿속을 정리하고서, 천천히 대답했다.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이정명 피디가 주억거리며 노트북 자판을 툭 누른다.

소리가 흘러나왔다. 빅밴드였다. 보사노바 느낌이 물씬 나는···.

‘백킹 트랙?’

처음엔 전주라 그러려니 했는데, 이미 목소리가 튀어나와야 할 시점에서도 악기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말 그대로 반주였다. 멜로디는 없는.

이걸 듣고 뭘 생각하란 말인가.

아직 반주일 뿐인데.

그치. 반주일 뿐이지.

근데 생각해보니···.

난 알잖아.

이 곡 멜로디.

*

이 바닥은 실력과 운이 중요한 만큼, 감도 중요했다.

이정명 피디가 기억하는 서재원은 꽤 감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신중하기도 했지.

그런 서재원의 추천을 받고 온 청년 프로듀서라기에 흥미가 돋았다.

게다가 제인도 서재원의 제안을 흔쾌히 오케이했다. 음악에 관해서 만큼은 무척이나 까다로운 그녀가 그런 선택을 했다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그의 노래를 찾아 들었다. 그리고.

놀랐다.

곡 하나마다 장르적 차이가 컸음에도 어느 곡 하나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차고 넘쳤지.

이건 여러 장르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도가 상당하단···아니, 뛰어나단 얘기였다.

더욱 궁금해졌다.

어떤 친구인지.

그리고 방금 전, 그가 김 실장과 함께 회의실로 들어왔다.

눈앞의 청년은···.

‘생각보다 훨씬 젊네.’

자신이 음대에서 맡는 학생들 나이 정도?

마주하니 더욱 궁금해졌다.

간질간질하다.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이래서 교수직을 못 내려놓지···.’

마침 시험문제로 적당한 파일이 노트북에 띄워져 있었다.

제인이 작곡해온, 청년이 들어오기 전까지 그녀와 입씨름을 하고 있었던 곡.

이 곡을 저 청년 작곡가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래서 제안했다. 곡을 들어보라고.

이윽고 멜로디가 없는 배킹 트랙이 재생되었다. 동시에 노래를 듣는 청년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진다.

그럴 만도 하지. 멜로디가 빠진 백킹 트랙이었으니까.

MR을 듣고 뭔가를 평가하라는 건 알맹이 없는 통을 보여주며 내용물이 뭐였는지 맞추라는 것과 같았다.

‘불가능하지. 냄새라도 맡지 않은 이상···.’

그리고 이정명이 생각하기에 그런 냄새를 맡는 이들은 극소수였다.

흔히 천재라고 불리는 부류들.

청년이 그런 부류가 아니라면, 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좋네요.”

그래 저거.

짧은 감상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학생들 100명에게 물어보면 99명이 답할.

‘역시···.’

이정명은 실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청년은 뛰어난 작곡가이다.

그동안 써온 곡들이 그걸 증명해준다.

‘단지 그 이상은 아닌 거지.’

그런데 그때, 청년의 시선이 제인에게로 돌아간다. 마치 그녀가 작곡했다는 걸 아는 것처럼.

“소녀 이미지를 버리겠다는 건 말이죠.”

뭐···?

청년이 냄새를 맡아버렸다.

#

“어떻게 아신 거예요?”

김 실장이 따끈하게 내려진 커피를 머그컵에 따르며 물었다.

내가 머리를 굴리는 사이, 그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 짧은 트랙을 듣고 이번 앨범의 컨셉을 정확히 맞추셨잖아요.”

머그잔이 내 손으로 배달되었다.

나는 뜨끈한 잔에 손바닥을 데우며 김 실장을 보았다.

“끈적끈적했어요.”

“엇, 머그컵이요? 제대로 안 씻겼-.”

“아뇨, 노래가요.”

“네···?”

“그런 백킹에 제인씨가 아기자기하고 톡톡 튀는 멜로디를 부를 것 같진 않더라고요.”

“아?”

이미 앨범 컨셉을 알고 있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답을 알고 역으로 접근하는 건 쉬우니까.

“그걸 듣고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전 그냥 멍하던데.”

김 실장이 낄낄대며 웃었다.

나는 민망함에 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샌프란시스코가 내려다보이는, 기가 턱 하고 막히는 전경을 배경에 두고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중간중간 자유롭게 이야길 하면서.

“꼭 송캠프 온 것 같네요.”

“전 가본 적이 없어 잘 모르지만, 다른 팀원들은 종종 그런 얘길 하더라고요.”

가벼운 얘길 나누며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그의 역할은 내가 이 프로젝트에 정상적으로 끼어들 수 있도록 하는 것.

사전에 알고 있어야 할 내용들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특히나 이번 앨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컨셉적인 부분.

“피디님이 이미 맞추셨듯이. 제인은 이번 기회에 기존의 모습을 완전히 탈피하려고 해요.”

끄덕이며 커피를 홀짝였다.

제인은 아이돌이 아니다.

강렬한 색은 데뷔에 중요한 포인트지만 한 가지 색은 언젠간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색이 바래기 전에 새로운 색을 자연스럽게 덧입히는 게 프로듀서의 역할이고.

“언제까지 소녀같은 컨셉으로 어필할 순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인은 이번 앨범의 색을 성숙해진 자신으로만 채우려고 하고 있죠.”

김 실장이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비춘다.

“반면, 이정명 피디님은 그걸 많이 우려하고 계세요. 팬들이 낯설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죠. 그들이 기대하는 게 분명히 있을 텐데. 엉뚱한 걸 주는 게 될 수 있으니까요.”

양쪽 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의견들.

미래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 판결문을 내려보자면, 둘 다 맞는 말이다.

제인은 자신의 이미지를 버림으로서 더 넓은 스펙트럼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변신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일부 대중들에 의해 한차례 홍역을 겪기도 한다. 자잘한 구설수에도 오르게 되고.

강렬한 색일수록 새로운 색상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말이 맞다.

그게 처음 데뷔 때부터 한가지 컨셉으로 달려온 제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어려운 문제네요.”

“네. 지금 양쪽 다 생각이 워낙 확고해서 의견 조율이 잘 안 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양쪽 다 만족시킬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고개를 주억거리며 빈 머그컵을 내려놓았다. 이를 본 김 실장이 손뼉을 가볍게 친다.

“자, 이제 스튜디오를 좀 둘러보실래요?”

#

스튜디오 구경을 하고 내가 사용할 작업실까지 안내를 받았다.

첫날인 만큼 오늘의 일정은 이걸로 끝이었다. 내일부터 제인과 회의를 하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게 될 예정이었다.

덕분에 시간이 남아 오후엔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돌았다.

생전 처음 와본 도시라 솔직히 조금은 즐기고픈 마음이 있었지.

그렇게 썬셋 비치에서 노을까지 보고서,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후우···.”

에너지 음료로 얇게 쌓인 피곤을 쫓아내며 의자에 앉았다.

혼자 있는 상황이 되자, 자연스레 오늘 들은 멜로디가 떠오른다. 사실 작은 펍이라도 가볼까 했는데, 이것 때문에 일찍 들어왔다.

얼른 발전시키고 싶어서.

곧장 노트북 앞에 앉아 들은 대로 멜로디를 그린다.

오랜만이었지만, 멜로디가 가져다주는 느낌은 여전했다. 역으로 보아도 제인이 떠오를 만큼 그녀에게 어울릴 것 같은 멜로디.

나는 그 멜로디를 보다 더 촘촘히 발전시켜 나갔다.

방향성도 정해져 있었다.

어제 잠들기 전에 잡았던 가닥.

그 방향대로 곡을 발전시켜 나갔다.

내가 아니어도 성공할 앨범.

하지만 완벽했다고 말할 순 없지.

이 앨범에도 아쉬운 점들은 있다.

급변. 이질감. 지금까지의 음악 스타일과 너무 달라졌다는 데에서 오는 괴리감···.

손바닥 뒤집듯 바뀐 컨셉에 혼란스러워 하는 팬들이 생겼고, 호불호가 갈렸었다.

‘그러면, 내가 해야 할 건···.’

시간이 흐른다.

시차 때문일까.

아니면 오랜만에 멜로디를 발전시키는 것 때문일까.

밤이 늦어질수록 정신이 또렷해졌다.

#

다음날.

나는 제인과 회의실에 마주 앉았다. 그녀에게 줄 곡에 대한 얘길 나누기 위해서.

“곡 컨셉 얘긴 김 실장님께 들었어요.”

내 말에 제인이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컨셉은 유지할 거예요.”

“···?”

“선생님이나 전담팀 얘긴 많이 들었어요. 수십 번도 더. 그래도 제 생각은 똑같아요. 이렇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어요. 물론 그 곡들이 절 여기까지 올려준 건 맞지만···.”

컨셉의 컨자만 말했을 뿐인데 참았던 말들이 수도꼭지 봇물 터지듯 줄줄 흘러나온다.

침착하지만 수백 번은 더 머리 속에서 되뇌였던 말처럼 막힘없이.

얼마나 하고 싶었던 말들이었을까.

“언제까지 소녀일 수 없으니까. 이젠 절 표현할 음악을 하고 싶어요. 이번에 자작곡 비중을 늘린 것도 그것 때문이고요. 작곡가님 말씀도 이해는 가지만-.”

“맞아요.”

제인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어차피 계속 유지할 수 없는 컨셉. 빠르게 넘어가는 게 좋죠.”

그러면서 덧붙였다.

“대신, 인사는 제대로 하고 보내는 게 어때요?”

내 곡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벙벙한 그녀의 표정을 뒤로하고, 호텔방에서 가져온 노트북을 꺼냈다.

여전히 영문모를 눈빛이 쏟아진다.

그런 그녀를 슬쩍 보며 밤새 작업한 트랙을 틀었다.

건반 소리 위에 올려진 멜로디가 전부인 스케치.

제인은 날 빤히 보다가, 이내 소리에 집중했다.

이윽고 1절 분량 정도 되는, 1분이 조금 넘는 스케치 트랙이 끝나고. 제인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뭔가 더 복잡해진 얼굴이었다.

“이건···.”

말끝을 흐리는 그녀를 보며 설명했다.

“벌스 다음 바로 후렴이 나오면 이상하잖아요.”

“아···!”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본다.

“브릿지!”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끄덕였다.

이 곡은 제인의 지난 컨셉들과 현재를 이어줄, 브릿지 역할을 해줄 거다.

1